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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해의 취미생활 Oct 22. 2019

4차 산업혁명이 오긴 하는걸까?

과학자의 과학 철학 이야기 : 「미래는 오지 않는다」, 전치형•홍성욱)


이 글은 과학 철학 서적인 「미래는 오지 않는다 - 과학 기술은 어떻게 미래를 독점하는가」(전치형/홍성욱 저)와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저의 생각을 담고 있습니다.

글의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  글의 구성

 <1> 4차 산업혁명이라는 유령
 <2> 과학 기술과 미래
 <3> 4차 산업혁명은 실존할까?
 <4> 4차 산업혁명과 불안이라는 감정
 <5> 총평






1. 4차 산업혁명이라는 유령 : 흐릿하다


남녀노소 불문, 한국 사람이라면 지난 3년동안 99%의 확률로 '4차 산업혁명'을 들어봤을 거. 2017년부터 폭발적으로 확산된 4차 산업혁명 담론. 서점에는 '4차 산업과 일자리'같은 책이 독자들을 가장 먼저 반기고, 뉴스에도 '4차 산업혁명'은 하루 한 꼭지는 나오는 단골 소재다. 듣고 있노라면, 엄청 거대한 변화가 올 것만 같다.


2019년 10월 22일 기준, '4차 산업혁명' 구글 트렌드 검색 결과



사실 뭔가 엄청난 변화가 진작 왔어야 된거 아닐까 싶다. 3년 전'4차 산업혁명' 책들은 5년 이내로 자율차/IoT 등 첨단 기술이 보편화 될 거라고 확언다. 내년이 4년 째다. 그런데 웬걸, 뭐가 크게 바뀐게 있을까?


경제경영 전문지인 The Economist는 10월 12일자 기사에서 Waymo를 비롯한 자율차 기업들이 출시 계획을 연기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기술 개발의 가능성 그간 너무 과대평가 다는 것. 역시 혁명은 쉽지 않다.


한편으로는 궁금하다. 4차 산업혁명뭘까? 미국을 비롯한 영국/프랑스/중국 등 경쟁국이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 쓰지 않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이 용어 쓰이는 양에 비해 정의불명확해 보인다. 배달의 민족? 우버? 카카오 페이? 블록체인?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 이 중 뭐가 4차 산업혁명이고 뭐가 아닐까?


'4차 산업혁명'의 정확한 정의는 찾기 힘들지만, 대체로 뭘 말하고 의미하는지는 알기 쉽다. 스마트 팩토리, 자율주행차, IoT, 블록체인 등등. 이것들은 특정한 ‘과학-기술’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학-기술'이 세상을 바꾸는 세상을 말한다. 로봇이 일하는 시대, 포스트 휴먼의 시대 등등.


즉 '4차 산업혁명'은 특정한 과학-기술 뿐 아니라, 우리가 마주할 '미래 사회의 그림'을 함축한다. 만약 당신이 '4차 산업혁명'을 들을 때마다 불안이나/자기계발의 압박감을 느낀다면, 이 용어가 '인간이 쓸모없어지는 사회'라는 미래 예측을 대체로 함축하기 때문에 그렇다.

4차 산업혁명'과학-기술 측면'에서 바라본 ‘미래에 관한 예측이자 담론’이다.


오늘의 책은 꽤나 흥미롭고 시의적절하다. 이 책은 '과학-기술에 대한 논의''미래 예측'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 설명한다. 또 현재의 '미래 예측'이 과학-기술 중심적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과학-기술 중심적 미래 예측/미래 담론은 무엇지, 우리는 어떻게 이것을 바라봐야 하는지 말한다.


이제 저자들의 말을 들어보자.


「미래는 오지 않는다 - 과학 기술은 어떻게 미래를 독점하는가」(전치형/홍성욱 저)





2. 과학-기술과 미래


# 과학-기술이 주도하는 미래 담론


담론이란 주제에 대한 체계적인 논의를 말한다. 미래 담론은 '미래 사회'에 대한 체계적인 논의라고 정의할 수 있다. 공산주의 사회가 올 거라고 확신한 칼 마르크스부터, 자유민주주의의 항구적인 승리를 확언한 프랜시스 후쿠야마까지. 이들은 '미래 사회'를 말다. 이것이 미래 담론이다.


