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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해의 취미생활 Nov 25. 2019

제조업? 공장? 그런 거 다 중국에 맡기면 되잖아

경영학자의 미국 제조업 분석:「제조업 르네상스」, 개리 피사노/윌리  시

경제경영 서적인 「제조업 르네상스」를 읽고 나름의 생각을 정리한 글입니다

이 책은 오바마 행정부의 제조업 부흥 정책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고 평가받습니다.

■ 글의 구성

<1> 트럼프를 만들어낸 러스트 벨트
<2> 「제조업 르네상스」
<3> 1 제조업 = 1 지역?
<4> 우리나라 제조업은?
<5> 결론


1. 트럼프를 만들어낸 러스트 벨트


21세기 현재. 제국의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트워터를 통해 사람을 자르고, 군대를 되물린다. 미국의 전통 엘리트들은 그를 되게 못마땅하게 보는 듯 하다. The Economist가 이를 잘 보여준다.


The Economist의 10월 19일자 기사다. 시리아의 미군 철수를 트위터로 발표한 그의 외교 정책을 이렇게 묘사한다. "천박하고(혹은 깊이 없고) 충동적"이라고.

(shallowness and impulsiveness have become the hallmarks of Mr Trump's foreign policy)


이 괴짜 대통령의 당선에 있어 러스트 벨트(Rust Belt)의 백인 저소득층이 큰 공헌을 했다는게 중론이다. 중서부의 미시간, 위스콘신, 펜실베니아 주. 이곳은 전후 미국 경제, 정확히 말하면 제조업이 잘 나갈 때 흥했던 공장 지역이다. 그런데 '아웃소싱'이 제조업의 대세 전략으로 자리잡으면서 쇠퇴했다. 공장은 국외로 이전했다. 공장에 의존했던 지역경제는 녹슬어 버렸다.


이곳에 살던 노동자들은 실업자가 됐다. 고등 교육을 받지 못한 그들. 다른 일자리를 찾기도 어려웠다. 경제학이 말했던 '요소 시장의 자유로운 이동'은 쉽게 나타나지는 않았다. 경제학은 이곳의 노동자가 새로운 산업/기업에 큰 어려움 없이 재취업할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고통/불만이 넘쳐났을 뿐이다.


그들은 전통적인 미국 엘리트를 대표하는 힐러리를 외면했다. 자유무역과 아웃소싱을 말했던 미국 엘리트의 표상. 그 대신 '워싱턴의 저 같잖은 엘리트들과 다르다'고 말하는 '부동산 부자' 트럼프를 찍었다. 내 뇌피셜은 아니고, 여러 정치/경제학자들의 분석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미국은 한때 제조업 강국이었다.


그렇지만 비교우위에 근거한 특화 전략을 택하면서, 제조 강국 미국의 이미지는 옅어졌다. 비교 우위에 근거한 특화 전략이란, R&D/디자인/엔지니어링 같은 '머리 쓰는 고부가가치' 영역은 미국이, 제조/공정 등 '몸 쓰는 저부가가치' 영역은 중국, 베트남이 담당하도록 하는 거다.


애플 본사는 미국에 있다. R&D/디자인/SW개발은 이곳에서 한다. 그렇지만 아이폰을 만드는 폭스콘 공장은 중국에 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두 교수, 개리 피사노와 윌리 시는 이 상황에 우려를 표한다. 「제조업 르네상스」라는 저서에서, 그들은 미국 제조업의 부흥을 이야기한다.


솔직히 한국인인 내 입장에서는, 이런 거 좀 안썼으면 좋겠다. 하던대로 계속, 시장도 좀 열어주고, '제국의 아량'을 내보이면 좋겠는데. 계속 그래왔던대로, IB/컨설팅 이런데나 집중하면 안되나?



이 책은 오바마 행정부 제조업 부흥 정책의 토대가 됐다고 평가받는다. 저자들은 미 행정부의 산업정책 관련 위원회에서 활동했다고 알려져있다. 트럼프는 오바마 때보다 더 쎄게 제조업 육성/보호 정책을 펼친다. 이 책은 미국의 정책 기조랄까, 정책 철학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2. 「제조업 르네상스」


그간의 미국 정책


앞서 말했듯, 그간 미국은 '비교 우위'에 기초한 산업·무역 정책을 펼쳐왔다. '비교 우위'는 경제학적 개념이다. 각 국가별로 강점이 있는 분야에 집중(특화)하고, 이를 토대로 서로 교환(무역)하면, 경제적으로 WIn-WIn이라는 것.


