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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해의 취미생활 Nov 19. 2019

90년대생이 왔다고? 그래서 뭐?

사회학자의 386세대 분석 : 「불평등의 세대」, 이철승


사회과학 서적인 「불평등의 세대」를 읽고 나름의 생각을 정리한 글입니다.

이 책은 '386세대'에 관한 책으로, 발간 즉시 큰 화제를 불러모았습니다.

■ 글의 구성

<1> 90년대생, 어쩌라고?
<2> 「불평등의 세대」
<3> 사람 수 자체가 많은걸
<4> '패거리' 형성조차 못한 20대
<5> 그럼에도 역사를 바꾸는건
<6> 결론


1. 90년대생, 어쩌라고?


「90년대생이 온다」라는 책이 화두였다. 사회에 새로 진입한, '요즘 것'에 관한 얘기다. 이 책은 기성 세대의 관심을 끌었다. 야근을 불사하고, 승진을 최우선으로 하며, 까라면 깠던 그들과 너무나도 다른 '요즘 것'이 꽤나 궁금했나보다.


'90년생 유입으로 조직 문화가 변화한다'라는 담론이 넘쳐난다. 하지만 현실의 90년생은 조직에서 꽤나 많은 불만과 좌절을 느낀다. 인스타그램에는 '#야근, #무의미하다'가 넘쳐난다. 브런치에도 '야근이 필요한가요' 같은 글이 넘쳐난다.


새롭게 입장한 선수가 아무리 남달라도, 그는 운동장의 규칙을 따를 수 밖에 없다. 규칙이 마음에 안든다면? 떠나거나, 규칙을 바꾸거나. 둘 다 쉽지 않다. 규칙은 '윗사람'이 만든다. 새로운 선수의 입장은 잘 반영되지 않는다. 부장님들의 생각이 더 많이 반영돼 있다. 부장님들은 '386'세대다.


90년생을 아는 거? 물론 중요하다. 미래에는 그들이 운동장의 주요 선수가 될 거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들의 부장님 세대, 즉 386세대가 힘도 훨씬 쎄고 영향력도 더 크다. 그들을 잘 아는게 더 중요하다.


서강대학교 사회학과 이철승 교수의 「불평등의 세대」. 이 책은 '386세대'를 분석한다. 「90년대생이 온다」는 90년생의 특징을 잘 짚어냈지만, 뭔가 피상적이었다. 계량적 데이터의 부족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아니다. 풍부한 계량적 데이터와 납득가능한 이론으로 사회를 분석한, 충실한 글이다. 그의 주장 중 일부를 훔쳐보자.







2. 「불평등의 세대」


386세대란?


386세대는 1990년대에 30대였던, '80년대 학번, 60년대생'을 의미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386 앞의 3은 큰 의미를 가지지는 않게 됐다. 80년대에 대학교를 다닌 60년대생. 이들이 386세대다.


이들은 얼마나 강한가 : 정치분야


저자는 말한다. 386세대가 우리 사회 권력 구조의 정점에 올라 있다고 말이다. 증거는?


정치분야다. 연령별 국회의원 당선자 수를 살펴보자.


약 20년전인 1996년 선거. 50대 이상의 비율은 73%였지만 2016년 실시된 선거에서 83%로 늘었다. 10%p가 증가했다. 386세대는, 20년 전 50대였던 산업화 세대보다 386세대는 국회의원을 더 많이 자치하고 있다.


반면 30, 40대의 영향력은 약해졌다. 30대 당선자? 2명에 불과하다. 40대 당선자도 17%에 불과하다. 30, 40대 당선자는 18%도 안 된다. 1996년에는 확연히 달랐다. 그때 30, 40대 당선자는 24%는 됐다. 지금보다 훨씬 높았다.


저자는 말한다. 정치권에서 386세대는 그 어느 세대보다 더 힘이 쎄고, 30, 40대는 약하다고. 


이들은 얼마나 강한가 : 경제분야


대기업 임원 자리도 많이 차지하고 있다.


