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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뎐. 30

유언(마지막)

by 함문평

할아버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령이었던 김일성에게도 선생 소리를 들었다.

군자금을 아편 팔아 번돈의 30%를 보냈기 때문이다. 김구 선생에게도 가명으로 보냈고 어디도 영수증을 받은 일이 없다.

요즘도 버닝썬 시건이나 최근 최재영 목사가 디올 백을 선물한 것이나 뇌물을 주고 생색을 내면 탈이 생긴다. 할아버지처럼 그냥 대가를 바라는 것 없이 때려잡자 일본 놈에만 써주세요. 저는 알아서 살아갈 테니 걱정 마세요 하고 일체의 흔적 없이 사셨다. 내년이 할아버지 30주기라도 아무 이상이 없다.


만약에 할아버지가 김구 선생에게 군자금을 드리고 영수증을 받았다면 국가보훈부에서 보훈가문이라고 찾았을 것이다. 반대로 김일성에게 군자금 주고 영수증 받았으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혁명열사릉에 할아버지 시신 없는 가묘를 만들었을 것이다.

박정희는 그런 할아버지를 빨갱이라고 국가보안법으로 조기 단명시켰을 것이다.

그런 모든 것을 미리 천리안처럼 꿰뚫어 보신 할아버지는 일체의 흔적 없이 95세 장수를 하셨다.

김일성이 자신을 가르쳐준 스승에게만 님을 붙여 선생님이라고 한다는 어문규정도 없던 시절에 선생으로 불렀다.

김구 선생은 할아버지를 동지로 호칭했다.

왜냐하면 직접 몸으로 활동하는 애국지사의 일거수일투족이 다 돈이 들어가는 일인데, 김구 선생이 특출난 기술자도 아니라 돈을 벌 수 없으니 독립을 의해 여러분들이 보내준 군자금을 허투루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기에 경성이나 평양이나 부산에서 기생을 하며 번돈도 보내졌고 할아버지처럼 아편 팔아 번 돈도 보태진 것이다.

모르는 무식한 것들이 김구 선생에게 보낸 돈은 좋은 돈, 김일성에게 보낸 돈은 나쁜 돈 더하기 중앙정보부, 안전기획부, 국가정보원 명칭만 변경되고 이문동, 남산, 세곡동인지 내곡동인지 이사를 갔어도 하는 일이 같은 정부기관은 개과천선은 아니더라도 과거사 잘못에 대해 시인이라도 하기 바란다.

할아버지는 1995년 12월 14일이 장례식이다.

솔직히 할아버지가 만주에서 아편으로 돈을 벌고 이익금의 30%는 김구 선생에게 30%는 김일성에게 40%로 차후 아편 구입과 생활한 것을 아무도 모른다.


왜냐하면 할아버지의 자식 나의 아버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큰고모, 작은 고모들은 모른다.


혹시라도 말이 새어나가 당신이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문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숨기고 사셨다.


오직 장손인 나에게 당신 사후 30년이 지난 후에 글을 쓰더라도 쓰라고 유언을 하셨다.


내년 2025년 12월 14일이 30주년이 되는데, 손자가 책을 먼저 냈으나 산소에 봉헌하는 것은 그날 할 것입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손자는 소령이었다. 할아버지가 목숨 걸고 아편 팔아 김일성에게 군자금 전달할 때 김일성이 소련군 대위였다. 그 대위보다 높은 소좌를 손자가 달았다고 엄청 경로당에서 자랑하셨다.


학생시절부터 졸업을 하고 장교가 되어서 할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는 글로 쓰는 것은 좋으나 꼭 당신이 흙으로 간 후 30년이 되거든 책으로 내라고 하셨다.


그전에 쓰면 안 될까요? 했더니 그전에 쓰면 죽은 할아비야 고통이 없는데 살아 있을 손자가 힘들어하셨다.


아직도 세상은 유전무죄 무전유죄 유검무죄 무검유죄 세상이지만 할아버지가 꿈꾸던 인의예지신 오상이 일이관지 하는 나라가 오기를 희망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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