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작가들의 숫자, 수입, 연령대와 출판 시장 등에 대해 나름의 생각을 정리한 글입니다.
■ 글의 구성
<1> 책 써서 먹고살 수 있나? <2> 작가는 몇 명이고 연령대는? <3> 돈, 그거 벌 수 있는거야? <4> 출판 산업은 늪에 빠졌다 <5> 자율차 기술 vs 자율차 대회
1. 글 써서 먹고살 수 있나?
언젠가 책 한번 쓰겠다는 생각이 있다. 삶의 깊이가 엄청 깊거나 통찰력 있는 것이 아니라 에세이는 못 쓰겠고, 크게 대단하지도 않고 남에게 뭐 가르쳐줄 처지도 안 되니 자기계발서도 못 쓸 것 같다. 소설? 그건 진작 포기했다.
다만 내가 일하는 분야를 초등~고등학생에게 쉽고 재밌게 소개하는 책을 3권 정도 써보고 싶다. 은퇴 전이나 은퇴 후에. 그 책을 읽고 누군가가 이 분야에 흥미를 가지게 되고, 능력있는 친구들이 내가 일하는 곳으로 온다면 뿌듯할 것 같다. 내가 지금 직장을 선택하게 된 결정적 이유 중 하나도, 이곳에서 일했던 선배들이 썼던 책 때문이다.
"저 회사에서 일하면 저런 일을 하고 저 정도 통찰력을 가질 수 있구나!"
쨌든 나는 어린 친구들을 위한 사회과학 책을 써보고 싶다. 물론 석사, 박사 학위를 따고 '독립 연구' 능력을 갖추고 난 후,더욱 전문적이고 참신한 책을 쓸 수 있다면 더 좋고.
하여간 나는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작가'라는 직업에 환상이랄까, 관심이 좀 있다. 날도 추우니 뒹굴거리며 유튜브 보는 와중에, 장강명 작가의 영상을 보게 됐다. 난 장강명 작가의 영상은 다 본다. "작가가 꿈이지만 생계가 급한 당신이 반드시 들어야 할 대답"이라는 제목의 동영상.
어느 나라나 그렇겠지만, 작가라는게 수입이 일정하지도 않고 대박 나기도 어려운 직업이라, 안정적 수입원이 있는게 더 낫다라는 의미일 거다.
그런데 갑자기 궁금해졌다. 도대체 작가들이 마주한 환경은 어떠하길래 스타 작가가 저런 말은 할까? 궁금해서 찾아보게 됐다.
2. 작가는 몇 명이고 연령대는?
나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간한 「2018 예술인 실태조사」를 토대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작가'라는게 포괄적이고 모호한 개념이라, 어떻게 정의하냐에 따라서 포함 대상이 천차만별이다. 나는 작가인가? 브런치에서는 작가라고 하는데, 글쎄..
이 통계조사는 ① 예술활동 증명을 신청한 사람, ② 정부 문화지원 사업의 수혜를 받은 사람 ③ 예술관련 협회나 단체에 가입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즉 '제도권' 내의 예술인이 대상이다. 이문열, 장강명, 김훈, 이런 사람들이 여기에 포함될 거다.
'문학' 분야 예술인은 1.3만명 정도다. (13,297) 소설, 시 등을 쓰는 사람이 포함될 거고, 이들이 흔히 말하는 '작가'일 거다. 다만, 아쉽게도 이 조사에는 '문학' 분야 예술인의 구체적 범위가 나와있지 않다. '드라마 작가, 방송 작가'가 '문학' 분야예술인인지 혹은 '방송 연예' 분야 예술인인지 알 수 없다.
전화해보면 된다. 이게 만약 일이라면 진작 했을거다. 근데 심심해서 하는 건데 공무원들 귀찮게 하기는 싫었다. 사실 내가 귀찮다. 처음부터 좀 구체적으로 써놓으면 좋지 않았을까.
여기서는 '문학' 분야 예술인들을 '작가'라고 가정하고, 더 알아보려 한다.
