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심해의 취미생활 Nov 29. 2019

인턴 한번 꽂아주는게 뭐, 어때서

경제학자의 불평등 분석 : 「20 vs 80의 사회」, 리처드 리브스


사회과학 서적인 「20 vs 80의 사회」를 읽고 나름의 생각을 정리한 글입니다

상위 1 vs 하위 99를 말했던 그간의 불평등 담론과 달리, 이 책은 상위 20 vs 하위 80간 격차를 다룹니다.

■ 글의 구성

<1> 인턴 한번 꽂아주는게 왜
<2> 「20 vs 80의 사회」
<3> 한국 대학과 소득 분위
<4> A와 A'는 노력을 안했을까
<5> 결론


1. 인턴 한번 꽂아주는 게 왜


나는 알아주는 대학을 나왔다. 언론에 많이 언급된 것처럼, 소위 '좋은 대학'으로 갈수록 '있는 집 자제'들이 많다. 내가 그다는건 아니. 그래서 나랑 같은 학교 다니는 '있는 집 자제' 이야기를 귀동냥으로나마 꽤 들었다.


신입생 시절이었다. A라는 지인이 세계적인 투자은행에서 인턴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세상에. 그곳의 인턴 자리는, 인턴 경력이 있는 사람도 다시 인턴으로 지원하거나 수년간 금융 관련 학회 경력, 자격증 등 각고의 노력이 있어야 얻을 수 있는 그런 자리였다. A는 대학교 새내기였다. 그런 거 없었다.


집안의 도움이 컸다. 부모님의 네트워크를 통해 얻었다. 재벌집 자제까지는 아니었고, 대기업 임원을 부모로 둔 중상류층이었다. 물론 본인도 똑똑했다. 대입시절 전교 순위권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대학교 학점관리도 열심이었다. 뭐 항상 열심히 했다. 이후 커리어를 잘 쌓았고, 졸업 후 남들이 부러워하는 바로 직장에 취업했다.


중상류층 집안 출신인 그. 좋은 교육을 받고 좋은 학벌을 얻었다. 좋은 인턴 기회를 얻어서 좋은 직장에 들어갔다. 그의 '좋음'에는 부모님빨이 꽤나 작용했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는 꽤 많은 A'가 있을 거다.


지금은 공정성에 대한 인식도가 올라서 좀 다를 수 있겠지만, 그때만 해도 친구들은 '불공정'보다는 '부러움'을 말했다. 그런 준수한 인턴 경력이 있다니 부럽다라는 반응. 낙하산 입사도 아니고, 인턴 정도야 꽂아줄 수 있지라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자녀 과잉 관리'는 한국 사회의 병적 특징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한국만의 특징은 아닌 것 같다.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하고 워릭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경제학자 리처드 리브스.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는 그는 그의 저서 「20 vs 80의 사회」에서 상위 20% 가정의 지위 대물림 과정을 분석한다.




느낌이 오겠지만 이 책은 '불평등'을 말한다. 책의 부제도 '상위 20%는 어떻게 불평등을 유지하는가'이다. 안 보려고 했다. 지겹다. 불평등 너무 많이 들었다. 문제가 있다는거 아는데, 재밌는거 읽고 싶었다.


근데 이 책의 한 문장이 나를 홀렸다. '슈퍼 리치나 빈곤층에 대한 책이 아니라 나에 대한 책이고 아마 당신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라는 문장이다. 나에 대한 책이라고? 뭔 소리냐.. 나도 쉽지 않은 인생이구만..


토마 피케티, 조지프 스티글리츠 등 쟁쟁한 경제학자들은 1 vs 99로 불평등을 바라봤다. 이 책은 아니다. 상위 20%를 말한다. 능력주의와 학벌이 불평등의 주요 요소라고 말한다. '음, 난 아마 상위 20~30% 정도 되는 집안에서 자란 것 같고 괜찮은 학벌을 얻은 것 같은데, 나랑 관련 있나?' 이런 생각으로 잡아들었다.


