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심해의 취미생활 Nov 10. 2019

사회적 성공이 확실한 지적인 낙관주의자?

심리학자의 낙관주의 서술 : 「지적인 낙관주의자」(옌스 바이드너)

이 글은 자기계발서인 「지적인 낙관주의자」 를 읽고 나름의 생각을 정리한 글입니다.

■ 글의 구성

<1> 낚였다, 낙관주의에
<2> 지적인 낙관주의자
<3> 지적인 낙관주의가 최고라고?
<4> 노력하면 낙관주의자가 될 수 있을까?
<5> 나의 낙관주의
<6> 총평


1. 낚였다, 낙관주의에


나는 낙관적인 편이다. 새롭게 뭔가를 시도할 때 불안함도 있지만, 결국엔 잘 될 거라 생각한다. 인생에서 어려움을 만날 때도 있겠지만, 결국엔 잘 될 거라 생각한다.


스스로를 낙관적인 인간으로 생각해서일까? 도서관에서 「지적인 낙관주의자」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머리아픈 사회과학 책만 주구장창 읽었어서, 좀 쉬어가고자 이 책을 빌렸다.


실망스러웠다.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이 중얼거렸던 말은 "이게 도대체 뭔소리냐?"다. 이모티콘으로 표현하면 "?" 정도 될 거다.


원래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의 「쾌도난마 한국경제」에 대한 글을 쓰고 있었다. 근데 꽤나 어려운, 학술-대중서의 경계에 있는 그 책을 정리하고 관련 논문을 찾는 도중 "내가 도대체 왜 이러고 있는가?"하고 현타가 왔다. 글이 잘 써질리가 없다. 게다가 「지적인 낙관주의자」를 읽으며 꽤 많은 생각(불만)이 들었기에, 이 책에 대한 글을 우선 써본다.


「지적인 낙관주의자」는 옌스 바이드너(Jens Weidner)가 썼다. 그는 독일 함부르크 응용과학대학에서 교육학/범죄심리학을 가르치는 교수다. 그에 따르면 낙관주의자는 “마음 편히 살고, 잘 자고, 남들보다 행복하며 심지어 사회적으로 성공할 가능성도 높다." 그러니 우리 낙관주의자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거다. 그래 한번 들어보자.





2. 「지적인 낙관주의자」


낙관의 필요성?



책을 펴면, 가장 먼저 '자기 테스트'를 하게 된다. 수십개의 문항을 통해 독자의 ‘낙관성’을 체크한다. 가령, '나는 습득력이 빠르다'든지, '나는 자신감이 있다'와 같은 문항을 평가하는 것. 나는 아쉽게도 최고점에 약간 못미쳤지만 꽤 낙관적인 편이었다. 그럼에도 이 책은 내가 “더 낙관적이 되어 인생을 더 성공적으로 살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저자가 말하는 낙관이란 무엇일까? 저자는 낙관이란 '후회·좌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확고하게 믿는 태도'라고 정의한다. 다만, 마냥 낙관하면 안되고 '회의적 시각을 포함한 비판적 성찰이 가미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낙관은 왜 중요한가? 저자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실력이 같다면 거의 누구나 낙관주의자를 선호하지 않는가?' 그렇다. 불평과 비판만 한다면 바뀌는건 없고 불만족만 남을 것이다.


변화를 이끌어내는 건,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진 낙관주의자들이다. 도전을 이겨내는건, 긍정적인 힘을 지속할 수 있는 낙관주의자들이다.


게다가 낙관주의자는 자신에 대한 믿음과 긍정적인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기에, 내적으로도 평안하다. 자신이 성공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불면증에 걸릴 확률은 낮다.


저자의 말대로, 낙관주의는 사회적 성공과 더불어 개인적 행복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이렇게 좋은 낙관주의적 태도를 가지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낙관의 5가지 유형?


그런데 낙관주의라고 다 같은 낙관주의가 아니다. 저자는 낙관주의자를 5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목적 낙관주의자/순진한 낙관주의자/숨은 낙관주의자/이타적 낙관주의자/지적인 낙관주의자가 있다. 이 중 가장 우월한 건, '지적인 낙관주의자'다. 우선 각각의 낙관주의를 따져보고, 왜 '지적인 낙관주의자'가 가장 우월한지 따져보자.


목적 낙관주의자는 목표의 성공/실현 가능성을 어떻게든 미화하지만, 현실에 대한 냉철한 판단이 부족하다. 순진한 낙관주의자는 성공/행운이 막연히 찾아올 거라고 생각하며, 장애물/실패 가능성을 무시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둘 사이의 차이를 모르겠다.


