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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해의 취미생활 Nov 27. 2023

펀드매니저가 세계 경제의 흥망성쇠를 말한다

돈을 굴리는 투자자가 바라본 국가경제 - 변화하는 세계질서, 레이 달리오

# 레이 달리오


올해 교보문고에 방문했다면 경영-경제 영역에서 '변화하는 세계질서'라는 아래 책을 많이 봤을 거다. 출판사에서 세일즈를 엄청 하는 것 같다. ‘수학의 정석’처럼 모두가 알지만, 실상 읽은 사람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책이 아닐까 싶었다. 분량이 600 페이지로 꽤 두껍다.



저자는 하버드 대학교 MBA를 졸업하고 20조원의 자금을 굴린 펀드매니저, 레이 달리오다. 펀드 매니저가 세계 질서에 관한 책을 쓴다고? 학자들이 다룰법한 문제가 아닐 싶었다.


그런데 제대로투자 수익을 거두려면 될만한 기업과 국가에 베팅해야 한다. 그렇다면 오히려 학자보다 더 치열하게 '어떤 국가에 투자해야 하는가'를 고민하지 않았을까 싶다. 왜냐고? 수십조원에 달하는 돈이 걸려있으니까.


이 책은 세계 경제 질서의 원칙과 역사를 다룬다. 저자는 세계 경제 패권의 전환을 설명한다. 네델란드, 영국, 미국, 중국으로 패권은 이동해오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 과정에서 어떤 요인국가 경제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한다.


600 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책이기에 다양한 담론이 담겨 있다. 화와 부채의 성격, 국가의 정치적 결정 과정, 과학과 기술의 중요성 등 사회-경제 분야의 여러 요소가 다뤄져 있다. 


다만, 나는 그 중 저자가 하는 국가 흥망성쇠의 단계별 특징을 정리다.


이 책은 단순하고, 직설적이다. 간결하고 유효하다. 그래서 쉽고 재밌다.


# 나라의 흥망성쇠는 어떤 과정을 거치는가? (Feat 어느 나라에 투자해야 하나?)


레이 달리오는 '순환적 시각'으로 세상을 본다. 무한히 성장하는 나라는 없다. 세계를 제패했던 패권 국가인 네델란드, 영국은 쇠락했다.  미국도 무한정 패권자의 위치에 머무르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흥망성쇠란 뭘까? 간단하다.


어떤 개인이나 조직, 국가 또는 제국이든 구매력을 상실하면 멸망하게 되어 있다. 성공하려면 적어도 지출한 만큼 벌어야 한다. 조금 적게 벌더라도 흑자를 내는 사람이, 많이 벌지만 적자를 보는 사람보다 성공하게 되어 있다.


쓰는 것보다 버는게 많은 국가와 기업은 흥한다. 반대의 국가와 기업은 망한다.


우리나라를 보자. 그간 쓰는 것보다 버는게 많았다. 그래서 나라가 부강해졌다. 선배 세대는 돈을 벌면 쓰지 않고 투자했다. 공장을 짓고 사람을 교육했다. 그래서 반도체, 자동차, 철강을 만들었다. 이걸 팔아서 돈을 벌었고, 번 돈으로 공장을 넓히고 사람을 더 교육했다.


나라가 강해졌다.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흥망성쇠의 단계는 어떻게 될까?


국가의 운명은 다음 단계를 거친다.


먼저 1단계다.


국민과 국가 모두 실제로 빈곤하고 스스로도 빈곤하다고 느낀다. 이 단계는 소득이 매우 낮아 간신히 먹고사는 정도다. 이 단계에서 빨리 벗어나는 국가는 전통적으로 근면하며, 필수 생활비 외에는 모두 저축해서 미래의 불안에 대비하는 국가다.


해방 후 우리나라가 이렇지 않았을까. 지금은 국내외에서 대한민국은 선진국으로 인받는다. 그러나 50년 전에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가난 탈출'을 말하는 나라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취임연설문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나의 소원은 이 땅에서 가난을 몰아내는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사회는 ‘소박하고, 근면하고, 정직하고 성실한 서민국가가 바탕이된 자주독립의 민주사회입니다.”


소박, 근면, 정직. 중요한 덕목이다. 하지만 지금 이런 얘기를 하면 꼰대 소리 들을 확률이 높다.