이 책을 읽으며 수많은 A와 A'가 생각났다. 미국도 비슷하구나. 아니 미국이 더 심각할 수도 있다. 책의 주장을 대강 살펴보자.






2. 「20 vs 80의 사회」


# 문제는 상위 20퍼센트다


그간의 불평등 담론은 상위 1%와 나머지 99%간의 격차를 주로 말했다. 그렇지만 저자는 다르다. 균열점은 연간 가구 소득 기준, 상위 20%(11.2만$=1.3억원)와 나머지다. 불평등의 구체적인 양상을 살펴보자.


전체 가구소득 총합이다. 지난 30여년간('79→'13), 상위 20%의 가구소득은 4조$ 증가한 반면, 하위 80%는 3조$ 증가했다. 상위 1%를 제외한 상위 19%는 2.7조$ 증가했다. 성장의 혜택이 상위 20%에 집중됐다.


부의 쏠림현상도 크다. 2013년도 기준, 상위 1%를 제외한 상위 19%가 미국 부의 절반 이상을 가지고 있다. 저자는 최상류층인 '상위 1%의 대다수는 생애 대부분의 기간을 상위 20% 속에서 살아간다고 언급'하며 '상위 1%는 그들이 아니라 우리들 중 잘나가는 시기에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간 많이 비판받던 상위 1%는 갈라파고스 섬에서 유유자적 불로소득을 올리는 사람이 아니라, 상위 20% 중 잘나가는 시기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상위 20%는 계층 구조에서 수혜자의 위치에 있다.


그는 미국의 상위 20%를 '중상류층'으로 지칭한다. 이들은 많은 경우 전문직, 언론인, 교수, 글로벌 기업 등에 종사하고 있다. 소위 '머리쓰는' 직업들이다. 이 직업들을 가지느냐-그렇지 못하느냐가 계층을 나누는 주요한 요소라고 본다. 우리나라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논의와 비슷하다.


이 지점이 바로 '부로 부를 만들어내는 상위 1%의 슈퍼리치와 나머지 99%'라는 그간의 담론과 '생산수단을 가진 자본가와 몸뚱이만 가진 노동자'라는 맑스주의적 담론과 차별화되는 점이다. 저자는 인적 자본의 유무를 기준으로 사회를 나눈다. 명문대 학벌, 석박사 학위로 대표되는 인적 자본이 있는 자와 없는 자 사이의 격차 말이다.


저자의 논리는 이거다.

글로벌화와 경제 구조 변화에 따라 미국의 노동 시장은 많이 배운 사람에게는 후한 보상을, 못배운 사람에게는 혹독한 탈락을 배분하게 됐다. 단순 노무 직종이 점점 사라짐에 따라 인적 자본이 낮은 사람은 양질의 직업, 아니 직업 자체를 가지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진다. 인적 자본이 높으면 안정적이고 높은 소득을 통해 상위 20%에 안착할 수 있지만, 인적 자본이 낮다면 양극화되는 노동 시장에서 추락할 수 밖에 없다.


상위 20%에 진입한 집단은 충분한 시간과 돈을 투자해 자식들의 인적 자본 형성을 적극 지원하지만, 하위 80%는 그게 잘 안된다. 집안의 도움으로 충분한 인적 자본을 확충한 상위 20% 집안 출신들은 상위 20%에 진입하기 쉽지만, 하위 80%는 그게 잘 안된다. 이에 따라 사회 계층이 대물림된다는게 저자의 시각이다.


그런데 상위 20%와 하위 80% 출신 자녀들의 인적 자본왜 그렇게 차이가 나게 됐는가? 이에 대해 저자는 두 가지 이유를 꼽는다. 하나는 '시장에서 인정되는 능력이 계급에 따라 불평등하게 육성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유한 사람들이 불공정하게 기회를 사재기 하는 것'이다.


