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광주사태로 불리던 5일 18일에서 27일 기간의 뉴스는 오늘날 표현으로 가짜뉴스의 홍수였다.
그중 하나가 광주의 불순분자가 독침으로 계엄군을 찔렀다고 했다. 그러더니 잠잠해졌다.
허장환이라는 사람이 당시 굉주보안부대 수사관이었는데 광주에서 보안부대원으로 한 행동에 참회의 기자회견을 평화민주당 당사에서 하였다. 이때 그의 기자회견을 경청하고 광주민주화운동진상조사위원회가 활동을 잘했었더라면 진실을 어느 정도 파악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에 경청하기보다는 정치적으로 이용만 하려 했다.
그리다 보니 현재도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굉수가 600명이나 된다는 헛소리가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양파 껍질 벗겨도 벗겨도 계속 나오듯 5공 청문회를 한 것이 언제인데 아직도 광주에 대해 12.12군사반란에 대한 정확한 역사기록이 없다는 것은 지난 40년을 12.12군사반란과 5.18로 이익을 봤던 사람들이 교묘하게 역사자료를 불리한 부분은 삭제 은폐하거나 다시 써서 그럴듯하게 확대 재생산한 것이다.
그중 하나가 독침사건이고 다른 하나가 북한군 개입설 광수 1호부터 600호 이야기다.
독침사건은 자작극이었다.
그 자작극을 벌인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지만 뭐 사실적시 명예훼손이라는 것이 있어서 사실이라도 당사자가 기분 나쁘다고 법원에 고발하면 문평은 피고발인이 되는 것이라 안 하지만 세월이 40년 흘렀으면 반성 참회 기자회견이라도 하는 게 도리 아니 나고 내 말은 말이지.
광수만 해도 그래 그들이 정말 북한군이라면 광주사태 진압 후 정중히 관을 짜서 판문점을 통해 북으로 보냈어야 국제법상으로 인간존엄을 염두에 두는 민주공화국이라면 그렇게 했어야 한다.
하나의 거짓말을 그대로 존속시키려면 30개 이상의 거짓말을 더 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학교에서 역사를 배우는 것과 현실이 너무 다른 나라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하면서 과거에 대해 진실한 대화를 외면하고 있다.
일본이 조선 강점기에 친일행위자와 일본에 의해 잘못된 역사 잘못된 지명을 광복 80주년이 다가오도록 변한 것이 없다.
나의 고향 강원도 횡성군 강림면 강림리는 대동여지도에 보면 각림동으로 표기되어 있고 각림사라는 절도 있었다. 조선시대 강원도 관찰사가 원주목에 살았는데 강원 감영의 직할 창고가 각림에 있었기에 각림창이라고 부르고 창고가 있는 마을이라고 이름이 창말이었다.
그러면 강림면이 아니고 각림면으로 광복된 나라답게 행정부에서 고쳐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공무원의 비하하는 명칭이 철밥통인데 그러니 철밥통소리를 듣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