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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해의 취미생활 Dec 26. 2019

한국이 싫어서 떠난 그녀, 행복할까?

한 소설가가 그린 대한민국의 풍경 :  「한국이 싫어서」, 장강명

소설인 「한국이 싫어서」를 읽고 나름의 생각을 정리한 글입니다.

이 책은 한국이 싫어서 호주로 이민을 가게 된 젊은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 글의 구성

<1> 그때 그 헬조선
<2>  「한국이 싫어서」
<3> 그녀는 과연 행복할까?
<4> 비교는 날 죽인다
<5> 결론


1. 그때 그 헬조선


한때 '헬조선' 담론이 유행했다. 요즘에는 조금 시들해졌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요즘의 'N포세대'나 '90년대생'처럼 꽤 많이 회자됐었다. 데이터를 찾아보니 그 추세가 뚜렷하다.


노란색 영역 : 헬조선 담론의 정점기


구글의 빅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헬조선' 담론은 2015년~16년에 정점을 찍었다. 그 후 계속 하락하는 추세다. 4년 동안 천지가 개벽할만한 혁명적인 변화가 어려운걸 고려하면, 사람들이 '헬조선' 담론에 질렸다고 판단내릴 수 있다. 물론 그때보다 삶이 조금 나아졌을 수도 있다.


「82년생 김지영」은 요즘 핫한 페미니즘 이슈를 생생히 보여주는 책이다. 시대상을 반영한다. 「한국이 싫어서」도 마찬가지다. 4년 전의 우리나라를 잘 보여준다. 꽤 잘 팔리기도 했다.


이 책이 출판되고 인기를 얻었을 때는 눈길이 가질 않았다. 하도 '헬조선, 헬조선' 거려서 질렸었다. 책에서까지 그런 담론을 접하기는 싫었다. 게다가 마음에 안드는 게 좀 있긴 했지만 한국을 싫어하지는 않았다.  


유행이 다 지나간 지금에야 이 책을 읽었다. 한동안 책이 재미가 없어졌다. 연말이라 싱숭생숭 하기도 하고, 책보고 글쓰는 것도 뭔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해서, 넷플릭스나 유투브만 주구장창 봤다. 친구들이랑 놀거나. 근데 결국 돌고돌아 읽을 책 뭐 없나 찾게 됐다. 책장에 꽂힌 이 책을 봤다.


부담없이 읽기 딱 좋다. 우선 길지 않다. (160p 가량) 작가는 기자 출신인지라 문체가 시원시원하고 깔끔하다. 이 작가의 특징은 빠른 스토리 전개와 정갈함이다. 멈춰있던 뇌를 작동시키는 윤활제를 만난 셈이다. 예상했던 대로 재밌게, 빠르게 읽었다. 느낀점도 좀 있고 해서, 그걸 써보려고 한다.




여담이지만 원래 중국의 민족주의와 위구르족 탄압, 월러스틴의 세계체제 분석 관련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었다. 근데 꽤 스트레스를 받았다. 내용도 복잡하고, 글도 잘 안써지고. 심심해서 하는 건데 스트레스 받을 필요 뭐 있나 싶어서 던져버렸다. 그래도 쓰긴 할거다. 재밌는데 짜증나고, 귀찮아하면서도 쓰고있고. 취미가 상당히 '비생산적'인거 아닌가 싶다. 이 노력으로 '자기계발'을 열심히 했다면 훨씬 훌륭한 사람이 됐으려나.






2. 「한국이 싫어서」


인용구는 색체 + 볼드체


이 책은 한 여성의 한국 탈출기다. 그녀는 왜 한국을 탈출하려고 하는가? 그녀는 홍익대학교를 졸업하고 금융 기업에서 일한다. 본인의 능력은 탁월한 편이다. 누군가는 그녀를 부러워할 테다. 그렇지만 그녀는 그녀를 둘러싼 환경을 암담하게 인식한다.


