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곳_성북

심우장 가는 길.

by 로이아빠

나는 성북구 삼선동에 산다. 성북동에 처음 오게 된 것은 한성대학교에 입학하게 된 것이었다. 삼선동에 대한 처음 나의 인상은 '시골스러움' 이었다. 서울 한 복판에, 그것도 대학로 바로 옆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내가 사는 집은 한성대학교 정문 쪽에 위치하는데 거의 언덕의 꼭대기라 늘 투덜거리며 올라가야 한다. 그럼에도 나는 올라가는 길이 그리 힘들지만은 않았다. 골목 사이사이를 잘 들여다 보면 '저런 곳에도 집이?' 라는 생각이 드는 곳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 집에 가는 길에서 그런 발견은 나에게 여행을 떠나는 기분을 주었다.


언덕의 꼭대기에 위치한 한성대에서 나의 작은 여행이 시작된다.


한성대에서는 요즘 건물을 짓는다고 난리다. 이 좁은 골목에 크레인이 올라왔다는게 놀랍기만 하다. 올라오는 골목에는 분명 전신주의 전기선들로 가득했을텐데 말이다. 1973년 12월 성북구 삼선동은 재개발 될 뻔 했지만 22일 재개발 전면 해제되었다. 그렇기 때문인지 크레인의 등장은 낯설고 위화감이 들었다. 삶의 터전을 부수는 상징과도 같이 느껴졌기 때문일까. 이 때 나는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그들이 밥을 먹는 와중 크레인이 집 벽을 허물고 들이닥친 장면이 생각났다.


언덕의 꼭대기에서 어디를 가야 할 지 고민이 들었다. 무작정 돌아다니기에는 너무 무모할 듯 싶었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삼선동 명소가 나왔다. 그 중에 만해 한용운이 머물렀던 심우장에 가기로 결정했다. 구글 지도에서 심우장을 검색했지만 나에게는 방향감각이라던가 여기가 어디쯤이라던가 하는 감이 없었다. 그래서 대충 방향만 확인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골목의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끌리는 곳으로 방향을 옮겼다.

골목을 내려가다 배달을 하는 오토바이가 내 앞을 지나갔다. 오토바이 아저씨의 뒷 모습이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사실 원래 골목에 서 있는 고양이를 찍으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고양이는 놓쳤다. 오토바이 배달 아저씨 때문이다. 오토바이 아저씨의 뒷 모습이 유쾌하지 않았듯 나의 기분도 유쾌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랴 먹고사는일을 탓할수는 없으니. 아쉬움을 뒤로 한 채 골목을 내려갔다.

내려가나 싶더니 또 오르막이다. 성북구 삼선동을 골목골목 쏘다니다 보니 오르락 내리락 거리기를 반복했다. 처음 한성대에서 생각했던 심우장으로의 방향인지 알 길이 없었다. 골목 사이사이만을 다니다 보니 내가 가려는 방향으로 가지 못했다. 그래도 이렇게 언덕을 오르면 새로운 집이 나오고 새로운 풍경이 펼쳐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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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을 올라 좁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가는 길임에도 그 길의 끝에는 누군가의 집이 있었다. 이리저리 미로를 헤메는 기분에 오밀조밀한 이 동네가 재밌게만 느껴진다. 그리고 골목을 헤집고 다니다 보니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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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들어가게 된 정각사는 동네 분위기와 다르게 무척 신식이었다. 사실 이제까지 본 절 중에서 이렇게 신식의 건물은 처음 접했다. 내부는 깔끔하게 되어 있었고 사람들이 절을 하는 장소에는 통유리로 된 건물에 마루로 된 바닥이 있었다. 그리고 깔끔하고 투명한 유리 사이로 불상의 모습이 비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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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로만들어진 조그만 불상들은 무뎌진 얼굴로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깍여나간 모습 때문일까. 제각기 다른 웃음을 짓고 있는 불상들이었다. 환하게 웃는 불상, 비웃는 불상, 웃을랑말랑 한 불상. 불상들의 모습이 사람들의 모습을 꼭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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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각사의 끝자락에서 바라본 풍경은 일상적이었다. 늦은 오후 내리 쬐는 햇빛에 불투명하게 빛을 반사시키는 낡은 지붕들이 따스하게 느껴졌다. 멀리 온 것 같았지만 생각보다 내가 출발한 학교는 가까이에 있었다.

정각사를 나오는 길에 고양이를 보았다. 담벼락 한 구석에서 잠들어 있는 고양이는 세상만사 편해 보였다. 내가 시작한 이 작은 여행에서 느끼는 가장 소중한 것이 떠올랐다. '편안함' 그저 발이 가는 대로 내가 보고 싶은 대로의 편안함. 고양이의 옆에 누워 있고 싶었다. 같이 누워서 잠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한참이나 고양이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리고 뒤로 돌았는데 돌로 만든 불상이 서 있었다. 불상이 미소 지었고 나도 미소했다.


우연치 않게 닿은 정각사에서 나는 심우장으로 재차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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