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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해의 취미생활 Oct 30. 2019

80년전에 '태어나게 됐던' 식민지 엘리트

영화 - <동주>와 삶의 철학

식민지 엘리트


약 80년 전이다. 집안도 좋고(식민지 출신이지만) 총명했던 김연수라는 청년이 있었다. 고려대 창립자 김성수의 동생. 그는 교토제국대학에 입학했다. 고등학교·대학교 포함, 약 10년간 일본 유학을 했다. 그리고 식민지로 돌아와 경성 방직이라는 큰 기업의 사장이 됐다.


그 청년은 결혼도 했다. 자식 낳았다. 그를 닮아 꽤나 총명하고 영특한 아들이었다. 둘째 아들 김상협. 도쿄제국대학 법학과를 나왔고 고려대학교 총장, 문교부 장관을 거쳐 전두환 군사정권 당시 국무총리까지 역임했다.


식민지 시기 '제국대학' 정도 갔다면 엘리트였다. 일본인도 가기힘든데 식민지 조선인이 갔다면, 그는 분명 엘리트다. 그리고 그들은 행정고시/사법고시 통과해서 '영감님'으로 임명되거나, 기업 사장이 되는 등 식민지의 '엘리트'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식들에게도 어렵지 않게 계급을 물려줄 수 있었다.


비록 식민지 출신이라는 이등시민 딱지가 있었지만, 어쨌든 그 당시에도 '잘 나갔던' 식민지 출신 엘리트 청년들이 있었다.

교토제국대학 전경


또 다른 식민지 엘리트


비슷한 정도로 똑똑했던 2명의 20대 청년이 있다. 한 명은 교토제국대학에, 한 명은 릿쿄대학교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자체가 당시에는 큰 문화 자본이었다. 그것도 '제국'의 대학에서 받은 졸업장. 식민지 조선으로 돌아가면, 잘 배운 엘리트 대접을 받을 수 있다.


그 정도 공부 했으면 '고시 패스'해서 ‘출세’하고 ‘영감님’이 되면 됐다. 그랬으면 본인도 편하고, 자식들도 편할 거다. 그들의 동문 중 그런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안 그랬다. 독립 운동이니 뭐니 하다가 죽었다. 27살에. 나는 27살에 학교를 갓 졸업했을 뿐이다. 인생에 이뤘던게 그것 뿐이었다, 나는.


이 2명의 조선인 엘리트는 윤동주와 송몽규다. 넷플릭스에서 ‘동주’를 보게 됐다. 20대의 식민지 청년들의 삶을 보게 됐다.


그들은 가를 부끄러워하고, 출세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그들의 삶의 철학이 그런가보다.

그런데 도대체 왜?

송몽규<좌> / 윤동주<우>




부끄러울 게 뭐가 있냐


윤동주. 그는 계속 부끄러워한다. 비록 원하던 제국대학은 못 갔지만, 릿쿄대학교에 갈 정도 꽤나 공부를 잘했다. 식민지 조선에서는 주위의 부러움을 받는 엘리트 청년일테다. 그가 부끄러워할 게 뭐가 있을까?


게다가 20대의 나이에 끝내주는 '시'를 쓴다고 문필 인정다. 그런데 이 바보는 계속 부끄러워 한다. 문학 박사들은 '부끄러움'을 그의 시의 특징으로 본다.


<서시> -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댄다.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 죽기 전 그의 꿈인가 보다. 영화 동주의 부끄러움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세상에 태어나서 시를 쓰기를 바라고 시인이 되기를 바랬던 게 너무나도 부끄럽습니다"


이게 말이 되나? 몇백 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인간이 아닌 이상, 한 인간이 20대에 이룰 수 있는 성취에는 최대치가 있다. 윤동주는 그 시대의 평범한 20대가 이뤘던 것 보다 더 큰 성취를 이룬 사람이다. 부끄러움이 아닌 당당함이 가득해야 정상이다.


집안도 괜찮고, 공부도 잘했고, 그렇게나 좋아했던 '시'로 인정 받았다. 조선의 대표적 문학가인 '정지용' 인정 정도니까. 그런데 그는 '시인'이 되려고 했던 자신의 꿈을 부끄러워한다. '시 따위'를 쓰려고 했던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거다.

나라 망했고 민족이 고통받는데, '시 따위'나 쓰고 있다며 자신을 부끄러워 한다.


그게 뭐가 부끄러운가. 본인이 좋아하는 일, 남에게 피해도 안주는 일 하고 싶다는 그 꿈과 열정이. 그는 도대체 그것 때문에 부끄러워해야만 했는가.


부끄러움 많은 식민지 출신 엘리트 청년. '시인'이라는 소박한 꿈을 꾸면서 부끄러워했던 그는, 친구인 송몽규와 독립 운동을 하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히고 감옥에서 죽는다. 27살.




