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마음 하얀 마음 3

추억의 섶다리

by 함문평

고향이 강원도 횡성군 강림면 강림리였다.



치악산에서 내려오는 강림천과 안흥에서 내려오는 주천강이 만난다고 합수소라고 불렀다.


강림천 상류에 섶다리 주천강 송실에 섶다리 합수소 가기 전 강림 시장 입구에 섶다리가 있었다.


그런데 강림 시장 입구 섶다리가 모 국회의원이 자기를 찍어주어 당선이 되면 국가 예산을 끌어와 강림교 다리를 놓아주겠다고 하더니 정말로 다리를 건설했다.


비만 오면 강림천 상류 섶다리가 급히 불어난 물에 떠내려가고 다음 주천강 섶다리가 떠내려가서 수업하다 비만 내리면 선생님은 섶다리를 건너에 집인 학생은 일찍 보내주었다.


우리는 그 먼저 집에 가는 학생이 부러웠다.

지금은 섶다리가 다 없어지고 횡성 한우축제기간 임시 섶다리만 볼 수 있다

섶다리는 섶다리고 고향 강림으로 말할 것 같으면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존속했던 각림사라는 절이 있었다.


조선시대 중기까지만 해도 학승까지 합하면 수백 명의 스님들이 있었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서면서 표면상으로는 숭유억불 정책을 폈지만 불교가 그렇게 쉽게 찌그러들 불교가 아니었다.


태종 이방원이 어린이 시절에 이성계는 방원의 스승을 운곡 원천석을 스승으로 모셨다.


운곡은 고려의 유생이 역성혁명을 한 조선에 왕자를 솔직히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한양을 떠나 횡성 하고도 각림동에 은둔하면 귀하신 몸이 배우러 못 오겠지 하는 운곡의 생각을 나이 어린 이방원이 넘겨짚었다.

꼬마 이방원이 운곡의 가르침을 잘 받아 인의예지신이 동대문과 서대문 중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의예지신이 의에 귀결되는 것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통치자였다.


태종은 어린 시절 자신에게 천자문 소학 사서심경을 가르쳐준 운곡 원천석을 정승 자리를 주고 싶었다.


직접 만나 뵙고 의사를 확인하고 싶었다.


태종의 수레가 원주 감영에서 강릉 가는 길을 따라 안흥을 경유하여 각림으로 들어왔다.


추천강을 따라 송실을 지나 각림천 상류로 기다가 빨래하는 노파를 발견했다.


원천석은 노파에게 나를 따라오는 사람들이 앞에 가던 선비가 어느 방향으로 갔냐고 물으면 우측으로 갔다고 말해주시오라 부탁했고 그런 대답을 했다.


태종은 덜컹거리며 수레를 타고 넘어갔다고 지명이 수레넘이가 변해 수리네 미라고 부른다.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중에 태종 이방원 정도 지혜가 될 인간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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