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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무

by 함문평

어린 시절 겨울이면 올무를 만들었다. 강원도 시골 뒷산에 올무를 20 개 정도 만들어 설치했다. 일주일 정도 지난 후에 뒷산을 한 바퀴 돌게 되면 올무에 걸린 토끼들이 슬픈 눈을 하고 있었다. 어떤 놈은 눈을 감고 어떤 놈은 눈을 감지 않은 것도 있었다. 토끼 눈을 손으로 감겨주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눈이 올무에 걸린 토끼의 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 선형을 찾아간 것은 순전히 영업을 위해서였다. 더 조은 상조회사의 한 계좌 3만 5천 원을 가입시키면 다음 달에 5 만원의 수당이 나오기 때문에 한 달에 20 계좌만 하면 되겠지 하고 시작한 상조회사 모집인이었다. 첫 달은 그럭저럭 아는 사람으로 20 계좌를 달성했으나 다음 달부터는 전화를 하고 갈 곳이 없었다. 궁리 끝에 군대 동기들이나 찾아가자고 동기회 명부를 헌책방에서 7 만원에 구입했다.

동기 중에서도 소위 시절 광주 보병학교에서 함께 구르면서 고생한 내무반 동기를 찾았다. 전화를 했다. 신호음이 울리자 선형이 전화를 받았다.

― 예 안 선형입니다.

― 너무 오랜만에 전화하는데 전병구라고 초군 때 6 중대서 지냈는데 기억하니?

― 기억하지 너 구보 못해 매번 선착순 꼴찌 했지?

― 그래 너 사무실 어디야?

― 응 여기 충무로야 지하철 충무로 7번 출구로 나온 방향으로 직진하다 보면 편의점 하나 있고 골목 지나면 5 층 건물인데 1층은 핸드폰 매장, 2층은 출판사 3층은 광고회사, 4층이 우리 여행사야.

― 여행사 사장님이시구나?

― 사장은 뭐 여행하는 사람 모집해 가이드 겸 하는 거야.

― 알았다 오늘은 통화만 하고 내가 며칠 후 시내에 일 생기거든 그때 보자?

― 그래.

이 우성 영업이사가 교육시킨 그대로 따라 했다. 아무리 친한 사람과 통화했다고 바로 방문하면 거절당하니 통화로 인지시킨 후에 뜸을 들이고 방문하라고 했다. 며칠 후 충무로에서 선형을 만났다.

― 선형아 병구다!

― 병구야 잘 왔다. 반가워, 이게 몇 년 만이냐?

― 1986 년 소위 시절 보내고 금년 2019 년이니 완전 33 년만이네?

― 참 세월 빠르다. 소위 시절 엊그제 같은데 벌서 33 년이 흘렀구나?

― 그러게 말이다 10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우리는 강산이 3번 변하는 동안 전화 한 통 안 하다 오늘 만났다.

― 나이는 들어도 얼굴 윤곽은 소위 시절 얼굴 말대가리 윤곽 남아 있다.

― 병구 너도 목소리 큰 거 변함없구나?

― 그래 목소리가 커서 항상 조용히 말하라고 지적받았는데 30 년 흘렀어도 그대로다.

― 천성이 쉽게 변하면 천성이 아니겠지?

선형과는 광주 보병학교 초등군사반 시절 6 중대 4 내무반에서 같이 지냈다.

소위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들어 훈육관이 소위들을 같은 지역 출신은 한 내무반에 사용할 수 없게 출신 지역 다른 장교들로 내무반 편성을 했다.

팔도 사나이 노래처럼 전국의 사투리가 내무반마다 흘러나왔다. 우리 내무반도 선형은 서울, 나는 강원도 박해임은 전라도 박흥수 경상도 이경민은 충청도였다. 보병학교 입소 첫날 우리는 ‘동양화’라는 은어로 불리는 화투를 김홍석 중위에게 압수당했다. 우리의 낙이 없어졌다고 낙심하고 있을 때 선형이가 나를 불렀다.

― 병구야?

― 왜?

― 우리 관물정돈 각을 잡느라고 넣은 메리야스 종이 두꺼운 거 다 모아서 똑같은 크기로 잘라 줄래?

― 왜?

―우리 동양화 압수당한 거 있지 내가 그려줄게.

― 알았어.

우리 내무반 8 명의 백색 종이를 모두 모아서 48 장은 작은 카드 모양으로 만들었다. 그것에 선형은 그림을 그려서 채색만 안 되었지 48 장의 화투를 완성했다. 정말 선형은 미술대학교 산업디자인 전공자답게 그림을 잘 그렸다. 그걸로 은밀하게 하루 훈련이 끝나고 석식을 하고 청소를 마치면 화투를 즐겼다. 그날의 딴 사람은 그걸로 충성마트에 가서 음료수와 초코파이를 사 왔다. 결국 누가 돈을 많이 내고 적게 내고의 차이지 우리가 낸 돈으로 우리 입으로 들어갔다..

4 명의 훈육관은 누가 일직사관이 되더라도 우리 내무반은 화투를 압수당한 거 알기에 화투 검사는 안 했다. 입소 당일에 화투를 압수당한 것이 전화위복이었다.

충무로 문무빌딩 4층 여행사에서 간단한 인사를 하고 충무로 태극당 옆 골목 식당으로 갔다.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면서 32 년 서로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나누었다.

솔직히 더 조은 상조 하나 가입해줘 하는 소리가 목구멍에 턱 밑까지 올라왔어도 33 년 만에 만난 동기에게 그 소리는 할 수 없었다. 선형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었다.

