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달걀일까.
표면에 생기기 시작한 하나의 실금이 길게 이어진다. 하나의 실금으로부터 작은 실금들이 뻗어간다. 조금씩 조금씩 실금들은 더욱 선명해져만 간다. 하나의 실금으로부터 뻗어나간 여러갈래의 실금들은 서로 엉크러지고 이어진다. 선들이 이어져 면이 된다. 실금으로 이루어진 여러 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선명해져만 간다. 실금들이 선을 더하면 더할수록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점점더 표면을 파고든다. 일순 동시다발적으로 면들이 무너진다. 선들의 깊이를 면이 감당하지 못한다. 면이 내려앉은 사이에 보이는 속은 어떤가. 알수없는 어둠만이 가득하다. 무슨 인기척이라도 있을까. 면의 부재로 생긴 텅빈 어둠은 스멀스멀 흘러나온다. 점차 그 영역을 넓혀간다. 어둠이 퍼지고 그 안에 빛이 생긴다.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로부터 왔는지 모른다. 다만 어둠과 대비되는 것이 생긴다는 것. 그 어둠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빛은 하나 둘씩 늘어간다.
'퍼석'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표면 한 구석이 무너져 내린다. 그 사이로 처음 보이는 것은 어두컴컴한 동공. 그리고 곧 그 사이로 생명의 소리가 삐져나온다. 우렁차고도 강한 소리는 어둠 깊숙한 곳으로부터 점차 울려나온다. 밖으로 퍼져나온 소리와 함께 보이는 것은 아기였다. 알에서 태어난 아이는 '박혁거세'라 불렸다. 혁거세는 알의 어둠에서 태어난 별이었을까. 세상 사람들의 하늘에 보이는 별은 혁거세 뿐이었다. 사람들이 혁거세가 있는 알을 발견했을 때 왜, 삶아먹지 않았을까. 혁거세의 몸 어디가 흰자이고 노른자일지 알 수 없다. 아이의 보드라운 흰 살결만은 흰자였을 것이다. 그런데 혁거세는 노른자가 많은 달걀이었을까.
부글부글 끓는 소리에 달걀은 온몸을 들썩인다. 부들부들 떨어대는 달걀은 여기저기 몸을 부닥치다 깨지기도 한다. 뜨거우면 뜨거울수록 노른자는 퍽퍽해져만 간다. 노른자가 퍽퍽해질수록 달걀은 몸둘 바를 모른다. 대학교 시간표라는 것은 자율적이지만 타율적이다. 제한적 자율이라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때로는 어이가 없은 시간표가 나오기도 하는데 가령 9시간 연강이 잡히는 날도 생긴다. 기뻐서 몸둘 바를 모르겠다. 그런 날이면 끼니를 때울 시간이 없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수업을 들으면서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는 것은 고역이다. 그럴때면 삶은 달걀 하나는 귀중한 '한 끼'가 된다. 요즘 삶아져서 나오는 달걀들은 간도 배어 있어 끼니를 때우기 그만이다. 맥반석에 구운달걀도 있고 장조림처럼 절여서 나오는 달걀도 있다. 장조림에 절인 달걀은 흰자에 간이 배어있고 약간의 국물 또한 나온다. 달걀을 크게 한 입 베어물면 흰자의 고소함과 간장의 짭조름함이 노른자의 퍽퍽함을 가시게 한다. 급하게 베어물은 달걀은 목구멍에 쉽사리 넘어가지 않는다. 입 안에서 조각난 달걀의 퍽퍽함은 좁은 목구멍을 통과하면서 다시 뭉치고 더욱 단단해진다. 꿀렁거리는 목울대의 간절함 움직임과 달리 달걀은 서서히 내려간다. 달걀이 목구멍을 내려가는 동안 눈물이 찔끔 났다.
저녁 6시가 되면 온 몸에 힘이 빠진다. 계란이 아직도 소화가 안 된 것일까. 목구멍을 내려간 계란은 명치 언저리에 얹혀 내려가질 않는다. 명치에서 느껴지는 계란의 퍽퍽함이 몸을 더욱 무겁게 한다. 속을 꽉 들어차 막아버렸다. 명치 언저리를 손으로 문지르며 편의점으로 향한다. 편의점에서 1+1 행사를 하는 삼각김밥을 산다. 전주비빔과 참치마요가 묶여있는 상품이었다. 거기에 컵라면 한 개를 같이 샀다. 집으로 돌아와 물을 올리고 가스레인지를 튼다. 보글보글 끓는 물에 라면을 넣고 계란을 하나 깨서 넣는다. 탁 소리와 함께 흘러나온 계란은 껍질없이 끓는 물로 들어간다. 라면이 다 끓고 나면 흰자는 부유물이 되서 여기저기 떠다닌다. 개중에 노른자는 단단히 뭉쳐있다. 라면의 면발과 함께 흰자가 묻어 같이 빨려들어간다. 노른자는 따로 건져먹는다. 노른자의 퍽퍽함이 라면의 뜨거운 국물과 함께 목구멍을 통과한다. 서서히 내려가는 노른자는 명치에 있던 노른자를 밀어낸다. 속이 훅 달아오름과 함께 노른자가 꽉 들어찬 속은 가득찬 느낌을 준다.
