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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해의 취미생활 Jan 16. 2020

자본주의가 망할거라고 생각하니?

사회학자의 국제 경제체제 분석 : 「세계체제 분석」, 임마뉴엘 월러스틴

사회과학 서적인 「세계체제 분석」을 읽고 나름의 생각을 정리한 글입니다.

사회과학의 거장 임마뉴엘 월러스틴이 쓴 이 책에는 자본주의 세계경제에 대한 그의 이론이 함축적으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 글의 구성

<1> 자본주의라는 자연스러움
<2> 「세계체제 분석」
<3> 요즘의 세계경제 : 쇠퇴기?
<4> 아쉬움이 남는다
<5> 결론


1. 자본주의라는 자연스러움


우리 사회는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을 토대로 운영되고 있다. 자본주의에 따라오는 수식어는 굉장히 많다. 발전, 경쟁, 최적화 같은 긍정적 수식어도 있고, 물신숭배, 탐욕 같은 부정적 수식어도 있다. 그런데 수식어는 넘쳐나지만, 자본주의가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는 드물다.


뭐니뭐니 해도 자본주의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돈'이다. 하지만 '돈'이 중요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나? 미켈란젤로를 키워낸 메디치 가문은 으로 유럽의 정치경제에 영향력을 끼쳤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가 바뀌게 되는 결정적인 요인 중 하나는, 권문세족이라 불리는 소수가문이 대부분의 부동산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이었다.


'재물을 탐하지 말라'라는 격언은 2천년전의 기독교 십계명에도 들어있다. 돈은 언제나 중요했다. 요즘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돈 많이 버는게 최고의 가치가 되는 시대가 됐다. 그렇다면 질문 하나 던질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돈이 중요하다면 우리가 살고있다는 '자본주의'라는 게 뭐 그렇게 특별한가?


작년에 타개한 사회학자인 임마뉴엘 월러스틴이 이에 답해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사회학과 역사학에서 한 획을 그은 '세계체제 분석'을 제창하고 확립했다. 아이비리그 대학인 컬럼비아 대학에서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뉴욕 빙헴튼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페르낭 브로델 센터' 책임자로 재직했다. 우리나라에 세계 체제론을 소개해온 백승욱 교수가 쓴 월러스틴의 기사가 그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듯 하다. (링크)


월러스틴은 삼촌뻘, 엄마뻘되는 연령대의 사람들은 좀 알텐데, 나한테는 아인슈타인만큼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1930년도에 태어난 사람이다. 김수행 교수의 서거에 따라 서울대학교에서도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계보가 끊겼다는 소리가 들린다. 월러스틴은 정통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도 아니니, 잘 가르치는 곳도 없다. 나를 포함한 요즘 애들은 잘 모른다.


 우연히 만났다. 도서관을 걸어다니는데, 되게 촌스럽게 생겨먹은 책이 있었다. 2004년에 출간된 책이니, 책도 좀 더러웠고 올드했다. 뭐 이런책이 있나, 하고 빌려봤다. 5년전이다. 행운이었다. 자본주의와 경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배울 수 있었다. 이 책 한권은 그동안 대학에서 수년간 배우고 있었던 인문학, 경제학큼이나 나에게 영향을 미쳤다.




대가가 직접 소개하는 그의 이론. 300페이지도 안되는 이 책 한권에, 통찰이 넘쳐난다. 이 브런치 글에서 모든걸 다룰 수는 없고, '자본주의의 정의와 미래'에 대한 그의 이야기를 살펴보려고 한다.






2. 「세계체제 분석」


※ 인용구는 색체 + 볼드체


# 자본주의의 의미


저자는 자본주의를 간단하게 정의한다. 자본주의란 자본의 끝없는 축적에 우선권을 부여하는 체제다. 돈은 역사적으로 항상 중요했다. 자본주의 특별한 점은 돈,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윤 축적'이 가장 우선시되고, 그것이 정당성을 얻는다는 거다.


