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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와 북한 언니 상봉 이야기

by 함문평

내가 결혼을 한 것은 솔직히 말해 아내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장모가 찜했다.


아내는 사범대학 역사교육과를 마치고 부천 소사에 ㅇㅇ중학교 역사교사로 1990년 9월 1일부터 교사로 출근 예정이라서 맞선을 보라고 하니 별로 내키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그녀의 본심을 아랑곳하지 않고 장모가 결혼 안 해도 좋으니 너 이 남자 한번 만나보기나 해.


엄마는 네가 결혼 안 하고 혼자 살아도 다른 남자와 결혼해도 좋은데 세상에 장교가 처음 본 사람 짐을 들어주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 아니다.


그 사람 심성이 곧고 선해서 그런 거다.


그런 남자를 너에게 얼굴 보여주지 않으면 먼 후일 에미가 후회될 거 같구나.


그러니 가서 동해바다 구경도 하고 잠깐 얼굴만 보고 오자?


그렇게 달래서 나를 만나러 서울서 진부령 너머 간성에 온 것이다.


1990년 1월 광주에서 고등군사반 교육을 마치고 전방 중대장으로 가기 위해 야간열차로 상경해서 새벽 4시에 상봉터미널을 향해 택시를 탔다.


택시에서 내리는데 앞에 어른 두 분이 짐보따리 5개를 들고 내렸다.


두 개는 아저씨가 들고 두 개는 아주머니가 들고 한 개 남은 보따리를 두고 어쩔 줄 몰랐다.


어르신 이거 제가 터미널 안에 까지 들어다 드리죠? 하고 들고 갔다.


아니 어떻게 장교분이 양손에 물건을 들어요?


예, 장교는 양손에 물건을 들지 마라는 것은 저보다 하급자가 경례하면 답례 잘하고 상급자 만나면 경례 잘하라고 양손에 물건을 들지 마라는 것입니다만 지금 이 새벽에 경례할 사람도 경례받을 사람도 없으니 양손에 물건을 들어도 됩니다 하고 오른손에 짐보따리 왼손에 장교 가방을 들고 터미널로 들어갔다.


나는 간성 가는 6시 40분 차 어르신 내외는 화천 가는 6시 45분 차였다.


시간이 남으니 우리 차나 한잔 합시다라고 해서 터미널 다방에 들어갔다.


따뜻한 커피를 앞에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분들 장남이 화천 신병교육대 수료하는 날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것저것 준비하다 보니 보따리가 다섯 개나 되었던 것이다.


예전에 내 부모님이 하계병영훈련을 마치고 집에 오면 진수성찬을 준비한 것이 연상되었다.


중대장반 교육을 마치고 고성 간성 불곰대대를 가는 길입니다라고 했더니 결혼은 했냐고 물었다.



아닙니다.


아니 군대계급 대위면 월급도 상당히 될 텐데 여자가 없어요?


예.


선이라도 보지 앓고?


맞선을 보긴 했는데 그놈 5공 청문회로 군인 인기가 땅에 떨어졌어요.


고성에 가서 중대장 자리 잡히면 연락하시오 하면서 자기 집 전화번호를 적어주었다.


깜짝 놀라 어머! 3727 내 군번인데 영원히 잊지 못할 번호입니다.


버스 출발시간이 되어 그 정도 인사만 하고 헤어졌다.


1월 초에 중대장 시작해서 소대훈련 중대훈련 대대전술훈련을 마치고 나니 계절의 여왕 5월이 되었다.


연대전투단 훈련은 9월이라 부대가 바쁜 일이 없어 메모해 둔 서울로 전화를 했다.


반가운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 여자를 소개하기 전에 부대를 방문해서 나에 대해 좀 더 파악하고 여자집에 소개를 한다고 해서 우리 부대를 일요일에 방문하고 싶다고 했다.


5월 둘째 주 일요일 중대행정반과 중대장실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과일과 커피 주스 등을 준비했다.


중대장실에서 어른 두 분과 심층 대화를 했다.


고항, 나이, 부모형제근황 대위 월급이 얼마냐까지 솔직하게 답변했다.