나는 질문을 던지고 선형이 대답을 하고 이 우성 영업 이사가 가르쳐준 그대로 머리를 끄덕이면서 칭찬도 하고 맞장구도 쳤다. 하여튼 고객을 춤추게 만들라는 이 우성 영업 이사의 말을 여기까지는 잘 실천했다.

― 선형 너는 소위 때 초군 마치고 22사단으로 갔지?

― 그래 동해안 최북단 율곡사단 통일전망대 옆에서 소대장을 했다. 병구 넌 환상의 17사였지?

― 그래 박해임은 102 연대 나는 100 연대였다.

― 너 해임이 잘 알아?

― 그럼 소위 시절은 17사단에서 세월이 지나 대위 시절은 00 사단에서 나는 통일전망대 중대장 해임은 명파 마을 해안중대장을 했다.

― 해임이 여기 자주와 전화 한번 해볼까?

― 그래 통화해서 나에게 넘겨.

선형은 해임에게 전화를 했다.

―나 선형이다. 해임이 너 전 병구라고 알아?

― 잘 알지 소위 17사 대위 22사단 두 번이나 옆에서 근무했는데.

― 그래 병구 바꾸어 줄 테니 통화해 봐.

― 여보세요? 박 해임이야?

― 오랜만이다.

― 그래 너 해안 중대장 마치고 강 학수 하고 5년 차 전역해 전역 환송식을 삼포횟집서 했었지?

― 그게 언제냐?

― 1991년 6월 30일이다.

― 야 세월이 27년이나 흘렀다.

― 야 거기 어디야?

― 태극당 제과점 옆 골목 삼겹살집이다.

― 알았어 내가 바로 간다.

― 그래 빨리 와.

선형, 해임 병구까지 셋이 모여 22사단 군대 시절이야기를 했다.

― 22사단에서 전역 전에 개고생을 했다.

― 왜?

― 88 서울 올림픽 전야제 하는 날에 월북 사건이 발생했다.

― 아하 조 충희 일병 사건 말이지?

― 그래 그놈이 내무반에 수류탄 2 발 던지고 월북해서 소대원 거의 사망 중상되고 3 명인가 신병들만 살아남았다.

― 내가 1990 년에 22사단 중대장 깃발을 강 팔용 대위에게 물려받으니 그 중대가 88 전야제에 월북사고 난 부대더라고.

― 고생 좀 했겠다.

― 그럼 완전 중대가 전투력 최하 중대를 야금야금 끌어올리고 전방 철책 들어갈 때 88년 사고 당시 이병이 병장 3 명이 있어 이들을 핑계로 대대장에게 철책 들어가는 위치를 9,10,11중대 순이 아니라 11,10,9 순으로 해달라고 했지. 대대장 연대장이 검토해서 우리가 우측으로 들어간 거야. 그래서 거기서 순찰을 돌다가 박해임도 만나고.

― 야, 병구랑 해임은 전생에 인연이 많았나 보다 어떻게 하면 소위 배치도 뺑뺑이 돌려 환상의 17사 근무하고 대위 때 또 옆 중대로 만나?

― 이번에 사회 나와서 여기서 만나면 세 번째의 만남이다.

― 정말 기막힌 인연이다.

― 선형이 넌 88년 전역한 후에 어떻게 지냈어?

― 처음에는 기아자동차 디자인실에서 일하다가 제일기획으로 이직해서 3년 일하고 94년도에 일본 유학을 갔어. 거기서 디자인 공부를 좀 더 했지. 그런데 말이야 니들 정호영, 윤 종필, 배승도, 김병욱 알지?”

― 알지 윤종필은 우리 임관 10 주년 행사에 행사준비위원장도 했었어.

― 그놈들이 나를 간첩으로 몰아 내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교도소 생활 2 년 했다.

― 뭐야?

― 아니 네가 어떻게 오해받을 짓을 했기에 간첩이 되었냐?

― 내가 일본 유학 시절에 돈이 없어 민족장학금을 받았거든.

― 야 민족장학금 그거 조총련계통 자금으로 만든 장학회인데?

― 병구가 그걸 알아?

― 알지, 정보장교로 20 년 굴러먹었는데, 반국가 이적단체와 지령을 따라 하는 인터넷 사이트 종류별로 다 최초 구분한 것이 나야.

― 병구가 그런 일도 했어?

― 그래 내가 2007 년 전역할 무렵 보안서약서 10 년 이내 해외 나가지 않을 것이며 군대서 득문한 사항을 누설하지 않겠다고 서약을 해서 지금까지 모르는 것처럼 살아왔지 이제 그 기간 다 지나서 너희들에게 말하는 거야 이제는 말할 수 있다지?

― 그럼 병구 너도 민족장학금 받을 걸로 내가 국가보안법 위반자로 보이니?

― 아니지? 내가 알기로 민족장학회가 조총련 계통의 자금이 많이 들어갔지만 민단 자금도 뒤늦게 출연하고 남이나 북이나 구분하지 말고 일본에 와서 공부하는 재능 있으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남·북 학생 모두 장학금 주는 걸로 규정을 바꾸어 장학금 받은 것은 문제 안 되는데 그걸로 간첩을 만들었다 납득이 안 간다.