우선 성별.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다. 여성은 6,579명, 남성은 6,115명이다. 이 직업이 몇백년 전만 해도 상당히 남성 편향적이었는데, 요즘은 잘 나가는 여성 작가들이 많다. 제인 오스틴, 조앤 케이 롤링, 박완서, 한강. 훌륭한 여성 작가다.
연령대는 어떻게 될까? 세상에 없는 무언가를 창조해내기 위해서는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다. 스포츠에서는 어린 나이의 '천재'가 나올 수 있다. 너무 단순한 분석일수는 있겠는데, 스포츠는 '정해진 목표'를 '남들보다 잘' 달성해내는게 중요하다. 확정된틀 내에서 남들보다 더 빠르고 훌륭하게 목표를 달성하면 천재가 된다.
그런데 '문학'은 아니다. '정답'은 없고 '승부'는 더더욱 없다. 목적지도 불분명하다. 나름의 깊이 있는 철학과 세상에 대한 넓고 독특한 관점을 토대로, 타인에게 어필하는 글을 써내야만 '대가'가 된다. '삶의 축적'이 필요하다.
뭐 수능 전과목 만점 맞고, 어린 나이에 고시 패스하고, 그런 류의 천재가 나타나기는 어려워보인다. 수능 만점 맞은 고3 보다는 평범한 애아빠, 애엄마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더 넓을 가능성이 높다. '지식'과 '경험'은 조금 다른거니까. 문학은 '경험'이 중요하다. 그래야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쓸 수 있다.
그래서 그런걸까? 이 바닥에는 어르신이 많다. 아래 표를 보자.
10~30대 비율은 10%도 안 된다. 9% 정도? 40대를 포함해도 23% 정도 된다. 60세 이상이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 49%나 된다. 50대 이상으로 따지면 80% 가량 된다. 통계를 보고 꽤 놀랐다. 50~60대 비율이 왜 이렇게 압도적으로 높은걸까? 몇 가지 추론을 해봤다.
첫째, '문학'의 특성 때문이라는 가정. 앞서 말했듯,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인생 경험이 꽤나 중요하다. 많은 스타 작가들이 '연륜과 경험'을 중요한 요소라고 언급한다. 축구, 농구 같은 스포츠 분야에서는 '젊음'이무기다. 따라서 프로 선수들의 전성기는 40세를 넘기기 힘들다. 마찬가지로 문학에서는 '연륜과 경험'이 중요한 무기이며 따라서 50대 이상의 비율이 높다는 가정을 해볼 수 있다.
둘째, '문학으로 먹고살기 거의 불가능한' 상황 때문이라는 가정.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작가들이 문학으로 창출하는 수입은 처참하다. 연 평균 500만원이다. 편의점 알바보다 못 번다. 언제 대박 날지는 모르는데, 제대로 된 글을 쓰려면 인생을 갈아야 한다. 경제학적으로만 따지면 투입 대비 산출이 최악인 선택 중 하나일 것이다.
특히 20~40대에게 '작가'라는 직업을 선택함에 따른 기회비용은 50대 이상보다 높다. 왜냐하면 이들은 교육을 받고 괜찮은 직장에 취직할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이 50대 이상보다 많기 때문이다. 평균적으로 따지면 20~40대 청년들이 가질 수 있는 직업의 폭이 50대 이상의 어르신들의 그것보다 더 크다.
20~40대는 '작가'라는 직업을 선택하면 향후 수십년 동안 '그 흔한 월급쟁이'가 받는 월급도 못 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들 나이대에서 작가를 선택하면 맞닥뜨리는 불확실성과 손해가 더 크다. 따라서20~40대보다는 50대 이상의 비율이 높은 게 아닐까, 싶다.
10~30대가 65%로 과반이다. 소녀시대 태연이 89년생이니까 벌써 30대다. 태연 누나.. 고등학생 때부터 봤다. 대중음악이라는게 외모가 크리티컬하고, 젊을수록 외모가 괜찮을 확률이 높기에, 10~30대가 주류가 아닌가 싶다.
