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공의 검은색

행복은 무슨색일까?

by 로이아빠

우와, 무지개다. 횡단보도 옆에 서 있던 한 아이가 하늘을 가리켰다. 도심에서 보기 드문 무지개였다. '빨, 주, 노, 초, 파, 남, 보'가 뚜렷한 무지개. 그 때 보행자 신호등에 초록불이 들어왔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은 아무도 하늘에 떠 있는 무지개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전부 귀찮고, 짜증나고, 무표정한 얼굴들 뿐이었다. 오직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는 아이의 눈망울에만 '빨, 주, 노, 초, 파, 남, 보'가 담겨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알까. 아이의 동공은 검은색이라는 것을.


아이의 동공은 때로는 푸른 하늘을, 때로는 싱싱한 초록을 또는 강렬한 빨강을 담는다. 이렇게 아이의 눈에 모여든 색은 전부 뒤섞이고 이내 검은색이 된다. 하늘의 무지개를 쳐다보며 신기해하는 아이의 눈을 통해 내 주위의 색을 새삼 느꼈다. 그 꽃이, 그 하늘이 무슨 색인지 누가 알았을까. 그 태양이 단순한 빨강이 아님을 누가 알았을까. 홍채를 지나 동공으로 들어오는 빛을 다 받아들일수 없었다. 눈을 크게 뜨고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을 똑바로 바라보려 한 들 나의 동공은 축소되고 또 축소되었다. 홍채 주위를 맴돌던 빛무리는 갈곳을 잃고 우왕좌왕 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동공은 내 몸속으로 숨어버렸다. 빛무리가 흩어지고 주위가 하얗게 변했다. 더 이상 눈을 똑바로 뜨기 힘들었다. 그러나 분명 태양은 빨간색은 아니었던것 같았다.

그때까지도 나는 아이의 손끝을 따라, 입을 벌리고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아저씨, 초록불이에요.' 초록불이라는 아이의 말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아직도 부신눈을 주체하지 못하고 힘겹게 눈을 떠 신호등을 바라보았다.


'초록불에는 건너야해요 어서요.'

아이는 나의 팔을 잡아 끌었다. 그런데 초록색에는 왜 건널까. 초록이 나에게 주는 건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초록이라고는 우리 집 화분 외에는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초록색에는 왜 건너야 하지?'


'초록색에서는 마음껏 뛰어놀수 있어요. 나는 아빠랑 가끔 공원의 잔디에서 뛰어 놀아요.'

엉뚱한 대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가 하는 말에 들어있는 초록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초록이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편안함'. 그러고 보니 보험 관련된 광고에서 어린아이와 부모가 잔디밭에서 밝게 웃고있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렇다면 빨간색에는 왜 건너지 말아야 하지?'


'뜨거워 보이잖아요, 다가가면 안돼요.'


'그렇구나.'

이번에도 꽤나 엉뚱한 대답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이의 대답이 새로웠다. 초록색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나는 잊고 있었다. 빨간색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잊고 있었다. 아이의 눈망울은 맑았고 눈동자 한 가운데에 자리잡은 동공은 끝없이 깊었다. 아이의 동공에는 세상의 모든 색이 모여있었다. 어쩌면 이 세상의 색은 아이들의 동공에서 나온게 아닐까. 그래서 아이들의 눈동자는 유독 크고 검은지 몰랐다. 모든 색을 계속 더하고 섞으면 결국 검은색이 된다. 사실 모든 사람들의 동공은 검은색이다. 단지 메말랐을 뿐. 지금 내게 가장 많이 보이는 색은 회색이다. 시멘트로 뒤덮인 이 세상은 사시사철 늘 회반죽 색을 띄고 있다. 회색은 무감각한 색이다.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현대에 걸맞는 색이다.


아이는 행복해 보였다.


문득, 얼마전 흡연구역에서 무리지어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회색' 그들 주위는 온통 담배연기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들 중 한 명과 눈이 마주쳤을 때 나는 놀랐다.

'똑같은 회색' 이다.


나는 일주일 전 수산시장에 간 일이 있다. TV홈쇼핑을 보는데 영광굴비가 나오더라. TV속 굴비는 어찌나 윤기가 좔좔흘러내리고 생기가 가득한지. 한 입 베어물면 터지는 육즙이 입안에서 느껴졌다. 나는 한 걸음에 수산시장으로 달려갔다. 수산시장에 도착하자 많은 수산물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나는 단연코 굴비만을 찾았다. 시장 골목골목을 누비다. 굴비가 잔뜩 있는 골목을 발견했다. 골목에 들어선 순간. 수많은 굴비들과 눈이 마주쳤다.

반 쯤 벌어진 입. 동공없는 공허한 눈들이 날 쳐다봤다. '어이 총각' 누군가 날 불렀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보니 내 옆에선 할머니가 사람좋은 웃음을 하며 말을 걸고 있었다.


'아니 무슨 총각이 그렇게 입을 벌리고 멍하니 서 있어?'


'굴비사러 왔지? 내가 살이 통통한놈으로다가 골라줄테니까 이리 와 봐'


나는 넋살좋은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굴비앞에 섰다. 그리고 동공없는 굴비의 눈과 마주쳤다. 말을... 걸어야 할까. 나는 또 멍하니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굴비가 담긴 검은 봉다리가 내 손에 들려 있었다. 그리고 담배연기가 내 눈동자로. 망막을 뚫고 공막, 홍채를 지나 동공으로 흘러들어왔다. 세상이 온통 흑백사진의 한 장면으로 보였다. 집으로 돌아와 굴비가 든 봉지를 아무렇게나 던져 놓았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굴비는 검은 봉지에서 대가리를 살짝 내밀었다. 그 때 나는 굴비와 세번째 대면을 하였다.

FBUXA3W6.jpg 출처_네이버 지식백과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044579&cid=46702&categoryId=46753


'뭘 봐.'


'...'


'기분나쁘게...'


거울 앞에선 나는 한 마리의 굴비를 보았다.

그리고 흡연장에서 나는 한 무리의 굴비를 보았다.

그리고 지금, 나는 아이를 보았고 다른 세상을 보았다.

마치 흑백사진기를 통해 세상을 보던 사진사가 어느날 갑자기 컬러풀 디지털 카메를 본 것처럼.


참, 나의 동공과 흡연장에 있던 사람들의 동공은 회색이었다. 그것은 아무것도 없는 흰색의 표면에 약간의 검은색이 남아 보이는 회색이었다. 동공의 바닥은 이런 색이다. 아이의 동공 속을 헤엄쳐 끝없이 내려가다보면 나와 같은 바닥을 발견할 수 있을까.


그리고 굴비는 불행해 보였다.




작가의 말 : 영광굴비 먹고싶다.









커버이미지 출처 : 다큐 사이언스(인체 인식기술) 중

<출처: 남효진, [실시간처리를 위한 홍채인식 방법 및 구현] 중>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57&contents_id=7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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