― 배 승도가 처음부터 장기 복무한 것이 아니고 자기는 5 년 근무하고 나간다고 표창을 육사나 장기 복무하는 동기들에게 양보하다 보니 막상 대위에서 소령 진급할 때 1차로 못하고 2 차로 했고 소령에서 중령도 3 차에 했고 중령에서 대령도 3 차에 했다는 것이야. 그런데 사실은 정호영, 배승도, 김병욱, 윤종필 등은 진급해서는 안 될 놈들이 진급한 것이라고 아는 동기들은 다 알고 있어.

― 정호영이 육 대에서 시험부정 사건은 나도 들어 알고 있다. 우리가 육군대학 98-3기로 입교했는데 정호영이 우리보다 한 기수 앞에서 공부했지. 육사끼리 그룹스터디를 했는데 호영이 기무부대에서 잔뼈가 굵었고 육군대학을 마치고 다시 기무부대로 원복 된다고 하니 교관들도 자기가 교관 마치고 야전에 가면 정호영에게 밉보이면 안 될 거 같으니 시험문제 초안을 흘려준 것이야. 답을 미리 다 외워서 문제를 읽지도 않고 답을 쓴 것이야. 시험 마치고 나와서 외운 답을 서로 불러 맞춰보니 육사 중에 똑똑한 몇 명이 육군본부 인사운영감실에 신고를 한 것이야. 그래서 그 기수 육군본부에서 5 부 합동검열 나오고 정말 육군대학 생긴 이래 최고의 수치스러운 날이라고 했다. 시험문제 유출에 관련된 교관은 교관 임기 전에 야전으로 전출되어 갔고, 정 경찬과 같이 공부한 육사 중에 잘 나가는 몇 명이 정경택은 절대로 소령에서 중령 될 수 없게 육군 본부 인사운영통제실에 감시하겠다고 까지 말을 했어.

― 그런데 배 승도가 예비역 중령이야.

― 그렇게 주변에서 진급하면 안 된다는 소리 들은 놈들이니까 비장의 카드를 쓴 것이 안 선형 카드를 쓴 것이야. 나를 간첩으로 만들고 역할 분담을 해서 내가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동안에 다들 소령에서 중령으로 진급을 했고 그중 둘은 대령으로 전역을 했다.

― 병구는 보병이 왜 정보를 했어 그냥 보병으로 있으면 중령이나 대령은 될 텐데.

― 22사단에서 해임이 옆에서 중대장을 하고 2 차 중대장 간 것이 부산에 있는 군수사령부였어. 거기서도 보직 마칠 것 다 마치고 나니 명령 난 곳이 정보사령부 전투서열 장교를 명령이 났어. 그거 마치고 대위에서 소령 진급을 했는데 우리 보병 520 정보 직능과 정보 140 통합을 한다는 것이야. 용지를 주면서 정보에 O표 한 사람은 정보사령부서 근무하고 X표 한 사람은 야전으로 방출된다는 것이야. 그래서 정보에 O 표하고 남아서 정보장교하고 소령으로 채우고 전역했다.

― 고생했구나?

― 고생은 뭐 다 밥 먹고 사느라고 직업으로 한 것인데.

― 그래도 정보 장교는 약간의 머리도 있어야 하고 순발력, 담력이 있어야 하는데 형구가 정보장교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 정보 장교가 아니라 이름이 병구라고 초등 중등 동창 놈들은 나를 방위 취급한다니!

― 방위라면 어떻게 대처하니?

― 재향군인회 회원증 예비역 소령 전 병구를 보여준다.

― 대단한 병구다.

― 더한 이야기 해줄까?

― 뭔데?

― 내가 S 대학교 병원 비상계획관 배승도 면담을 하러 간다.

― 뭐야? 4 명은 우리 동기들 누구도 전화 안 받는데 병구 너의 전화는 받은 모양이네?

― 배승도, 윤종필, 김병욱, 정호영 등에게 똑같이 전화했는데 다 안 받더라. 문자로 나 00기 전병구다. 안 선형 간첩 사건의 전모를 알고 싶어 만나기를 원한다. 시간과 장소만 문자로 보내했더니 유일하게 답장 온 것이 배승도야. 우리나라 최고 명문대 출신이고 현재 S 대학교 병원장 회의에 참석하는 비상계획관답게 배짱이 있는 거지.

― 언제 만나니?

― 10월 1일 국군의 날 혜화역 2번 출구서 만나기로 했어.

― 조심하고 잘 만나라.

― 그럼, 정보장교 하면서 미행, 도청, 녹음 다 해보고 당해본 사람이라서 조심하지.

전국 각지에서 훈련은 따로 받았지만 동기라는 이유로 어디를 가더라도 말을 놓고 지내는 동기 4 명이 한 명을 간첩으로 만들고 4 명은 승승장구해서 고액 연금을 받고 살아가고 간첩으로 몰린 동기는 18 년 동안이나 법정과 변호사 사무실을 드나들어야 하는가?

선형은 가난한 집의 수재였다. 어머니가 식당의 허드렛일을 하면서 자식 공부를 시켜야 한다고 가르쳤고 아들이 명문 S 대에 합격하자 동네 어른들을 불러 없는 살림이지만 국수 대접을 했다. 그런 아들이 간첩으로 몰리자 기절을 했다. 병원 응급실을 퇴원해서 2 달을 못 넘기고 돌아가셨다.

선형은 어머니만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 아들 하나 믿고 일찍 청상과부가 되어 행상을 하면서 아들을 키웠는데 그 아들이 간첩이라니? 믿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 없고 재산 없어도 자식은 학교에서 지우개 하나 남에게 빌려 쓰지 않게 키웠는데 아들이 간첩이라고? 어머니는 그렇게 억울함을 풀지 못하고 고인이 되었다.