다음 주에는 여자와 부모님을 모시고 오겠다고 말하고 떠나셨다.


다음 주도 중대행정반과 중대장실을 깨끗하게 하고 손님을 맞이했다.


어른들 네 분과 아가씨도 올 줄 알았는데 어른들만 네 분이 오셨다.


역시 소개받은 어른 부부가 나에 대한 신상청문회를 하였다.


형제가 몇이냐는 질문에 3남 2녀의 장남입니다고 했다.


대위 월급으로 우리 딸 먹여 살릴 수 있어요?


예 대위 봉급이 대기업 정도는 안되지만 우리나라 중소기업 과장급 월급 수준은 됩니다.


결혼해 배우자 생기면 가족수당 아기 태어나면 양육수당 학교입학하면 학자금은 봉급과 상관없이 지급되고 전국 어디를 가도 군인 아파트가 있어 주거걱정도 없다고 말했다.


어른들이 돌아가시고 5월 마지막주 일요일에 어른 두 분과 젊은 여자가 서울서 머나먼 진부령을 넘어 간성에 왔다.


처음 본 여자인데 어디서 많이 본듯한 얼굴이다.


처음 뵙겠습니다.


함 대윕니다.


얼룩무늬 군복에 선명한 대위 장교 계급장이 멋있다고 선 안 본다는 딸을 강제로 승용차에 태워 서울서 진부령을 넘어왔다고 했다.


간성우체국 빨강 우체통 앞에서 나를 픽업해 속초 초우라는 레스토랑에서 간단한 면담을 하고 그날부로 딴맘 먹지 못 하게 금반지를 만들어 꼼짝 못하게 끼워주셨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장모는 언니가 북에 있다고 했다.


제주도서 목포로 탈출하여 지리산에서 빨치산 활동을 했다고 한다.


여자 무전수로 모스부호로 무전도 잘 쳤고, 중요한 것은 전문 내용을 암기해서 인접부대에 전달했다.


문서로 작성된 것을 지니고 가다가 국군에게 잡히면 낭패를 초래하기에 아예 전문을 암기하여 저쪽 부대에 일점일획도 틀림없이 전달해 줄 만큼 암기력이 뛰어났다.


빨치 산이 퇴각하면서 태백산맥을 타고 북으로 북으로 올라갔다.


북으로 간 누나 때문에 장모의 남동생과 오빠는 제주 ㅇㅇ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도 육사도 갈 수 없었고 공무원 시험도 볼 수 없었다.


연좌제 때문에 오빠나 남동생이 당한 것을 알기에 중대장실에서 혹시 우리 딸과 함 대위가 결혼하면 연좌제로 진급에 불이익 오는 거 아니냐고 물었다.


예 장교들 연좌제로 임관 못한 사람들 많은데 지난 국회에서 연좌제법을 폐기했기에 지금은 전혀 문제없다고 답변했다.


결혼일자를 정하고 청첩장을 제주에 돌리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우리 사위는 장교라고 제주도가 떠나갈 정도로 온천지 소문을 냈다.


세월이 흘러서 장모는 88세 언니는 92세에 눈물의 상봉을 했다.


금강산에 마련된 제2차 상봉행사에 장모와 처이모가 운 좋게 대상자로 선정되었다.


큰처남과 장모님은 금강산에서 수십 년 그리워하던 언니를 큰 이모님을 만난 것이다.


과거 국가 이데올로기 싸움으로 남과 북이 반목하고 경쟁을 하였는데 이제는 남이나 북이나 체제경쟁이 아닌 상호 협력하고 점진적 통일을 준비하였으면 한다.


90이 넘었거나 바라보는 나이의 이산가족에 대해서는 심사를 해서 선정할 것이 아니라 전수조사를 해서 생사 확인과 생존자는 전원 만남의 장을 마련하길 바란다.


금강산을 다녀온 장모는 며칠 잠을 잘 수 없었다.


꿈이 아니라 바로 앞에 언니가 보이는 환청현상에.... 아래 사진은 금강산 상봉 기사에 한겨레 신문 사진임을 밝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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