퍽퍽함인지 팍팍함인지 모를 느낌은 목구멍에 남아있다. 명치에 가득찬 무거움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박처럼 큰 알에서 태어난 혁거세의 노른자는 얼마나 퍽퍽했을까. 혁거세의 노른자는 금성만큼이나 큰 것일지 모른다. 단단한 금성으로 혁거세의 퍽퍽함은 조금 나아졌을지 모른다. 다섯덩어리 이상으로 흩어진 흰 살결 가운데 우뚝선 노른자는 더욱 퍽퍽해져만 간다. 끓인 라면속의 노른자는 금성이었다. 전혀 연관없는 혁거세의 삶에서 금성이 내 라면에서 우뚝 떠오른 노른자와 무슨 연관성인가. 그냥 생각이 든다. 라면속 노른자는 퍽퍽했다.
친구의 일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홍대로 나섰다. 날씨가 매우 추운 날이었다. 카카오톡의 알림은 친구가 조금 늦는 것을 알려주었다. 카카톡 어플을 클릭하고 노란색바탕이 사라지기 까지 나는 왜 노른자를 떠올렸을까. 카카오톡 메세지에 한 마디 문장이 보였다. '조금 늦어'. 조금 늦는다는 친구의 말은 퍽퍽했다. 저녁에 먹은 계란의 퍽퍽함이 명치 언저리에서 느껴졌다. '알았어'라는 문자를 써 놓고 고민했다. 이런 강추위에 너가 늦더라도 나는 알아서 잘 있을테니 걱정하지말라고 해야되는 것인가. 너의 늦음을 내가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하는 것인가. 나는 너가 늦음을 인지하고 있다고 친구에게 알렸다. 친구와의 대화창을 나가자 단체톡 방에서는 여러 말들이 오가고 있었다. 의미없이 떠다니는 말들이었다. 끓는 추위에 삶아지는 나에게는 껍질없는 흰자와 같은 말들이었다. 그 사이에서 퍽퍽함만이 남았다.
근처 카페에 들어가 기다리다 친구의 부름을 받고 나섰다. 아이러니하게도 친구는 이미 술집에 들어가 있었다. 의아스럽게 친구를 바라보았는데 내가 있는 카페로 오지 않고 그냥 평소가던 술집으로 바로 온 모양이었다. 아직 술안주는 나오지 않았고 소주 몇 병만이 상위에 놓여있었다. 안주가 나오기 전에 한 잔, 두 잔 정도 친구와 술을 기울였다. 친구는 술을 빨리 마셨고 잔을 마실때마다 고개를 젖혀 한 입에 털어 넣었다. 그 때 보이는 친구의 목울대는 왜이리 꿀렁대던지. 목에 무언가 걸려있는 것인지 힘들게 오르내렸다. 연거푸 술을 마시던 친구는 말 없이 자신의 핸드폰을 내게 보여주었다. 핸드폰 디스플레이에 노란색 바탕이 보이고 가운데 'kakao talk' 이라는 문구가 보였다. 친구가 다니는 회사에서 쓰는 알림방이었는데 '회사의 인원감축에 따른 구조조정이 있을 예정이며 우리 부서에서도 두세명 정도가 전근을 가게 될 것이다.' 라는 내용의 알림이 보였다. 그냥 그렇게 친구의 직장 상사는 추운 어느날 우리에게 알려왔다. 뜨거운 술은 목구멍을 지나 온 몸을 끓게 만들었다. 밖을 나서니 강력한 추위와 몸 내부의 온도차이로 인해 온 살결이 금이가고 부서졌다. 그 가운데서도 몸은 계속 끓었다.
명치 언저리의 답답함은 더욱 심해지고 더욱 건조해졌다. 친구는 담배를 빼어 불어 피우더니 심한 기침과 함께 샛노란 가래는 토해냈다. 친구의 목구멍을 틀어막고있던 퍽퍽함일까. 친구의 가래는 물기가 거의 없었고 흩어지지 않았다. 친구는 그래도 목구멍이 컬컬하다고 했다. 속 깊은곳으로부터 끓어오르는 노오란 가래는 좀처럼 친구의 속에서 쉬이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친구의 가래는 한파에 금성만큼이나 단단해져갔다.
탈해 이사금9년(65년) 봄 3월 밤에 왕이 금성 서쪽의 사림 나무들 사이에서 닭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 날이 밝자 호공을 보내 살펴보니 금색의 작은 궤짝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흰 닭이 그 아래에서 울고 있었다. 호공이 돌아와 고하니, 왕은 사람을 시켜 궤짝을 가져와 열게 했다. 작은 남자아이가 그 안에 있었다. 그 남자아이의 이름은 알지라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