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원 37호

담배 솔과 철학자 윤노빈

by 함문평

브런치스토리에 오늘 이전 광주는 잊어라라는 큰제목에 01.02.03 연속 이야기를 썼더니 두 사람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런 신문에 보도도 안된 이야기를 네가 소설가라고 근거 없이 써도 되냐? 항의하는 재수 없이 초등학교 6년 뺑뺑이로 선택된 S중학교까지 9년도 지겨운데 또 뺑뺑이로 간 흑석동고등학교까지 12년을 같이 다녔으나 서로 친한 사이도 아닌데 어디서 내가 작가가 되었다니까 내가 등단한 현대시선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정보통신보호법상 알려줄 수 없다니까 거꾸로 출판사에 자기 연락처를 주고 초, 중, 고 12년 동창이라고 꼭 알려달라고 하는데 함 작가 어떻게 하죠? 해서 알려주세요 했더니 밤 11시 59분에 전화가 왔다.


생전 처음 보는 전화는 보이스 피싱이거나 보험가입 상조 가입 전화라는 거 알기에 안 받았더니 문자가 왔다.

함작가 작가 되었다고 문자 전화 씹지 말고 좀 받아라 나 박해임이야 했다.

또 한 사람은 페이스북에서 친구 걸어온 것을 거절했더니 역시 출판사로 항의 문자가 왔다.

두 인간 다 나를 의심했다. 함 작가 당신이 오늘 이전 광주는 잊어라 속 이야기에 대해 책임질 수 있냐? 물음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글을 쓰기는 지금 쓰지만 초안은 이미 30년 전에 한 것이다. 내가 망원 37호 이전에 우리 할아버지 가경취숙 어른이 전두환에 대하여 더 잘 알고 있었고 할아버지가 장손에게 거짓말이면 메모만 했다가 당신이 돌아가시고 30년이 되면 그때 글로 정서해서 올리라고 하셨다.


전두환과 가경취숙과는 1964년 진해 육군대학 정규과정 학생장교였다. 지금이야 육군대학 입교장교가 있으면 사전에 후임자를 보충하고 육군대학에 입교시키지만 1964년 육군대학은 정규과정과 3개월 과정의 단기과정 육군대학 두 종류를 운영했다.


1년 과정 정규육군대학은 선발부터 엄격했다. 영관장교의 집체교육이 1년이라면 학과 과목이나 시간에 있어서 일반 대학의 석사과정 2년보다 오히려 공부량이 많은 편이었다.


1963년 선발기준을 보면 전체 영관장교 가운데 근무성적 상위자와 초등군사반, 고등군사반 성적까지 조회하여 최우수자 중에서 두 번의 심사를 거쳐 100명을 선발하고 50명씩 반편성을 했다.


가경취숙과 전두환은 같은 반에 배정되었다. 가경취숙은 그 반의 반장 격인 대표 학생장교가 되었다. 그는 중령이라 계급도 전두환 보다 상급자였다. 나이는 전두환이 두 살 위였다. 가경취숙은 육사를 다니다 중퇴를 하였지만 육사 선배임을 강조했고 전두환은 졸업 못한 선배가 무슨 선배냐고 11기인 자기들이 4년제 육사 효시임을 내세웠다.


1년 육군대학 정기과정 기간에 사사건건 둘의 충돌은 계속되었으나 가경취숙이 늘 전두환을 압도했다.


다투기는 했으나 극한까지는 안 갔는데 졸업을 앞두고 실시하는 함안 종합야외훈련장에서 일이 터졌다. 실습이 끝나고 교수부장 백두산 대령이 초청하는 학생대표 만찬장에서 뉴스가 터졌다.


보안사령부 전신인 육군방첩부대장에 박영석 장군에서 윤필용 장군으로 교체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박 장군은 가경취숙 고종사촌 형님이라 흥분된 어조로 정치군인이 방첩대를 접수하는군? 하자 전두환 소령이 가경 중령에게 대들었다.

전두환 소령은 학생대표 자격이 없었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총애한다는 말에 백두산 교수부장이 특별히 초대한 것이었다.


서로 티격태격하는 것을 백 교수부장이 겨우 수습했다. 전두환은 가경취숙에게 사과하려고 여러 번 접근을 시도했지만 가경취숙은 외면했다.


그 후 전두환은 장군이 되어 박정희 대통령 총애를 받으면서 위세를 떨칠 때에도 가경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육군 상층부 4성, 3성 장군들은 계급과 관계없이 준장 전두환이 헬기를 타고 상급부대에 방문하면 상급자들이 헬기장에 가서 전두환을 영접했다. 그 시절은 박정희 총통과 얼마나 친한가 가 계급에 우선했다.

그런 모습을 본 일반장교들이 전두환 준장을 황태자로 불렀다.


전두환은 가경취숙을 껄끄럽게 보면서도 가경 선생의 경력과 업적을 사실대로 이정하는 요즘 2030 표현으로 쿨한 모습을 보이는 척했지만 내심은 늘 가경취숙을 질시하며 경계했다.


후일담이지만 육군대학 졸업 후 전두환은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 가경취숙도 베트남전에 참전해 훈장을 여러 번 받았다.


베트남전에서 철수하고 각자의 부대로 보직을 받았다. 전두환은 술만 마시면 나도 월남전 참전유공자인데 가경취숙은 웬 놈의 무공훈장이 저렇게 많으냐? 고 불만을 토로했다. 마치 무공훈장 불공평 타도주의자 수준이었다.


가경취숙 어른이 잠시 전두환보다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는데, 육군본부 인사운영 감실 대령과장 시절이었다. 역대 대령과장이 거의 장군이 다 되었기에 연말 진급심사에 이변이 없는 한 장군이 될 것으로 믿고 있었다. 전두환은 2년 있어야 장군 심사 대상이었다.


어느 날 전두환이 대령과장 가경취숙을 식사대접을 했다. 실실 따라가 보니 호화찬란한 요정이었다. 가경취숙 생애 가장 비싼 식사 장소였다. 시중드는 여자들도 영화배우 보다 더 눈이 부셨다. 가경취숙은 눈을 어디로 향할지 고민이 되었다.


정황을 봐서 가경취숙은 전두환에게 국민의 세금으로 국가의 녹을 받는 고급장교가 이런 요정에서 식사는 거북하다고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훈계하고 떠났다.


연말 장군진급 심사에 가경취숙은 모두가 될 거라는 기대에 부응 못하고 장군진급에 탈락되었다.


다음에도 떨어져 진급자리는 새로이 대상자가 되는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대령으로 예편해서 횡성 태종대 옆에서 시와 소설이나 쓰고 노년을 보내려는데 장군 진급이 되었다.


12.12 군사반란과 5.18 진압을 마치고 국보위상임위원장을 하더니 8월 16일 최 대통령이 하야하자 취임 축하 담배 솔이 전두환 대통령 각하를 취임 축하 연기를 전국 방방곡곡 연기를 뿜었다.

한편 부산대학교 철학과 윤노빈 교수는 군사반란 수괴가 대통령 하는 나라에서 살 수 업다고 아내를 대동해 중화민국을 우회하여 월북을 했으나 전두환은 창피해 그 내용조차 보도통제로 가경취숙 선생과 몇몇 정보장교와 중앙정보부와 보안사 인원만 알고 쉬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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