서양 중세를 보면, '신'이 우선시됐다. 유대인이 금융업에 집중하게 된 것도, 기독교 윤리에서 돈은 '천박한 것'으로 간주됐기 때문이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천박하고 죄악 가득한 유대인 천박한 일을 하는게 당연했다. 물론 이건 나중에 '프로테스탄트 윤리, 칼뱅주의'의 부흥로 인해 바뀐다. 그 후로 '부'는 신이 주신 선물이 됐다.


신뿐만 아니라, 국가도 ''보다 쎘다. 전쟁 한답시고 세금 걷어가고, 소유권 제대로 인정안하고.. 하여간 자본주의가 확립되기 전에는, 돈보다 쎄고 중요한게 여럿 있었다.


자본주의가 언제 생겼냐고? 혹자는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을 꼽기도 하지만, 저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세계 즉, 근대 세계체제의 기원은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말한다. 네델란드, 잉글랜드 등에서 시작된 이 세계체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팽창하여 지구 전체를 뒤덮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 체제는 불평등하다. 세계 경제 분업을 필요로 하는데, 이 분업은 생산을 핵심부적 제품생산과 주변부적 제품생산으로 세계를 양분한다. 이윤 획득의 정도는 독점화의 정도와 연관되어 있는데, 핵심부적 제품은 (준)독점에 의해 통제되는 생산과정으로 이윤 창출이 잘 된다. 주변부적 제품생산은 경쟁이 심한 생산과정이다. 이윤 창출이 안 된다.


이윤은 핵심부적 제품을 생산하는 중심부 국가가 가져가며, 주변부적 제품을 생산하는 국가들은 이 체제에서 사정이 나아지기 어렵다는 것. 


중심부-주변부 사이에 한국과 같은 반주변부 국가가 있다. 이 국가들은 주요 선도 산업얼마나 성공적으로 유치, 육성하느냐에 따라 중심부에 편입될 수도, 주변부로 떨어질 수도 있다. 지금으로 치면, 반도체·자율차 같은 첨단 산업이 있느냐가 국가 경쟁력을 결정한다는 얘기다. 이 선도 산업을 이끌어가면 '이윤 축적'이 가능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콩고물 떨어지기만을 기다는 신세가 된다는 말.


'선도 산업 보유 여부'를 기준으로 중심부-반주변부-주변부로 분화되고, 이를 토대로 생산-교환하며 자본 축적이 제 1의 목표가 되는 시스템이 자본주의 세계경제라고 저자는 진단한다.


그런데, 저자는 체제의 미래가 어둡다고 한다. 지금 이 시기가 다른 체제로 바뀌는 이행의 시기라고 말한다. 먹고 살기 어려운 하루이틀이 아닌데, 저자는 왜 자본주의의 종말을 말할까?


# 자본주의의 미래 : 바뀔 것이다


저자는 단언한다. 역사적 체제들은 저마다 수명을 지니고 있는데, 이 체제는 더 이상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과 마주치게 되며, 이로써 체제적 위기라고 부를 만한 상황에 처한다고 말이다. 그는 지금을 다음 체제로 나아가는 이행의 시기라고 부른다.


왜?


자본주의는 자본의 끝없는 축적이 한계에 마주칠 때 위기에 봉착한다. 지금이 그 시기라는 거다. 저자는 자본 축적을 방해하는 피할 수 없는 몇 가지 요소를 꼽는다.


먼저 임금이다. 지난 수십년간, 공장은 임금이 낮은 지역으로 이동해왔다. 처음엔 중국으로 갔다. 중국의 임금이 올랐다. 그러자 베트남으로, 인도로 이동하고 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임금 지급 비용의 증가에 대해 공장 이전과 같은 특수한 해결 방법이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지역자본주의 세계 경제 내에서 점점 줄어들게된다.


쉽게 말하면, 중국 노동자의 임금이 올랐듯 베트남, 인도도 그렇게 된다는 것. 이 과정이 지속되면 공장들이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게되며, 결국 피고용자의 임금 수준을 낮출 수 있는 방법은 이제 존재할 수가 없게 된다는 거다. 


환경오염도 문제다. 생산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환경오염 처리비용은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지구 온난화는 지속되고 있다. 누군가는 이걸 막기 위해 돈을 써야 한다. 석유, 가스 같은 자연 자원 고갈도 문제다. 자연에는 한계가 있다.