# 인적 자본이 중요한 미국, 그리고 학력 불평등


앞서 말했듯, 미국의 노동시장은 똑똑한 자에게 유리하게 바뀌어 왔다.(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실리콘밸리와 텍사스의 엔지니어, 월스트리트의 트레이더와 컨설턴트, 하버드/스탠퍼드 대학의 교수 등. 일명 지식 노동자들이다. 이들이 미국이 필요로 하는 인재들이다.


이 위치에 가려면 '배움'이 필요하다. 단순한 배움으로는 안 된다. 남들보다 잘해야 한다. 남들보다 좋은 학벌과 높은 학력이 필요하다. 남들보다 좋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 상위 20%는 자녀들에게 좋은 교육을 시킨다. 저자의 묘사를 빌리면, '교육은 중상류층 지위를 대물림해 재생산하는 주요 메커니즘'이 되었고, '중상류층 지위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것은 석박사 학위'다.


중상류층 집안 자제들은 이 게임에서 유리하다. 중상류층 가구의 여행, 책, 가정 교사 관련 지출은 하위 20% 가구보다 열배나 많다. 엄마가 출산 휴가 기간도 길게 써서, 어렸을 적부터 많은 케어를 받는다. 부유한 동네에서 유능한 교사에게 가르침을 받는다. SAT 과외 같은 사교육, 동문 우대 제도 덕택에 중상류층 가구 출신들은 우수한 대학에 진학할 가능성을 차근차근 쌓아간다.


그 결과, 중상류층과 나머지 계층 출신 자녀의 인적 자본에 뚜렷한 격차가 발견된다. 14년 기준, 석박사 부모의 자녀 중 60%가 대학을 졸업하지만 고졸 부모의 자녀는 17%만 대학을 졸업한다. 하버드, 예일 등의 아이비리그와 주요 명문학생의 66%가 가구 소득 상위 20% 출신으로 추정된다.


중상류층 가구의 부모들은 그들의 자식을 똑똑하게 만든다. 자식 교육에 열성인 부모는 한국에만 있는게 아니다. 이 글만 봤을 땐 미국도 살벌하다.


대학 입학, 직장 면접 등을 거쳐 사람을 뽑고 보니, 잘사는 집 아이들이 많이 뽑혀 있다.


# 기회까지 사재기


이걸로 끝이 아니다. 저자는 미국 중상류층이 ‘배타적인 토지 용도 규제, 불공정한 대학 입학 절차, 그리고 인턴 기회의 불공정한 분배’를 통해 기회까지 사재기하고 있다고 말다.


먼저 토지 용도 규제다. 노골적인 '인종 차별 도구로서 시작된 토지 구획 조례가 이제는 도시의 지리적 형태를 계급에 따라 분화시키는 도구'가 되었다고 비판한다. 미국은 계층에 따른 생활 구역 분리가 꽤나 심한가 보다. 지역 분화로 인해 학교 수준, 공동체 문화양극화된다. 다른 계층에 대한 공감대는 사라진다.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었구나?


불공정한 대학 입학 절차도 문제다. 미국은 부모가 졸업한 학교에 자식이 지원할 경우 우대한다. 미쳤나 싶었다. 무슨 근거로 이런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 저자는 이걸 고쳐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기여 입학제에 대해서는 별 말 없다. 내눈엔 기여 입학제도도 불공정해 보이는데.


녀의 인턴 자리를 마련해주는건 미국에서도 꽤 흔한가 보다. 저자는 미국의 인턴 제도가 '노동 시장 규제에서 사실상 벗어나 있기 때문에 연줄을 통해 서로 혜택을 주는 식으로 알음알음 분배'된다고 비판한다. '좋은 인턴 자리가 몰려 있는 뉴욕, LA, 워싱턴 D.C 등은 생활비가 매우 비싸서 저소득층 가정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인데다 인턴 중 '절반이 약간 넘는 수가 무급 인턴'이다. 저소득층 출신 대학생들은 인턴 기회가 중상류층에 비해 낮다고 말한다. 취업에서 꽤 파워풀한 시그널인데, 기회 자체가 불공평하게 분배되어 있다는 것.