저자는 국내 100대 기업 임원 총 9만 3,000여명을 분석했다. 90년대 후반, 전체 임원 중 당시 50대인 1945~55년 세대의 비율은 62%였다. 2017년, 386세대의 임원 비율은 70%를 넘는다. (약 72%)


386세대는 20년 전 50대였던 산업화 세대보다 상층부를 더욱 강고하게 점유한다. 저자에 따르면 386세대의 과도한 점유로 인해 그 후배 세대인 70-74년이 희생됐다고 한다. 46살의 그들. 임원 중 70-74년생 비율은 10%에도 못 미친다.(9.4%)


경제 성장의 혜택을 톡톡히 봤다.


평균 가구 소득을 보자. 44살인 철수. 그가 63년생이라면, 15년 전에 비해 가구 소득은 71.7% 증가했다.(145→249) 72년생이라면? 15년 전보다 21.3%만 증가했다.(202→245) 63년생은 72년생 보다 같은 기간 동안 세 배가 넘는 가구 소득 성장률을 경험했다.


안정적인 자리도 많이 차지하고 있다.


노조가 있는 직장에서 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람의 비율이 높다. 2004년 당시 50대의 유노조-정규직 비율은 10.7%였다. 2015년 50대의 그것은 19.3%다.


저자가 말하는 바는 명확하다. 386세대는 정치, 경제 분야에서 힘이 쎄다고. 책에는 더욱 많은 근거가 있다. (세대별 평균 근속연수, 소득의 세대별 상대평균치, 자식-부모 세대간 평균 소득 비율 등등)


그런데 누군가는 '베이비 붐' 세대라고도 불리는 이 세대의 숫자 자체가 많은거 아니냐는 반론을 제기할 수 있어 보인다. 이 부분은 곧 확인해보려고 한다.


시장(기업) 구조를 만들어낸 386


386세대는 지금의 노동 문제를 만들어냈다.

   

386세대는 87년 체제를 쟁취했다. 그들은 '쿠데타와 유신'으로 대표되는 군부독재를 끝냈고, 대통령을 직접 뽑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완성했다. 정치에서 소임을 다한 후, 그들은 시장으로, 즉 기업으로 진입한다.


당시 기업에 입사한 386세대는 20-30대 신입사원이었다. 그러나 97년의 금융위기는 조직 생활의 변곡점이 됐다. 97년 금융위기는 '산업화 세대의 머리위에서 폭발'했다. 기업들은 금융위기를 '적체된' 산업화 세대를 구조조정하는 기회로 삼았다. 386세대의 부장, 팀장들의 모가지는 날아갔다.


반면 30대로 기업 조직의 밑바닥부터 중간 허리를 구성하고 있던 386세대는 대부분 생존했다. 게다가 금융 위기 후 짧게는 3~4년, 길게는 10년 가까이 기업들은 정규직 사원을 과거처럼 많이 채용하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386세대는 졸지에 아래위가 모두 잘려나가서 기업 조직에 사실상 홀로 남겨진 거대한 세대의 네트워크 블록이 되어버린 것'이다.


여기서부터 지금의 노동 문제가 잉태된다. 금융 위기 직후, 정리해고에서 살아남은 386세대(대기업 및 공기업) 노조의 리더들은 90년대의 사회연대 및 사회 개혁 투쟁과 절연하는 대신, 세계화와 함께 승승장구하기 시작한 대기업들로부터 자신들의 몫을 챙기기위해 '전투적 경제주의'에 입각한 '기업 단위 교섭'에 더욱 몰입했다.


대기업은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1) 생산 시설의 해외 이전, (2) 사내 하청/파견/비정규직 확대를 추진하는 한편, 노조와의 협상 과정에서 (3) 글로벌 기준보다 높은 임금상승률을 보전해줬다.


노동 시장에 내부자로 진입해 있고, 노조로부터 보호를 받으며, 높은 임금상승률을 약속받고, 연공제와 정년 제도 덕택에 안정적인 미래를 예측할 수 있었던 386세대는 큰 혜택을 봤다.


그렇지만 다음 세대는 손해를 본다. 386세대의 다음 세대들은, 사내 하청/파견/비정규직이 일상화된 불안정한 노동시장에 진입해야 했다. 연공제도 '성과주의'로 대체됐다. 평생직장의 꿀은 옛 세대들이 다 봤다. 지금은 공무원도(5급 사무관 이상) 성과연봉제 적용 대상이다.


