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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뎐. 15

논산훈련소

by 함문평

흥남으로 가는 배는 허름했다. 하지만 배가 무슨 문제인가 고향 찾아 조선땅으로 가는 것에 포로들은 들떠 있었다.


흥남부두에는 군악대가 대기하여 배가 도착하자 연주를 했다. 배에서 내려 흥남여고 운동장과 강당에 마련된 임시포로수용소로 갔다. 찬송가 곡조에 맞추어 부르던 <애국기>, <김일성장군의 노래>, <학도가>, <독립군가>와 소련군가가 메들리로 연주되었다.

흥남여고 포로심사장에는 소련군의관이 건강검진을 해주었다.


고향이 부한인 포로부터 심사를 했고 심사를 마친 포로에게 고향까지 거리에 비례하는 여비를 주고 보냈다. 남한이 고향인 사람은 1949년 1월이 되어서야 출발시켰다.


가까운 개성은 500원, 서울, 경기는 1500원, 강원도 충북은 2,000원 등 아래로 갈수록 여비가 늘어났다.


북한군 인솔 간부가 38선 상의 한탄강까지 안내해 주었다. 남조선 국방경비대에 파견되면 사살당할 수도 있으니 가능한 밤에만 이동하라고 했다.


엄태흥과 할아버지 등 100여 명의 포로가 38선을 밤에 넘었다. 군인들 보초는 잘 ㅍ해 내려왔는데, 날이 밝아 파주에서 순찰 중인 경찰에 붙잡혔다. 굴비 엮듯이 파주경찰서에 갑혀갔다.


이름, 본적, 일본군 마지막 포로가 된 부대와 위치만 파악하고 인천 전재민 수용소로 이첩되었다.

그동안 행적에 대해 집요한 조사를 받았다.

할아버지와 엄태흥은 관동군 경력과 시베리리아 포로작업대 이야기를 진술했다. 고향 횡성에서 농사를 지었다. 농촌일손이 부족할 6월에 소집영장이 나왔다. 청일면사무소에서 따졌다. 관동군으로 복무하고 시베리아 포로작업대에서 노역을 했으면 되었지 무슨 군대를 또 가냐고 따졌으나 소용이 없었다. 병무담당 주사는 일본군 복무나 시베리아 노역은 우리나라 병역법에서 인정해 주는 군대 복무가 아니라고 했다. 논산훈련소로 입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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