'출세'가 왜 그리도 싫으냐


송몽규. 더 골때린다. 일본 유학 경험도 없이, 교토제국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때도 있는 집 자제들은 도쿄/교토제국대학 등 '제국'대학에 입학려고 어렸을 때부터 일본 유학을 갔다. 그런데 그는 10대 때 독립운동 한다고 감옥도 갔다오고 하다가, 뒤늦게 제국대학 입학을 목표로 공부했다. 그리고 성공했다.


민덕기라는 식민지 엘리트 청년. 그는 내선일체를 부르짖던 식민지 귀족인 민영휘의 증손자다. 똑똑했던 민덕기는 ’도쿄 제국대학‘을 졸업하고, 해방 후 적산을 불하받아 지금의 하이트 맥주 사장이 된다. 휘문고·풍문고가 '민'씨 가문의 재단이다.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장 이태규, 서울대학교 총장 윤일신. 모두 다 쿄토제국대학교 졸업생이다. 송몽규 동문이다.


송몽규가 그 좋은 머리로 공부를 했으면 '교수'를 하든가. 아 아니다, 식민 통치 기간 중 문과 계열의 '조선인 대학 교수'는 없었다. 정 안되면 '고등문관시험'을 봐서 사무관 혹은 판·검사는 됐을 거다. 그런데 그는 '출세'가 안중에도 없나보다. 아니, 출세말고 '제 한몸 건사'하는 것 조차도 크게 신경쓰지 않나보다.


그는 독립을 외치며 몸으로 덤빈다. 내가 열심히 PC방에서 스타크래프트에 매진했던 10대에, 그는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했고 일본 경찰에 체포된다. 고문을 받았다. 감옥 맛도 보고, 고문 맛도 봤다.


‘교토제국대학’에 들어갔으면 '과거의 끔찍한 경험'을 계속 상기하면서 '출세' 아니면 '제 한몸 건사'하기 위해 노력했으면 좋으련만, 그는 겁도 없이 제국의 심장에서 독립운동을 한다. “민족적 무력 봉기를 결행해서 조선의 독립을 가능케 해야한다”라니.


잃을 아주 많았고, 얻을 아주 많이 남아 있는 식민지 엘리트 청년. 그는, 친구인 윤동주와 독립 운동을 하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히고 감옥에서 죽는다. 27살.



나는 뭐하는가


이 영화는 나를 부끄럽게 하고 작아지게 한다. 아프면 아프고/슬프면 슬프고/기쁘면 기쁘고/행복하면 행복한게 인간이다. 인간이라면 아프고/슬픈 피하고, 기쁘고/행복한 원한다. 그들도 그랬을 거다.


그런데 그들은 ‘부끄러움’이라는 감정과 (요즘에는 구시대적이 되어버린) ‘민족’이라는 이념을 무시하지 못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갔던 소수의 사람들은 완전히 떨쳐내어 침을 뱉었고, 다수의 사람들은 묵묵히 누르면서 무시했을 그 감정과 이념. 그것 때문에 앞길 창창한 엘리트 청년은 죽다.


그들은 도대체 왜 남들처럼 살지 않았나. 그들의 동문들 중 당시에도 떵떵거리고, 해방 후에도 떵떵거리고 사는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다. 자손들까지도 떵떵거린다. 그런데 그들은 왜 안그랬을까.


영화는 두 명의 젊은(‘젊은’이라는 단어 하나로 묘사하기에는 셀 수 없이 많은 가능성/미래/물질적 정신적 보상/인정이 가능했던) 독립운동가의 삶의 궤적을 보여준다. '건국훈장', 이 글자가 그들이 미래를 포기하고 피를 흘 결정에 대한 보상의 전다. 그들의 희생은 이것보다 훨씬 커 보인다.


영화의 의미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전달된다. 나에게는 ‘부끄러움’과 ‘안타까움’이 다가왔다.



부끄러움


그렇게 똑똑하고, 명민하고, 집안도 나쁘지 않고, 잘생기기까지 한 빛나는 청춘이 자신의 재능과 꿈을 ‘부끄러워’ 했다는 것이 날 부끄럽게 한다.


언제부턴가 나는, 사실 원래부터 없었다고 보는게 맞다는 생각 들지만, 이타성보다는 이기성을/협력보다는 경쟁을/사회보다는 개인을, 더 생각해오지 않았나 싶다. 특히 일을 시작한 이후로 말이다. '전문성', '일', '역량'이 나의 관심사였다. '나' 넘어서지 못. '타인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 물론 내가 일을 잘했느냐는건 별개의 문제지만.