그런데 이들과 같은 경제학자, 정치학자만 미래 사회를 예측하는 건 아니다. 이 책의 저자는 오히려 '과학-기술 중심적'인 미래 담론이 요즘에는 훨씬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요즘 유행하는 미래 담론을 살펴볼까?


로봇이 인간을 대체한다, 운전자가 필요없다, 포스트 휴먼으로 영생을 누릴 수 있다

이 문장은 모두 미래 사회를 말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 과학-기술이 있다. 이 문장은 과학-기술의 발전이 미래 사회의 작동 방식을 결정하는 걸 내포한다. 또 과학-기술 발전사회 발전으로 자동적으로 연결되는 것처럼 묘사한다.


아이언맨은 과학-기술로 신체의 한계를 뛰어넘은 포스트 휴먼이다.


실증적으로 '수치화'하는 작업이 필요하겠지만,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도 우리 사회는 '4차 산업혁명'같은 '과학-기술' 중심의 미래 담론이 '복지 국가/포용 국가'와 같은 '정치-사회'중심의 미래 담론을 압도하는 것 같다. 사람들의 반응도 그렇고. 저자들이 이를 확증하는 구체적인 통계도 제시해줬다면 좋았겠지만, 통계가 없다고 진실이 아닌 것은 아니다.


근데 과학-기술 중심의 미래 예측/미래 담론이 큰 영향력을 끼친다는 게 뭐 어떻다는 것인가?


# 빛나는 미래는 당연하지 않다


저자들은 작금의 과학-기술 중심의 미래 담론을 우려한다. 이 담론이 너무도 단순하게 과학-기술의 발전 사회 발전/인류 진보를 동의어로 놓는다고 말이다. '4차 산업혁명’ 담론, 일자리 양극화 등 국소적 문제점은 있지만 결국 인류는 미래에 더 많은 여가와 더 오랜 수명(영생까지도)을 누릴거라고 말한다. 기술 발전이 유토피아를 가져오는 거다.


그런데 이런 관점 좀 단순하다. 스마트 팩토리, 자율차, IoT 기술이 발전한다고 사회가 꼭 발전하고 인류는 꼭 행복해질까? 필연적이 않다.


특정 과학-기술을 보유한 소수에게만 엄청난 부가 쏠리고, 그 외 다수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 더 나아가 과학-기술의 진보 개인의 사생활, 인권, 민주주의 훼손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 세계 최고의 얼굴 인식 기술을 보유한 중국. 이 기술을 활용해서 정치적 반대자를 잡아들인다.


저자들은 이처럼 과학-기술의 발전이 꼭 사회 진보/개인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는데, 요즘 과학-기술 중심적인 미래 담론은 이 간과한다고 말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는 과학-기술만 발전한 미래가 아니라, 더 정의롭고 공정한 미래를 원할거다.


그렇지만 미래 예측 분야에서는 과학-기술 중심적인 시각의 영향력이 여전히 크다. 누가 이 논의를 전개해 나가는 걸까?


# 누가 미래를 말하는가?


10년 전 인가? 줄기세포 기술이 개발됐고 세상이 뒤바뀔거라고 온 사회가 들썩였던 적이 있다. 불치병은 씻은 듯이 낫고, 나와 똑같은 누군가가 복제되고.. 소위 ‘황우석 사태’다.


"줄기세포 드림팀 뜬다"(오마이뉴스/'05.5), "시위 중단시킨 '황우석의 힘'"(문화일보/'05.7), "한국의 두 번째 노벨상수상자는 황우석교수"(연합뉴스/'05.9)


당시 신문의 헤드라인이다. 과학-기술이 세상을 바꿀 거라는 담론은 그때도 있었다.


저자들은 이러한 과학-기술 담론의 양상을 분석한다. 과학자-기업-과학 관련 단체(연구소 등)와 언론의 협업. 이 담론은 학술지에 실리는 논문보다는, 언론을 상대로 한 보도자료/인터뷰를 통해 확산된다. 엄밀한 과학적, 학술적 검증보다는 미래를 약속하는 장밋빛 기술을 뽐낸다.  '4차 산업혁명'도 학회지가 아닌 '포럼'에서 '언론'에 발표됐다.