충무로 탑 다운여행사에서 안 선형, 박 해임, 전 병구 3 명이 모여 캔 맥주를 마시는데 TV화면 자막에 국군기무사령관에 함 영신 중장 내정이라는 자막이 지나갔다.

― 야, 기무사령관에 우리 선배 함 영신 내정이란다.

― 함 영신, 내가 잘 알지. 부산 군수사령부 의장대장 시절에 사령관 비서실장이었어.

― 도움 좀 받았겠네?

― 그럼. 의장대는 행사가 생명인데, 공문이 인사처에서 수발 경유해서 내려오면 준비 시간 촉박하거든. 비서실에서 행사 관련 공문은 바로 우리 의장대 전령 오라고 해서 바로 복사해 주었거든. 그래서 의장대장 15 개월 동안 행사 준비시간 촉박한 일은 없었다.

― 그럼, 영전 축하드린다고 전화해 봐!

― 그러지 뭐.

― 예, 함 영신입니다.

― 충성! 전 병구입니다. 선배님! 군수사령부 비서실장 시절에 의장대장 지낸 전 병구입니다. 기억하시죠?

― 그럼, 기억하지. 지금은 후배는 어떻게 지내나?

― 선배님은 별 셋까지 가셨는데, 저는 소령으로 전역해서 상조회사 일 하고 있습니다.

― 그래, 열심히 잘하고 언제 시간 되면 기무사령부 놀러 오게.

― 예, 알겠습니다. 충성!

― 야, 그렇게 싱겁게 인사만 하고 끊으면 어떡하니? 선형이 억울한 사연 기무사령관 재임 중에 해결해 달라고 해야지?

― 30 년 동안 연락 없이 지내다가 선형 사건 말하면 실례지.

― 동기회 밴드에 선형이 간첩사건에 대한 글 올렸다가 얼마나 항의를 받았는지 모른다.

― 왜?

― 재판 진행 중인 것에 대해서는 일체의 중립을 유지하라는 거야.

― 무슨 중립을?

― 그러니까 안 선형 재판에 선형이 쪽 한 편과 정 호영, 배 승도, 윤 종필, 김 병욱 등이 속한 한편을 나누어 중립을 지켜달라는 뜻이지.

― 동기회 집행부 미친 새끼들 아냐?

― 세상이 그런 걸 어떻게 하니?

― 너 정보장교라면서 의장대장도 했어?

― 처음에는 장군 되려고 보병 장교였다. 그러다 소령시절에 정보사령부서 근무하다 진급을 했는데 나에게 정보병과 근무하면 정보사에 남고 아니면 나가라는 거야.

― 정보장교면 북한 정보 많이 알겠네?

― 그래서 그 후로는 전혀 남조선은 신경 끄고, 북조선만 신경 쓰다 보니 우리 선형이가 억울하게 간첩이 되었고, 19 년이나 재판 진행 중이라는 것에 화가 난다.

― 좋은 방법이 없을까?

― 방법이 있지!

― 무슨 방법?

― 오늘 기무사령관에 함 영신 장군이 내정되었다고 자막에 뜨던데, 기무사령부 적폐청산을 위하여 한 말씀해달라고 하시지?

함 영신 기무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 충성! 기무사령관 내정 축하드립니다.

― 후배 고맙네!

― 선배님 기무사령관 가시면 제 동기생 안 선형 간첩사건을 재조사해주세요?

― 안 선형 간첩사건을 이미 오래전에 알았는데, 재조사한다고 뭐 달라질 것이 있겠어?

― 당연히 재조사를 해서 안 선형을 간첩으로 만든 정호영, 배승도. 윤종필, 김병욱 등을 연금을 삭탈해야죠?

― 그거 쉽지 않아 법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데 국회의원 중에 몇 명이나 찬성하겠어?

― 그럼 제가 개인적으로 청와대 신문고에 올리겠습니다. 나중에 저를 원망하지 마세요.

오래된 이야기라 지금은 아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일본에서 (고) 김 대중 대통령이 야당 정치인 시절에 납치된 일이 있었다. 한국의 정보기관이 일본에서 미행을 하고 요인을 납치한 것이다. 일본 신문은 한국이 일본의 주권을 침해했다고 아우성이었다. 결국 며칠이 지나고 일본에서 납치된 야당 정치인 김대중은 동교동 자택에서 몰골이 초췌한 모습으로 기자회견을 했다. 일본에서 괴한에 납치되었는데, 그건 안기부 공작이라고.

2002 년 5월 8일 어버이날이었다. 안 선형은 구룡 대학교 응용미술과 강사를 했다. 강사 월급이 많지 않아 가족들과 외식도 별로 하지 않았으나 어버이날이라고 노모와 아내 초등학교 4 학년 딸과 외식을 하러 나섰다. 고려대학교 근처의 ‘숲 속의 전설’이라는 음식점을 향하는 길이었다. 전철 고려대역에서 교통카드를 찍고 나오자마자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신분증 검사를 했다.

― 안 선형 씨 맞죠?

― 예, 그렇습니다만.......

― 서울지방경찰청 보안과 배 상찬 경위입니다. 당신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합니다.

― 아니, 동명이인도 있을 텐데 저는 간첩행위를 한 적이 없습니다.

― 간첩인지 아닌지는 가서 조사받으면 알게 됩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70 노모와 아내, 초등학교 4 학년 딸 앞에서 한집안의 가장이 수갑에 채워졌다. 바로 특수차량으로 태워져 홍제동으로 향했다.

