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원 37호

4.13 호헌조치

by 함문평

1987년 4월 13일을 기억하는 사람은 뭔가 사연이 있는 사람이다. 서울 대방동 용마산에 S중고등학교가 있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를 시험 봐서. 가는 줄 알고 횡성 할아버지는 한우를 팔아 강림 출장소장과 안흥면장 그래고 서울 대방 2 동장에게 편지봉투에 금액을 나는 모르고 아버지와 할아버지 두 분만 아는 금액을 넣어 전해주고 위장전학을 했다.


1973년은 서울시 인구억제 정책으로 서울에서 횡성으로 전출은 쉬웠지만 횡성에서 그것도 군이 아닌 안흥면 강림리에서 대방 2동으로 오는 것은 뇌물 아니고는 방법이 없었다. 소를 한 마리 팔았다.


한 마리로 서울에 집을 구할 수가 없어서 한 마리 더 팔았다. 그 돈으로 대방 2동 388번지에 방하나 부엌 하나 얻어서 주민등록 상으로는 아버지 어머니 나 셋이 사는 것으로 하고 D초등학교 6학년에 전학을 했다.


평소는 할아버지 할머니 나 셋이 살다가 담임 선생님이 가정방문 오시는 날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횡성으로 내려가 소를 키우시고 아버지 어머니가 담임 선생님을 맞이하고 아버지 직업은 단순노무자로 동대문에서 짐을 운반해 주시고 산다고 거짓말을 했고 담임은 봉투 한 장 받으면 그 말이 거짓말이라고 눈치챘어도 그냥 넘어갔다.


1년 다니고 뺑뺑이로 S 중에 배정받으니 그 지역 영등포구가 관악 동작 금천 구로 분할 전이라 엄청 많은 중학 중에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학교에 배정되었다고 주인 태현이 정주 주현이 할머니가 더 좋아하셨다.


중학생이 되었다. 검정교복에서 담배 냄새가 난다고 담임 선생님이 담배 피우냐? 물음에 아니라고 했다가 거짓말한다고 슬리퍼로 맞았다. 정말 아니라고 언성 높여 대답하니 교무실에 가서 손들고 있으라고 했다. 하루 종일 서있다가 6교시 마치고 담임에게 망가진 죽도 대나무 한 조각으로 종아리 100대를 맞았다.


멍이 든 것을 숨기는데 할머니가 눈치를 채고 할아버지에게 일렀다. 할아버지는 지팡이를 지프시고 교장실로 바로 가셨다.


선생이면 학생집 가정방문도 안 하고 패기부터 해도 되냐? 일본 놈 순사도 아편을 숨겨두었나 집안을. 수색하고 잡아가는데 1학년 3반 선생은 일본 놈 순사 보다도 나쁜 놈이라고 교장선생님을 닦달해서 교장실로 나의 담임을 불러 할아버지에게 용서를 빌었다.


중학 2학년이 되었다. 우리 반 반장은 성이 백이고 이름이 우였는데 한자 이름이 집우 이거늘 우리 소우로 읽어 그를 흰 소라고 불렀다.


2학년 기말시험 기간에 한 명이 평택에서 전학을 왔다. 얼굴이 김구 선생을 닮아서 우린 그의 이름이 구범모이지만 백범으로 불렀다.


임흔묵 옆자리가 비어서 백범은 한묵과 짝이 되었다. 여름방학이 지나고 2학기 개학을 했다.


백범이 쉬는 시간에 단상에 올라가더니


여러분!


1학기 반장은 백우가 했지만 2학기는 이 백범 구범모가 전학을 왔으니 투표로 반장을 새로 뽑자고 했다.


내가 나갔다.


여러분!


1학년 때 봄에 뽑은 반장 김인환이 1년 동안 했는데 그럼 그건 장기독재입니까?


검증도 안 된 전학 온 지 며칠 안 되는 인간이 반장 한다는 것에 문평은 반대합니다!


담임 선생님이 민주공화국 중학답게 투표한다고 칠판에 백우 구범모 이름을 쓰고 빈종이를 나누어주고 58명이 투표를 했다. 놀랍게도 30대 28로 간신이 백우가 이겼다.


얼굴이 백범 김구 모양인 사람은 정치가 타입인가? 정말 관상이 맞는가? 그런 생각을 하였다.


중학 졸업을 하고 뺑뺑이 고교 추첨을 했다. 백범과 나는 흑석동 고등학교에 같이 배정받았다.


임흔묵은 장래 희망이 목사였는데 기독교 재단 학교에 되었다고 좋아했고 백범은 S 중에서 S고 그대로 갔으면 했는데 흑석동 고등학교는 분위기가 엉성하다고 한 달 다니고 자퇴했다. 종로 2가 학원을 다니면서 재수를 하더니 S고등학교 배정을 받았다.


세월이 지나 모범생 임흔묵은 서울신학대학교 학생이 되었다. 대학교를 마치고 늦게 1987년 입대를 하였다.


백범 구범모는 원주에 있는 대학에 갔다. 거기서 학생회장을 하면서 수없이 원주경찰서에 연행되었다. 경찰서에 잡혀온 백범을 지학순 주교님이 원주경찰서장에게 대신 당신이 유치장에 있을 테니 백범 구범모를 풀어주시오 하면 풀어주었다.

대학 4년 공부한 일수보다 거리에서 대통령 직선제 부활시켜라. 구속학생 석방하라. 박종철을 살려내라 데모로 청춘을 보냈다.


1987년 4월 13일 군대 소대장들에게 4.13 호헌조치와 우리의 자세라는 교육자료가 하달되었다.


함문평 중위는 내용을 읽어보고 맘에는 안 들지만 장교생활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하여 사범대학교 국어교육과 출신답게 잘 포장해서 소대원 30명 교육을 시켰다.


이어 30명을 10 명 단위로 원형으로 앉히고 자유토론을 시켰다. 그중 한 명이 이거 군부 독재 연장책 꼼수 아니냐? 고 했다. 그 학생은 임흔묵 목사처럼 신학대를 마치고 대학원에 적을 올리고 늦게 군에 온 병사였다.


나는 여러분들의 소대장이라 이해하는데 중대장 대대장 연대장이나 점검 오는 분들에게는 이 작은 책자 내용으로만 답변하기 바란다고 했다.


세원이 지나 백범 구본목이 무위당 장일순 선생 마지막 제자이고 그의 작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어서 전시회를 열었다. 거기서 임목사를 만나 대화를 하다가 동창 목사도 4.13 호헌조치 교육 후 토론회에서 군부정권 연장책이라고 했다가 군기교육대 1주일 완전군장 돌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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