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이야 중학 수학여행을 부모님이 달러 빚을 내서라도 보내주지만 우리가 중학 2학년이던 1975년은 한 반에 몇 명은 수학여행비를 내지 못한 학생들이 한 반에 모여 자습을 했다.
말이 자습이지 감독하는 선생도 없어 만화책을 봐도 무방한 자습이었다. 하필 우리 2학년 5반 교실에서 자습을 해서 내가 자습 반장, 한민섭이 부반장이 되었다.
반장은 아침 출석 인원 점검을 해서 교무실 임시 담임 이정재 선생님께 보고를 했다. 마지막 6교시 종료를 알리는 음악이 나오면 부반장 한민섭이 청소점검을 하고 청소 마치고 하교하겠다고 이 선생님께 보고를 했다.
자습이 지겨우면 나가서 축구도 했고 야구부가 원정경기를 간 틈을 이용해 야구도 했다. 야구공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연식 정구공으로 했다.
이듬해 중학교 졸업을 하고 나는 흑석동 검은 돌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민섭은 S공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공고를 졸업하고 방위산업체 태성정밀에서 일했다. 5년 근무를 하면 병역을 마친 것으로 해주는 매력에 열심히 근무했다. 같은 병역특례 대상자 중에 태성정밀 이재면 창업자의 손자 이성근도 있었다.
아름아름 인원을 늘리려고 동창모임에 나를 사무국장으로 추천해서 마지못해 하게. 되었다. 전임 사무국장 임흥순에게 공금통장 돈을 찾아 인수하고 내 이름 함상신으로 통장을 개설하고 입금했다. 명단도 인수받았다. 연락처 가나다 순으로 전화를 했다. 안부인사와 최흥순 다음으로 사무국장 함상신이라고 소개했다.
-여보세요, 김포입니다.
-안녕하세요? 서울 성남 중학교 25회 사무국장입니다. 한민섭과 통화하고 싶은데 있으면 바꿔 주시기 바랍니다.
한민섭 그는 중학 2학년 시절 수학여행비 나푸를 못해 수학여행 4박 5일을 2학년 5반 교실에 나와 자습을 같이 했다. 지금 생각하면 한심한 학교 처사지만 그 시절은 그랬다. 돈이 없어 수학여행 못 간 것도 억울한데 빈교실에 모여 자습을 했다. 말이 자습이지 만화책이나 선데이서울 주간잡지를 읽었다. 왜냐하면 감독 선생님 없이 우리끼리 자습이었다.
민섭은 중학을 마치고 공고에 진학을 했다. 군대 대신 산업체근로자 병역대체요원이 되어 5년을 근무하면 병역을 필한 것으로 해주는데 4년 차에 박차고 나와 군인이 되었다. 공고에서 기계과를 나왔고 태성정밀을 4년 근무한 경력이 있어 기술 부사관이 되었다. 총포수리반장이 되어 부천에 있는 3 군지사 예하의 3XX정비부대 총포수리반장 중사였다.
중학교 졸업 후 20년 만에 그와 통화라 30분 이상 통화를 했다. 전임 사무국장이 서울 서남부 안양, 시흥, 의왕 일대에 동기들이 많다고 사당동에 2년 동안 단골로 하던 식당이 있었지만 한민섭을 생각해 김포공항 옆 진마루 식당을. 동창회 장소로 정하고 모임을 공지했다.
중학 졸업 후 20년 만에 처음 동창모임에 나온 민섭에게 인사하라고 기회를 주었다.
그는 공고 졸업하고 방위산업체 태성정밀에 근무했다. 5년을 근무하면 벼멱을 마친 것으로 처리되는데 사장, 부장, 과장 등이 갑질도 그런 갑질이 없더라고 했다. 자신들의 조카들을 병역을 대신하게 하느라 근로자에 등재하고 출근부는 사장, 부장, 과장이 대신 처리해 주고 정작 당사자는 요리학원 다니면서 한식, 중식, 일식 자격증을 따거나 연예기획사에서 벅댄서를 했다. 그러니 그 없는 사람의 일까지 하려니 돈 없고 백 없는 민섭과 열 명의 병역 대체 근로자는 일을 해도 매일 야근을 해야 물량을 맞출 수 있었다. 도저히 차을 수 없어 4년 만에 방위산업체를 나와 군대를 갔다. 태성정밀에서 총을 만드는 부속품을 만들다 입대해서 주특기는 총포수리를 받았다.