중상류층 출신과 나머지 계층 출신은 '인적 자본'에서 격차가 날 수 밖에 없다. 어린 시절부터 좋은 교육, 밀도 높은 케어를 받고 명문 대학교에 들어갔다. 인턴도 쉽게 구한다. 좋은 직업을 갖는 것도 수월하다. 계층은 대물림된다. 능력주의를 기반으로 말이다.


그 아쉬울 것 없는 트럼프도, 와튼 스쿨에 입학한게 엄청 자랑스럽고 행복했다고 회고한다. 아버지가 특히 좋아했다고. 세계 최강국의 대통령이 '그깟 대학' 때문에 좋아했다는 걸 생각하니, 흠.


# 평가


문제점을 지적했으니, 해결책을 말할 시점이다. 그 전에, 저자는 경고한다. '중상류층이 지금보다는 어느정도 손해를 봐야 한다'고 말이다. 모두가 '부유한 사람들에게 세금을 걷자는 의견에는 찬성하지만, 아무도 자신이 부유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사회다.


영유아, 청소년 시기의 돌봄 서비스 격차/교육 격차 축소, 대학 학자금 확대, 다양한 계층이 섞일 수 있도록 토지 용도 재획정, 동문 자녀 우대 폐지, 인턴 기회 개방, 조세제도 개혁 등을 이야기한다. 그는 끊임없이 되내인다. 이 책을 읽고있을 '당신들, 그리고 당신들의 자녀'가 손해 볼 수도 있다.

 

해결책이 엄청나게 자세하고 면밀하게 서술되어 있지는 않다. 이 책은 '이 방법을 채택해야 합니다'보다 '현재 불평등이 이렇습니다'에 더 집중한다. 나아가야할 큼직한 방향만을 보여줄 뿐이다. 그 종착지는 '모든 개인이 사회경제적 배경과는 무관하게 내재된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는 사회이다.


저자는 미국 노동시장의 엄청난 임금 격차에 대해서는 별 말이 없다. 이 임금 격차가 효율적인지 비효율적인지, 공정한지 불공정한지에 대한 수많은 논쟁이 있으나, 저자는 따로 다루지는 않는다. 오히려 노동 시장은 효율적이라고 말한다. 그는 '결과의 평등'보다 '기회의 평등'에 골몰한다.


이 부분은 좀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게, 결과의 평등과 기회의 평등은 무관하지 않다. 결과가 불평등하게 분배되면, 기회도 평등해지기 어렵다. 가령 CEO가 몇백억 땡기는 와중에 노동자는 겨우 몇천만원 땡기면, CEO 아들과 노동자의 아들 사이의 기회의 평등은 쉽게 이뤄지기 어렵다.


빈곤층을 위시한 하위 80%에 대한 논의도 없다. 이것까지 넣으면 책의 주제가 뒤죽박죽해져서 그랬을 것 같긴 하. 그렇지만 수용가능한 불평등은 무엇이고 그 한계는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검토가 있었으면 두 좋지 않았나 싶다.


어쨌든, 재밌다 이 책. 문체도 유머러스하다. 영어로 읽어보고 싶을 정도다. 근거도 풍부해서 납득이 쉽다. 그리고 사람사는 곳 비슷한 면이 많구나 싶었다. 자기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능력주의의 믿음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3. 한국 대학과 소득 분위


# 명문대의 혜택


우리나라는 고등학교 졸업자의 70% 가량이 대학을 가는, 고학력 사회다('19). 신베버주의 이론은 모든 지위 경쟁이 '제로섬' 싸움이라고 규정한다. 너가 죽거나 내가 죽거나. 가령 누군가가 100점 만점에 99점을 받아도 100점을 받은 경쟁자가 있다면, 그는 탈락한다. 마찬가지로 학사 학위가 사회에 많으면 많을수록, 명문대 졸업장과 석박사 학위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그런데 명문대는 어떤 장점을 가져다줄까. 왜 그렇게 기를 쓰고 명문대에 가려고 할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크게 2가지 정도로 본다. 네트워킹, 시그널링.