예를 들어보자. 미국은 노동 비용이 중국보다 높다. 노동자에게 월급을 더 많이 줘야 된다. 대신 중국보다 똑똑한 사람이 많다. 중국은 똑똑한 사람은 적지만, 월급은 미국보다 낮다.


이때 텔레비전을 만든다고 치자. R&D,디자인,엔지니어링 등 머리쓰는 일은 미국이 잘한다. 제조/공정 등 몸쓰는 일은 중국이 잘한다. 그러니 미국은 전자를, 중국은 후자에 집중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게 '비교우위' 개념이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미국 아웃소싱을 확대해왔다. 아이폰은 중국의 폭스콘에서 생산된다. 애플 본사는 기술개발, 디자인, 마케팅, SW개발 등 '엣지있는' 것에 집중한다.


그 결과는 어떨까? 저자는 말한다. 미국 제조업이 쪼그라 들었다고. 아래 그래프를 보자. 미국 제조업은 1950년대에 GDP의 27%, 노동 인구의 31%를 담당했다. 하지만 2010년, GDP의 12%, 노동 인구의 9%를 담당하게 되어 그 영향력이 축소됐다.



이 부분에서 저자들은 우려를 표한다. 다양한 산업에서 "성장과 혁신의 토대를 제공하는 기업과 대학, 그리고 기타 조직들에 내재된 연구개발, 재료 인프라, 노하우, 공정 개발 기술, 그리고 엔지니어링 역량들이 점차 약화"되고 있으며, 이는 "제조업이 쇠퇴해도 서비스와 다른 지식 기반 부문들의 격차로 인해 선진국 경제가 계속 번영하고 성장할 수 있다는 가설을 바탕으로 한 거대한 경제 실험의 결과"라고 말이다.


특히 "산업 공유지가 황폐화됨에 따라, 단/장기적으로 경제의 혁신 역량이 훼손"되고 있다고 첨언한다.


산업 공유지의 쇠퇴


산업 공유지란 “기술 노하우, 경영 능력, 전문적인 기술을 갖춘 노동력, 경쟁사, 공급사, 고객사, 협력 연구개발 벤처, 대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종종 여러 산업 분야를 지원”하는 지리적 공간이다.


그들은 반도체 공유지를 예로 든다. 공유지 구성원에는 "칩 제조 인력과 기업들 외에도 장비 제조사, 순수 실리콘 웨이퍼, 화학 약품, 산업 가스 같은 재료 공급사들, 칩 설계, 생산 일정 계획, 제조 후 칩 시험과 같은 다양한 활동을 위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인력과 기업들, 주로 대학교와 첨단 칩 회사에서 기초 연구개발을 하는 재료 과학과 장치 물리학 연구자"들이 포함된다.


그런데 그간 "미국 연방 정부와 주 정부는 다른 국가의 낮은 세금과 후한 보조금 때문에 미국 기업들이 새로운 수십억 달러짜리 제조 공장을 국내에 짓는 것을 언짢게 받아들이는 사실을 태평하게 무시"하고, "칩 설계만 하고 제조는 외주를 주는 미국의 팹리스 기업들은 미국에서 위탁 생산 부문의 건전성 유지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지 못하고 기꺼이 재료 부문을 아시아로 이전"했다고 말한다.


그 결과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의 정밀 가공 수요가 대폭 줄어들어 이러한 작업을 수행하는 업체 수가 감소"하는 한편, 이러한 쇠퇴가 "이들 공급사들에 의존하는 다른 산업들 - 항공 우주/정밀 기계-에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쉽게 말해보자. 미국에 공장이 있어야 그 공장을 중심으로 협력 기업-공공·민간 연구소-대학이 재화와 용역을 구매·공급하면서 '경제 생태계'를 이루면서 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 공장을 외국으로 이전해 버리니까 이 연결고리가 끊겼다는 것이다. 산업 공유지가 훼손되는 순간이다.


