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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여자 심리

by 함문평

1982년 대학을 3 수로 입학했다. 할아버지 재력으로 횡성한우 3마리만 팔면 4 수도 가능한 것을 전두환이 집권하면서 징집 나이를 줄이는 바람에 그해 82학번이 못되면 5월에 논산훈련소 입소예정이라는 통보를 받아서 서울서 초중고를 나온 놈이 속리산 고속을 타고 청주에 원서를 냈다.


면접 교수님이 어이구~ 서울서 공부 좀 했는데 청주까지 왔냐고 자존심 긁는 질문을 하길래 저희 할아버지는 횡성서 소 3마리 더 팔아 저 통장에 넣어줄 테니 4수를 하라고 하시는데 저 후기 청주사대 합격 안 되면 논산훈련소입소입니다. 꼭 면접점수가 평균이하로 내려가 억울한 탈락만 안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했다.


교수님은 허허 웃으시면서 면접점수가 함 군 점수 까먹지는 않을 걸세~라고 해서 합격자발표 전에 할아버지 모시고 청주에 하숙방을 구했다.


하숙방을 구하고 입학을 하고 4월이 되었는데 할아버지께서 큰 결심을 하셨다.


내가 이제 살면 얼마나 더 살겠냐? 하시면서 바로 아래 여동생은 대학생이니 거기서 다니게 하고 아예 소를 10마리를 팔아 청주에 전세 독채를 얻고 여동생과 남동생 둘 까지 4명을 청주시민으로 만들었다.


우리 형제자매 중에 바로 아래 여동생 빼고 4남매는 지금 한화이글스 당시 빙그레이글스 대전이나 청주에 프로야구 경기 절반은 목이 터져라 응원했다.


개막식에서 기념품도 받아 신주모시듯 했는데 지금은 남은 것이 없다.


청주에서 82년에서 86년 4명의 여자에게 찜을 당하고 차였다. 그녀들을 나는 소설에서 1.2.3.4로 묘사했다.


아직도 여자의 심리를 나는 모른다. 그때 여자와 수안보나 대청댐 춘천으로 데이트를 오면 그녀 눈길이 10초 이상 가는 것은 있는 돈을 다 투지해 사주었다.


문제는 춘천서 청주로 돌아올 차비가 없어서 복귀 차표는 여자가 구했다. 여자가 떠났다. 너는 연애상대로 98점 결혼 상대로 58점이라고 했다.


연애하던 여자에게 차이고 대위 중대장 보직 전에 하는 고등군사반을 마치고 정승화가 전두환을 보내려고 한 동해안경비사령부가 사단으로 변경된 ㅇㅇ 사단으로 가면서 상봉터미널에서 짐을 들어준 것이 인연이 되어 그분이 소개한 여자와 중매결혼을 했다.


딸에게 하는 말이 총각시절 연애하는 여자에겐 선물을 많이 했는데 자기는 삔 하나 받은 것이 없다고 신세터령이다.


할아버지 살아계실 적에는 용돈이 많으니 여자에게 선물해 주고 결혼해 통장 도장 다 아내가 차지하고 나에게는 교통비와 담배 안 피운다고 월 30만 원 용돈으로 무슨 삔 살 여유가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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