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심해의 취미생활 Nov 05. 2019

도쿄 제국대학을 나온 대한민국 국무총리

인문학자의 조센징 엘리트 분석 -「제국대학의 조센징」, 정종현

이 글은 사회과학 서적인 「제국대학의 조센징」(정종현)을 읽고 나름의 생각을 정리한 글입니다.

■ 글의 구성

<I> 100년 전, 식민지의 엘리트
<II> 「제국대학의 조센징」
<III> 어떤 보상체계인가
<IV> '민족'을 벗어날 수 있는가?
<V> 총평



I. 100년 전, 식민지의 엘리트


100년 전, 식민지 조선을 상상해보자. 흔히 갖는 이미지는 “탄압받는 조선인-탄압하는 일본인/지배받는 조선인-지배하는 일본인”이다. 즉, ‘민족’을 기준으로 지배-억압 관계가 구분된다.


당시 조선인의 78%가 농부였는데, 그 중 70% 소작농 이하 계층이었다. 국가 권력이 시장과 시민 사회를 압도한 식민지 시절. 국가 권력에 진입했던 조선인은 극히 적었다. 조선인 중 2.7%만이 공무원이었다. 그 중 사무관 이상의 고위 공무원을 추려내면, 얼마 안 된다. '조선인'은 가난했고, 권력과는 먼 곳에 있었다. '민족'은 경제/사회/정치 권력의 균열에 가장 큰 요소였다.


그렇지만 사회 일부분을 세밀하게 관찰해보면, “지배받는 조선인-지배하는 조선인, 탄압받는 조선인-탄압하는 조선인”구조도 확인할 수 있다. 식민 지배의 최전선에서 같은 민족을 고문한 일제 순사 ‘노덕술’부터, 지금의 종로 타워가 있는 곳에 ‘화신백화점’을 운영했던 조선 최고 부자 ‘박흥식’까지. 잘 나갔던 조선인도 있었다.


‘교육 잘 받은 엘리트’ 조선인도 있었다. 1944년 기준, 대학 졸업한 조선인은 만 이 안 됐다(7,343명). 전문학교까지 포함시키면 간신히 3만명 정도 된다(29,438명). 당시 조선인이 2,300만명 정도 됐으니까, 대졸자는 상위 0.1%의 엘리트다.(29,438/22,793,766명) 지금 우리나라의 고등교육취학율은 70%다. 당시 대졸자의 위상은 지금과는 현저히 달랐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느 대학 출신'이냐에 따라 ‘대졸자의 위상’도 제각각이었다. 그리고 학력 서열의 정점에 ‘제국대학’이 있었다. 도쿄/교토 제국대학을 위시한 7개의 제국대학.


정종현 교수가 쓴 「제국 대학의 조센징」은 제국대학에서 공부했던 조선인을 다룬다. 그는 직접 일본에 가서 제국대학 졸업생 명부를 뒤진다.


왜 하필 제국대학일까?




II. 「제국 대학의 조센징」


제국대학이 뭐길래?


일본은 후발 근대화 국가다. 그들 근대화된 서양 문명을 최대한 빨리 따라잡아야 했다. 똑똑한 사람이 있어야 근대화가 가능하다. 똑똑한 사람을 키워내기 위해, 그들은 '제국대학'을 설립했다. 일본에서 대학이란 '학문과 연구 장'이 아니라, '제국'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요람이었다.


제국대학 출신은 고등문관시험 사법/행정과를 통과한 후 제국을 통치하는 관료가 되거나, 교육/언론/출판/경제계의 핵심 인사가 됐다. 제국대학 출신은, 그 시대의 엘리트였다.


이 책은 "제국대학"이라는 학력 자본의 함의부터, 제국 대학 유학생들의 사회경제적 배경을 짚는다. 그리고 기업가, 판/검사, 사무관이 되어 제국에 복무한 졸업생과 독립운동가가 되어 제국에 저항한 졸업생 등 다양한 조선인 학생을 보여준다.


저자는 ‘제국대학 졸업생 = 친일파’라는 단순하고 폭력적인 등식을 말하지 않는다. 100년 전 태어나 공부 잘했다는 것만으로 ‘친일파’가 되는 건 너무 가혹하다. 대신, 이 수재들이 어떤 삶을 살아갔는지 사실적으로 서술한다.


엘리트 조센징들


을사오적에 이름을 올린 일본 제국의 귀족 민영휘. 그의 증손자 민덕기는 도쿄제국대학 출신이다. 해방 후 적산을 물려받는다. 이 적산이 바로 지금의 하이트 맥주다. 대한민국 자가가 됐다.