비슷한 사례를 찾아보자. 현대자동차가 공장을 중국으로 이전하면 중소 부품사들도 한국에 굳이 남을 이유가 없다. 중국으로 같이 간다. 거제도에 현대중공업과 같은 대형 조선소가 없다면, 협력사가 그곳에 있어야할 이유는 무엇인가? 공장이 이전하면, 그 지역에서 형성되어왔던 '산업 공유지'는 무너진다.


저자들은 말한다. 아웃소싱 확대 전략에 따라서 공장이 해외로 이전되면서, 미국의 '산업 공유지'가 훼손됐다고 말이다. 그 결과 미국 경제, 특히 제조업의 생산성 역량은 감소했다.


어떤 제조업을 어떻게?


저자들은 모든 공장을 미국에 지어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대신 몇개의 산업을 전략적으로 집중 육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미숙기 또는 새로이 등장하는 공정 기술과 관련된 제조 역량과 제품 연구개발과 매우 상호의존적인 관계에 있는 제조 공정 혁신과 관련된 제조 역량"으로 "노동 집약적이거나 상대적으로 저숙력 노동자가 필요한 제조업"이 아닌 "과학 기술 노하우와 전문 인적 자본"이 필요한 첨단 산업이 바로 그것이다.


즉, 미래가 유망한 수소·전기차/AI 반도체/유전공학 기술 같은 돈 되는 혁신·첨단 산업의 공장까지도 계속 미국에 위치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이를 위해 정부가 역할을 주문한다. 정부는 응용 연구 지원을 더욱 확대하, 자국민에 대한 STEM 교육을 강화하고, 똑똑한 외국 인재를 유치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조세 등 제도적 지원도 병행하라고 말이다.


부가가치를 많이 창출하는 '혁신산업', 즉 돈 되는 산업의 '모든 공정'을 미국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 전에는 미국에서 디자인하고 생산은 중국에 맡겼다면, 이제는 다 해먹겠다는 거다. 우리 입장에서는 경쟁자가 생기는 셈이다.


타당한 지점도 있는게, R&D/디자인/엔지니어링과 제조/생산은 결코 독립적이지 않다. 삼성 전자 직원은 베트남으로 출장을 자주간다. 머리로 설계 해놓은 거랑, 실제 공장의 생산 과정이랑 계속 맞춰봐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이 원활해야 '최적화'가 이뤄진다.


이외에도


이 글에서 자세히 서술하지는 않았지만, 저자들은 육성해야할 산업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산업의 모듈화 정도와 공정 성숙도를 꼽는다. 모듈화 정도가 낮은 복잡한 산업을 유치해야 한다는 것. 바이오 같은 '혁신 산업'이 대부분이다. 돈 되는 산업을 땡겨오라는 의미다.


이를 위해 기업과 정부가 해야 전략도 말한다. 이와 더불어 미국 제조업의 현황, 산업공유지의 역할과 흥망성쇠 다룬다.


찾아보니 이 책은 「Restoring American Competitive」라는 제목으로 2009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게재된 논문을 보완하고 대중적으로 해설학 책이다. 어쩐지, 뭔가 좀 저자들이 읽기 쉽도록 배려한 책 같긴 했다.


토마 피케티의 <20세기 자본>이나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불평등의 대가>와 같이 정밀하고 구체적인 통계/사례/이론은 잘 안 보인다. 전문적인 경제 이론을 기대하고 읽으면 실망할 수도 있다.


다만 지금 미국의 행동을 조금 엿볼 수 있다. 우리 상황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


특히 저자들은 정부 투자가 필요한 이유로 '공공재 이론'과 연관이 큰 '산업 공유지'라는 아이디어를 들고 있다. 꽤나 설득력 있어서, 나중에 좀 써먹어야 겠다. 흥미롭게 잘 봤다. 경제경영 서적은 언제나 재밌다.







3. 1 제조업 = 1 지역


한국 노동자의 수를 보면, 서비스업 노동자가 제조업 노동자보다 많다. 그래서 제조업은 '남 얘기'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얘기가 전혀 아니다. 제조업은 '땅'을 기반으로 하고, 그 '땅'에 있는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서비스업 노동자는 '땅'에 산다.


조선업과 거제도


거제도는 흥미로운 케이스다. 거제도는 제조업의 흥망 성쇠지역의 흥망성쇠와의 상관관계를 잘 보여준다.