악명 높은 남영동 분실이 야당이 정권을 잡으면서 인권유린의 역사적 교육장으로 사용하겠다고 시민에게 공개하는 바람에 없어진 분실을 홍제동에 새로 지은 것이다.

홍제동 분실에서의 1 호 피의자가 안 선형이 되었다. 입고 있던 자신의 옷을 벗고 분실에서 주는 푸른색 헐렁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조사실은 지하 1 층이었다. 박 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알려진 남영동의 물고문 시설 욕조 대신 일반 화장실일 설치되었고, 전기고문, 기타 고문의 자재는 남영동이 별반 차이가 없었다. 조사관 이 상준 경위가 백지 10 장과 볼펜 한 자루를 주면서 그동안 일본과 한국을 왕래하면서 간첩행위를 한 것에 대한 행적으로 적으라고 했다.

― 조사관님, 저는 정말 간첩행위에 대해서는 적을 일이 없습니다.

― 이 새끼가 인간적으로 잘해 주니 뭘 쪼르르 네 한번 맞아야 제대로 쓰지? 하면서 걸려 있는 가죽채찍으로 선형을 등짝을 내리쳤다.

― 아야!

― 아야! 아야 소리 지르면 지를수록 너에게 채찍 돌아가는 숫자만 늘어간다 알겠나?

― 예, 알겠습니다.

― 너 일본 여행하면서 학생들 졸업여행 간다고 여행신고 하고선 현역 소령을 일본 여행에 동행시킨 적 있지?

― 예, 그건 그 동기가 여행을 좋아하는데, 군인이라 여행 갈 기회를 얻을 수 없다고 해서 제가 차후 군대 장교 후보생이나 육사, 해사, 공사 생도들도 해외 탐방 기회에 우리 여행사가 오더를 받을 수 있게 영업적 차원에서 우선 잘 나가는 S대 동기라 먼저 여행을 맛보기 해 준 것입니다.

― 그래, 맛보기 여행 했으면 다음 여행은 왜 진행 안 했어?

― 그 후로는 제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안 하고 전문 여행가이드로 나서서 동기생을 여행시키지 않아도 계속 일감이 있어서 진행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 그 배승도 소령을 일본 여행시키면서 민족장학회 최 송월 과장은 왜 인사시켰어?

― 예, 그건 제가 일본서 쓰쿠바 대학원 미학석사과정에 장학금을 받을 수 있게 도움을 주신 분이라 일본 방문할 때마다 의례적으로 인사하는 것이지 배승도 소령을 특별히 인사시킬 목적은 아닙니다.

― 그래?

― 예.

― 여기 배승도 소령 진술서 있거든 읽어봐!

― 저는 정말 배 소령이 왜 이런 진술서를 썼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 배 소령이 이런 진술서를 썼는데 그걸 보고도 아니라고 하는 네가 이해 안 된다.

― 배 소령을 불러주세요. 제가 직접 물어보겠습니다.

― 왜 둘이 입을 맞추려고?

― 조사받는 피의자끼리 절대 대면 금지라는 것도 모르니?

열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 마음은 알 수 없다는 말처럼 일본여행 잘 다녀오고 민족장학회 최 송선 과장에게 대접 잘 받아 감사의 편지까지 쓴 배승도 소령은 진술서에 자기는 학생들 수학여행 코스를 벗어나 민족장학회 사무실을 방문하고 거기 최 송월 과장과 자신을 인사시킨 의도를 알 수 없다고 썼다. 또, 다른 한 장의 진술서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더 심하게 일본의 민족장학회 최 송월 과장이 나중에 알고 보니 대외적인 직함은 민족장학회 과장이지만 사실은 일본을 거점으로 한국의 정보를 수집하고 고정간첩을 만드는 공작책임자라고 섰다.

홍제동 분실에서 고문과 회유를 받아가면서 선형은 조사관이 원하는 대로 진술서를 썼다.

진 술 서

○ 성 명 : 안 선 형(安善炯)

○ 주 소 : 서울시 관악구 난곡로 123-1

○ 연락처 : 010-2385-7 XXX

○ 학 력 : 일본 쓰쿠바 대학원 예술분석 석사과정(수료)

본인은 2000.6.21일부터 6월 30일 제가 근무하는 ○○대학교 응용미술학과 졸업생 졸업 여행에 학생이 아닌 현역 군인 배승도 소령을 대동하여 여행을 했습니다. 제가 일본에 유학시절 민족장학회의 최 송월 과장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최 과장이 한국에 전역한 장교 말고 현역장교 가급적 위관 장교보다는 직급이 높은 장교를 친구로 사귀고 싶다고 해서 제가 대학교 동기이고 특수전 사령부에서 본부근무대장을 하고 있기에 차후 중령 진급도 무난하게 될 것으로 예상하고 최 송월 과장에게 이 동기생을 소개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학생들 수학여행에 포함시켜 여행을 했습니다.

위에 기술한 내용은 거짓이 없이 진술했습니다.

2002. 5. 16.

진술인 안 선 형 (서명)

진술서를 받아본 조사관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면서 진술서를 들고 조사실을 나갔다. 한참 후에 조사관은 사진 한 장을 들고 조사실에 와서 선형에게 물었다.

― 이 사진 안 선형 당신이 찍은 사진 맞아?

― 예, 맞습니다.

― 여기가 어디야?

― 예 5 사단 열쇠 전망대입니다.