고려대/동아일보 창립자 김성수. 그의 조카 김상협 도쿄제국대학 출신이다. 김상협은 해방 후 고려대학교 총장, 문교부 장관을 거쳐 전두환 군사정권 시 국무총리까지 역임했다. 대한민국의 엘리트 관료가 됐다. 이 글의 제목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내선일체 프로파간다의 전문가 최남선. 그의 아들 최한검은 도쿄제국대학 출신이다. 하라는 공부 안했고, 딴 공부를 열심히 했다. 사회주의 사상에 매료됐고, 김일성 대학의 교수가 된다. 북한의 엘리트 교수가 됐다.


같은 20대 동년배 이들의 행보를 마주하는게 굉장히 흥미로웠다. 조선인 최초의 여성 농학박사 김삼순(이회창의 이모), 윤동주의 친구인 송몽규 등 여러 엘리트의 다양한 삶을 보여준다. 인명사전 정도 될려나? 성공한 창업자의 후일담이나, 대기업/전문직 입사자의 취업 후기를 보는 것마냥 흥미롭다.


그렇지만 단순한 인명사전은 아니다. 당시의 정치·경제·사회에 대한 세밀한 분석도 곁들여진다. 당시 제국대학 수업료/생활비를 계산하여 어떤 계급 출신이 유학을 많이 왔는지 추측도 하고, 남한/북한대학 교수를 분석하여, 제국대학 출신이 학계에서 우월한 지위를 가졌음을 말한다.


말하자면 '제국대학 출신 조센징'의 사례 연구이자 사회학적 분석, 그리고 인생사를 담고있다.




III. 어떤 보상체계인가


친일인명사전에 기재된 한 사람이 있다. 도쿄제국대학 졸업생 '이호'. 그는 일제 시대에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통과한 후 검사에 임용됐다. 해방 후에는 한일회담 대표, 국방부 차관, 법무부 장관, 내무부 장관, 주일대사, 헌법위원회 위원장을 거친 화려한 엘리트다. 직업이 長이다. 참 잘났다.


자식도 잘났다. 자식들은 각각 서울시립대 교수, 서울대 교수, 이대 교수, 대기업 사장, 미국 영사가 됐다. "친일파 자식이니까 욕먹어야 돼!"라고 말하고자 하는 건 결코 아니다. 아무나 교수, 사장 시켜주지 않는다. 그들은 노력 했을 테고, 역량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저 자리에 갔을 테다.

  

그런데 이 사례는 시민들에게 어떻게 다가올까? 역량 있고 똑똑했던 식민지 청년. 그는 총명한 두뇌와 쉼없는 열정을 ‘같은 민족’을 탄압했던 제국을 위해 사용했지만, 해방 후에 그 과오에 대한 유/무형의 처벌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더 잘 나갔다. 그의 자손도 잘 나갔다.


만약 총명하고 열정이 넘치는 나의 자식이나 친구가 '이호'씨와 동일한 환경에 놓였을 때, 나는 어떤 선택을 하라고 말할까. 독립운동 하라고? 아니면 열심히 공부해서 고시 패스 하라고?


나는 스스로 생각하건데 지극히 평범하다고 생각한다. 특정 이념에 목숨을 바치는게 무섭다. 그래도 이념도 없이 이익만 좇는 ‘개자식’이 되기는 싫다. 너무 고생하는것도 싫지만, 마냥 안락함만을 원하는 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이럴거다.


그런 제국에 복무하고 민족을 탄압한 엘리트가, 제국이 사라지고 '그 민족'이 다시 세운 나라에 더 잘 나가고, 후손도 떵떵거리며 누구나 부러워할 만큼 살아간다면, 나는 뭐라고 말을 해줘야 할까? 기껏 도쿄제국대학/교토제국대학 나온 내 자식이나 친한 친구에게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 하라고, 역사가 보상해줄거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당장 부유하고/똑똑하고/여유로워 보이는 이웃이 친일파라면, 당장 궁핍하고/무지하고/허덕여 보이는 이웃이 독립운동가라면, 그리고 이 상황을 수십년 간 보고/듣고 살았다면, '나라'를 다시 빼앗겼을 때 누가 흔쾌히 독립운동을 할까?


만약 국가가 '이기적/합리적’ 개인이 국가의 보존과 영속을 위해 행동하기를 바란다면, 그에 맞는 보상체계를 만들어줘야 한다. 애국자에게 '확실한 보상'을, 반역자에게 '확실한 처벌'을. 우리나라 보상체계 잘 갖춰져 있나? 애국을 유도하고 반역을 억제하는 인센티브가 잘 갖춰져있을까?




IV. ‘민족’을 벗어날 수 있는가?


나는 포스트 모니즘 흡수한 세대다. 칼 마르크스보다는 조반니 아리기와 피에르 부르디외를, 칸트보다는 푸코와 들뢰즈 등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걸 얼마나 잘 이해했느냐는 별개다. 나에게는 '사회의 혁명'보다는 '일상의 개선'이, '연대와 공유'보다는 '개성과 자아'가 더 와닿는다.