먼저 네트워킹이다.


대학 때 같이 술먹고 미팅했던 친구들이 사회에서 인정받는 괜찮은 직업, 직장을 갖는다. 나는 변호사, 쟤는 검사, 쟤는 판사, 쟤는 의사, 쟤는 대기업 직원, 뭐 이런 식이다. 다양한 산업과 직종의 트렌드를 알기 쉽고, 접근하기가 쉽다. 괜찮은 직장에는 같은 학교 선후배가 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같은 대학교 같은 과 나오면 반갑기 마련이다. 친해지기 쉽고, 도움이나 정보를 구하기도 쉽다.


사회생활 뿐 아니라 대학 재학 시절부터 도움을 받는다. '선구자의 경험'을 쉽게 들을 수 있다. 취업을 위한 면접, 유학을 위한 준비 등 다양한 방면에서 도움을 구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이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건, 사회에서 인정받는 성공한 사람들이 이 학교/강의실에서 공부한 선배다보니 '나도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 '근거 있는' 도전 정신과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


변화는 도전을 해야만 생긴다. 서울대가 고시/유학에 많이 성공하는건 그들똑똑하기도 하지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다른 대학교의 학생보다 크고 따라서 도전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둘째는 시그널링.


고학벌의 소유자는 동등한 조건의 언더독에 비해 자신의 능력 증명에 더 많은 에너지를 투입할 필요가 없다. 학벌 외에 지원자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상황을 가정해보자. 최고 대학 졸업자와 중간 대학 졸업자가 있다고 치면, 최고 대학 졸업자가 선택될 가능성이 크다. 중간 대학 졸업자는 자신만의 강점을 추가적으로 증명해야하는 부담이 있다.


학벌이라는 지위를 획득한 사람은 살아가면서 자신의 능력 증명 과정에서 다른 사람보다 에너지와 비용을 덜 투입해도 괜찮다. 간판을 본 타인들이, 알아서 인정해준다. 이것 자체가 꽤 크다.


대학 시절 과외 모집부터 취업 때까지. 그리고 취업 후의 이직, 유학 등 커리어 경력에 있어 학벌은 개인의 평가에 따라다니는 꼬리표다.


양질의 교육? 그건 잘 모르겠다. 지금에 와서야 '그때 왜 그랬나'하는 생각이 들지만, 나는 학교 공부의 효용을 못 느껴서 학교에서 공부를 많이 안 다. 그러니 양질의 교육을 논할 자격이 안 된다. 그때 넓은 마음으로 수업도 많이 듣고 학점도 잘 따놨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근데 뭐.. 혼자 읽고싶은 책 맘껏 보고 잘 놀았다.


# 뭘 찾을려고 했냐면


학종은 '인생 경로'를 총체적으로 평가한다. 고등학교 3년간의 GPA, 대외활동, 심지어 읽은 책 마저.

수능은 특정 시점에서 한 개인의 '능력'(능력의 정의에 대한 비판이 있겠지만)을 평가한다.


내 경험에 따른 판단이고 따라서 편견이 들어가 있을 수 있긴 하지만, 나는 개인의 사회경제적 배경, 쉽게 말하면 부모빨이 '수능보다 학종체제에서 더 심할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대학교에 오고난 후 잘사는 친구들을 꽤 많이 봤다. 외고 출신들, 외국 학교 출신들 참 많았다. 어렸을 때 이 나라, 저 나라 돌아다니면서 몇 개 국어하는 친구들도 봤다. 술 먹고 영어로 대화하는 걸 보고 술이 확 깬 기억도 있다.


그래서 주요 명문대, '서연고서성한'의 학생 현황을 찾아봤다. (1) 재학생 가구 소득 분위와 (2) 재학생 거주 지역 (3) 재학생 출신 고교 관련한 데이터를 뽑아보려고 했다. 소득 분위로 부모의 소득 현황을, 거주 지역 + 출신 고교를 통해 자산 현황을 유최할 수 있을 거라는 판단에서 말이다.