― 여기 윤 종필 소령 진술서 있는데, 윤 소령이 찍으면 안 된다고 했는데도 찍었지?

― 아닙니다. 전혀 그런 말 들은 적 없습니다.

― 야,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중위로 전역한 동기가 전방 철책부대 그것도 최전방에 와서 북한을 바로 코앞에 두고 사진 촬영하면 그걸 잘 찍으라고 하는 군인 봤어? 무조건 군사시설 보호 구역 안에서는 사진촬영 금지 표시가 통문에 들어가는 곳에 주의사항 설치되어 있는데도 넌 그걸 무시하고 직은 거고 그 사진도 일본 민족장학회 최 송선 과장에게 주었고 그 사진이 북으로 넘어갔으니 넌 간첩 아니라고 우겨봐야 넌 이미 간첩이야.

진 술 서

○ 성 명 : 윤 종 필(尹鐘必)

○ 주 소 : 서울시 금천구 시흥대로 52-18

○ 연락처 : 010-6464-7 XXX

○ 학 력 : 서울 명지대학교 경영학과(1986)

본인은 1986.3.4. 일 육군 소위(R.O.T.C. 24기)로 임관하여 전후방 각지에서 근무하던 중 2000. 6.6일 현충일에 안 선형 동기의 방문을 받고 부대 간부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안 선형이 여기 경치 좋은 곳이 어디냐고 해서 열쇠 전망대가 가장 북한 땅이 잘 보인다고 했더니 가자고 해서 안내했습니다.

철조망을 카메라로 찍으려는 것을 야 군사시설 보호구역에서는 촬영금지야 했더니 꺼냈던 카메라를 가방에 다시 넣더군요. 그래서 저는 선형이가 사진 촬영을 안 한 것으로 알고 잇는데 이 사진이 안 선형이 찍은 것이라면 분명히 군사시설 보호법 위반이라고 생각합니다.

상기 내용은 거짓이 없이 진술했습니다.

2000. 5. 16.

진술인 윤 종 필 (서명)

― 윤 소령 진술서 보고도 넌 아니라고 했지?

― 예, 정말 저는 윤 소령에게 제지를 당한 적이 없습니다.

― 그러니까 넌 아무 죄 없고 현역으로 장기 복무하는 동기들 책임이라 이거지?

― 그런 건 아닙니다.

― 아니긴 넌 지금까지 현역 소령들 진술서 보여주면 다 부정했어.

― 아닙니다! 아닙니다!

― 이놈 정말 나쁜 놈이네. 저를 도와준 동기들을 완전히 노리개로 생각하는 놈이네.

홍제동 분실에 조사를 받고 구속 수감된 안 선형은 2002 년 12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2 년 4 개월의 형을 받았다. 옥중에서 항소를 하여 2004 년 5월 31일 항소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2000.5.31. 기무사령부 방첩과 정 호영 과장은 기무사령부에서 미행을 가장 잘하는 박 성규 상사와 안 용호 상사를 불렀다. 정보사령부, 기무사령부 정보업무를 하는 군부대는 민간인을 만나는 것에 대비해서 군대 계급 대위, 소령, 상사 등 대신에 직급 높은 대령은 전무, 중령급은 부장, 소령은 과장, 부사관 중사, 상사는 계장으로 호칭했다.

― 부르셨습니까? 과장님!

― 그래, 박 계장 안 계장 둘이 우리 사령부에서 미행을 가장 잘한다고 해서 이번 공작에 투입하는 것이니 실수 없이 하기 바랍니다.

― 예, 알겠습니다.

― 일종의 특수임 무니까 이걸 잘 수행하면 나는 과장에서 부장으로 승진하고 야전에 있는 동기들 3 명도 모두 소령에서 중령으로 진급라고, 당신들 박 계장 안 계장도 과장으로 승진할 것입니다.

― 감사합니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군대서 장교들을 대령에서 장군 승진하면 기뻐하듯이 하사, 중사, 상사 지나온 기무부대 계장이 준위가 되는 것은 육군 대령에서 장군이 되는 것만큼 힘든 것인데 이번 공작만 잘하면 승진한다는데 두 명의 계장은 날아갈 듯 기뻐했다.

정 호영 과장은 특수 임무라서 국가정보원에서 외교부와 일본 경시청 조사과에 협조 공문을 보냈기 때문에 일본에 가면 통역이나 숙박 등 편의를 일본 관공서에서 적극 협조해 줄 것이라는 말도 했다.

― 여기 공문 가지고 1 처에 가면 두 사람 여권과 공작금을 줄 것이니 수령해서 일본으로 바로 출국해.

― 예, 알겠습니다.

― 차렷! 과장님께 경례!

― 충성!

― 충성!

○○대학교 응용미술학과 졸업여행에 배승도 소령을 포함시켜 여행을 하는 것을 기무사령부 박 성규, 안 용호 계장에 의해 모두 사진으로 녹음 파일로 일거수일투족이 증거로 남게 되었다.

배 대령에게 전화를 했다. 신호는 갔으나 안 받았다. 윤 종필, 정 호영, 김 병욱에게 전화했으나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으로 문자를 보냈다. 가장 군대서 출세를 했고 전역한 후에도 S대학교 출신답게 S대학교 의과대학 부속 병원에서 비상계획관을 하고 있는 배에게 문자를 보냈다.