‘민족’ 개념은 우리 세대에게 그렇게 큰 ‘이슈’가 아닐거다. ‘국가’ 보다는 ‘개인’이, ‘민족’보다는 ‘개성’이 더 중시되는 요즘이다. 역량과 자본이 있고 의지가 추가되면 누구라도 해외로 이민을 갈 수 있는 요즘, ‘민족’은 구시대적으로 보인다. 지구촌 아닌가.


그렇지만 ‘민족’ 완전히 없어지는건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민족'을 구분하는건, 본질적으로 ‘우리’와 ‘남’을 나누는 배타적인 과정이다. '민족'을 포괄적으로 보는 하버마스의 ‘헌법적 애국주의’에서조차, ‘우리 헌법’에 대한 동의 여부에 따라 ‘우리’와 ‘남’이 갈린다.


그리고 굳이 '우리'를 만들려고 하지 않아도 '남'이 '우리'를 타자화하거나 배척하면, 그 자체만으로 '우리'와 '남'이 갈린다. 내가 '한국인'인걸 새삼 깨달을 때는 ‘일본인’이 식민지 조선에 대해서 말하거나 ‘유럽국가의 국민’이 아시안이라고 무시할 때다.


정체성은 개인이 창조해낼 수도 있지만, 사회의 영향을 무시하기는 쉽지 않다. 마이클 잭슨은 백인이 되기를 일평생 강구했지만, '흑인'이라는 사회의 균열 구조는 그의 노력을 뛰어넘는다. 그는 흑인 가수다.


내가 아무리 코스모폴리탄으로 살려고 해도, 가령 영어에 능숙하고/미국 명문 대학을 졸업하고/국제 기구 등 글로벌 경험이 많아도, 남이 바라보는 나는 한국 국적을 가진 한국 사람일 것이다. 이 상황에서 내가 코스모폴리탄이라고 소리쳐 말해봐야 큰 소용이 있을까? 정체성에서 '나를 호명하는 타자'를 무시하기는 쉽지 않다.



제국에 저항한 조선인은 '조선 민족'이라는 이유로 핍박받는 게 억울하니까, 일본에 대항했을 것이다.


'민족적 정체성'은 '그들'이 '우리'를 부당하게 핍박하고 적대시할 때 더 쉽게 창조되고 소환된다. 그리고 지금, 유럽/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옛날 말줄 알았던 '민족'이 다시 호명되고 있다. "위대한 우리의 민족과 국가를 다시 부흥시켜야 합니다!"


지난 2차례의 세계 대전, 아니 그보다 더 오래된 제국주의 시절부터, 민족은 단순히 '우리 공동체'를 결합시키는데 머무르지 않았다. 민족우리와 남을 명확하게 구분하게 만들고, '남'을 공격하게 하는 인식 토대로 자리잡았다. 우리 독일 민족-너희 유대 민족. 우리 일본인-너희 조선인. 요즘에 다시 호명되는 '민족'은 옛날과 다를까?





IV. 총평


작가는 타국에서 ‘우리나라 엘리트의 기원’ 퍼즐을 한땀한땀 맞춘다. 도쿄/교토 등 주요 제국대학의 조선인 졸업생 명부를 보고, 이들의 경력을 다 찾아냈다. 대단한 작업이다. 내가 학문을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 저작 우리나라 엘리트 연구의 시금석이 될 거라는 건 어렴풋이 알 수 있다.


저작권 문제 때문에, 책의 내용을 더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적지 못해서 아쉽다. 마음 같아서는 복사해서 뿌려버리고 싶다. 재밌는 건 같이 보고 싶은 법이다. 그 정도로 재밌다.


내가 동경제국대학에 진학할 정도로 똑똑했다면, 나는 무엇을 선택했을까?


[참고 문헌]


「1945년 해방과 대한민국의 경제발전」(한국독립운동사 연구 제 43집) - 허수열

「통계로 본 광복 이전」 - 대한민국 통계청

「OECD 교육지표 2019」 - 대한민국 교육부


구독자가 50명 가량 되어 가네요. 저는 대부분 독후감과 서평 사이에 있는 글을 씁니다. 실용적인 자기 계발도 아니고, 공감 받는 직장 생활도 아닙니다. 생활에 필요한 정보 글 더더욱 아닙니다. 읽는 책도 '사회과학'이라, 그렇게 인기있지니다.


그럼에도 재밌게 봐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갑자기’ 고마움을 느낍니다. 심심해서, 재밌어서 꾸역꾸역하는 누군가의 취미 생활을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마 저는 제 평생에 걸쳐서 주기적으로 글을 올릴 것 같으니, 앞으로도 (가끔씩이라도) 재밌게 봐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