우선 집안 환경. 그녀에 따르면 그녀의 집은 보일러를 아무리 돌려도 바닥만 뜨거워질 뿐, 실내는 여전히 썰렁하다. 조금만 한눈을 팔면 과자 표면을 개미가 쌔까맣게 뒤덮을 정도로 오래된 집에 산다. 옛날 그대로의 나아지는게 없는 동네에 위치한 지지리 가난한 18평 짜리 집. 흙수저라는 거다.


또 스스로를 명문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김태희처럼 생긴 것도 아니어서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멸종돼야 할 동물이라고까지 표현한다. 그래서 그녀는 호주로 이민을 간다. 호주에 가는 것이 그녀의 신분이 오를 가능성이 있는 방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답이 안 나온다는 것.


특히 스무 명 중에 여직원이 열다섯 명인가 열여섯 명인가정도 되는 뒤풀이 회식에서 들은 팀장의 음담패설은 그녀의 이민 계획에 불을 붙여버린다. 가부장적인 회사 문화도 한 몫한 셈.


물론 이민이라는게 쉬운건 아니다. 언어, 인종에 따른 차별은 피할 수 없다. 국외자라는 게 참 서럽다라고 생각하며 호주에서는 평생 국외자일거라고 생각한다. 네이티브 스피커처럼 영어를 하게되는 날이 안 온 단언한다. 그녀는 그녀가 '이방인'이라는 걸 처절하게 인식하고 있다. 종종 한국에 있었으면 어떨까라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녀 스스로가 한국에서도 국외자였다고 회고한다. 어차피 한국에 있었어도 조국의 따뜻함을 느끼지 못했을 거라는 것. 그러니 굳이 왜 한국에 있겠는가?

  

그녀는 알바를 하면서도 최소한의 사람대은 받고 사는 호주가 한국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접시를 닦으며 살아도 호주가 한국보다는 낫다는 거다. 게다가 제대로 자리잡기만 하면 근무 환경은 비교가 안 된다. 오전 7시에 출근해서 오후 4시면 칼같이 퇴근하는데다가, 1년에 휴가가 무려 한 달이나 된다. 노동자로서 살기에는 한국보다 훨씬 낫다.


한국에서 뭐 대단한 호사를 기대할 수도 없다. 여성으로서의 한계도 느낀다. 그럴 바에야 왜 굳이 한국에 있겠나. 같은 노력을 호주에서 한다면, 더 행복해질 가능성이 있는데 말이다. 한국보다 호주에서 신분 상승의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그녀는 호주로 이민을 간다.


'탈조선', '헬조선'은 꽤나 익숙한 담론이자 정서다. 특히 90년대생인 에게 말이다. 그녀의 상황이 이해되기도 하고, 워낙 속도감 있게 써놔서 금방 읽었다. 그래, 한국이 너무 싫으면 떠날 수 있지. 그렇지만 한 가지 의문이 남았으니..






3. 그녀는 과연 행복할까?


그녀는 '신분'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같다. 그녀는 '신분 상승'을 위해 '탈조선'을 결심한다. 인생을 바꾸는 선택에서 결정적인 요소로 고려할만큼, 그녀는 '신분'을 신경쓴다. 강남 출신이고, 집도 잘 살고, 남자인 누군가와 달리, 본인은 어차피 2등 시민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행복할 수 없다는 것.


그녀는 지긋지긋해 한다. 수도권 대학 나온 애들은 지방대 나온 애들 대접 안 해주고, 인서울 대학 나온 애들은 수도권 대학 취급 안 해 주고, SKY 나온 애들은 인서울을 무시하는 한국의 그런 풍토를. 만인과 만인이 경쟁하는 그런 상태. 신분 사다리에서 조금이라도 더 높이 올라가려고 아득바득하는 그런 환경.


그거에 질려버려서 호주로 갔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신분'이라는 안경을 벗지 못한다. 소규모 밴드의 연주자인 동생의 남자친구. 그녀는 동생의 연애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 왜냐하면 동생이 베이시스트와 사귀는 건 별로 높지도 않은 걔의 신분을 더 떨어뜨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녀는 동생의 연애 상대를 '신분 사다리'라는 관점에서 평가한다. 그녀가 그렇게나 싫어했던 정서 아닌가.