○ 수 신 : 24기 배 승도

○ 발 신 : 24기 전 병구

○ 내 용 : 내가 전역해서 안 선형에게 영업을 하러 갔다가 내가 모르던 안 선형 간첩 사건으로 24기 밴드에 글을 올렸더니 우리 학교 민 병식 선배가 한쪽 말만 들어보고 편향되게 쓰지 말고 양쪽 다 들어보고 쓰라고 해서 4 명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모두 받지를 않는구나. 마지막으로 너에게 문자 보낸다. 나를 만나 내 질문에 응하는 인터뷰를 하면 반영해 주고 거부하면 이 시간 이후 내가 어떤 글을 쓰더라도 문제 삼지 말 것.

2018. 9. 28.

동기 전 병 구 드림

보낸 문자의 심각함을 감지했는지 배승도로부터 바로 문자 답장이 왔다.

2018.10.1. 국군의 날

지하철 4 호선 혜화 역

2번 출구에서

11시 30 분에 만납시다.

배승도 드림

1987년 중위 시절 00 부대 신병교육대 교관을 하면서 대학로에 나와 본 후 33 년 만에 와보는 혜화역 2번 출구였다. 11시 20 분에 도착했다. 배는 정확히 11 시 30 분에 2번 출구로 왔다. R. O. T. C라는 것이 참으로 편할 때가 있다. 생전 얼굴도 모르지만 동기라는 이유로 만나자마자 반말로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좋다.

― 충성! 전 병구다.

― 충성! 배 승도다.

악수를 하고 바로 식당으로 갔다. '마라도'라는 일식집이었다. 초밥을 특 2인 분 주문했다. 맥주도 3 병 시켰다.

― 너와 나의 발전을 위하여!

― 위하여!

식사를 하면서 배는 자신이 1986년 3월 3일 소위가 된 후로 현재까지 지내온 인생역정을 이야기했다. 그중 절반은 자기 자랑이었다.

영업 담당 이 우성 이사가 교육시킨 대로 세 번 맞장구를 쳐주고 세 번은 머리를 끄떡이는 반응을 보였다. 11시 30 분에 만나 식사를 하면서 13시가 될 때까지 말을 했고 나는 반응을 하거나 자랑을 더 유도하는 질문을 했다.

― 야, 문무대에서 선형과 잘 지냈어?

― 문무대 훈육관은 김 병욱, 윤 종필 , 문 달진, 방 상범 등 많이 있었고, 안 선형은 훈육관이 아니고 행정장교로 늦게 문무대에 왔어.

― 그랬구나?

― 다른 동기들은 5년 근무자들인데, 안 선형은 2 년 3 개월 의무복무로 끝이 났거든 그러니 학교에서 훈육장교 대신 행정장교 보직을 준거야. 선형이 미대 출신이라 학교에 각종 부착물 게시판 만드는 것에 전공실력 발휘했지.

― 너는 문무대가 아니라 국군체육부대에 있었지?

― 그래, 지금은 다 이전을 해서 위례 신도시가 되었지만 그 당시는 한쪽 문무대, 한쪽은 국군 체육 부대였어. 체육교육과 출신이라서 체육부대장 엄 영달 소장 전속부관을 했거든.

― 중위가 장군 전속부관 했으면 최고 보직을 마쳤네?

― 거기서 5 년 복무를 장기로 바꾼 거야?

― 인생 전환점이지 뭐.

― 그런 셈이지.

― 전 병구 너는 뭐로 전역했어?

― 소령이다.

― 병구처럼 훌륭한 장교가 중령, 대령, 장군을 해야 군대 발전이 있지?

― 아니다. 내가 소령 전역을 했으니 다행이지 내가 장군까지 했으면 여러 명이 죽는다.

― 무슨 소리야?

― 내가 2 차 중대장 시절 1992 년 부산에서 200 만 평 탄약부대 경비 중대장을 했거든. 그 넓은 지역 언젠가는 첨단 장비로 경비를 해야지 인력으로 경비 한계가 있다고 적외선, 열상 장비로 경계를 한다고 400 미터 시험 구간에 장비를 설치하고 나보고 시험 평가를 하라고 하더군.

― 평가 잘했어?

― 사람이 지나가도 경보음이 울리고, 고양이가 지나가도 울리고, 고라니가 지나가도 울리고 더 웃기는 일은 독수리 훈련에 동기생 조 윤래가 팀장이고 팀원 12 명이 왔는데 세상에 스티로폼을 검은색으로 칠하고 사람 크기로 오려서 앞에 가리고 오니 철조망 당도해도 경보가 안 울리는 거야.

― 침투당했네?

― 침투는 당했는데, 철조망 안에 탄약고는 별도 철조망이 있으니 독수리들이 여길 들어간 것이야. 완전 독 안에 든 쥐가 되었지. 너희들은 생포자들이다. 다 나와해서 우리 중대 상황실로 데리고 오니 팀장이 조 윤래 동기라서 내가 라면에 계란 2개씩 넣어 대접했다.

― 시험 평가는?

― 사실대로 썼지. 사람이 지나가도 개나 고양이 고라니가 지나가도 경보가 울리고 독수리들이 스티로폼으로 몸을 가리고 오니 철조망에 당도해도 경보가 안 울리더라. 이 장비는 납품 불가 판정을 보고 했다. 다음 날 난리가 난 거야. 탄약 창장, 정작과장 탄약사령부 정작처장 대령이 우리 중대 내려와서 일개 대위 놈이 위에서 국방부 장관님도 다 납품받게 승인된 것을 납품 불가가 뭐야? 하더군.

― 그래서 시험 평가 결과 다시 작성했어?

