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의용군에 복역한 것으로 아버지와 형제자매들이 온갖 고생을 했다. 요즘 젊은이는 무슨 귀신 볍씨 까는 소릴 하냐 그러겠지만 적어도 1979년 김재규가 박정희를 시해하기 전에 9급 이상 공무원 시험을 보았거나 육군, 해군, 공군 사관학교, 2 사관학교, 3 사관학교 등에 시험을 본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잘 설명해 준다.
아버지 형제자매는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공직을 얻을 수가 없었다. 평생 개인사업이라고 하는 자영업을 해서 돈을 벌다 망하다를 반복했다.
더 웃기는 일은 큰고모는 엄청 미인이었다. 어떤 남자와 연애를 했는데 어떻게 할아버지 의용군 복무가 알려져 남자 부모님이 자기 아들 출세길 막으면 안 된다고 해서 큰고모는 결혼도 못하고 화병으로 돌아가셨다.
이 이 이야기는 야만의 계절에 넣을까 하다가 할아버지 인생이라 여기에 썼다.
세월이 흘러 법이 바뀌어 연좌제가 시라진 후 손자가 장교가 되었다. 중매로 만났는데 예비 장모가 물었다.
나의 언니가 북한에서 알아주는 여군 고위층인데 우리 딸과 결혼해도 군대서 진급에 문제없냐고 물었다.
예. 박정희 시대는 연좌제가 심했는데 지금은 연좌제 폐지되어 상관없다고 했다. 금강산에서 남북이산가족 상봉시 장모는 언니를 만났다. 그때 한겨레 신문에서 장모님과 북의 언니를 사진으로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