숨은 낙관주의자는 기대 수준이 낮고 작은 것에도 쉽게 만족하며, 도전성이 부족하다. '소확행'적 인간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이타적 낙관주의자는 사리사욕이 없고 배려심이 많으며 모두의 안녕과 공동의 행복을 중시한다.


최고의 유형은 바로 '지적인 낙관주의자'다. 지적인 낙관주의자는 출세 지향적이고 폭넓은 위험 감수능력이 있으며 현실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해 계획을 수립한다. 그리고 수립한 계획은 '낙관적 태도'를 바탕으로 끈기있게 밀어붙여서 성공시킨다.


'지적인 낙관주의자'는 판단 능력도 뛰어나고 의지력도 강하기 때문에, 낙관주의자들 사이에서도 가장 많은 사회적 성취를 이룬다. 그들은 가장 많은 사회적 성취를 이루기 때문에, 낙관주의자 중 가장 뛰어나다.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낙관주의자가 되어야 하며, 되도록이면 지적인 낙관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낙관적이 되는 법


그러면 어떻게 낙관주의자가 되는 걸까? 저자는 몇 가지 비법을 설명한다. 그 비법들 사이에는 눈에 띄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건 바로 그것들이 대부분 '개인적 차원'이라는 것이다. 그 중 두 가지 비법을 살펴보자.


첫째, '어려움과 한계를 스포츠라고 인지'하도록 노력해보라. 낙관주의자는 '레몬이 시다고 불평하는 대신 레몬으로 레몬에이드를 만들어버리는 사람'이다. 저자는 비우호적인 상황에 대한 '인지적 전환'을 통해, 새로운 타개책을 만들어 보라고 말한다. '물이 반 밖에 없네' 라는 생각 대신, '물이 반이나 있네'라고 생각해보자. 그리고 이 '게임'에서 승리할 전략을 찾아보자.


둘째, '모호함에 대한 관용'을 노력해보자. 예를 들어 노조와의 협상/인사 결정/예산 배분과 같은 어렵고 복합적인 문제가 한번에 휘몰아친다고 해보자. 이때 100% 해결하지 못하고 70%만 해결했을 때도, 조급해 하지말고 만족하는 법을 배우라는 거다. 30%의 공백과 모호함을 인정하고, 우선 해결해낸 70%의 성취를 보라는 것.


이와 같이 특정 상황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전략, 다른말로 표현하면 '정신승리'외에도, 인지적 편향을 예방하기 위한 방법/올바른 도덕적 태도/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스킬 등 '낙관주의자'가 되기 위한 다양한 '전략'을 말한다. 저자는 충분한 노력이 더해지면 누구나 낙관주의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나는 낙관주의가 행복하고 충만한 인생에 꼭 필요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려움에 처했을 때 불평만 하고 싶지 않다. 행복한 상황에서 비판점만을 찾아내고 싶지 않다. 나도 저자와 마찬가지로 낙관주의의 필요성과 효과를 인정한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책을 읽으며 여러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이 생각했던 2가지를 논해보고자 한다. '낙관주의가 정답이며, 그 중 지적인 낙관주의자가 최고'라는 주장, 그리고 '노력하면 누구나 낙관주의자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을 좀 생각해보려고 한다.




3. 지적인 낙관주의가 최고라고?


앞서 말했듯, 저자는 '지적인 낙관주의자'가 최고라고 말한다. 주된 이유는, 그들이 높은 사회적 성취를 이루기 때문이다. '소확행'을 추구하는 '숨은 낙관주의자'와는 달리 큰 사회적 성취를 이루기 때문에, '지적인 낙관주의자'는 최고의 위치로 자리매김 한다.


이제는 좀 지겨워지기까지한 개념이 있다. 잉글하트(Inglehart)라는 학자가 제시한 '탈물질주의'라는 개념. 탈물질주의란 '경제성장/치안/국방과 같은 삶의 양적인 측면보다 직접 참여/발언권 신장/미적 추구/자아실현 등 삶의 질과 관련된 가치에 우선성을 두는 경향'을 의미한다.


그는 서구의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돈/승진 대신에 삶의 질/자아 같은 비물질적 가치가 중시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워라벨 열풍이랄까? (다만, 이와 같은 경향은 '서구'의 경험이고 동양, 특히 한국을 위시한 동아시아에서는 이 경향이 불분명하다는 연구도 더러 있다)


'탈물질주의적' 시대인 요즘, 연봉/승진 등의 '사회적 성취'가 뛰어나기 때문에 '지적인 낙관주의자'가 최고라는 저자의 주장은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소확행'을 하는 숨은 낙관주의자가 '사회적으로 잘나가는' 지적인 낙관주의자보다 굳이 못 난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이 둘 사이에 굳이 우열을 따져야할 이유는 뭐란 말인가?


