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원 37호

전두환 손자 전우원

by 함문평

전두환은 고인이 되었다. 손자 우원이 광주에 가서 할아버지를 대신하여 사과를 했다.


어떤 사람은 눈물을 흘렸고 나머지 전두환 유족들은 우환을 정신병자 취급을 했다.


여러분이 믿거나 말거나 지만 1979년에서 1982년 시기에 망원 37호였다.

망원은 사전적 의미로는 멀리 바라보는 것인데 이 시기 망원은 국가기관인 중앙정보부가 재야 민주화운동 단체 내부나 대학생들 데모를 주동하는 이념 동아리나 풍물패 내부를 접근하기 어려우니까 대학생 중 가난해서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방학에 막노동을 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접근해서 데모 주동자들의 동향을 수집해 간략한 망원 보고서를 작성하면 편지봉투에 돈을 가득 담아 주었다.


44년이 지난 요즘은 부끄러운 행위였다고 생각하지만 그때는 돈이 아쉬워 부끄러움을 모르고 지냈다.


최초 망원 보고 최종 수신자는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였는데 10월 26일 시해 사건으로 김재규가 체포되고 보안사령관이 중앙정보부를 김재규와 동일시해 기능을 정지시킨 후로는 망원 보고 최종 수신자가 전두환이었다.


그러려고 한 것은 아닌데 망원 보고가 신군부와 5 공세력에게 도움을 주었다.

나 역시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에게 죄인이 되었다. 그동안 용기도 안 나고 무서워서 사죄의 글도 못썼습니다.


광주 1980년 5월 18일을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부르고 있지만 망원 37호 활동할 때는 광주사태 또는 광주폭동으로 불렀다.


망원이 본 것은 민간인 복장을 했지만 웬만한 군인보다 날렵했다.

그 당시 날렵한 민간인이 광주에서 유언비어를 퍼뜨렸다고 보고했는데 44년이 지나 확인하니 공수부대원 중에서 삐쩍 마른 자들을 뽑아 편의대로 활동시킨 것이었다.


사복을 입었지만 북한군처럼 보이는 이 편의대원을 보수꼴통들이 북한군 광수 1호 2호 번호를 붙여 국민들을 광주사태에 북한군이 잠입한 것으로 책도 만들었지만 기밀 해제된 미 정보부대 문서에서도 북한군 침투가 아니고 편의대를 운영한 것으로 명백해졌다.


편의대를 운영했다고 보안사령부 505 보안부대에 근무했던 허도환이 이미 10년 전에 기자회견을 했어도 광주사태를 유발한 측에서 교묘하게 기록을 조작 은폐하여 40년이 지나서도 진실에 접근을 어렵게 했다.


편의대는 중국에서 오래전부터 군인을 사복차림으로 적 지역에 들어가 정보수집과 선무 선동 유언비어 생산 전파를 했다.

정식 명칭은 편의공작대인데 편의대로 줄여 부른 호칭이다.


광주에서 편의대를 운용한 기록은 전교사에서 발행한 광주소요사태분석 1980년 9월 기록물 100쪽에 나타나있다.

보안사령부에서 은밀하게 만들고 일반에 공개 못하는 책 한 권이 있는데 5 공화국전사라는 것이 있다. 그 책 1677쪽에 보면 2군 사령부에서는 5월 22일 봉쇄작전 실시와 더불어 사령관의 명에 의해 편의대를 투입 제파식 공격을 감행하고 사태주모자를 검거하고 주요 목표를 확보함으로써 광주사태를 근본적으로 평정했다고 쓰여있다.

5 공화국전사는 1692쪽에 재진압작전 수립 시는 계엄군 측 편의대들이 시내 침투하여 파악 보고한 무장폭도 주동자급 검거에 매우 중요한 참고자료로 활용되었다고 기록되었다.


편의대는 정확한 첩보를 수집하기 위하여 가발과 사복으로 시위대와 유사한 복장을 하고 시위 주동자의 인상착의 특이점을 알려주어 주동자급 검거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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