논산후년소 공통교육을 마치고 병기학교 후반기교육을 받았다. 총을 만드는 공자메서 일하다 온 놈이 다 만들어진 총을 수리하는 것이니 얼마나 쉬운 일인가? 당연히 후반기 교육 최우수 졸업을 했고 병기학교장 표창을 받았다.
자대 배치는 김포 총포수리부대에 이병 한민섭으로 근무했다. 부대잠이 훌륭한 자원이라고 부사관 학교 추천을 했다. 하사를 달고 중사가 되었으나 결혼 상대가 없었다. 여기저기 맞선을 보았으나 여자들 눈이 높아 거절만 당했다.
요즘 여지들은 TV에서 드라마가 눈을 높여 중사 연봉은 여자들이 생각하는 연봉 축에도 못 들었다. 결혼하는데 사랑도 사랑이지만 남자의 직업, 시집의 경제적 능력이 중요했다.
우리들이 한동안 싸이월드, 다음카페, 아이러브 스쿨 등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동창 찾기에 열광하던 시기에 민섭은 인터넷 메신저로 아내를 만났다. 채팅에서 중국에 살면서 한글을 아는 여자와 채팅을 했고 그 인연으로 결혼했다.
한참 소주잔을 돌리고 그의 인터넷 연애 이야기를 듣는 중간에 식당 주인이 손님 중에 한민섭 씨 계시면 카운터로 와 주세요? 했다.
민섭이 카운터로 가자 카운터에 찾아온 사람과 몇 마디 이야기를 하더니 우리 모임 자리로 와서 미안하게 되었다. 부대에 일이 있어 들어가 봐야 한다고 미안해. 다음에 내가 상사 진급하면 꼭 부대에서 운영하는 회관에 동창들을 불러 술 한잔 사겠다고 말을 하고 나갔다. 그의 뒷모습이 우시장으로 팔려가는 소처럼 보였다.
군대를 다녀온 친구들은 한 마디씩 했다. 군대는 퇴근해도 내 몸이 아니고 국방부 몸이라고 했다. 회식 중간에 불려 나가는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본 동창들은 잠시 흥이 깨졌지만 다시 중학시절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부대에 복귀한 민섭은 대대장실로 갔다. 대대장실에는 대대장과 이 지역을 담당하는 517 기무부대장 중령이 와 있었다. 솔직히 군대서 기무부대장 중령은 사단장 별 둘을 감시하는 직책이라서 사단장도 말조심하는데 일개 중사를 기무부대장이 만나러 온 것은 보통 일이 아님을 직감했다. 대대장이 물었다.
-한 중사?
-예. 중사 한민섭!
-한 중사 아내 확실히 중국 교포 맞아?
-예, 맞습니다. 무슨 문제 이습니까?
-여기 기무부대장니이 오셨는데, 한 중사를 기무부대서 조사할 일이 있다고 하니, 한 중사 업무 김진섭 하사에게 인계하고 기무부대장님 차에 타 지금 즉시!
-예, 알겠습니다.
민섭은 진행 중 업무 인계사항을 백지에 써서 김진섭 하사 책상에 놓았다.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기무부대 조사받으러 간다고 했다. 아내는 경기도 경찰청 정보과에 조사받으러 가는 중이라고 했다.
기무부대장 지프 뒷자리에 타고 기무부대에 도착했다. 생전 처음 와보는 기무부대는 블록담장 위에 윤형 철조망이 전방 비무장지대가 연상되었다. 안에 들어가니 부대가 아니라 일반 기정집 같았다. 방이 작은 것이 여러 개 있는데 그중 작은 방 하나로 안내되었다. 수사관이 왔다.
수사관은 한 중사에게 당신은 이제 육군 중사가 아니라 국가보안법 상 간첩 은익죄 피의자로 존칭 생략하고 조사한다고 했다. 조사 도중 허리띠로 자해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고무줄 바지를 입혔다.
