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함문평 May 15. 2024

유년시절의 추억. 4

이름 영구와 문평

3남 2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요즘은 남녀차별이 없지만 1960년대는 남녀차별이 심했다. 할아버지 입장에서는 끔찍한 장손이었다.


어느 날 두 살 아래 여동생과 싸워 여동생이 손톱으로 내 얼굴에 피를 흘리게 했다.


할아버지 불호령에 어머니는 여동생을 비 오는 낼 개 패듯 여동생을 회초리로 때렸다.

마음이 짠했다.


태어날 때는 쌍둥이로 태어났다. 형은 영세, 나는 영국이었다.


영은 돌림자라 의미 없이 들어간 것이고 형은 세계를 유영하라고 세상 세를 나는 국가를 유영하라고 국이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3세에 홍역을 앓다가 형이 죽었다.


강림에 신내림 받은 무당에게 굿을 했다. 무당은 아버지를 호통을 치고 아버지는 관청에 잡혀온 죄인처럼 빌면서 돈을 돼지머리에 수북하게 올려놓았다.


신내림 받은 무당이 아버지에게 네 욕심이 하도 커서 쌍둥이 장남을 잃었다.


작은애라도 살리려거든 신령님께 목숨만 살려주세요라고 나라국을 구 할 구로 빨리 개명하라고 했다.


필명 문평을 사용하기 전까지 '영구'였다.


강림서 서울로 전학을 와서 인사를 했다. 강림초등학교에서 전학 온 함영구입니다라고 했더니 반 친구들이 책상을 치고 난리였다.


정해진 자리에 앉아 짝에게 물었다. 왜 내 이름 함영구 소개할 때 책상을 치고 웃었냐고 물으니 TV드라마에 <여로>가 인기였는데 거기 나오는 영구가 아버지가 독립군인데 영구는 좀 모자라는 인물이라고 너 그 유명한 여로도 모르냐고 했다.


전학 가기 1년 전에 우리 강림에 전기가 들어왔다.


라디오만 있었지 TV가 없었기에 여로를 몰랐는데, 세월이 지나 심형래가 영구로 돈을 벌 때, 어느 영구라는 이름을 가진 아들을 위해 '심형래 씨 당신 돈 버는 것도 좋지만 전국의 영구라는 이름을 가진 학생을 위해 영구팔이 그만하라고 신문에 기고를 했다.


 사실 나도 심형래 만나면 그의 영구팔이로 번 돈 10%를 이름값으로 요청할 샹각이었다.


심형래가 폭삭 망해서 돈을 받을 수 없으니 내 소설책이 많이 팔리길 기대한다.


나이 60에 등단을 하고 <777>을 출판사에 의뢰했더니 작가 이름이 함영구 이상하다고 출판사 대표가 글윌 문을 편집장이 평평할 평을 지어 함문평으로 출판하고, <백서>도 함문평으로 출판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유년시절의 추억.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