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이름은,#신카이마코토
글을 시작하기 전에
본 글은 영화 리뷰가 아님은 밝힙니다.
영화를 통해 느낀 느낌이 저의 현실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 표현하고자 하였습니다.
광고회사를 다니기 시작한지 어느덧 한 달이 되어간다.
회사에서 나는 '기라 씨'로 불린다.
내 이름이 불리 때면 그나마 불안정하게 뛰던 나의 심장이 더욱 쪼그라 든다.
차라리 나의 이름이 '기라'가 아니길 바랄 때가 있다.
'기라'로 발음되는 소리가 나를 지칭한다는 것을 인지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채 1초가 될까.
내 이름이 불리워 질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암시를 한다
나는 '기라'가 아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견뎌나간다.
그리고 타인에게 불리워지는 나의 이름은 통해 '내'가 그곳에 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회사 밖에서 혹은 일상속에서 내 이름을 들을 일이 얼마나 있을까.
타인을 통해서만 나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비극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아직도 타인을 떠나지 못하고 타인들과 함께 살아간다.
그리고 신카이 마코토의 '너의 이름은'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영화에서 한 남자와 한 여자는 '너의 이름'을 통해 서로가 그곳에 있음을 확인한다.
하지만 서로가 '너'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면서
그곳에 존재하는지 조차 알 수 없다.
더군다나 두 남녀는 늘상 몸이 뒤바뀌는 경험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너의 이름'이 같는 의미는 서로에게 '내가 여기에 있어'를 말하는 것과 같다.
'너의 이름'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서로에게 가장 확실한 존재였다.
그리고 서로의 이름을 잊은 채 살아가는 동안
그들은 자신의 일부를 잃어버린채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나는 요즘 나의 일부를 잃어버린 채 살아간다.
신카이 마코토의 영화 '너의 이름은'에서 이름이 갖는 의미는
단순히 불리워지는 것에 있지 않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우리는 누군가를 바라보면서 그 사람이 거기에 있음을 인지하면서 이름을 부른다.
회사에서 내 이름이 불리는 것은,
사실 나를 부르는 것이 아니다. 나와 관련된 '업무'를 부르기 위해서다.
그들이 부르는 나의 이름에 '나'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이 내 이름을 불러줄 때 그렇게 행복한 것 같다.
이 세상에서 '나'를 '나'로 존재하도록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은
오직 사랑하는 사람 뿐인 것 같다.
그래서 인지 내가 볼 때 현대인들은
공중에서 떠다니는 것 같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생각할 겨를 조차 없이
여기저기 '내'가 아닌 이름으로 불려다닌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이다.
요즘 나는 '나'를 조금씩 잃어가고 있다.
언제쯤 나는 제대로 불리워질 수 있을까.
이 외로훈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렇게 또 담배를 태운다.
내가 빨아들인 담배연기가 공중에 흩어져가는 모습이
마치 희뿌연 애매한 형태가 지금의 '나'임을 바라본다
'너의 이름은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