이름, 생년월일, 주소, 직업, 지급, 아내 이름, 아내의 생년월일을 물었다. 아내를 처음 어떻게 만났는지 물었다.
아내 이르은 허미영, 1973년 4월 15일 생이고 중국 국적 여자였다. 인터넷으로 채팅을 했는데, 채팅으로 서로 자기소개를 했다.
허미영이 민섭에게는 중국 국적 조선족 여자로 소개했는데 탈북자이고 더구나 여자 간첩으로 국정원에서 의심을 하고 내사 중이었다.
수사관이 여자 말투에서 의심을 안 해봤냐? 물었다. 의심을 했다면 제가 결혼을 했겠습니까?
군인이 간첩과 결혼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고 또 제 아내가 간첩이라고 칩시다. 간첩이면 고급 정보수집을 위해 장교에게 접근하지 저처럼 중사에게 접근하는 간첩이 있을까요?
수사관도 그 점이 이상하지만 일단 국적을 숨긴 것 자체가 국가보안법 위반이니 조사하는 것이라고 했다. 처음부터 탈북자인데 중국에서 가짜 중국 신분증으로 살다 한국에 왔다고 하면 합동조사 마치고 정착금 지원도 받을 수 있는데 속여서 간첩 조사를 받는다고 했다.
조사하면 판가름 나겠지만 제 아내는 살면서 간첩으로 의심받을 일 하나도 없었고, 저랑 살기 위해 애도 둘씩이나 낳았습니다. 요즘 한국 여자들 애 안 낳아 난리인데 애를 두 명 낳았으면 간첩 조사가 아니라, 여성가족부장관 표창이라도 주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조사관도 조사는 하지만 난감한 표정이었다. 조사 결과 한민섭은 국가보안법상 대공 용의점 없다고 조사보고를 했다. 조사를 마치고 기무부대를 나왔다. 하늘을 보았다. 하늘이 이처럼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간첩 은익 혐의로 조사를 받았는데 혐의를 벗어서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었다.
허미영은 김포경찰서에서 기본 조사를 마치고 2차 조사를 받으러 수원 경기도 경찰청 정보과로 이송되었다. 수원 월드컵 경기장 근처의 정보과 특별조사실이 있었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의심되는 피의자를 조사하기 위한 일종의 안전가옥이었다. 겉에서 보기에는 일반 가정집처럼 보였으나 내부는 각종 녹음 녹화시설이 있었고 고문실도 있었다.
그녀 역시 도착하자 옷부터 갈아입었다. 조사관이 질문을 했다. 이름과 생녀월일 주소를 물었다.
허미영, 1975년 4월 15일생, 경기도 김포시 김포한강 군인아파트 102동 304호라고 대답했다. 직업은 주부 굳이 정확히 말하자면 육군 중사 한민섭의 아내라고 썼다. 남편을 만난 경위를 상세하게 쓰라고 했다.
저는 중국 선양에서 옷가게에서 일했습니다. 거기 총무 언니가 채팅으로 한국 남자를 알게 되었는데 이 남자가 자꾸 자기랑 결혼하자고 한다. 그녀는 이미 결혼을 약속한 남자가 있다고 나를 대신 소개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채팅을 하게 되었고 그 남자가 중국 선양까지 휴가를 내고 찾아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왜 국적을 속였냐? 고 물었다. 속인 것이 아닙니다. 제가 한국에 온 것은 중국 국적 여권으로 이상 없이 공항 검색대를 통과해서 입국하고 남편과 결혼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해 아무 문제 없이 살았는데 이게 왜 문제 되는 거죠?
허미영, 당신은 기자회견을 하는 것이 아니고 신문조서 작성 중입니다. 묻는 말에만 간결하게 답변 바랍니다.
한민섭 씨가 청혼하던 이야기를 자세하게 말해봐요?
아마 채팅한 지 6개월 정도 지났을 때입니다. 채팅 중에 오빠 너하고 결혼하고 싶다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오빠 결혼은 돈도 많이 들고 서류도 복잡해. 중국서 한국 남자랑 결혼하는 거 더러 봤는데 공안이 별 별 트집 다 잡아 여권 심사 중에 통과 안 되는 사람 많아요. 했더니만 서류는 천천히 준비하고 돈이 얼마나 드는데? 하는 겁니다. 그래서 얼떨결에 천만 원 정도 들어요. 했더니 바로 계좌번호 보내 봐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통장이 없고 엄마 통장번호 알려주었더니 퇴근 전에 천만 원 보냈으니 확인해 봐라고 문자가 온 겁니다.