위에 있는 표처럼 만들어 보려고 다. 30년 정도 되는 데이터를 뽑아보면, 뭔가 있을 것 같은데..


그런데 공개된 데이터가 없다. 아쉬웠다. 한국장학재단에 전화를 했는데, 안 준댄다. 개인 정보라고. 근데 국회의원실, 언론에는 자료가 나갔던데? 이게 '일'이었으면 어떻게든 받아냈을 텐데, 재미로 쓰는 글인데 괜히 열내기는 싫었다. 아니 근데 생각해보니 아쉽다. 정보공개 청구 해볼까.


대신 국정감사 자료랑 서울대학교 경제연구소의 연구결과로 호기심을 조금, 아주 조금 채웠다.


2018년 1학기에 한국장학재단에 국가장학금을 신청한 사람들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 국가장학금에 신청한 SKY 대학 신청자 중 9분위, 10분위 학생의 비율 약 50%(48%)다. 전국 평균은 23%다. 그 학교에서 국가장학금에 신청한 절반 가까이가 가구 소득 상위 20% 출신이다.


통계를 더 면밀히 살펴보자. 위 통계는 국가장학금 신청자들에 대한 조사다. 근데 국가장학금이 안 나올 것 같은 사람은, 아예 신청도 안 한다. 대기업 임원 아들인 내 친구는 신청한 기억이 없다. 이런 사람들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있는 집 자제들이 더 많을 수 있다.


2015년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3명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는 강남구, 마포구 같은 서울시내 각각의 '구' 별 서울대학교 입학 확률을 분석한다. 머리 아픈 수식과 통계적인 필터링을 거쳐 얻어낸 결과는, '서울시내 구별 서울대 합격 확률 차이의 8~9할 이상이 부모 경제력 차이에 따른 치장법'에 의한다는 것.


쉽게 말하면, 서울대 입학 과정에서 개인의 타고난 잠재력 보다는 과외 등을 지원할 수 있는 부모의 경제력이 훨씬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같은 노력을 해도, 뒤에 엔진을 달아주면 더 빨리 결과를 낼 수 있다. 직관적으로 당연한 결관데, 이 분석이 불편한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근데 뭐..


한 개인의 소득, 자산, 직업 등 사회경제적 지위에 있어 학벌/학력이 미치는 영향이 크다. 그런데 학벌/학력의 결정 요인으로 개인의 능력보다 부모의 지원이 더 크다는건, 기회가 공평하지 않다는 의미다.






4. A와 A'는 노력을 안했을까


나도 A도 A'도 꽤 노력하며 살았을 거다. 중고등학교 때 열심히 공부했다. 대학교에서도 원하는 커리어를 가지기 위해 노력했다. 뭐 하나 할 때는 꿈에서 나올 정도로 집중했다.


근데 돌이켜보면, 난 목표에 집중하기만 하면 됐다. 다른 거 신경쓸 없었다. 등록금 고지서는 부모님께 전달하면 그걸로 끝이었고, 술먹고 미팅한다고 돈 엄청 쓰는게 아닌 한 생활비 걱정도 크게 없었다. 정 부족하면 과외를 했다.


운이 좋았다.


책 좋아하시는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 자연스럽게 책을 좋아하게 됐고, 고등학교 때 미국에 온 가족이 살면서 더 큰 세계를 봤다. 그 후 수능은 큰 문제 없었고 외국인 말하는 두렵지 않게 됐다. 넓은 세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운이 좋았다.


미국에서 만났던 가정 교사 비슷한 과외 선생님은 생물학 박사과정생이었는데, 선진 교육을 사했다. 플라톤의 동굴 우화를 영어로 가르쳤다. '부자와 가난한자의 격차'와 '특권층이 사회에서 해야할 일'같은 주제로 에세이를 쓰게 시켰다. 물론 영어로. 한국 어디에서 이런 교육을 받을 수 있을까? 명문대학교라 불리는 곳에서도 단순암기형 시험을 다.