거제도울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조선 산업의 중심지로 불리는 곳이다. 현대, 삼성 등 쟁쟁한 기업의 조선소와 이들 협력사가 '조선 벨트'를 형성하고 있다.


한국은 일본의 조선 산업을 추격하고 따라잡으면서 도약했다. 조선 강국이었던 영국을 추격하고 따라잡았던 일본. 그들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조선 산업에 과거만큼 투자를 하지 않았다.


그 틈을 노려 저-중임금과 꽤나 괜찮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도약했다. 여기에 글로벌 경기가 확장함에 따라 수요가 증가하면서 한국 조선 산업은 승승장구했다.


지역의 거점 산업이 잘 나가니, 지역 경제도 잘 나갔다. 아래의 그래프들을 보자.


먼저 조선업 건조량과 거제시의 GRDP 추세이다.


조선 산업 건조량-거제 GRDP 관계


조선업 건조량과 거제 GRDP와의 동조화 추세가 뚜렷하다. 2000년대 부터 시작된 조선 산업의 성장과 거제시 GRDP는 유사한 흐름을 띈다.


건조량이 증가 추세였던 2010년까지 GRDP도 상승추세였다. 이후 산업 침체로 인해 건조량이 감소하는데 GRDP도 침체기로 전환한다. 2010년 이후, 거제시는 과거와 같은 급속 성장을 경험하지는 못하고 있다.


다음은 건조량 + 수주량 + 수주잔량(이하 '건수량')과 거제 GRDP와의 관계이다.




'건수량'GRDP의 선행지표라고 볼 수 있다.


2006~07년 사이, 글로벌 경제 활황으로 건수량이 급증했다. 1~2년 정도 시차를 두고, 2008~09년 사이 거제 GRDP는 급증했다.


그런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건수량은 급감했다. 2010년부터 GRDP가 하락한 것을 볼 수 있다.


건조량-GRDP만큼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보이지는 않늠다. 하지만 건수량은 조선 산업의 미래를 보여주는 지표다. 따라서 건수량은 지역 경제의 장기적 추세를 보여주는 지표의 역할을 한다. 건수량이 하락하는 추세라면, 지역 경제도 장기적으로 그럴 것이다. 거제가 그렇다.


흥미로운 점은 제조업의 흥망성쇠가 서비스업의 그것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이다. 아래 그래프를 보면, 알 수 있다.



노란색 표시 부문을 보자. 제조업 산출량 감소에 따라 서비스업 산출량도 감소한다. 제조업만큼 '변동성'이 크지는 않지만, '증감의 흐름'은 확실하다.


UC 버클리 경제학 교수인 엔리코 모레티. 그는 '획기적인 생산성 향상'은 많은 경우 제조업에서 일어난다고 말한다. 서비스업의 생산성 향상에는 제약이 있다. 미용사가 아무리 경험이 많아도 한 시간에 담당할 수 있는 손님의 수에는 한계가 있다. 제조업은? 자동화 등 기술 발전으로 인해 획기적인 생산성 향상이 가능한 업종이다.


장기간의 안정적인 임금 증가 추세를 유지하려면 생산성 향상이 필수적이다. 즉, 제조업 기반이 튼튼해야 한다는 말이다.


각 지역이 유치하고 있는 산업, 특히 제조업의 흥망이 지역의 명운을 가를 것이다.


호남의 인구 이동


호남의 인구 변화와 제조업간의 관계도 흥미롭다.


호남은 꾸준한 인구 유출을 경험하고 있다. 아래의 그래프는 호남 지역의 인구 이동 현황이다.


전입-전출자의 수를 순이동이라고 한다. 그래프에서 알 수 있듯, 호남은 들어오는 숫자보다 더 많은 인구를 잃는다. 보라색 점선을 넘긴 적이 별로 없다.


왜일까? 이러한 변화 양상을 일정 부분 설명할 수 있는 재밌는 연구결과가 있다. 한국 지역개발학회의 연구결과다. 아래 그림을 보자.



자동차/조선/기계/철강/석유화학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주력산업으로 꼽힌다. 이 그림은 이 5개의 주력산업과 관련된 대기업 계열사의 고용분포를 보여준다. 보다시피, 호남/강원 지역에는 색칠된 곳이 별로 없다. 찐하게 색칠된 곳은 더 없다.