자율차 담론을 보자. 대표적인 혁신 기업가 엘론 머스크는 2020년까지 자율차 개발을 완료하겠다고 말한다.(2달 남았다) KISTEP같은 과학 기관은 기술 개발 가능성과 한국의 부족한 점, 이를 보완할 대응 전략을 담은 보고서를 낸다. 언론은 엘론 머스크의 장밋빛 전망과 KISTEP의 분석을 쓴 후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을 진단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런 담론은 우리가 얼마나 부족한지 친절히 설명하는 동시에, 이 분야에 지원이 얼마나 필요한지 이야기한다. 사회적인 불안감을 생성하고, 그 불안감 해소를 위한 지원 필요성을 설명한다. 규제 완화부터 R&D, M&A 등의 다각 지원


저자는 이 부분을 주목하라고 말한다. 특정한 과학-기술 담론을 적극적으로 유포하는 사람은, 관련 업계나 분야의 종사자다. 이들은 과학-기술 담론을 확산시켜 미래 사회 예측의 우선권을 가진다. 그리고 미래 사회 담론에 대한 통제력 획득한다. 더 나아가 그들이 제시한 미래로 매끄럽게 나아가기 위 지원을 직·간접적으로 요구한다.


사회 자본 확충, 불평등 해소 같은 미래 사회 담론. '뜬구름 잡는 소리'로 들린다. 그에 비해 스마트 팩토리, 자율차는 당장 눈에 보이고/손에 잡힌다. 훨씬 그럴싸 하다. 사람들은 ‘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과학-기술 담론'에 의문을 제기하기 보다는, 변화에 뒤쳐지지 않을까 불안함을 느낀다.



저자들은 이야기한다. '과학-기술 담론'은 미래 사회에 대한 상상을 통제하고, 공적인 지원도 이끌어낸다. 그러니 (1) 도대체 누가, (2) 하필이면 지금 이 시국에, (3) 하필이면 이 분야의 과학-기술을 논의하는지, 그래서 (4) 그들이 요구하고 말하는 것은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이다.


더 나아가 과학-기술 담론에 미래에 대한 상상과 기획을 다 맡겨두지 말고, 각 개인이 진짜로 바라는 사회를 상상하고 공적 차원에 끌어내어 논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공적 차원에서의 미래에 대한 논의를 어떻게 끌어낼지 구체적으로 제시해주지 않아 조금 아쉽지만.






3. 4차 산업혁명은 실존할까?


이 책을 읽고 문득 궁금해졌다. '4차 산업혁명'의 실체는 무엇일까?


'16년 1월 세계경제포럼(WEF)에서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은 ‘4차 산업혁명의 이해’를 의제로 삼았다. '4차 산업혁명'이 꽤나 큰 공적 담론에 등장한 거다. "독일이 기존에 추진해왔던 Industrie 4.0, 그것이 전 산업부문에 적용되어 혁명적인 변화를 초래할 거다" 뭐 이런 주장이다. 우리나라에는 ‘알파고-이세돌’ 대결 이후, ‘4차 산업혁명’ 담론이 몰려왔다.



양상을 살펴보자면, 실체는 좀 불명확하지만 자율차·IoT등 첨단 기술 분야를 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 하에 기술 발전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물론 명확한 정의가 없는 만큼, 갖다 붙이기쉽다. 누군가는 QR코드도 4차 산업혁명이라고 말한다. (QR코드는 20년 전 개발됐고, 10년전부터 상용화됐다) 이 용어가 이렇게 활발한 곳은 우리나라 밖에 없을 거다.


1,2,3차 산업혁명에 '혁명'이란 단어가 붙었던 이유는, 기술이 '전 산업과 사회'에 '생산성 확대'를 선물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기술 개발되었다고 혁명건 아니다. (터치패드는 40년전에 개발됐고, 영상전화 서비스도 50년전에 있었다)


생산성 증가는 경제 성장을 가져온다. '혁명적인 생산성 증가'는 '혁명적인 경제 성장'을 가져온다. 그간의 역사를 보자.


<좌> 1인당 GDP 증가 추세(Maddison Project Database) / <우> 미국 총요소 생산성 연평균 증가율(로버트 고든,2017)


왼쪽 그림의 동그라미 표시 부분이 산업혁명 시기다. 1인당 GDP 증가하는 기울기 확연히 가파르다. 경제가 빠르게 성장했다는 의미다.


오른쪽 그림은 미국의 연평균 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이다. 3차 산업혁명, IT붐 기간과 나머지 기간 사이에 확실한 차이가 있다. 기술 발전이 경제 성장을 이끌었다.


