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원 37호

광주 5.18이 점점 진실에서 멀어진 이유

by 함문평

망원 37호가 부끄럽고 창피해서 강원도 횡성군 강림리 하고도 변암이라는 곳에서 숨어 지낸 40년 동안에 고인이 된 전두환을 정점으로 하는 하나회 또는 신군부들은 교묘하게 점진적으로 아닌척하면서 자신들이 불리한 기록은 삭제하거나 쓰는 사람들에게 돈을 주어 비판을 하되 크게 비난받지 않을 만큼으로 수위를 조절해서 기록했다.


그 첫째 자품이 5공 전사였다.


망아지는 태어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고 책은 태어나면 국립중앙도서관으로 보내야 역사가들이나 함문평 같은 작가들이 소설로 그 시대를 복원할 거 아닌가?


하지만 40년 동안 광주 5.18에 대하여 광주사태라 했다가 광주민란이라 했다가 좌익의 사주를 받은 폭동이라 했다가 평민당 정신을 승계한 새정치국민회의가 집권한 시기에는 5.18 민주화운동으로 둔갑했다.


도대체 어느 것이 맞는 말이야?

유치원 시절 배운 노래 내 동생 개구쟁이 귀염둥이 내 동생 엄마가 부를 때는 왕자님이지만 내가 부를 때는 개구쟁이가 되듯 광주가 그런 거야?


이승만 박정희 시기에 똑바로 친일 행위자 반민족 행위자 처벌을 못하고 정권 실세가 되었다고 지들 아비 할아버지는 친일을 민족운동으로 둔갑해 훈장을 받고 말이야, 누구 할아버지는 아편을 팔아 돈을 벌어 삼분의 인은 고향 횡성으로 보내 식솔들 굶지 않게 하고 삼분의 일은 김구 선생에게 보내고 삼분의 일은 김일성에게 보낸 사람은 보훈처에 겁나서 훈장 신청도 못했다.


무공훈장이라는 것이 간첩을 잡거나 정규전에 혁혁한 전공이 있어 받는 훈장이면 이해를 하지만 이건 광주에 북한군 광수 1번에서 600번까지 번호 매긴 것에서 광수를 잡은 것이 아니라 일반 시민을 학살하고 잘했다고 무공훈장을 받았냐 인간의 탈을 쓰고?


박경석 장군은 1980년 광주사태가 진압되고 전년도 12.12군사반란과 80년 광주사태 진압에 공이 있는 군인들에게 훈장과 표창을 주는 공적심사를 준비하라는 지시를 인사참모부장에게 받았다. 이것은 위로는 육군참모총장과 국방부장관의 지시였다.


박경석 장군은 과거에 윌남전에 참전한 월남전참전무공수훈자였다. 그는 훈장이란 적과 싸워 이긴 무공이 있는 자에게 주는 것이지 광주 시민도 국민의 한 사람인데 국민을 진압하고 무공훈장을 주는 예는 세계 어느 전쟁사에도 없는 일이라고 거부했다. 준장으로 전역되었다.


박 장군이 떠나고 후임 인사참모부차장이 공적조사를 심의하여 무더기 훈장과 표창이 수여되었다.


세월이 지나 국회가 여소야대 국회가 되었다. 1980년 광주사태진압 유공 훈장 표창에 대해 삭탈법이 통과되었다. 역사에 사필귀정이 모처림 이루어졌다.


하지만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진실을 찾고 기록하는 것은 아직 멀었다. 가장 핵심이 홍성률 대령이 진휘한 공작편의대에 가담한 인원의 양심의 소리는 한 줄도 나온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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