수도권/영남/충청은 색칠된 곳도 많고, 찐하게 색칠된 곳도 많다. 양질의 제조업 일자리가 호남/강원보다 많다는 얘기고, 지역 고유의 먹거리가 있다는 이야기다. 고유의 먹거리가 없는 지역에서, 사람들은 오랜 기간 정착하기 쉽지 않다.


일자리라는 단일 변수만으로 인구 이동을 설명할 수는 없다. 교육, 교통, 의료, 치안 등 다양한 요소가 영향을 미친다. 그렇지만 이 그림이 호남 지역의 인구 유출을 일부분 설명해주긴 할 것 같다.


※ 인구 이동은 수십년간의 자료이고 고용 현황은 특정년도의 자료다. 특정년도의 자료로 지난 수십년간의 변화를 설명하려는 건 날로먹는 걸로 보일 수 있다. 맞다. 그렇지만 '공장 지대'라는 게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되된 역사적 결과물이다. 시대별 공장 지대의 다이내믹스를 알아보는 것도 재밌어보이지만,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아서 우선..


옛날부터 생각한건데, 이 그림은 부모가 호남/영남 출신이고 수도권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 아이의 시대관이나 역사관에도 꽤 영향을 끼칠 것 같다.


명절에 호남 지역으로 내려가는 수도권에서 살고 있는 아이는, 공업지대 보다는 5.18 국립 묘지를 볼 확률이 높다. 독재-권위주의 정부의 잔혹함을 더 많이 들을 거다. 반대로, 명절에 영남 지역으로 내려가는 수도권에 살고 있는 아이는, 광활한 공지대를 볼 확률이 높다. 산업화를 달성한 리더십 있는 정부를 더 많이 들을 거다.


직접 본인의 눈으로 보고, 부모님의 설명을 듣는다. 교과서에서 보는 그 어떤 것보다 훨씬 더 와닿는다. 그게 자국민에 대한 총질이든, 유구한 산업화의 역사든.


그래서?


서비스업 종사자라도, 본인이 살고 있는 지역이 어떤 산업/기업을 기반으로 하는지 알아야 한다. 특히 수도권이 아니라면 더더욱 그렇다. 잘 나가는 산업/기업이 있다면, 지역 경제는 흥할 확률이 높다. 부동산 가격도 오를 거다. 그렇지 않다면? 흠..


제조업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4. 우리나라 제조업은?


대한민국은 발전국가의 교과서이다. 정부가 산업화의 비전을 제시하고, 전략적이고 집중적인 자원 배분을 통해 목표를 달성했다. 포항 제철 같이 정부가 공장 건설에 직접 관여하기도 하고, 자동차 산업의 수입 쿼터제와 같이 시장을 관리하는 등 적극적인 산업 정책을 실시했다. 그리고 성공시켰다.


2016년 기준, 미국 경쟁력 위원회가 측정한 한 국가의 제조업 경쟁력을 보여주는 지표인 '제조업지수'에서 우리나라는 중국-미국-독일-일본에 이어 5위를 차지했다.



제조업이 잘나가는만큼, 많이 의존하고 있다. '17년 기준, GDP의 29.6%, 수출의 90%, 설비투자의 56%가 제조업에서 창출된다. 미국은 GDP의 10%대 초반이다.


그러나 한국 제조업은 현재 큰 도전을 맞고 있다. 지식경제부 차관(現산업통상자원부)을 지낸 산업 정책 전문가 안현호. 그는 「한·중·일 경제삼국지」라는 저서에서 한국 제조업이 처한 상황을 분석한다.


한국은 일본의 첨단 과학·기술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따라서 High-end 분야에서 확고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했다. 중국, 베트남 등 신흥국의 부상으로 노동집약적인 Low-end 분야에서 경쟁력을 상실했다. 즉, 우리나라는 일본-중국에 사이에 어정쩡하게 껴버렸다.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산업의 高부가가치화를 통한 High-End 분야의 경쟁력을 확보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저자가 말하는 바는 명확하다. 너무 많이 들어서 지겨울 수도 있다. 반도체, IT, 바이오/헬스, 자율차와 같은 혁신 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


옛날처럼 '낮은 임금으로 사람을 쥐어짜서 승부'보거나(노동집약), '문어발식으로 사업 확장'(자본집약)을 해서는 답이 없다. '스마트함'에 기반해서 남들이 따라하기 어려운 혁신 분야를 선점해야 한다. 경제학적으로 말하면 총요소생산성을 확대하는데 중점을 둬야 한다.