그런데 지난 수년간 세계 경제 성장 획기적 '증가’가 있었? 아닌 것 같다. 히려 성장이 더뎌지는 것 같다. IMF는 올해 미중 무역 전쟁, 브렉시트, 보호무역주의 등 글로벌 불확실성을 이유로 올해 계 경제 성장 속도가 지난 10년 중 가장 낮을 것으로 예측했다. 혁신 산업은 성장하고 있지만, 전 사회/세계걸친 성장 효과를 가져왔다고 평가하기어렵다.


게다가 수요가 부족한 상태에서는 기술 발전으로 생산성이 향상한다고 해도, 경제가 '혁명적'으로 성장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 살 돈도, 의향도 없는데 좋은 기술만 주구장창 나온다고 해서 뭐하겠나. IMF/OECD는 요즘 세계 경제가 부진한 원인으로 '수요 부족'을 꼽는다. 


물론 언젠가는 인간이 화성에 갈 수도 있고, 자동차를 운전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뇌에 담긴 개인 정보를 컴퓨터에 이식해서 영생을 살아갈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게 언제지 확정할 수 있나? 기술 관련 기업, 기관은 확정적으로 말겠지만.(그래야 하겠지만)


언젠가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게 정확히 언제일까? 지금은 아닌 것 같은데.

언제오니 너?






4. 4차 산업혁명과 불안이라는 감정


불안은 ‘사회적 감정’이다. 옆에 있는 사람이 불안하면 나도 그렇다. 불안해서 사교육을 시키고, 불안해서 여가와 삶을 갈아가면서 돈을 모은다. 불안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


불안 대처하는 방법으로 리는 달린다. ‘개인적인' 노력과 성과 해하려는 거다. 누군가는 성공한다. 대기업, 전문직, 재테크 등등.


‘4차 산업혁명’은 우리 불안하게 한다. 큰 변화가 오는데, 태평하게 앉아있을 을건가? 달려야 한다. 코딩을, 프로그래밍을 배워야 한다. 내가 원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생존이 걸린 문제, ‘적성과 취향은 사치다. 달려야 한다.


그런데 스위스, 핀란드 등 몇몇 유럽국가, 사회적 결단으로 불안을 해소하려고 시도한다. '기본 소득' 실험 같은 게 대표적이다. '기술 발전'에만 모든 관심을 쏟고 개인적 차원의 노력에 모든 에너지를 쏟는 건 아니다. '사회 제도'도 관심을 쏟는다.


기본 소득이 답이라고 말하게 아니.

다만 미래 불안을 '사회적 차원의 논의'로 전환내는 시민 사회, 정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기본 소득 비판자는 그곳에도 많다. 그렇지만 어찌됐든 공론장에서  제를 놓고 치고박고 한다. 우리는? 열심히 재테크한다. 런데 인적 노력으로 모든 불안과 위험대비하는건 어렵다. 보통 노력으로 되는게 아니다. 운도 필수다.


'경제부터 살리고 봅시다'라는 프로파간다는 공정성, 정의, 불평등 등 경제만큼 중요한 다른 사회적 가치를 경시하게 한다. 그리고 불안하게 만든다. '4차 산업혁명' 담론 '경제 우선주의'의 세련된 버전일까?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건 참으로 중요하다. 선도국이 되어서 우리 사회가 부강해졌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과학-기술의 발전 뿐 아니라, 불평등·공정성·정의도 께 발전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5. 총평


지금은 '4차 산업혁명'인데, 몇십년 후에 또 무슨 '~혁명'이 나올지 모른다. 어찌됐든 미래를 예측하고 사회에 뭔가를 요구하는 담론은 계속 나올 거다. 특히 과학-기술이 경제,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날이 갈수록 커지면서, 과학-기술 중심적인 미래 담론이 더 많아질걸로 예상된다.


이 책은 과학-기술 중심의 미래 담론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 설명한다. 예시 풍부하고, 어조도 친절하다.('~했습니다체') 글씨도 크고, 분량도 200페이지 정도라, 마음 먹으면 금방 읽는다.


이 글에서는 다루지 못했지만 (1) 첨단 기술이 성공·실패하는 이유, (2) 과거와 현재의 미래 예측 양상 변화 등 과학-기술과 미래의 관계를 흥미로우면서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만오천원 정도로 평생 가져갈만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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