昭和三七年 다카키 마사오가 五一六쿠데타를 일으킨 다음 해 태어났다. 태어나서 엄마 젖을 떼자 할아버지 할머니가 長孫은 祖父가 키운다고 데려갔으나 요즘말로 초등학교 昭和시기 언어로 國民學校 입학을 위해 합가를 했다.
五學年까지 다니고 六學年에 서울로 전학을 했다. 당시는 다카키 마사오의 서울인구증가 억제 정책으로 서울서 지방의 전학은 쉬우나 지방서 서울 전학은 엄격했다.
엄격하면 부정비리가 생기고 공산주의 망한 이유 100가지 중에 세 번째 이유가 엄격해서 부정비리가 많다는 것이다. 다카키 마사오를 조부는 악질 조선독립군 토벌대 만주군 간도특설대 출신을 알기에 졸 무시했다.
할아버지 대통령 각하를 그리 무시해도 되냐고 물으면 장손 앞이니 할애비가 그런 말 하지 니 애비나 고모 삼촌들은 내가 다카키 무시하는 것도 모르고 만주서 내가 그놈 목격한 말도 안 했다고 하셨다.
안흥면서기 월급이 몇 천 원 시기에 안흥 면장에게 二萬 강림리장에게 一만 大方二洞長에게 三萬을 주고 위장전학을 했다.
전학하고 일주일 후에 담임선생이 가정방문을 왔는데 담임에게도 할아버지는 봉투를 건넸다. 금액은 할아버지 외 아는 사람이 없다.
일 년 다니고 뺑뺑이로 25번 받고 대방동 용마산 너머는 강남여중인 학교를 진학했다.
할아버지가 하루 담배 두 갑 할머니 한 갑 총 세 갑의 담배연기가 교복에 배니 입학식 마치고 一學年 三班 교실에 가서 출석을 부르고 키 순서로 번호를 정하고 자리에 앉자마자 교복에서 담배 냄새가 난다고 담임에게 문초를 당했다.
咸文平 담배 피우지?
아니요.
거짓말하지 마라.
정말 안 피워요.
담임은 슬리퍼로 뺨을 때렸다. 진짜 안 피워요! 항변하자 교무실에 가서 무릎 꿇고 손들고 있어 했다.
하루 종일 수업도 못 듣고 벌선 것도 억울한 일이건만 담임은 죽도 망가진 대나무 한쪽으로 종아리를 팼다. 우리 학교는 검도부가 있어서 죽도 망가진 대나무 한쪽이 모든 선생님이 출석부 위에 올리고 다니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집에 와서 할머니 할아버지께 안 들키려고 했으나 할머니에게 들켰다.
할머니 제가 담배 안 피우는데 할아버지 두 갑 할머니 한 갑 총 세 갑 담배연기가 교복에 배어 제가 담배 피우는 불량 학생으로 오해받았어요라고 했다.
이 말이 그대로 할아버지에게 전달되었다. 그 시절은 학부모가 학교나 관공서 가면 말도 제대로 못 하던 시절인데 할아버지는 지팡이를 짚고 바로 교장실로 갔다.
당신이 교장이야?
예 그렇습니다만 어르신 무슨 일로?
우리 강릉함 씨 신리파 내 장손이 一學年三班인데 장손은 담배 안 피우는 모범생이오. 이 할애비가 두 갑 내자가 한 갑 총 세 갑 담배연기가 교복에 밴 것을 담임이 가정방문도 없이 종아리 멍들게 팼는데 바로 내 앞에 사과하면 이 학교 다니게 하고 아니면 고향 횡성에 중핵교로 전하시키겠소 했다.
사립은 학생 한 명 한 명이 다 돈이다 보니 교장실로 담임을 호출해 사죄를 했다.
얼마 전 윤 총통이 카이스트 졸업식에서 축사 시간에 연구 개발 예산을 원위치하라 외친 졸업생을 경호실 요원이 입틀막을 한 것이 인터넷에 떠돈다. 세상이 왜 이렇게 다카키 마사오와 합천두광 시절로 되돌아 가는지 그것이 알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