이제 작가들의 암담한 수입을 살펴보려고 한다.
3. 돈, 그거 벌 수 있는거야?
아,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장강명은 '상금'으로만 2억 이상을 벌었다고 한다. 상금으로만 말이다. 강연료, 출판료 등을 따지면.. 스타 작가는 잘 나간다. 장강명은 동년배 작가 중 최고일 테니까.. 그래도 비슷한 나이의 잘나가는 CEO와 비교하면... 돈보고 할 직업은 아니다.
이제 작가들의 가구 수입을 살펴보자. 간단히 말하면, 대다수는 우리나라 평균보다(5,828만원) 보다 못 번다. 물론 여기도 양극화는 있다. 잘 나가는 소수는 꽤 잘 번다. 아래 그래프를 보자.
연 소득이 3천만원 미만인 가구가 44.4%에 달한다. 우리나라의 가구 중위소득은 4,567만원이다. 작가들 중 대다수가 중위소득보다 더 못 번다. 배고픈 직업이다. 그래도 8천만원 이상 버는 가구가 10.6% 된다.
여기서 잠깐. 이건 문학을 통해서만 번 돈이 아니다. 이 통계에는 강연료, 알바 급여, 배우자 수입 등 집안에 들어온 돈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말그대로 '가구 총 수입'이다.
그렇다면 '글 써서 버는 돈'은 얼마인가? 구체적인 숫자를 따지기에 앞서, 작가 중 30.9%가 문학으로 돈을 못 벌고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작가'라는 사람들이 말이다.
작가 중 30.9%가 '문학 활동'으로 돈을 못벌었다. 돈을 벌었어도 5백만원 미만으로 번 사람이 45.1%다. 문학 활동을 통해 돈을 아예 못벌거나, 벌었어도 연 5백만원 보다 적게 번 사람이 76%에 달한다. 작가들은 문학 활동으로 연평균 550만원을 번다. 강의료, 강연료 다 제끼고, 책으로 쇼부쳤을 때 얘기다.
물론 이 통계는 한때 '작가' 타이틀을 달았지만 '작가 일'을 하지 않는 사람도 포함하고있다. 과소계상 됐을 수 있다.현실이통계만큼 암담하지않을 수 있다는 것. 그래도 작가 일로 돈 버는게 만만해 보이지 않는다.
상황이 이러하니, 전업으로 작가 일을 하는 사람은 49%다. 과반이 안 된다. 겸업을 하는 비율이 51%로 전업 작가보다 많다.
아, 작가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4. 출판 산업은 늪에 빠졌다.
왜 이렇게 됐을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책이 안팔린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에서 역성장을 겪은 후, 침체기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대표적인 산업이 바로 출판 산업일 것이다.
'97년만 해도 매출액이 4.8조 정도였는데, '18년에는 3.3조로 쪼그라들었다. 아래 그래프를 보면 알겠지만, 97년을 분기점으로 가파르게 감소한 이후, 늪에서 계속 허우적거리고 있다.
만약 내가 책이라는 걸 쓰게 된다면 아마 사회과학 분야로 분류될 거다. 이 곳은 더 답이 없다.
인터넷 서점 예스 24의 조사 결과다. 1999년과 2018년의 베스트 셀러 100위 도서를 분야별로 구분했다. 20년 전만해도, 경제경영 + 사회정치 책이19권은 됐다. 20% 정도다.
2018년에는?한 권도 없다. 사회과학과 가장 가까워 보이는 '인문' 분야에서도, 「미움받을 용기」, 「어떻게 살 것인가」와 같은 '실용 인문서'가 대세다. 삼촌이나 아저씨들이 본인들 대학다닐 때사회과학 책이 그렇게 잘 팔렸다고 말하는데,나에게는 호랑이 담배피는 시절얘기로 들린다.
누군가 물을 수 있겠다. 인터넷 서점에서 낸 통계가 전체 사회를 대표할 수 있냐고. 그래서 더 찾아봤다.