돈 잘 벌고 승진 빨리 하고, 출세하는 거, 좋다고 생각한다. 나도 돈 많이 벌어보고 싶고, 승진 빨리 하고 싶고, 출세 해보고 싶다. 나쁠 이유 뭐 있나? 하지만 이런 사회적 성취가, 내가 좇아야할 최상의 삶의 가치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그렇지만 이 책은, 거칠게 일반화하자면 자기계발서라고 불리는 이런 종류의 책은, 사회적 지위의 상승이 삶의 정답이라고 은근히 속삭인다. 그러니 '소확행'보다는 인간 내면의 에너지를 최대한 끌어내고, 부정적 생각은 최소화하며, 끊임없이 도전하는 '지적인 낙관주의자'가 '최고의 낙관주의자'가 되는건 자연스러운 논리적 귀결이다.


하지만 나는, '탈물질적 가치' 대신 '물질적 가치'가 우선시되는 충분한 이유와 근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좋은 게 좋은 거다'라고 하기에는, '소확행' 대신 '사회적 성공'을 좇는 과정에서 희생해야 할 게 꽤 많다. 왜 모든 사람이 성공을 좇아야 하는가? 불분명하다.


한 가지 더. 만약 '지적인 낙관주의자'가 최고로 올바른 가치라면, 아니 적어도 '낙관주의자'가 올바른 가치/정답이라면, 우울/무기력 같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은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된다. 당연하다. 이 감정들은 낙관의 적이다. 저자는 우울/무기력을 적으로 묘사한다.


그런데 이 감정이 과연 무조건적인 부정의 대상일까? 또 '낙관'은 무조건적인 긍정의 대상일까?


먼저 '우울'에 대해 살펴보자. 컬럼비아대학 병원장이자 저명한 생물학자인 리 골드먼(Lee Goldman)은 그의 저서, 「진화의 배신」에서 우울에 대해 말한다. 그에 따르면 우울은 생존에 꼭 필요한 감정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우울한 시기'를 거치며 '상황에서 한 발짝 물러서서 심사숙고해 보고 미래에 성공을 거두기 위한 에너지를 보존할 기회'를 얻는다는 것. 인간은 로봇이 아니다. 목적을 위해 죽어라 달려가면 언젠가는 방전된다.


호모 사피엔스가 진화 과정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이들이 가끔씩 찾아오는 '우울'을 진지하게 맞닥뜨리고, 인생과 미래를 고찰하고,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울/무기력'은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낙관'과 관련된 흥미로운 담론이 있다. 철학자 로 벌렌트의 '잔인한 낙관주의' 이야기다. 그녀는 낙관주의가 잔인해질 수 있다고 한다. 그게 언제냐하면 '실제는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만 더 노력하면 가까워진다는 느낌, 소위 느낌적인 느낌이 우리를 버티게'하는 순간이다.


이 지점은 '좀만 더 하면.. 나는 성공할 수 있..'이라는 상황이 계속되며, 개인 갉아먹는 곳이다. '조금만 더 일을 하면.. 조금만 더 노력하면...' 낙관이라는 감정을 토대로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성취'를 좇아가는 과정에서, 개인은 탈진 상태에 이른다. 그렇다면 낙관은 무조건적인 긍정의 대상일까?


나는 '지적인 낙관주의자'가 왜 최고의 낙관주의자인지 모르겠다. 나아가 왜 '낙관'만을 긍정하며 '우울/무기력' 같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 부정의 대상인지도 잘 모르겠다.




4. 노력하면 낙관주의자가 될 수 있을까?


'낙관'은 개인이 인생을 마주하는 감정/태도의 결합이다. 개인이라는 존재는 외딴 섬에서 혼자 사는게 아니라, 사회에서 타인과 함꼐 살고 있다.  


영국의 사회학자 푸레디(Furedi)는 말한다. 1970~80년대 도입된 '신자유주의'라는 극심한 경쟁 체제가 영국 국민들의 정신 건강을 악화시켰다고 말이다. 그는 지나친 경쟁이 개인들의 불안, 우울증, 소외감, 적대감 등을 자극한다는 걸 증명했다. 사회는 개인의 감정에 영향을 미친다.


한국의 사회학자인 박형신·정수남은 말한다. 개인화의 증대와 연대의 약화가 한국 사회에 불안감과 불신을 형성하고 자극했는데, 특히 비정규직/여성 등 소수집단이 큰 영향을 받았다고 말이다. 사회는 개인의 감정에 영향을 미친다.