― 그럼, 수정해서 납품 가능 합격(O) 했지.

― 그런 거 보면 우리나라 방산 비리 군납비리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야?

― 군대 전역 전 마지막 보직이 국군심리전단 군수과장을 했어.

― 거기서도 군납 비리가 있었어?

― 내가 군수과장이니 검수를 뭐든지 군수과장이 하고 서명을 해야 경리부서에서 군납 회사에 돈이 지불되는데, 심리전 단장 육사 37기서 기석 대령이 단장을 하면서 나보고 전광판에 들어가는 트랜지스터를 도시바 정품 대신 B 품을 쓰고 영수증 처리만 정품 사용한 것처럼 꾸미라는 것을 내가 거절했다.

― 군수과장, 너 참 이상한 놈이다. 너 같은 놈이 어떻게 소령이 되었는지 참 답답하다.

― 단장님 도시바 정품을 쓰면 천둥 번개가 쳐도 전광판 하나에 트랜지스터 나가는 수량이 4-5 개지만 B 품을 사용하면 100 개 이상 터집니다.

― 군수과장 해봤어?

― 해 본 것이 아니라 20 년 정비기사들이 수없이 경험한 것이 그건데, 정비기사 말을 군수과장이 들어주지 않으면 누가 들어줍니까?

― 야, 아래 놈들은 다 그런 말을 해도 군수과장이 중신을 잡고 일을 해야지?

― 단장님, 제가 졸업한 용마중학교 교훈이 義에 살고 義에 죽자입니다.

― 그래서 군수과장은 죽어도 B품 안 쓰고 정품만 고집한다 이거야?

― 예.

― 너 진급하기 싫어 중령 진급 포기한 놈으로 보인다.

― B 품을 정품으로 납품받은 영수증 가라 정리나하고 중령 진급하면 뭐가 좋은 데요?

― 그래, 너는 올해 평정이고 진급 추천 서열이고 기대하지 마라.

― 예, 감사합니다.

나는 2007 년도에 전역을 해서 2008 년 12 월에 국방부 합동조사단에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국군심리전단에서 대북방송장비를 납품받은 것이 북한 지역까지 방송이 송출 안 되는 것을 납품받아 군수과장, 국군심리전단장이 구속 수감되었는데 나는 전임 군수과장으로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수사관이 나에게 신기한 듯이 물었다.

― 전 병구 소령님?

― 예?

― 아니 군수과장 전임자 후임자 모두 구속이 되었는데 가운데 하 소령님만 구속 안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 우리 중학교 교훈이 義에 살고 義에 죽자입니다.

배에게 돌직구를 날렸다.

― 야, 너 인간적으로 안 선형이 과거에 간첩으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복역한 것에 대해 미안한 생각은 드니?

― 미안하지.

― 그래, 그러면 오는 11월 29(목) 10시 30분이 안 선형 재판인데 법정 진술 한 마디만 해라. 2001년 안 선형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될 때는 내가 진급에 도움 될 거 같아서 그런 진술을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당시 안 선형 국가보안법 위반 적용은 과도한 것이었다고 한마디만 해라.

― 싫어.

― 왜?

― 선형이가 국가보안법 무죄라고는 하지만 미수라서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가 된 것이지 내가 동티모르 파견 근무할 때 위문편지에 ‘광수생각’의 4컷 만화 한국 군인이 미 제국주의 용병이라는 만화를 보내온 것이나 일본으로 가는 배 선상에서 나눈 대화를 보면 그 친구는 분명히 자본주의 천박성보다는 북한이 발전은 늦더라도 순수함을 유지하고 인간적인 냄새가 나는 국가라는 식의 완전 북한을 찬양하거나 북한을 다녀온 사람처럼 말을 했거든.

― 그래도 일단 2004 년에 대법원에서 국가보안법 무죄 판결이 나고 그걸 근거로 지금 민사소송으로 국가로부터 수감 복역한 기간의 경제적 손실, 어머니 조기 사망, 아내와 이혼 등등의 정신적 물질적 보상을 요구하는 것에 도움 줄 수 없어?

― 없어.

― 알았다. 배 승 도! 너 더 이상 나랑은 동기도 아니고 아는 척도 하지 마라. 이거 정말로 열받게 하네? 야, 배승도, 정호영, 윤종필, 김병욱 네놈들은 동기생 선형이를 간첩으로 만들어 군대서 중령, 대령으로 진급해서 지금 전역하고 연금 2-300 만원 받는 고액 연금수령자들이지? 선형이가 국가보안법 무죄판결 되었으면 니들 연금 삭탈하고 국가보안법으로 감옥서 지낸 선형에게 국가가 배상해야 되는 거 아냐? 개 좆 같이 이게 나라야. 억울한 감옥살이 한 놈은 궁핍하게 살고 간첩 만든 놈들은 떵떵거리면서 연금으로 여행이나 다니고?

―.......

어린 시절 겨울이면 올무를 만들었다. 강원도 시골 뒷산에 올무를 20 개 정도 만들어 설치했다. 일주일 지난 후에 뒷산을 돌아보면 올무에 걸린 토끼들이 슬픈 눈을 하고 있었다. 어떤 놈은 눈을 감고 어떤 놈은 눈을 감지 않은 것도 있었다. 토끼 눈을 손으로 감겨주었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2 년 4 개월의 형을 받을 당시의 351 법정에서 판사를 바라보는 선형의 눈망울이 올무에 걸린 토끼의 눈과 겹쳐 보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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