나의 아버지는 돌아가신 지 오래된다.
늘 바빴다. 강원도 횡성에서 원주 횡성지역에 민주공화당 김용호와 민주당 박영록이 선거 때마다 격돌했다.
민주공화당 사전 창당시기에 횡성 조직책이라 민주공화당 황소깃발에 정치 헌금도 많이 했지만 이득도 많이 봤다.
요즘은 녹용 수입이 자유롭지만 1970년대는 정말 녹용이 하늘의 용 수준으로 구하기 힘들었다.
김용호가 의원 외교로 해외 나가면 국제소포가 아버지 앞으로 배송이 되었다.
아무도 없을 때 할아버지와 아버지 두 분이 개봉했고 난 장손이라 할아버지 옆에서 앉아있는 것만으로 할아버지 기쁨조였다.
박스를 조심조심 개봉하면 녹용이었다.
커다란 녹용, 모르는 사람은 사슴뿔이면 다 녹용으로 아는데, 뿔이 가지가 이쁘게 피면 녹용이 아니고 녹각이라고 값으로 치면 50배에서 100배 차이 났다.
그 시절은 위에는 녹용 아래는 녹각 사기도 많았는데 아버지, 할아버지는 정말 진땡이 녹용만 취급했다.
그래서 당당했다.
경동시장이나 대구 약령시장 할 것 없이 큰손들이 아버지에게 선입금하는 순서대로 번호순으로 녹용을 보내주었다.
그렇게 돈을 긁어 민주공화당에 김용호를 통해 상납했다. 절반은 아버지 할아버지가 취하고 서로 윈윈 하는 구조였다.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 할아버지가 돈을 벌면 우리 먹고살기가 좋아져 좋았는데 요즘 생각해 보니 잘못된 것이라 생각된다.
하루는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녹용을 분배하면서 나에게 박정희 대통령이 왜 얼굴이 까만지 아느냐? 고 물으셨다.
나는 박정희 아버지나 어머니가 까만 피부라 유전일 거라고 했더니 아니다고 하셨다.
박정희 어머니가 백남의인데 집이 하도 가난해서 애가 태어나면 키우기 힘들다고 유산을 시키려고 높은 데서 뛰어내려도 낙태가 안되고 조선간장을 바가지로 마시면 애가 떨어진다는 속설이 있어 간장을 많이 마셨는데도 태어나서 간장 새기라고 하셨다.
그때는 에이 거짓말이라고 여겼는데 요즘 박정희 기록을 읽어보니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