그러나 반 세기 전에는 안 그랬다. 고생, 헌신, 희생이 당연 시대였다. 사람들은 나를 위한 소비 대신 가난 탈출을 위한 생산에 집중했다.


우리는 그걸 잘 했다. 그래서 2단계로 넘어간다.


국민과 국가는 부유한데도 스스로 가난하다고 생각한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서 자라온 세대들은 가난의 무서움을 잘 알기 때문에 여전히 열심히 일하고, 수출로 외화를 벌어들이고, 고정환율제를 채택하며, 저축률이 높고, 부동산이나 금 같은 실물자산에 투자하고, 예금을 하거나 외화 표시 채권을 매입한다.

전보다 탄탄한 자본력을 갖추어 인적 자본 개발, 기반 시설 구축, 연구개발처럼 더 생산적인 분야에 투자한다. 이들 세대는 자식에 대한 교육열이 높아 근면 성실한 태도로 입신양명하도록 가르친다.


1980-90년대가 이쯤이지 않을까 싶다. 아시아의 4마리 용이라고 명명되고 올림픽도 유치했다. 선진국 모임인 OECD도 가입했다. 그럼에도 열심히 일한다. 워라밸? 그런게 어딨나.


나의 아빠도 이 세대다. 평일에는 아빠를 잘 못 봤다. 엄마는 저축을 강조했다. 교육비 말고는 본인이나 아빠를 위해 값비싼 제품과 서비스에 지출한 걸 본 기억이 없다.


성장에 대한 갈망도 다. 고등학생 시절, 아빠한테 아빠처럼 살고 싶다고 했다가 혼났다. 나는 그냥 집 있고 가족끼리 행복하게 사는 걸로 충분했다. 행복했다. 그렇지만 아빠는 내가 더 '꿈'을 가지길 기대하셨다.


그게 그 시절의 시대정신이 아니었을까? 성장을 추구하고 그게 가능하기도 했던 시절. 오늘 행복을 미루면 내일 성취로 되돌아오는 시대.


우리는 이 단계를 거쳤다. 그리고 내가 느끼기에는 3단계로 왔다.


국민과 국가 모두 부유하며 스스로도 부유하다고 생각한다. 삶의 지향점이 열심히 일하고 저축해서 어려운 시기에 대비하는 것에서 멋진 것을 여유 있게 즐기는 것으로 바뀐다. 소비를 늘리는 데 부담이 없어지며 예술과 학문이 꽃을 피운다.

어려운 시기를 겪어보지 못한 세대가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면서 이러한 인생관의 변화가 대세가 된다. 사고방식의 변화에 따라 근로시간이 감소하며, 생필품 구입비용 대비 레저비용 및 사치품 구입이 대폭 증가한다.


현 세대 이야기 같다. 저자는 이 단계가 국가의 정점이라고 말한다. 축적된 부를 바탕으로 삶을 즐긴다. 나를 해치는 근면성실 대신 즐기고 만족하면서 살아가는 방식이 더 '힙'하다고 인정받는다.


하지만 문제는 이부터다. 생산 대신 소비가 늘어난다. 국가와 개인 모두 빚을 진다. 사람들은 소비에 집중하면서 일을 덜 한다. 기업 경쟁력은 저하되고 혁신성 높은 기술 개발도 지체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단 맛을 봤다. 정치인들도 저축 대신 지출을 말한다. 채권 발행 등으로 미래 세대에 책임을 넘기고, 현 세대를 위한 정부 지출을 확대한다.


옛날만큼 생산하지 못한다. 그런데 소비를 더 많이 한다? 그렇다면 대출은 불가피하다. 이건 부메랑으로 날아온다. 지게 된 빚으로 투자를 해서 대박 내면 모른다. 게 아니면 부담이다.


가령 대출 자금으로 포항제철소 건설했다면 괜찮다. 이건 좋은 빚이다. 그런데 대출 자금으로 그냥 당장 소비하라고 뿌리면? 이건 문제다. 후자의 의사결정이 많아지면 국가는 쇠락의 단계로 진입한다.


국민과 국가의 현실은 가난한데 스스로는 여전히 부자라고 생각한다. 이 단계에서는 소득보다 부채가 더 많다.