저자는 말한다. 정치적 민주화 쟁취 이후 386세대는 기업에 들어가 투쟁을 했다. 보호막을 잘 만들었다. 그 결과 386세대는 혜택을 입었지만, 노동시장에 뒤늦게 참여해야 했던 후발 세대는 보호막을 통과하는데 너무나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불평등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수직적 위계구조의 중추, 386


386세대는 수직적 위계구조의 중추 역할을 맡는다. 수직적 위계구조의 특징은 세 가지다.


첫째, 나이와 연공에 따른 권력 사다리의 공유 및 경쟁이다. 사장-전무-상무-부장-팀원으로 이어지는 서열 구조는 강고하다. 그리고 서열 사다리 아래에 위치한 개인은 위선의 지시에 순응만을 강요받는다. 동아시아 특유의 '윗사람에 대한 존중'은 개인성을 잠식한다.


둘째, 노동 유연화 기제에 따른 엄격한 신분제적 지배 체제의 확립이다. 조직 내에서 정규직/공채 출신과 비정규직/특채로 출신은 경쟁할 수 없다. 전자는 미래의 리더로 인정되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다. 고용 형태/입직 경로에 따라 진골, 성골, 6두품이 나뉜다. 신분 구조가 있다. 미생의 장그래는, 끝내 정규직이 되지 못했다.



셋째, 탑-다운 방식의 낙수 효과를 통한 과실의 불평등한 분배이다. 사다리 끝에 올라간 사람은 물질적/비물질적 보상을 다양하게 향유한다. 높은 임금 뿐 아니라, 맘 내킬 때 회식한다든가, 아랫사람을 화풀이 대상으로 삼는 등 여러 '짓'을 할 수 있다. 상-하 격차가 눈에 뚜렷하, 조직 내 위치에 따라 권한과 보상은 불평등하게 배분된다.


이 위계질서의 상층에는 386세대가 있다. '개인주의'와 '워라벨'을 추구하는 이 시대의 청년/여성에게는 이 위계구조가 녹록치 않다.


이외에도


여기에 담지 못했지만 이 책은, (1) 산업화 세대의 형성 과정, (2) 세대간 자산 이전과 불평등 확대 양상, (3) 한국형 위계구조의 희생자들, (4) 세대간 불평등 해소 방안 등을 구체적이고 진지하게 다룬다. 재밌는 연구결과도 있다. 40대 임원 비율이 높은 회사가 386세대 임원 비율이 높은 회사보다 더 높은 성과를 나타낸다.


특히 저자의 노동시장의 위계구조 분석 - 정규직/노조를 기준으로 구분-과 동양과 서양에서의 '앎'의 기능적 차이는 매우 흥미롭다. 세상을 바라보는 안경을 새로이 얻었다.


여러 많은 주장 중 '노동'을 다룬 이유는, '일자리'가 보통 사람들의 일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또한 청년 실업이 가장 큰 화두이기 때문이기도 하다.(언제는 아닌 적 있었냐만)


내 능력으로는, 이 글에 책의 내용을 모두 담아낼 수 없다. 지금의 불평등한 사회 구조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흥미진진하게 설명되어 있다. 꼭 읽어보시길..





3. 사람 수 자체가 많은걸


저자의 말대로, 386세대는 정치, 경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그런데 나는 궁금해졌다.


머릿 수가 많으니, 영향력도 큰 거 아니야?


그래서 찾아봤다.


통계청 인구 총조사 / 그래프는 재구성


1995년 당시, 386세대는 25-34살 정도였다. 이들은 전체 인구의 19%를 차지했다. 당시 50대였던 산업화 세대는 9%를 차지했다. (총 인구 4,330.9만명/산업화 395.7만명/386세대 822.6만명)


2018년 386세대는 50대다. 이들은 전체 인구의 17%를 차지하고 있다. 1995년의 50대보다, 오늘날의 50대가 숫자도 많고,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높다. 그러니 옛날의 50대보다 영향력도 더 쎈 거 아닐까? (총 인구 4866.4만명/386세대 824.1만명/요즘 것들 628.1만명)


흥미로운 건 2018년의 25-34살, 즉 '요즘 것'의 인구 비중은 13%라는 거다. 386세대가 청년일 당시, 그들의 인구 비중보다 요즘 것의 인구 비중이 꽤나 낮다. 상대적인 비중 뿐만 아니라, 절대적인 숫자도 적다. 어르신이 청년보다 많다.


