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정혜진에 대하여

2016 현대춤작가 12인 전 '아르코 예술극장'

by 로이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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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처음 현대무용이라는 것을 관람했다. 늘 머릿속에서 상상하던 춤은 깜깜한 무대 한 가운데 비친 조명 아래의 무용수가 떠오르곤 한다. 스포트라이트 아래에서의 손짓 하나, 발걸음 하나가 내 시선을 사로잡는 상상에 빠지곤 한다. 무용수의 손 끝의 떨림과 미묘한 움직임에서 나오는 환희와 절규를 맛보고 싶었다. 공연이 시작하고 몇몇의 무용수가 내 앞을 지나갔지만 나는 그들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어떤 느낌조차 받지 못했다. 오히려 너무 난해하기까지 해서 졸린 작품도 있었다.


그러던 중 무대의 스포트라이트가 내가 있는 자리를 비추었다. 속으로 인터미션인가 싶었는데 뒤 쪽 문에서부터 한 분의 할머니가 나타나셨다. 익살스러운 웃음을 띠며 천천히 구부정한 걸음으로 무대를 올라가셨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한 걸음 한걸음 옮겨지는 발걸음에 나는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사근사근한 움직임은 동작이 과장되지도 정적이지도 않았다. 그녀가 꺼낸 바바리코트는 연애시절 상대방 남자가 되었다. 또는 아기가 되기도 하고, 가녀린 처녀로 만들어주기도 하였다. 바바리코트 한 장으로 무대 위 할머니는 자신이 여자라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아직도 그 시절을 잊지 않았음을 말해주었다.


그녀의 주름은 나이가 들어서 생긴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모진 풍파에 살이 깎여나간 자국이라고,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전혀 깎이지 않았다고. 얘기하고 있었다. 할머니의 인생 얘기가 아닌 한 여자의 인생 얘기를 재미있게 들었다. 춤추는 정혜진은 무대 위에서 할머니였지만 너무 아름다웠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꽃 한 송이를 주었다면 정혜진에게 가지고 달려갔을 것이다. 그녀는 넓은 무대 위에서 홀로 서 있었지만 무대에 여백의 미는 없었다. 그녀가 서 있는 것만으로도 무대는 꽉 찬 느낌을 주었다.


정혜진이라는 무용가의 춤은 몸으로 말하는 언어가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그녀의 몸짓은 과하게 무겁지 않았다. 무용에 대한 딱딱하고 무거운 인식이 있었는데 무리하지 않고 움직이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놀랐다. 굳이 동작을 크게 하려 애쓰지 않고 발을 크게 놀리지 않으며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춤이라는 것에 대해 일면식도 없지만 자연스러움에 묻어나오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의 글도 그녀의 춤처럼 화려하지도 무겁지도 않은 글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시선을 사로잡는 문장이 내 손 끝에서 펼쳐졌으면 좋겠다. 다만 지금 이 순간, 정혜진이 온몸으로 펼쳐낸 이야기가 나의 손 끝에서 생생히 되살아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춤추는 정혜진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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