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우(百牛) (9)

by 함문평

홍제동 분실은 남영동이나 서빙고 호텔보다 외부는 깔끔했다. 외부가 깔끔하다고 좋다고 할 수 없는 것이

내부시설은 물고문에 쓰이는 욕조, 구타를 위한 구경별 몽둥이, 소파이프, 야구방망이 등 그 시절 고문도구를 예산 절감하느라 그런지 그대로 비치되어 있었다. 김 반장은 비록 피의자 신분이지만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에 다녀온 것도 아니고, 1980년 광주에서 경험하고 본 것을 아들에게 부끄럽지 아니한 아비가 되기 위해 쓴 <무등산은 말이 없다>를 문제 삼아 국가보안법으로 단죄하는 것이 억울했다. 이글에 무슨 북한을 고무 찬양하는 내용이 있다고?


항상 역사는 승자의 편이지만 진실을 영원히 묻어둘 수 없다. 광주의 유혈 진압 후 신군부는 국가보위 비상대책 상임위원회를 만들고 8월 16일에는 최규하를 하야 시켰는데 가정부 전언에 의하면 권총으로 협박했다는 말도 있었다. 가경 선생 복덕방 통신에서도 언급했었다. 통일주체국민회의가 소집되고 김일성의 100% 찬성에 0.00001% 부족한 득표로 장충체육관 선출 마지막 대통령이 되었다.


이렇게 체육관에서 99%의 찬성으로 대통령 만들면서 고작 1% 차이 나는 김일성을 왜 그리 비난했는지 모르겠다.


홍제동 분실에서 고문을 당해도 당당함을 유지하려 애썼으나 3일까지는 굶는 것을 참았는데 4일 차에는 사정했다. 뭐라도 좋으니 먹을 것 좀 달라고 했다. 플라스틱 식판에 밥, 국, 삼 찬을 순식간에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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