누군가는 저자의 주장인 '386세대의 과대 대표'에 대해 '숫자가 많아서 그런거 아니야?'라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어 보인다. 나도 그런 생각이 든다. 책에서는 이 부분에 대한 변론이 조금 미흡하다.


그럼에도 기성 세대가 만들어낸 권력과 위계질서의 성격이라든지, 세대 간 불평등의 흐름에 관한 저자의 분석은 여전히 유효하다. 책의 논조는 '386세대는 과대 대표 되었다' 뿐 아니라, '386세대는 지금의 불평등/착취적 구조를 만들었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386세대가 힘이 쎄다는 현실 분석까지도.

 



4. ‘패거리’ 형성조차 못한 20대


우리 세대를 형용하는 대표적인 단어는 바로 '개인주의'다. 어르신들 눈에는 우리가 남과 부대끼는 걸 선호하지 않고, 조직보다는 개인을 우선하는 게 신기(또는 불편)한가 보다.


그런데 우리는 '조직'보다 '개인'을 '우선시해야하는' 환경에서 자랐다. 지금의 홍콩처럼, 부모 세대는 '눈에 보이는 자명한 불의'가 공기처럼 퍼져있던 사회에서 살았다. 역사는 그것을 독재 체제라고 부른다. 이 '불의' 앞에서 개인은 약했다. 그들은 합쳐야 했다. 남과 협력해야만, 그들의 목적인 독재 타도가 가능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자명한 불의를 못 느꼈다. 누군가는 경제적 불평등이 증가하고, 민주주의가 과거로 회귀한다며 걱정했지만, 지금 당장 내 친구 혹은 친구의 친구가 고문 당하거나, 쿠데타로 집권한 대통령이 통금시간을 정한다거나 하는 얼토당토 않은 일은 안 겪었다.


그 대신 우리는 사회적 게임에 참여해야 했다. 명문대학교 졸업, 대기업/전문직 확보가 주어진 게임의 목표였다. 그리고 이 게임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동년배들과의 제로섬 경쟁이었다. 협력? 무슨 소리냐 그게.


협력은 필요없었다. 제끼는 게 중요했다. 이 게임의 규칙은 꽤 잔혹하다. 일년에 한 번 있는 수능을 조지거나/노동 시장에 초기 진입을 성공적으로 하지 못하는 등 '삐끗'하면 회복이 쉽지 않다. 죽어라 달릴 수 밖에.


'학종'은 패자부활전을 허용치 않는다. 대기업/로스쿨/공기업도 패자부활전을 허용치 않는다. 특정 시점의 실력이 아닌, 한 개인이 살아온 경로를 두루 평가하는 이 시스템에서 개인은 딴길로 새기가 쉽지 않다. 계속 경쟁 해야한다. 굳이 무슨 대의를 위한 조직을 만들고 협업하고.. '스펙'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닌데..


가끔 어르신이 우리를 '지극히 개인적이고 이기적'이라고 비판할 때면, 한 개인의 행동양식은 사회적 조건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모두가 힘을 합쳐 거대한 거인과 싸웠던(적어도 그렇게 안하는게 뭔가 부끄러웠던 것으로 취급받았던) 어르신과 달리, 우리는 목표를 향해 각자의 라인에서 죽어라 달리는게 사회적 조건이었다.





5. 그럼에도 역사를 바꾸는건


그럼에도 역사를 바꾸는건 결국 사람이다. 조금 냉정하긴 한데, 프랑스의 철학자 에티엔 발리바르가 한 말이 있다. "피압제자들의 해방은 그들 스스로 쟁취할 수 있을 뿐"이라는 그의 말. 가만히 있어봤자 아무것도 안된다는 거다. 우리 세대도 경쟁만이 아니라 '함께 뭔가'를 해내야 한다. 맘에 안드는게 좀 있지 않나.


할아버지 세대는 산업화에 기여했다. 부모 세대는 정치적 민주주의를 쟁취했다. 역사의 사명이라는게 있다면, 이제 일상의 민주화가 그것이 아닐까. 거창해 보이기는 한데...


워라벨 쟁취, 직장 내·외 갑질 최소화, 남녀간 차별 해소, 성적 다양성 인정, 교육의 평등·공정 등등.. 요즘 것들이 원하는 거 대부분이 '일상의 민주화'와 관련되어 있다.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는 당연한 주장.


