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자화상-
무언가 요란한 소리와 함께 땅이 울린다. 쾅... 와장창. 그리고 때때로 들려오는 귀청을 찢은 괴성이 있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 썼다. 누군가에게 발견당하면 큰 일이 날 것처럼. 덜덜덜덜. 나의 턱관절은 쉴새없이 움직였다. 10월의 가을 날씨에 추위로 인해 이러는 것이 아니다. 그때 또다시 땅이 울리고 굵고 기다란 음성이 내 귓가를 파고들어 헤집어 놓았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눈이 풀리고 턱밑으로 허여멀건한 액체가 흘러내린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어느새 주위가 조용하다. 아니 고요하다. 그러나 끝을 뜻하는 '고요' 가 아니다. 언젠가라도 불어닥칠 폭풍전야의 '고요' 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잠이라는 놈이 내 몸을 뒤덮는다. 두려움으로 긴장된 근육은 지쳤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눈이 풀린다. 점점 눈을 뜨고 있기가 힘들어 진다.
번쩍. 눈이 띄인다. 황급히 눈알을 이리저리 굴려본다. 다행히 아무런 일도 없는 듯 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었다.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이번에는 조용했다. 이건 끝을 알리는 고요다. 슬그머니 이불을 들어올렸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엉망진창이 된 방이다. 역시나 오늘도 부서져있다. 책상의 모퉁이, 노트북, 탁상시계 등등... 그리고 책들이 난잡하게 어지럽혀져 있고 갈기갈기 찢겨있었다.
'툭'
발에 걸리는 것이 무언고 하니 '소크라테스의 변명' 이다. 찢어진 책장 사이로 드러난 하나의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참 어려운 말이다. 나 자신을 알라니.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 이게 나인데 무슨 말인가. 아무튼 폐허처럼 변해버린 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합판으로 된 문은 이미 군데군데가 움푹 패이고 부서져 있었다. 부서진 단면에서 톱밥이 흩날린다. 부서진 균열과 구멍사이로 보이는 거실은 그래도 양호했다. 그나마 다행이랄까. 눈에 띄는 것은 액정이 산산조각나 있는 대형 티비 외에 특이할 만한것은 없었다. 소파의 찢어진 틈 사이로 솜이 삐져나오는 것은 어제부터 그랬으니 지금의 특이사항은 아니다.
사실 나는 혼자살지 않는다. 우리 집에는 헐크가 산다. 정확히는 내 주변에 살고 있다. 어벤저스의 히어로중 한 명인 헐크는 나를 지켜준다. 다만 그 방식이 너무 패도적이여서 나마저도 위협을 느낀다. 분노의 화신인 헐크는 내가 위협에 처하거나 억울할때 언제나 화를 낸다. 속에서 응어리진 무언가. 나의 심장을 꽉 막고 있을때 헐크는 강력한 힘으로 주변을 파괴한다. 파괴된 흔적을 볼 때면 속이 뻥 뚫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황량함이 주는 고독함이 나를 따라다닌다. 어디에 숨은지도 모르는 강력한 히어로는 평소에는 보통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라고도 할 수 없는 특이한 점은 헐크는 항상 화가 나있다는 것이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느낄수 있다. 마치 늘 장전되어 있는 총과 같은 상태이다. 문제는 누가 방아쇠를 당기느냐 였다.
내가 일하는 술집이 문을 열 시간이라 슬슬 나가봐야 한다. 아직 집 정리가 다 된것은 아니지만 조만간 또 어지럽혀질 것이기 때문에 더이상의 정리는 무의미하다. 술집 문을 열고 불을 켜고 간단한 안주거리를 준비한다. 과일도 깍아놓고. 하나, 둘 손님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금세 주변은 시끌벅적하다. 여기저기서 나를 불러제끼는 소리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 시간이 무르익고 분위기가 무르익을수록 사람들의 목소리는 커져간다. 그리고 사람들의 추태도 늘어난다. 여기저기서 술잔을 깨고 토를하고 난리가 난다. 나는 말없이 토를 치우고 깨진 잔을 치우고 새 잔을 가져다 준다. 토를 걸레로 훔치려는 찰나.
'툭'
누군가 나를 밀친다. 그 바람에 나는 그대로 토에 내 얼굴을 묻었다. 생일날 친구들이 생크림케잌에 얼굴을 처박던 기억이 난다. 물컹하고 미끈거리는 느낌과 함께 시큼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나의 모습을 보고 웃는 사람들이 느껴졌다. 고개를 드니 배꼽을 붙잡고 쓰러지는 사람까지 보였다. 명치부근이 뻐근해져 온다. 응어리진 무언가가 가슴 한 가운팍에 콱 박혀있는 느낌이 들었다. 내 뒤에 있는 사람을 돌아봤다. 그 순간 서 있던 사람은 더 이상 서 있지 못했고. 주변에 있던 다른 손님 테이블에 엎어졌다. 술잔이 엎어지고 술병이 깨졌다. 그리고 곧 술집은 아비규환이 되었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곧이서 술병들이 깨졌다. 술잔이 하늘을 날아올랐다. 나는 황급히 카운터 뒤로 몸을 숨겼다. 귀를 찢는 괴성사이로 사람들의 비명과 경악이 느껴졌다. 일순간 조용해졌다.