여러 전문가들의 연구결과가 말하는 바는 명확하다. 한 개인의 감정은 그가 속한 사회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회사가 희망 퇴직을 종용하는 상황에서, 낙관적이기란 쉽지 않다. 내일 모레 서른이지만 취업이 안되는 상황에서, 낙관적이기란 쉽지 않다. 저자의 말마따나 이 어려운 상황을 '스포츠'라고 인식하려고 노력해도, '정신 승리'에는 한계가 명확하다. 극단적으로 얘기해서,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낙관하기가 쉬울까?


시리아 내전. 내일 포탄이 떨어질 수도 있는데, 미래에 대해 쉽게 낙관할 수 있나?



'행복'이 어느 정도의 물질적/비물질적 조건을 필요로 하듯, '낙관'도 나름의 조건을 필요로 하는게 아닐까? '개인적으로 노력'하면 얼마든지 '낙관주의자'가 될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이 얼마나 유효한지, 나는 잘 모르겠다.




5. 나의 낙관주의


나는 우울하고/슬프고/무기력해도 낙관주의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오히려 우울/슬픔/무기력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자기 자신까지 포용하는 사람이 진정한 낙관주의자라고 생각한다.


이미 말했듯, 우울/슬픔/무기력은 호모 사피엔스의 본성에 탑재된 감정이다. 아무리 떼어내려고 해도, 떼어낼 수 없다. 진정한 낙관주의자는, 호모 사피엔스에 각인된 고유의 특성을 있는 그대로를 긍정해야 하는 거 아닐까?


'우울하면 안돼, 슬퍼하면 안돼,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자. 저런 생각은 멀리하자'라는 태도보다 '우울하고 슬퍼도, 인간이니까 당연하다. 지금도 괜찮다. 궁극적으로 나는 더 괜찮아질 거다'라는 태도가 진정한 낙관주의자의 태도가 아닐까 싶다. 스스로에게 내재된 고유성을 부정하면서 어떻게 낙관주의자가 될 수 있을까?


슬프고 우울해도 억지로 밝으려고 노력하는 건, 조커의 웃음처럼 공허하고 무섭다. 삐에로의 웃음은 작위적이다. 인간의 웃음 같지가 않다.


나는 내 안의 부정성을 발견했을 때, 이것을 무시하고 긍정성만 찾아다니고 싶지는 않다. 당당하게 부정성을 마주하면서, 내 몸에 부정성을 묻히면서, 그리고 부정성과 화해하면서 지내고 싶다. 내 안의 부정성과 잘 지낼 수 있다고 '낙관'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 안의 쓰레기'를 봤을 때 조차도, 그게 '나'임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혼내고, 화해한 후, 재활용이 가능하다고 '낙관'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쨌든 나도 낙관주의자다.




6. 총평


'낙관주의'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책에서 감명을 받기 보다는, 책과 싸우면서 생각을 정립하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내가 '나만의 낙관주의'를 가지고 있어서 싸운다는 느낌을 받은지도 모르겠다.


물론 전문가인 그의 지식과 식견에 나는 상대도 안 된다. 학문으로 밥을 벌어먹고 사는 사람을 나같은 쪼렙이 어떻게 해보겠는가? 전문가를 만나면 우선 닥치고 듣고 배워야 한다는게 내 지론이다.


그렇지만 이 책은 '지식/논리'보다는 '삶의 태도'에 대해 다루는 느낌이었다. '삶의 태도'에 확고한 정답이 있는건 아니다. 게다가 이건 학술서도 아니다. 그래서 '배운다'라는 느낌보다는 '싸운다'라는 느낌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자기계발서에는 여러 부류가 있다. 개인의 인지적 전환을 촉구하는 책이 있는 반면, 특정 기술 향상/커리어 패스 제시를 서술하는 책이 있다(가령 보고서 잘 쓰는 법/성공적인 유학 방법 등). 이 책은 앞의 부류의 책이다. 나와 상극인 책을 만나서 책도 고생, 나도 고생했다.


[참고문헌]


고도 경쟁 사회 노동자의 감정과 행위 양식(한국 사회이론학회) - 박형신·정수남

로렐 벌랜트 : 잔인한 낙관주의와 신자유주의 시대의 감정(여/성이론) - 박미선

한국의 사회경제적 변화와 탈물질주의 : 왜 한국인들은 여전히 물질주의적인가(한국정치학회보) - 양해만·조영호

진화의 배신(부키) - 리 골드먼


매거진의 이전글 도쿄 제국대학을 나온 대한민국 국무총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