국민독서 실태조사라고, 문체부가 발표한 통계다. 성인들에게 가장 선호하는 도서 분야를 고르라고 물었다.경제·경영은 8%, 정치/사회·시사는 5%를 차지했다.
이에 반해 문학은 24%, 장르 소설은 13%, 취미·오락·여행·건강은 11%, 종교·철학은 10%, 자기계발은 9%다. 사회과학을 선호하는 사람은 소수다.
만약 내가 사회과학 서적을 낸다면 '돈'은 기대하지 않는게 합리적이다. 그럼에도 나는 능력과 기회만 된다면 책을 내고 싶다. 이 세상에 없는 무언가를 새롭게 발견해내고 창조해내는 것. 그걸 해보고 싶다. 그때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면서 내공을 키워야겠지만.. 근데 진짜로 책을 낼 수 있으려나? 사실 잘 모르겠다. 직장 생활의 목표긴 한데..
5. 자율차 기술 vs 자율차 대회
옛날에 일하면서 들은 일화다. 국책연구기관 박사와 전기차 정책에 관해 토론하다가 나온 말이다. 뭐냐면, 한국의 산업 관료들이 '자율차 관련 선도 기술, 핵심 기술' 개발과 획득을 집중적으로 지원한다면, 프랑스의 산업 관료들은 '자율차 그랑프리 대회' 같은 '문화적인 아이템'도 염두에 둔다는 거였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소프트 파워'를고려해야 할 시점이라는 것.
설득력이 있다. 파리가 매혹적인 이유는 깔끔해서가 아니다. 솔직히 말해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곳이 파리다. 지저분하고, 불편하다. 젠 체하는 것도 정말 재수없다.
그렇지만 그네들은 관광 산업을 통해 앉아서 수조원을쓸어 담는다. 루브르, 오르세 박물관, 베르사이유 궁전부터 모네, 세잔, 고갱과 루이비통, 샤넬, 디올까지. 그 나라의 소프트 파워가 '파리와 프랑스에 대한 낭만'을 만들어내고, 그걸로벌어먹고 산다.
문화와 소프트 파워는 '예술인'이 만들어낸다. 이름 모를 드라마, 소설 작가부터 봉준호, BTS까지. 우리나라 문화는 이제 발돋움하는 상황으로 보인다. '기술 강국'도 중요한데, 그 이상의 나라가 되려면 문화가 융성해야 한다. 도서관이 더 생기고, 대중적이지 않은 책도 계속 발간되고, 괜찮은 학술 연구가 있으면 풍부한 지원을 받고. 발레, 음악 등을하는 사람들이 제 값 받고 일하고.
'예술인'이 마음껏 창작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우리도 언젠가는 '반 고흐'나 '괴테'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우리도 진정한 선진국이 된다.
구체적인 예술 진흥 방법은 차차 생각해 나가야겠지만, 기술이나 복지에 관심을 쏟는 만큼 '예술'에도 관심이 필요하다는 걸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일년에 두세번 예술의 전당 등에서 공연을 볼 수 있도록 하는 바우처를 준다면 Win-Win 아닐까. SOC 사업에 비해 예산 소요가 더 크지도 않을 거다. 그런데 이런 '문화 정책'들은 예산 투입에 따른 '편익'이숫자로 도출되기 어려운지라, 예산 당국이나 주무 부처에서 적극적으로 요구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이럴 때는 '정치'가 나서야 하는데..
'예술'도 공공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예술과 문화'가 융성하면 사회에 이롭다. 그런데 개인의 입장에서 이 분야에 진입할 경우 삶이 어려워질 게 분명하다. 흥미와 재능이 있어도 진입을 꺼리게 된다. 그러다보면 '예술과 문화'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최적인 수준보다 더 적게 공급이 된다. 이런걸 경제학에서는시장 실패라고 한다. 정부의 주요한 역할 중 하나가 바로 시장 실패를 보완하는 것이다.
몇십년 후에 나는 '재미있는 책'을 쓸 수 있을까? '재미있는 책'을 '재미있게, 내실있게, 잘' 쓰고 있다면, 괜찮게 살았다는 증거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