부채 증가의 원인은 풍요로운 환경 에서 성장해서 가난에 대한 근심을 해본 적이 없는 세대가 사회의 중심으로 떠 오르기 때문이다. 이런 국가의 근로자는 많이 벌어 많이 쓰기 때문에 인건비가 높고 이로인해 실질임금 성장률이 둔화된다.


저자는 덜 일하고 더 쓰는 국가가 망한다고 말한다. 국가도 개인도 빚을 못 갚으면 부도가 한다. 우리나라도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부채 청산 하면서 우량 자산을 다 날렸다.


4단계로 진입 시점을 미루고 3단계를 얼마나 길게 유지하느냐가 강대국으로의 존속 여부를 결정한다.


저자는 미국이 4단계로 진입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2008년 금융위기, 코로나 위기 등의 대응 과정에서 돈을 너무 많이 풀었다. 반대로 중국은 3단계로 진입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따라서 세계 경제의 패권이 중국으로 넘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 우리나라는?


저자가 꼰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 안하고 놀기만 하면 망야.' 듣기 싫다. 하지만 지난 2천년간 인간 사회를 지배해온 원칙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앞으로 어떨까? 저출산-고령화로 노동인구는 줄어든다. 그간 자본 투자도 많이 이루어져서 새롭게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다. '워라밸 선호'로 노동의 양적 투입 확대도 어렵다. 여전히 OECD 국가 중 가장 많이 일하는 나라인데, 더 일하라고?


핵심은 '현명하게 일하는 나라'로 도약하는게 아니까. 소비 축소는 매우 힘들다. 결국 사람 한명 한명 노동생산성이 높아야 한다.


핵심은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국가가 책임지고 '스마트한 사람'을 길러내고, 그들이 가진 역량이 적재적소에 발휘할 수 있도록 '적절한 유인체계'를 만들어줘야 한다.


우리나라 전교 1등은 다른 나라 전교 1등보다 스마트해야 하고, 그들이 가진 역량을 피부과-성형외과 의사를 선택하는데 활용하는 게 아니라 글로벌 벤처기업의 창업가가 되거나 세상에 없는 기술을 만드는 공학인이 되도록 유인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독일은 자동차, 프랑스는 명품, 카타르는 LNG가 국가 브랜드다. 대한민국의 브랜드는 '인재'가 되면 어떨까? 한국 시민은 누구나 일정 수준 이상의 교양과 지식을 갖추고, 원하는 만큼 공부하고 국가가 지원하는 거다.


국공립 영어유치원도 지어주자. 재직자가 대학원 공부를 받고 싶어하면 그것도 지원해주고, 음악-미술-영화 같은 문화체험도 어릴 때부터 일정 수준 이상 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 싱가포르는 전국민에게 '교육쿠폰'을 제공하고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우리나라 예산이 500조다. 교육에 돈을 더 써봐도 좋지 않을까.


이와 함께, 인재와 사회의 유인체계를 일치시켜야 한다. 국가가 의사보다 기업가-공학자가 더 필요하면, 후자의 편익이 의사보다 높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건 정말 어려운 문제다. 어떤 대책이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그간의 논의도 매우 부족하다.


하지만 이걸 잘 못하면, 아무리 훌륭한 인재를 길러도 사회가 필요한 곳에 인재가 안 간다. 더 안 좋게는, 다른 나라로 이민간다. 아무리 과학고를 운영해봤자, 의대를 간다니까?


# 결국 성장?


나는 요즘 더 이렇게 생각한다. 대한민국은 더 부강해져야 한다. 우리 주위에 위험 요인이 너무 많다.


북한은 매일같이 꼴통짓을 한다. 중국도 대만을 저 상태로 내버려두지는 않을 거라는 예측이 많다. 동아시아에서 분쟁이 발생했을 때, 미국이 동맹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결국 우리 스스로의 가치가 높아져야 한다. 뛰어난 인재, 우수한 기업, 독보적인 기술이 풍부해야 한다. 시민들이 살고 싶은 나라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아무도 우리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그러니 더 부강해져야 한다. 우리는 사람의 힘으로 성장했다. 어떻게든 그래야 한다.


얼마 전 아이가 태어났다. 내 아이는 나보다 더 행복하고 풍요롭고 안전한 사회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따라서 부강한 대한민국이 필요하다. 나와 내 가족의 이익을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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