고시 공부 할 때만 해도, 매주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했다. 요즘? 아예 나몰라라 한다. 나는 지독히도 '나'밖에 모른다. 반성한다... 반성한다? 진심으로? 사실 잘 모르겠다. 내가 윤동주처럼 고매한 인격과 순수한 이념의 사람인가? 그 정도 인간이  된다. 그래도 부끄러움이 뭔지, 그 그림자는 알겠다. 80년 전에 태어난 동년배의 삶과 내 삶을 비교하니, 부끄럽다.


누군가에게 “지독한 개새끼”로 기억되지 않는 것. 최소의 목표 설정하겠다. 만약 내가 좀 더 성숙해질 수 있다면, ‘부끄러움’을 좀 더 느껴보겠다. '지독한 개새끼 - 개새끼 - 괜찮은 사람 - 훌륭한 사람'이 있다면, 그래, 적어도 괜찮은 사람까지는 되어봐야겠다.

 

내가 만약 '개짓거리'를 하면, '나는 개짓거리 하는 개자식이구나'라고 인정할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겠다.


안타까움


그렇게 똑똑하고 명민하고, 집안도 나쁘지 않은, 잘생기기까지 한 빛나는 청춘의 재능과 꿈이 사라져버렸다는 것이 날 안타깝게 한다.


‘제국의 논리’에 잘 협조했다면, 출세는 보장 됐을 거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같은 민족을 엄청나게 고문하거나/같은 민족을 죽기전까지 핍박하는 등 ‘민족 반역’ 정도의 행위를 하지 않는 한, 반민특위 같은 곳에 잡혀가지 않았을 거다. 아니? 잡혀갔어도 좀만 버텼으면 풀려났을 거다. 사무관, 판검사 정도하면서 적당히 누리고 살았으면, 해방 후에 더 잘나갔을 거다.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독립을 위해 죽었다. 독립 운동을 한 선조가 있었기에, 내 이름은 세 글자고, 나는 한글로 글을 쓰고, 이등 시민이 아닐 수 있었다. 누군가가 독립운동을 했다는 건 마음 깊이 감사한 일이다.


그럼에도, 나와 비슷한 연령대의, 성공이 보장된 두 명의 청년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걸 보는게 너무 안타까웠다. 정말 힘들고/외롭고/아프고/분하고/억울하고/무서웠을 텐데. 얼마나 무서웠을까. 누가 내 머리에다 총을 겨눠들고 고문을 한다면, 난 엉엉 울 것만 같다.


억만분의 일의 확률로, 그들이 80년 후에 태어나, 나와 같은 학교에 다녔거나/같은 직장에 다녔다면, 우리는 친구였을 수 있다. 그런데 80년 전, 이 땅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그렇게 됐다. 안타까웠다.





80년 전과 지금


이 영화는 흔한 '국뽕' 영화가 아니다. 보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에게는 80년 전에 태어난, 나와 동년배인 청년들의 슬픈 삶을 보여주는 영화였다.


남보다 더 순수하고 더 똑똑한데, 시대를 잘못 태어나 재능을 펼치지 못하고 죽었던 청년의 이야기랄까? 내가 그때 태어났다면, 나는 뭐였을까? '요시찰 인물'로 취급되던 그들과 친구가 될 '용기'라도 있었을까?


우리 사회는 이들의 용기와 죽음을 어떻게 보상해주고 있을까.

“독립운동가 약 15만 명 중 국가의 인정을 받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독립운동가는 10%에 불과합니다. 또한 독립운동가 후손 전체의 75%가 월 개인소득 200만 원 미만이며, 개인 재산 또한 국민 평균을 한참 밑도는 수치입니다. 특히, 후손의 70%가 고등학교 이상의 교육을 받지 못하였습니다.”(다음 카카오, ’19년)


게을러서 통계의 원 출처를 찾아내지 못했지만, “독립 운동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 하면 3대가 흥한다”는 말은 옛날부터 꽤 널리 퍼진 말이다.


나라 위해 목숨을 바쳤는데 ‘대가’만 있고, 나라 팔아 이익을 얻었는데 ‘보상’만 있다? 이러면 안 될 것 같다. 이건 아닌 것 같다.


죄를 벌해야 하는 건, 죄를 지은 사람의 행위를 처벌하는 동시에,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는 '사회적인 신호'를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악행’을 하고 ‘떵떵거리’ 산다면, ‘선행’을 하고 ‘미저러블하게’ 산다면, 어떻게 감히 사회가 ‘선행’을 이야기 수 있을까?


시간이 아깝지 않은 영화다. 게다가 넷플릭스에서는 공짜로 볼 수 있다. 너무 똑똑해서 스스로를 부끄러워하고, 너무 용감해서 기꺼이 죽음을 마주했던, 식민지 출신 엘리트 청년들의 이야기다.


[참고문헌]


<제국 대학의 조센징> - 정종현(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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