엄마가 통장 먼저 확인하고는 뭔 돈이냐? 물어서 퇴근해 말씀드린다고 했죠?
퇴근해서 그 돈 때문에 엄마랑 대판 싸웠어요. 세상에 미친년이 아니고서야 한번 만난 적도 없이 채팅하던 남자에게 돈 천만 원 보내라는 년이나 보내는 놈이나 제정신이야? 남자가 얼마나 한심하면 한국에서 여자 하나 못 사귀고 중국에 채팅한 여자에게 돈 천만 원을 보내냐? 너를 돈 천에 사서 사창가에 밀어 넣고 돈 벌게 하는 수작이다. 당장 그 남자 계좌번호로 돈을 돌려주라고 했다.
아니 엄마는 어떻게 사람을 한 번 만나보지도 않고 그런 악담을 해요? 난 이 남자가 채팅만으로도 믿음이 가고 정말 결혼 상대로 생각하니 작은 돈이 아닌 천만 원을 보낸 것으로 생각해.
그 말에 엄마는 둘 다 미친 연놈들이라고 했다. 엄마는 너 한국 남자랑 결혼하는 날엔 모녀지간 정 끊어지는 줄 알라고 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결국 엄마가 졌어요. 선양 공항에서 그 남자를 만나서 택시로 집에 도착하니 엄마가 최고 맛난 음식을 준비했고 중국인 새아버지도 고급술을 사 오셨다. 집에 새아버지 빼고 엄마 나 여동생 모두 여자라 술 대작할 사람 없었는데 사위 덕에 술도 마신다고 좋아하셨다.
그렇게 부모님 인사를 하고 한국 오는 절차를 밟아 입국 신청을 했다. 천만다행으로 제가 한국입국 신청 했을 때는 가짜 신분증 원래 주인이 살아있어서 통과되었는데, 한국에 오고 1년 후에 그 사람이 죽어서 호구정리를 했고 그 이름으로 한국행 여권발급이 되어 한국으로 가서 중국에 귀국한 흔적이 없어서 중국 공안이 난리가 난 것입니다. 가짜 신분증 해준 분과 중국 새아버지가 잘 아는 사이라서 중국 공안에 시달려도 절대로 딸을 중국에 다시 오지 마라. 와서 공안에 잡혀가면 안 된다고 했다. 그 말에 미영은 아닙니다. 저는 이미 한국 국적을 취득했기에 한국여권으로 중국 가면 이상 없다고 했다. 엄마, 새아버지, 여동생 선물을 가득 준비해서 남편 휴가기간에 중국을 다녀왔어요.
선양 공항 검색대에서 공안이 저를 와보라고 해서 갔어요. 공안 말이 중국에서 만든 여권으로 출국하지 않았냐? 그렇다. 그런데, 한국에서 결혼해서 한국 국적을 얻었고 여기 대한민국 여권으로 입국했다. 당당하게 말했어요.
뭐가 문저입니까? 했던 아니라고 그냥 중국 여권으로 출국한 거 알고 있다고 그 말을 하면서 말 끝을 흐리더군요. 당당하게 대한민국 여권의 소중함과 위력을 경험하고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여자에게 간첩을 만들려는 수작은 너무 유치한 서커스 아닙니까?
그 말에 조사관이 더 이상 간첩 조사 안 하고 대공용의점 없음으로 종결 보고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왜 한국 오자마자 국정원 조사받을 때나 동사무소에 그런 말 하지 않았나요?
누가 그걸 말해준 사람도 없고 탈북자라는 것이 조국을 배반한 것이라 자라 어리도 아니라서 말을 못 했습니다.
한국에 와서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이었나요?
말입니다. 같은 조선 민족인데 억양도 다르고 단어도 다른 지 정말 처음에는 문밖에 나가기가 싫었어요. 그녀는 조사를 마치고 김포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남편 한민섭에게 전화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