유학생 친구와의 대화에서도 그녀의 '신분 의식'은 여실히 드러난다. 술 한잔 마시며 타지 생활을 한탄하는 상황. 한국의 살벌한 경쟁에 대해 토로하면서 그녀의 친구는 나도 지잡대 나왔어. 같은 처지야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는 난 홍대 나왔는데?라고 맞받아친다. 너나나나 호주에 있는건 매한가지긴 한데, 그래도 지방에서 대학교를 나온 너랑 같은 '급'은 아니라는 거다. 그녀는 통쾌함 느낀다.


그녀는 한국이 싫었다. 그래서 떠났다. 한 급만 낮아도 멸시와 천대를, 한 급만 높아도 비굴과 부러움을 느끼는 그런 환경이 싫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신분 의식'을 탈피하지 못했다. 하긴, 한국을 떠난 것도, 신분 사다리에서의 위치가 맘에 안들었을 뿐이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1등 시민'이었다면 한국에서 계속 살았을 거다.


그녀가 '신분 의식'을 떨쳐내지 못한다면, 그녀는 불행해질 확률이 높다. 한국에서보다 더 불행해질거다. 아시아인이고, 영어 원어민처럼 절대 안 된다. 인종 차별, 언어 차별 등 갖가지 차별이 예정되어 있다. 2등 시민의 지위 카스트처럼 강고할 거다. 더 힘들지 않을까?


하지만 그녀가 그런 허위의식에서 벗어난다면, 더 행복해질 확률이 높다. 오전 7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일하는 직장. 정시에 끝난댄다. 야근을 밥먹듯이 하는 한국보다 노동조건이 훨씬 낫다. 게다가 정규직이 되면 일년에 휴가가 한 달이란다. 다 쓸 수 있다. 이거 괜찮지 않나? 그녀의 말대로, 대한민국에 이런 직장이 어디 있나?


그녀가 '신분'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길 기도한다. 그러려면 우선 '남과의 비교'를 좀 덜해야할 거다.






4. 비교는 날 죽인다


수많은 생물학자, 심리학자가 밝혀낸건, '비교'가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이다. 누구나 느끼는 보편적인 감정이라는 것. '샤덴프로이데'라는 단어가 있다. 나보다 잘나가는 누군가가 X됐을 때 느끼는 행복감을 의미하는 독일어다. 철학자 니체는 말한다. '타인에게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우리는 그와 평등'하다고 느끼며 '타인의 어려움은 우리의 시기심을 누그러뜨린다'고 말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류의 속담은 한국에만 있는게 아니다.


그럼에도 그간의 여러 연구들은 서양인들에 비해 동아시아인들이 '사회적 비교'를 더 많이 하는걸 밝혀냈다. '동아시아'에는 우리나라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비교를 많이 한다. 대학은 제때 갔니? 직장은 제때 잡았니? 결혼은 제때 했니? 인생이 퀘스트다. 그런데 비교는 한 개인의 정신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있다.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연구다. 대학생은 학점에 민감하다. 이때 관찰자들은 피험자들이 '함께 듣는 수업에서 A가 좋은 과제 점수를 받게 되었다는 것'을 알도록 만들었다. 그 후 피험자들의 정서를 조사했다. 그리고 유의미한 통계적 경향성을 발견했다. 바로 'A에 대해 부러움을 경험하는 사람일수록 낮은 삶의 만족도'를 느낀다는 것.


남과 더 많이 비교하고 더 많이 부러워할수록, 정서적 삶의 질이나 만족도는 낮아진다는 거다.


좀 더 시야를 넓혀보자.