공산주의, 사회주의 그런건 진짜 옛날 사람들이 하는 얘기고. 그런 얘기 들으면 진짜로 하품만 나오고 인스타그램이나 보고싶다.


일 시키는 거 좋다. 그런데 무릎 꿇리고 욕하지는 말자는 거다. 동성애 싫어할 수 있다. 그런데 싫다는 이유로 길가다가 침을 뱉지는 말자는 거다.


서양에서는 지금의 50대가 50년 전에 한번 크게 뒤집었다. '68혁명'이다. 그때 대학교가 엘리트만을 위해 있는거냐며 돌던지고 해서 지금의 프랑스 교육 체계가 생겼다. 장애인, 난민, 여성, 동성애자 등 소수자 권리 신장 얘기도 본격적으로 이때 제기됐다.


<금지하는 것을 금지하라>/ 68혁명, 파리


만약 역사에 사명이라는게 있다면, 우리 세대의 사명은 이런거 아닐까 싶다. '저녁 있는 삶' 쟁취, '소수자'에 대한 인정과 배려. 크게 어려울까 싶은게, 우리 세대가 과장/팀장급 정도 되서 후배들 인격적으로 대하고, 좀 덜 권위적으로 행동하고. 동기들 보면 대부분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물론 위에서 쪼으면 나도 같이 쪼이지 않을 자신은 없지만, 마음만이라도 우선.


'혁명'하자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 나부터 덜 권위적이고 차별적이고 더 인간적이고 하는 그런거. 지금 우리 세대 대부분은 그 정도 문제의식이나 의식수준이 되는 것 같다.




6. 결론


자본-노동은 사회의 핵심 균열 요소다. 현대자동차 부회장 정의선은 40대다. 그는 386세대인 '부장들'의 임명권을 가지고 있다. 그래, 자본은 쎄다.


그렇지만 세대라는 안경을 쓰고 보면, 386세대라는 '세대'의 힘도 뚜렷하다. 40대 대기업 총수는 손에 꼽지만, 게다가 만날 일도 없지만, 386세대 부장은 손에 꼽지 못할만큼 많고, 오늘도 내일도 만난다. 애인보다 많이 본다.


세대 또한 자본-노동만큼 중요한 균열 구조다. 이미 언급했지만 이 책은, (1) 386세대의 부모 세대인 산업화 세대의 형성 과정, (2) 세대간 자산 이전과 불평등 확대 양상, (3) 현재 위계구조의 희생자들, (4) 세대간 불평등 해소 방안 등을 구체적이고 정치하게 다룬다. 정교하고 명쾌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여러 학자들의 견해를 두루 살핀다.


오랜만에 세대론을 다룬 흥미진진한 담론을 봤다. '90년대생~' 시리즈는 지겹다. 내가 90년대생인데, 내 얘기보다 남 얘기가 더 재밌다.


저자도 언급했듯, 386세대는 그들만의 시대를 살아왔다. 사회 복지가 부족했던 한국 사회. 개인들의 입장에서는 현직에 있을 때 '최대한 뽑아먹는 것'이 중요하다. 미래를 누가 책임져준다고? 자기들 일 가르쳐주던 윗 세대 모가지가 줄줄이 잘리는걸 는데, '전투적 노조'를 안하기도 힘들다. 그들은 열심히, 치열하게 살았다. 그래서 뭔가 어려워졌다. 경제학에서는 이걸 '구성의 오류'라고 한다. 모두가 열심히 했는데 결과가 뭔가 이상한..


90년생을 아는거, 물론 중요하다. 근데 그들이 뛰는 운동장을 건축한 386세대를 아는것도 중요하다. 이런 책을 읽으면 사회학자가 되어보고 싶다. 사회에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게 참 멋있다. 물론 내가 이 정도 능력이 되느냐는건 또 별개다. 재밌게 잘 봤다.


[참고문헌]


「랑시에르와 발리바르 : 어떤 민주주의?」 - 진태원(「실천문학」)

「한국 예외주의 : 왜 한국에는 68혁명이 없었는가?」 - 김누리(통일인문학)

「촛불혁명과 2017년 체제」 - 손호철(서강학술총서)

인구 총조사 - 대한민국 통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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