옛날에는 기업들이 모르는 척하며, 오염물질을 배출하거나 자원을 과도하게 착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부담을 지라는 요구를 무시할 수 없게 된다. 공장에 정화 장치를 설치하거나, 더 친환경적인 에너지 소비 방식을 요구받는다는 것. 이렇게 비용을 내부화하라는 압력을 받게된 결과, 기업들은 생산비용의 상당한 증가를 마주한다.


생산비용 증가에 따라 기업의 이윤은 떨어지고, 자본 축적은 어렵게 된다. 이러면 고용 창출력도 약화되니, 실업과 복지 부담은 증가한다. 아쉽게도 세금은 옛날보다 덜 걷힌다. 계속 이러면, 사회에는 불만이 누적되고 다른 체제에 대한 요구가 등장하게 된다.


결국 자본주의가 다른 체제로 대체된다는게 그의 요지다.


# 이외에도


나는 '자본주의, 자본주의의 미래'에 대한 그의 주장 중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것만 인용했다. 그렇지만 이 책은 훨씬 더 큰 걸 다룬다.

 

먼저, 지금의 세계체제를 구성하는 지(知)문화를 다룬다. '이데올로기'에 대해 다룬다고 보면 되려나. 과학, 인문학, 그리고 사회과학이 왜 지금의 형태를 가지게 됐으며, 이것이 체제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분석한다. 또 압도적인 지위를 차지한 자유주의 사상의 특징과 한계도 서술한다.


헤게모니도 다룬다. 저자에 따르면 17세기 중반의 네델란드, 19세기 중반의 대영제국을 거쳐 20세기 중반의 미국이 세계적인 헤게모니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헤게모니가 위기를 맞 됐다고 본다. 헤게모니가 '어떤 의미이며, 필연적으로 왜 다른 헤게모니로 대체되는 지'도 다룬다.

    

한 주권국가가 이윤 축적과 산업 육성을 위해 행사할 수 있는 전략도 말한다. 상품·자본·노동의 국제적 이동에 대한 규칙, 자국 내부의 재산권 규정, 고용·피고용자간 관계, 경제 과정의 독점허용·정도 제한 등을 조정하는 행위가 그것이다. 우리나라가 이런걸 잘 했다.


이 책은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종말'을 말하기는 하지만, 그 대안으로 '사회주의'를 꼽지는 않는다. 대신 여러 가지 가능한 대안이 있으며, 우리가 역사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3. 요즘의 세계경제 : 쇠퇴기?


2008년,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터졌다. 베어스턴스 등 잘나가던 미국의 투자은행들은 폭망했다. 글로벌 경제는 극심한 침체기로 들어섰고, '양적 완화' 같은, 그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극약 처방들이 내려졌다. 자본주의 체제가 종말에 처했다는 담론 홍수를 이뤘다. 월러스틴은 1970년 이후로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이행의 시기에 들어갔다고 말한다.


내가 읽고 듣고 쓰는 법을 배워가는 성장기에, '자본주의 종말론'을 꽤나 많이 마주했다. 물론 100년전 마르크스도 그런 말을 했지만..


이 책이 나온지는 20년 정도 됐고, 금융위기는 10년 정도 됐다. 세계 경제는 망하고 있을까?



세계은행과 OECD의 GDP 성장률 통계다. 작년에 비해 GDP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평가한다. 빨간색이 OECD국가인데, 추세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특히 2009년에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종말론이 나올만도 했다. 감소폭을 보면, 충격이 꽤 큰걸 확인할 수 있다.


2018년, OECD 국가들은 4% 성장률을 기록했다. 물론 70년대와는 비교하면 낮다. 하지만 이 정도의 성장력이 자본주의 체제를 끝내버릴 정도의 것인지.. 전세계 GDP를 기준으로 하면, 60년대나 지금이나 성장률에 있어서 큰 차이가 없는 걸 볼 수 있다. 물론 떨어지고 있긴 하다. 근데 이게 종말의 징표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까?


옛날보다 성장동력이 약해진건 맞는데, 이게 체제 자체의 붕괴를 촉발할 정도냐는건 또 다른 문제 아닐까.


