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마음 하얀 마음 3

시라진 교가

by 함문평

내 고향은 강원도 횡성군 강림면이다.


지금이야 면으로 독립되어 강림면이지 그 시절은 안흥찐빵으로 유명해진 안흥면 강림 출장소가 있었다.

일제강점기는 영월군 수주면 각림리였다. 토지조사 사업을 하면서 각 발음을 할 수 없는 일본이 깨달을 각을 욀강으로 바꾸어 지금은 모든 행정공문에 강림으로 표기한다.


고향 역사를 아는 어르신들이 당신들 돌아가시기 전에 지명바로잡기 운동을 하는데 철밥통 공무원들 이해가 없어 진전이 없다.


나는 글로 고향지명 바로 찾기 위해 소설에 강림을 일부러 각림으로 쓰고 있다. 독자 중 일부가 오타 아니냐? 고 해서 인터넷에서 수주면 각림촌을 링크해 줬다.


더 한 것은 교가가 사라졌다.


치악산 높은 봉의 정기를 받아

슬기로운 어린이가 자라나는 곳

울창한 밀림 속에

우뚝 서있는

우리의

보금자리

각림 국민교 하는 가사가 무슨 일제잔재가 있다고 어설픈 진보들이 학교를 휘어잡더니 고친 것이다.


해마다 고향을 떠나 서울 인천 경기에 사는 어른들과 후배들 졸업식에 작은 선물이라도 들고 갔는데 교가가 바뀌니 모교 같지 않다.

나의 초등 시절 목조 건물이 신식 건물이 되었으나 학생수가 줄어 폐교 위기에 있다.


강림이라고 한자로 욀 강에 수풀 림을 쓰는데 원래 신라시대에 각림사라는 절이 세워진 이후 조선중기까지 있던 거대한 사찰이 임진왜란 때 불타 사라졌다.


태종 이방원이 운곡 원천석에게 글을 배운 것이 여기다. 동네 이름이창말인데 창이 한자로 곳간 창이다. 원주 감영에서 관리하는 창이 군량미를 보관하는 창고와 칼과 활과 화살 화약을 보관하는 무기 창고도 여기 있었다.


운곡 원천석은 고려의 유생이라 조선의 왕자를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없어 밤알을 1000개를 이성계에게 주고 이 밤이 다 싹이 터서 밤나무 순이 돋으면 방원을 학동으로 맞이할 것이고 한 그루라도 부족하면 없던 일로 하겠다고 했다.


약속된 그날에 밤나무를 세었는데 999그루였다. 운곡이 세어도 999그루 이성계가 세어도 999그루였다. 마지막 이방인이 제가 한번 세어보겠습니다 하고 세었다. 999 했는데 밤나무밭 가장자리에서 나도밤나무요! 소리가 들렸다. 학명 너도밤나무가 그렇게 탄생되었다.


운곡은 이건 하늘의 뜻이라 생각하고 이방원 학동을 가르쳤다. 잘 배우고 어른이 되어 임금이 되었다.


오늘의 나를 만들어준 스승을 조정에 모시려고 여기를 찾아왔으나 바람만 맞고 수레너미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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