운이 좋았다.


나는 운이 좋았다. 내가 다른 국가, 사회, 가정에서 태어났다면 나는 나일 수 있을까. A는 A일 수 있었을까? A'는 A'일 수 있었을까?


A와 A'의 자격 없음을 얘기하는게 아니다. 노력이 없다면 남들에게 인정받는 학벌, 직업을 갖기는 굉장히 어렵다. 하지만 운도 중요하다.


난 운이 한 개인의 인생 경로에 영향력을 끼치는 걸 많이 봤다. 그들의 선택, 능력과 무관한 그 수많은 운.


저소득층 무료 과외 같은 교육 봉사를 종종 했었다. 똑똑하고 잠재력도 있는 것 같은데, 환경이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경우를 꽤 봤다. 욕심이 나서 더 가르치고 싶게 만드는 아이들이 있다. 그런데 내가 뭐 대단한 활동가나 이타심이 넘치는 사람이 아니라, 계속 도와주지 못했다. 게으르고 이기적이어서 몸이 마음을 따라가지 못한다. 애초에 마음이 단단하지 못해서일까? 입만 살았.


하여간, 그런 아쉬움이 꽤 많다. 충분히 준비하지 못하고 노동 시장에 뛰어들어야 했던 친구, 공부를 더 해보고 싶었는데 집안 사정 때문에 그러지 못했던 친구 등. 돌이켜보면 애초나부도 유학/로스쿨 같은 생각안해봤다. 부모님에게 짐이 되기는 싫었다. 부자 집안이 아니었으니까. 물론 노력하면 길이 있었겠지만 뭐.. 그리고 '정책가'가 되겠다는 마음이 엄청 확고했었다.


이 책의 주장처럼, 사회 진출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기회는 평등해야 한다. 노동 시장에서의 CEO-노동자 임금 격차의 효율성/정당성에 대해서는 다툼의 여지가 있지만, 유아기/청소년기/청년기에서 각 개인의 내재된 역량을 최대한 키울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는 건 다툼의 여지가 별로 없다.






5. 결론


1% vs 99% 담론에서 1% 남이다. 20% 대 80% 담론에서 20% 남이 아니다. 이 사회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경쟁은 1%가 아닌 20%에 진입하기 위한 경쟁일 것이다. 이재용이 되고 싶어서 경쟁하는게 아니다. 이재용의 회사에 들어가고 싶어서 경쟁한다.


우리나라는 진작에 OECD에 가입했다. 선진국 경제에 진입했다고 평가받는다. '우수 인력'은 더 많은 혜택을 누리고, 나머지는 심한 경쟁에 놓이게 되는 글로벌 추세의 예외가 될 수 없다. 이 책의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저자는 미국 중상류층이 어떻게 계층을 대물림하는지, '인적 자본'을 중심으로 담론을 제기한다. '다 때려 부셔야 한다'는 급진주의적 주장이 아니다. '시장의 불평등은 어쩔 수 없지만, 시장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기회는 평등해야 되지 않겠냐?' 정도의 주장이다.


그는 중상류층 부모들에게 질문한다. 기회의 평등을 위해 세금을 더 낼 의향이 있는가? 기회의 평등을 위해 다른 사람들과 같은 땅에서 살아갈 수 있는가? 기회의 평등을 위해 낙하산 인턴 하지 않을 수 있는가?


자식이 본인보다 못 살게될 확률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참고문헌]

학생 잠재력인가? 부모 경제력인가 - 김세직, 류근관, 손석준(서울대학교 경제연구소, ’15)

지배받는 지배자 - 김종영(돌베개, ’15)

취학률 및 진학률 현황 - 대한민국 통계청(’19)





매거진의 이전글 제조업? 공장? 그런 거 다 중국에 맡기면 되잖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