OECD 삶의 만족도 조사(2017) 재구성


위의 그림은 OECD 국가들의 삶의 만족도 지수다. 얼마나 행복한가요? 뭐 이런거 측정한거다. 노란색 부분을 보자. 우리나라는 40개 국가 중 33위로 꼴찌 수준이다. 그런데 흥미로운건, 일본도 32위다. 일본은 강대국이자 선진국이다. 복지 체계도 잘 짜여있다고 평가받는다. 객관적인 여러 '경제 지수'만 놓고보면 32위보다는 높아야 맞다. 그런데 낮다. 멕시코보다는 높아야 되는 거 아냐?


결국 경제 외적인, 문화적 요소도 크게 영향을 미친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특히 문화적 요소 중 동아시아 국가의 특징인 '남과의 비교'가 '낮은 삶의 만족도'에 한몫했다고 추론해볼만 하다. 물론 나는 아직 내공도 딸리고, 이걸 증명해낼 방법론을 배우지 못했다. 그럼에도 OECD 조사 결과에서 도출해낼 수 있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잘먹고 잘 산다'는 게 '행복하게 산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


이 조사 결과와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를 합치면, "남과 비교하고 부러움을 느끼면 불행해질 가능성이 높은데, 동아시아 국가의 국민들은 이걸 서구권 국가의 국민보다 더 많이 한다. 따라서 동아시아 국가의 국민들의 삶의 만족도가 낮다"라는 해석을 시도할 수 있지 않을까.


하여간 '남과의 비교'는 하기 싫지만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기분 잡치게 되고. 뭐 그런 것 같다. 뗄레야 뗄 수 없는 그런거. 안하는게 최고긴 한데..


물론 '비교'가 '욕심'을 만들어내고, '욕심'이 '노력과 성장'을 만들어내는 메커니즘이 있다.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그래도 '비교'를 땔감으로 쓰는 '노력'은 결국 불행의 길로 간다는게 내 생각이다.  


우리 교육은 만족을 알려주지 않는다. 진짜로 그렇다. 학교 다닐 때 '만족'을 배워본 기억이 없다. 오로지 '경쟁과 승리'만을 가르쳤던 것 같다. 학교 안에서의 경쟁에서 승리하면 '자습실'을 따로 쓰고, 학교 밖에서의 경쟁에서 승리하면 정문에 '플래카드'가 붙는다. 뭐 이런것만 알려줬지, '만족'같은 거 알려주지 않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른들도 '만족'이란걸 모르는데, 애들한테 '만족'을 어떻게 가르칠까? 어림도 없다.






5. 결론


장강명의 책은 읽기 편하다. 그렇다고 내용이 빈곤한 것도 아니다. 장강명의 「표백」을 읽고 "소설을 써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30분 정도? 난 못 쓸 게 분명하긴 하다. 하여간, 그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우리 세대의 존재론적 고뇌랄까, 모순이랄까, 뭐 그런 정서를 제대로 짚어냈었다. "미쳤네, XX 잘쓴다. 진짜 재밌다"라고 계속 중얼거렸었다. 최근에 나왔던 「당선, 합격 계급」도 흥미롭게 읽었고.


이 책도 마찬가지다. 2015년의 한국을 광각 사진으로 찍은, 그것도 필터 없이 찍은 사진 같다고 해야하나. '헬조선', '탈조선' 담론을 회고할 때, 필히 참고해야할 소설일거다. 물론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아직도 유효하다. 누군가에게는 '한국의 여성 차별'로, '꿈을 찾아 떠나는 청년의 이야기'로, 혹은 '인류 사회 어디에나 존재하는 조그마한 어려움도 버티지 못하고 도피해버린 젊은이'의 이야기로 읽힐거다.


나에게는 '비교 의식'에 대해 더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장강명씨, 오래오래 책을 써 주십쇼. 항상 돈 주고 사 읽겠습니다.



[참고문헌]     

부러움 : 한국의 무해한 선망 - 한국심리학회지('09)

Better Life Index - OECD('17)

구글 트렌드 헬조선 검색

(https://trends.google.co.kr/trends/explore?q=%ED%97%AC%EC%A1%B0%EC%84%A0&ge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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