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여름 재수생이었다. 12.12군사반란이고 5.18 광주사태고 신경 쓰지 말고 할아비가 소를 3마리 팔아줄 테니 오직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했다.
예. 대답은 했으나 그해 여름 정말 공부가 안되었다.
노량진 학원에서 탈출 하루 땡땡이를 쳤다. 요즘처럼 마을버스 있으면 동작 01번 타면 편하게 갈 길을 걸어서 가다 쉬다를 반복했다.
거의 달마사 당도할 무렵 누가 젊은이? 하고 불렀다. 그리 가니 50대의 부부가 막걸리를 마시면서 한 잔 해? 하면서 잔을 주었다. 받아마시고 나도 부부에게 따라드렸다.
정의사회구현에 대해 물었다.
재수생이라 그런 거 생각 없이 공부만 하는데, 너무 머리가 무거워 노량진을 탈출했다고 했다.
그분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국무총리실에서 행정백서를 담당하다가 정의사회구현 궐기대회 불참해 싸고 해직되었다고 했다.
집에 와서도 학원에서도 그 해직고무원 이야기가 맴들아 공부가 안되었다.
며칠 동안 학원 땡땡이치고 빈 교실에서 커다란 노트에 소설 초안을 썼다.
삼수를 해서 82학번이 되고 초안을 원고지에 꾹꾹 눌러 80매 단편소설로 신문사마다 투고했으나 다 떨어졌다.
영화 <서울의 봄>이 다른 12.12군사반란 어서 최규하 대통령 8.16 하야를 다룬 <기미정난>, 10.26을 다룬 <의인>, 광주사태와 국보위를 다룬 <백서>, 9.01 전두환 취임한다고 경축 담배 <솔>을 만들었는데 1983년 10월 9일 아웅산 사건을 다룬 <솔>을 신문사를 돌려가면서 신춘문예 공모에 보냈으나 뽑아준 곳은 없었다.
나이 60 넘어 오늘 생각하니 전화위복이다. 그 시절 작가가 되었으면 중앙정보부에서 김종길 교수나 김지하 시인처럼 고문이나 당했을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