세계은행의 제조업 부가가치 증가율에 관한 통계다. 통념과는 달리, 제조업 부가가치 증가율은 증가 추세다. 생산성 증가가 존재한다. 우리나라는 빨간 줄인데, 하락하다가 소폭 반등했고, 미국도 계속 물먹다가 제조업 르네상스니 뭐니 하면서 살아나는 추세다.


제조업은 아직도 부가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다. 뭔가 돈이 된다. 자율차, AI, 신재생에너지 등 신성장동력의 파급력도 아직 가시화되지 않았다. '금광'이 아직 남아있을 수 있다는 얘기고, 그게 남아있으면 경제는 다시 호황으로 진입할 수 있다.


월러스틴은 '생산용 증가로 인한 이윤율 저하'를 자본주의 체제 붕괴 원인으로 봤다. 그런데 로봇과 자동화는 생산 비용을 장기적으로 감소시켜주지 않을까? 풍력,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는 석유, 가스와 달리 무한하다. 에너지 생산도 월러스틴의 예상과는 달리 오히려 저비용으로 무한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자동화로 인한 실업, 실질 소득 감소 꽤나 큰 사회적 불안 요소다. 그래서 기본 소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기도 하고..


그렇지만 지금이 자본주의가 종말로 향해가는 '이행의 시기'라.. 솔직히 난 잘 모르겠다.






4. 아쉬움이 남는다


이 책은 개론서다. 다작으로 유명한 저자이기에, 저자가 세운 학문은 이 한권의 책이 아닌 수많은 논문과 책에 구체적으로 쓰여져 있을 거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는다.


먼저 지금이 '이행의 시기'라는 저자의 주장에 대해서다. 만약 지금이 '이행의 시기'라면 보다 더 많은 근거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가령 제조업 영업이익률이 곤두박질 치고 있다든지 하는 '통계적 근거' 말이다.


또 '이행의 시기'가 자본주의 체제를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비전이 부족한 점도 아쉽다. 이 시기를 거치면 체제의 근본적인 속성이 바뀌는 건지, 아니면 점진적 개선이 이뤄지는 지에 대해서 말이다. 저자는 균열은 다수의 자유와 소수의 자유를 모두 확장하고자 하는 이들과 다수의 자유나 소수의 자유 둘 중 하나를 더 선호하는 것처럼 위장한 채 비자유 체제를 추구하는 이들 사이에 그어질 것이라고 말하는 것에 그친다. 보다 더 깊은 논의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5. 결론


그럼에도, 이 책은 나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경제와 사회, 그리고 역사를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배우는 경제학은 국제관계와 같은 '정치학, 이데올로기와 같은 '사회', 장기분석과 같은 '역사학'은 배제하고, '경제'만 따로 분리해서 가르친다.


이렇게 면 경제학은 '과학적'으로 보일 수는 있겠지만, 사회적, 역사적 맥락과 유리된다. 현실과 동떨어진 학문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주된 이유다. 저자는 통합적인 시각을 가지고 자본주의 체제를 분석하고자 노력했으며, 이는 학교에서 배웠던 그것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거였다. 새로운 차원의 자극이자 충격이었다.


'비판적 사회과학'에 대해 처음 일깨워준 책이기도 하다. 개인의 자유의지, 국가의 독립 주권,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자유시장, 국가로부터 독립된 경제와 같은 주류 이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구체적인 통계가 부족할 수 있지만, 거시적 인사이트랄까 그런 측면은 대단하다.


사회과학도라면 한번 쯤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색다른 뭔가를 원하는 친구에게 빠지지 않고 추천하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고 영어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가 쓴 책과 논문을 더 많이 읽고 공부해보고 싶었다. 물론 고시공부다 뭐다 하면서 오래 못 가긴 했지만..


세상을 보는 다른 시각을 알고 싶으면,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참고자료]

GDP Growth Rate(Annual) - World Bank('19)

OECD Countries GDP - OECD('19)

Manufacturing Value Added - IMF('19)

이코노크러시 - 조얼/카할 모런(페이퍼로드,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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