(1) 스마트한 사람을 얼마나 잘 길러내고, (2) 이들이 사회에서 마음껏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빌 게이츠가 아프리카에 태어났다면, Microsoft는 없었을 거다. 실리콘 밸리가 아무리 혁신의 요람이라고 할지라도, 빌 게이츠가 없었다면, Microsoft는 없었을 거다.


사실 이공계 분야의 박사급 인력 현황과, 이들의 진로 현황을 찾아봤었다. 근데 생각보다 주제도, 내용도 너무 광범위해서 좀 미뤄뒀다. 나중에 심심하면 더 데이터 찾아보고 해봐야겠지만, 얼핏 본건 '박사급 인력 수는 꽤나 많은데, 이들이 제대로 역량을 펼칠 환경이 마련되지 못했다'는 게 연구결과의 중론인 것 같다.


중국의 고급인력 정책이 눈길을 끌었다. '천인계획'이 그것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천인계획'이라는 정책을 통해 해외의 고급인력을 중국으로 유입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총 1,143명이 선발됐는데, 그 중 연구인력이 880명(77%), 창업 고급인력이 263명(23%)이다. 지금까지 추진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스이궁 칭화대학 생명과학원 부원장(좁스홉킨스 박사/프린스턴 교수), 라이오 베이징 생명과학대학원 원장(UCSF박사/노스웨스턴대학 신경과학연구소 부소장) 등 쟁쟁한 고급인력들을 고국에 귀환시켰다. 화끈한 지원을 통해서다.


중국 정부는 이들에게 1인당 100만 위안의 정착금을 제공한다. 또 주택/의료/교육 등 실생에 밀접한 분야에서 12가지 혜택을 내걸고, 연구 자금도 넉넉하게 지원한다고 한다. 중국 정부는 '질적 성장'에 있어 '스마트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 것 같다.




5. 결론


미국이 왜 저렇게 제조업을 다시 부흥시키려고 하는지, 그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여러 주장을, 한 문장으로 압축해본다면 이걸 거다.


'정부와 기업이 돈 되는 첨단 산업을 합심해서 미국 내에 유치하자. 그리고 이곳에서 일할 똑똑한 인재-그것이 최대한 미국인인게 좋다-를 적극 길러내야 한다.'


미국 우선주의의 세련된 버전으로 느껴졌다. 트럼프는 직접적으로 아메리카 퍼스트를 이야기하고, 이 학자들은 세련되게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큰 흐름에서, 미국은 이 책의 내용대로 행동하고 있는 것 같다. 자국 내 산업 유치/외국 유학생 인재 입국 최소화 및 유츌 최소화/자국 인재 적극 양성.


피케티의 책처럼 풍부한 통계 자료도, 하이에크의 책처럼 압도적인 이론도 드러나지 않는다. 엄청나게 전문적인 경제학 서적도 아니다. 대신 쉽고 간단하다. 그리고 '미국 우선주의'를 '미묘하게' 보여준다.


[참고문헌]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에 따른 대응 방향 - 김동성, 최용환, 김정훈, 서정건, 차두현, 정성희(경기연구원, 2017)

제조업 르네상스 비전 및 전략 - 대한민국 산업통상자원부(2019)

한·중·일 조선산업 경쟁력 비교 - 석종훈, 김대진, 박유상(산은조사월보, 2018)

고부가가치화를 통한 제조업 경쟁력 강화 - 이민식, 최현희(주간KDB리포트, 2018)

한·중·일 경제삼국지 - 안현호(나남, 2013)

대규모 기업집단이 주력산업의 고용에 미치는 효과 분석 - 김희재, 김근영(한국지역개발학회, 2019)

직업의 지리학 - 엔리코 모레티(김영사, 2014)

과학기술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 및 R&D 정책 연계방안 - 홍성민, 조가원, 김소영, 김미, 손경현(STEP, 2015)

중국의 해외  고급인력 유치 전략 및 - 김병철(한국노동연구원,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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