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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 없는 파쏭쏭 라면

by 함문평

라면 선전에 파쏭쏭 계란탁! 그 한 줄의 카피라이터로 우리나라 라면과 파와 계란 판매량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났고 해외에서도 한국 라면 요리에 파와 계란을 넣는 외국인이 많아졌다.


총각 시절은 나도 파쏭쏭 계란 탁! 라면을 먹었다.


1991년 5월 5일에 결혼을 했다. 연애하면서 라면 먹은 기억이 없으니 아내의 라면 식성을 모르고 파쏭쏭 계란탁! 을 휴일에 나름 잘한다고 했는데 아내가 하는 말이 다음부터는 계란을 빼라는 것이었다.


아기가 태어났다. 1991년에 딸이 태어나고 중간에 한 명 유산이 되고 1995년 12월에 아들이 태어났다.


아들이 태어난 날이 할아버지를 선산에 모신날이었다.


장손인 나를 횡성소를 다 팔아서라도 4수 시킬 할아버지의 뜻을 가로막은 것이 전두환이다.


전두환이 집권하면서 개혁이라고 군대 징집나이를 낮추는 바람에 1980년 현역 81년 재수 82년 3 수로 점수가 기대에 미치지 못해도 꾸역꾸역 그 점수로 대학을 갔다.


딸과 아들이 라면 먹을 나이가 되어 테스트를 했다. 한 번은 파쏭쏭 계란 탁! 라면을 해주고 다음은 계란을 뺀 파쏭쏭 라면을 해주었는데 아이들은 파쏭쏭 계란 탁! 을 좋아했다.


하지만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아내가 옆에 있을 때는 계란 뺀 라면을 어쩌다 아내가 여고동창 모임 가는 날이면 파쏭쏭 계란 탁! 라면을 해 먹었다.


아이는 거짓말을 못하는 법 직업이 군인이라 명령 나는 대로 근무하다 서초동 정보사로 명령이 났다. 학군이 좋다 보니 정보사에서 전출 갔으면 아파트를 비워주어야 다음 장교가 입주하는데 아들 딸 졸업시키고 이사를 간다고 벌금을 물면서도 서초동 정보사 아파트를 비워주지 않아서 내 입주대기 번호기 24번이었다.


사정 이야기를 처가에 했더니 처가 아래층에 세 사는 사람을 내보내고 우리 네 식구를 들어와 살되 아래층 전세금을 내주어야 하니 능력 되는 만큼 돈을 내고 나머지는 장인장모님이 보태서 내보내고 처가살이를 정보사 근무하는 동안 했다.


이것도 유전인지 처가 식구들은 라면에 파만 넣고 계란 없이 끓였다.


장인, 장모, 처제 둘, 처남 둘은 파만 넣은 라면을 나와 딸과 아들은 파쏭쏭 계란 탁! 라면을 먹었다.


세월이 지나 딸도 아들도 직장을 잡고 스스로 라면 끓이는 것은 다 넣고 이고 엄마가 같이 먹을 때는 계란을 빼고 라면을 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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