나는 그 틈을 타 건물 밖으로 뛰쳐나갔다.
곧장 집으로 향해 들어왔다. 집에서 반기는 것은 황량함 뿐. 지친다. 헐크가 가게에 나타났으니 더이상 그 가게에서 일을 할 수 없다. 사람들은 헐크가 아닌 나를 원망할 것이다. 이전에 멀쩡히 다니던 회사에서도 그랬었다. 직장상사는 내 보고가 맘에 들지 않았는지 그날따라 기분이 안좋았는지 나를 직접 불렀다. 그리곤 내 보고서를 둥글게 말아 머리를 후려쳤다. 몇 차례고 내 머리를 내리치더니 손에 들고 있떤 보고서를 내 면상에 집어 던졌다. 한장 한장 A4용지 낱장이 흩날렸다. 유난히 날카롭고 차갑던 A4용지 모서의 한 꼭지점이 나의 볼을 긁었다. 볼에서 느껴지는 화끈함과 함께 곧 피가 맻혔다. 주위가 온통 빨갛게 변하는가 싶더니 정신을 차렸을 때는 병원에 누워 있었다. 의사는 내가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그렇다며 진정이 되면 집으로 가라고 했다. 그리고 나와 같은 사람이 흔하다고 했다.
다음날 회사로 돌아갔을때 나를 폭행했던 상사는 징계를 받고 지방으로 발령났다. 나는 제자리에 있었다. 사람들은 나를 슬금슬금 피했고 조심히 대했다. 그날 나는 밥을 혼자 먹었다.
'하...'
깊은 한숨을 내쉬고 샤워를 했다. 아침에 자란 턱수염은 금세 또 자라있었다. 면도날을 들어 턱수염을 밀었다. 칼날이 움직이는대로 턱수염은 부드럽게 잘려나갔다. 어느순간 살짝 부자연스러운 칼날의 움직임과 함께 이물감이 느껴졌다. 곧이어 턱끝에서 핏방울이 맺혀 이내 세면대로 떨어졌다. 화가 나고 짜증이 났다. 그만 면도칼을 집어던지고 주먹으로 거울을 세게 내리쳤다. 거울은 금이 가고 몇몇 조각들이 바닥을 떨어졌다. 신경질적으로 떨어진 거울조각을 주우려는 찰나. 나는 마주쳤다. 초록 괴물의 뻘건 눈동자를.
헐크는 어벤저스에 등장하는 히어로중 한 명입니다. 그리고 평범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헐크에 열광합니다. 그의 막대한 힘 무엇이든 부숴버리는 힘에 열광하는 것이지요.
그 무소불위의 힘으로 뭐든지 한 줌의 재가되어버리는 광경은 시원합니다. 가슴속까지 뻥 뚫어버려 줍니다.
마치 코르크마개로 막혀있는 탄산이 가득찬 병과 같죠. 헐크의 힘은 마개를 뚫어버리고도 남습니다.
사실 히어로 헐크는 우리 주변에 늘 존재합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늘 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오늘 하루중에 화를 내지 않은 적이 있나요?
누군가에게는 짜증을 내고 화를 냈을 것입니다.
우리는 늘 화를 냅니다. 집에서건 회사에서건 언제 어디서든지요.
명동을 지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세요
미간에 주름이 깊습니다. 인상을 가득 쓰고 있습니다.
회사에 가 보세요. 직장 상사의 얼굴을 보세요.
미간에 그랜드 캐니언의 협곡이 보입니다.
그리고 거울을 보세요 백두대간이 보입니다.
헐크는 우리안에 늘 잠자고 있습니다. 마치 장전된 총과 같죠.
그리고 일상에서 일어나는 작은 불협화음이 잠자는 헐크를 깨웁니다.
우리는 헐크를 안고 삽니다. 늘 불안합니다.
헐크가 세상에 나오는 순간 우리 주변은 초토화 되어 버립니다.
결국에는 나 혼자뿐인 세상이 오는 거죠.
현대인에게 헐크를 길들이는 문제란 참 어렵습니다.
헐크는 죽지 않습니다. 죽이려하면 더욱 날뜁니다.
그렇다면 다스려야죠.
내 주위를 파괴하지 않게요.
헐크는 우리의 자화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