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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해의 취미생활 Feb 01. 2020

미국의 명문 사립고등학교, 세인트폴

사회학자의 미국 명문고 분석 : 「특권」, 세이머스 라만 칸

사회과학 서적인 「특권」을 읽고 나름의 생각을 정리한 글입니다.

이 책은 컬럼비아 대학교의 젊은 사회학자인 세이머스 라만 칸이 저술했습니다. 미국의 명문 사립고등학교인 세인트폴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한 책입니다.

※ 글의 구성

<1> 명문 고등학교
<2> 「특권」
<3> 나는 능력이 있는가
<4> 한국의 세인트폴, 특목고
<5> 결론


인용구는 색깔 + 볼드체


1. 명문 고등학교


한국에서 명문 고등학교가 어디냐 물으면, 외고나 자사고를 말할 거다. 명문 대학교 많이 가는 학교가 명문 고등학교다. 누군가는 반론을 제할 수도 있다. 그게 왜 '명문'을 가르는 기준이냐고. 충분히 유효한 의문이긴 한데, 그래도 많은 사람들은 그냥 렇게 말한다. 우리나라만 이런 것도 아니다.


미국도 비슷하다.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스탠포드 같은 명문 대학교에 많이 가는 학교가 명문 고등학교로 인정받는다. 그리고 이 나라는 '국가로부터의 독립' 경향이 워낙 쎈 지라, 사립 학교의 힘이 쎄다. 명문 사립고등학교가 많다.


세인트폴이 대표적이다. 이 학교는 1856년에 설립됐다. 200년을 향해간다. 우리나라에 200년 된 학교가 있나? 전통이 깊다. 전통과 학비는 비례하는걸까? 연간 학비만 6만$이다. 우리나라 돈으로 7천만원이다. 딱 봐도 아무나 가기 힘들어보인다.


대신 교육의 질이 높고, 진학 실적도 우수하다.


교사들의 수준이 대단하다. 석사 학위 이상 취득자가 76%다. 커리큘럼도 다양하다. AI, 로봇 공학 같은 '대학에나 있을법한 수업'은 물론, 선형 대수, 희랍어, 발레, 연극과 같은 클래식한 과목도 열린다. 학생이 원하는 과목이 없을 경우 맞춤형으로 열어주기도 한다. 천문학 수업도 열렸다고 한다.


어째, 엥간한 대학보다 나아보인다.. 보통 대학보다 더 비싸니 당연한 걸 수도 있지만.


학교 전경. 딱 봐도 보통 고등학교는 아니다.


재학생들이 가장 많이 진학하는 대학은 하버드를 비롯한 아이비리그 대학이다. 명문 대학교 합격 비율은 전국 평균 대비 3배 이상이고, 졸업생의 80%가 전국 상위 20위 대학 내에 진학한다.


20위 대학이 어느정도 수준인지 한번 찾아봤다. 그게 UCLA다. 동일 선상에 놓을 수는 없겠지만, 우리나라에서 경제학으로 UCLA 박사 뚫으면 부러움을 산다. 이 고등학교, 확실한 결과를 뽑아내고 있다.


「특권」이라는 책은 이 명문 사립고등학교를 분석한다. 이 학교를 졸업하고 컬럼비아 대학에서 사회학 교수를 맡고 있는 세이머스 라만 칸이 썼다. 엘리트 연구에 있어서 촉망받는 학자라고 한다. 78년생인 그는, 이 책을 통해 33살에 C.라이트 밀스 상을 수상한다. C.라이트 밀스 상은 사회학 분야에 큰 공헌을 한 사람에게 주는 명망있는 상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수년이 지난 후, 그는 세인트폴에 돌아간다. 이번엔 학생이 아니라 '교사'다. 그리고 학생들과 가장 밀접한 위치에서 교류하며 학교를 분석한다. 미래의 엘리트가 될 이 학생들은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살까?








2. 「특권」



<1> 왜 이 연구를 하게 됐는가?



한 사람의 미래 소득을 예측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변수 중 하나는 바로 교육 수준이다. 그리고 엘리트 교육기관 출신들은 훨씬 더 높은 임금을 받는다. 그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인적 자본을 획득하기 때문이다. (「20 vs 80 사회」라는 책에 그 매커니즘이 잘 설명되어 있다 링크) 


세인트폴은 하버드, 예일 같은 엘리트 교육기관으로 많은 학생을 보낸다. 졸업생들은 높은 소득과 더불어, 준수한 지위 얻을 가능성이 높다. 다른말로 하면, 미래에 엘리트로 자리잡을 확률이 높다.  


저자이 학교 졸업생이다. 그는 성공한 외의사인 아버지와 간호사인 어머니를 둔 덕에 7학년 때부터(우리로 치면 중1) 사립 학교를 다녔다. 필요할 경우, 언제든 과외를 받을 수 있었다. 그 결과, 세인트폴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는 양질의 교육을 원하는 만큼 충분히 받을 수 있었다. 그의 부모님은 부자였다.


그렇지만 그의 말을 빌리자면, 세인트 폴에는 그가 살던 동네의 전문직 중산층 가정들과는 차원이 다른,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상류층 자제들이 모여 있었다. 그와는 차원이 다른 '진짜 부자' 집안 아이들이 많았다. 게다가 저자는 이민자 출신의 유색인종이다. WASP라고 불리우는 미국 사회의 주류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이방인성을 인식했다.


감수성 예민했던 그 시절, 그는 친구들의 특권 의식이 미치지 않는 기숙사 방구석에 쳐박혀 안식을 찾았다. 



딱 봐도 WASP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대학교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나서, 그는 모교로 돌아간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고 좋은 학교로 진학할 가능성이 높은 학생들이 모여있는 곳. 엘리트의 산실이라고 인정받는 세인트폴.


스스로 엘리트라고 자부하고, 또 그렇게 될 확률도 높은 이 학교 학생들은 도대체 뭘 배울까? 그들은 과거의 엘리트와 어떻게 다를까? 우선 엘리트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살펴보자.



<2> 신엘리트 사회



"너 누구집 자식이니?"

지금도 중요하지만, 옛날에는 더 중요했던 질문이다. 천민의 자식으로 태어나면 평생 천민으로 살 확률이 높았고, 귀족이면 평생 귀족이었다. 동양/서양 가릴 것 없이, 옛 사회에서 한 개인의 인생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변수는 바로 '핏줄'이었다.


이게 근대로 넘어오면서 조금씩 변했다. 이를 설명하고자 저자는 나름대로 시대를 구분한다. 엘리트 기준으로 보는 경우, 역사는 구체제 - 구엘리트 사회(근대) - 신엘리트 사회(현대)로 나뉜다.


우선 구체제와 구엘리트 사회는 뭐가 다를까?


구체제에서 구엘리트 사회로의 주된 변화는 작위의 상속에서 부의 상속으로, 그리고 귀속 집단을 중시하는 것에서 개인을 중시하는 것으로 바뀐 데 있다. 귀족, 천민 같은 기준은 사라졌다. 대신 '얼마나 부유한가' 또는 '얼마나 능력있는가'가 계층을 구분짓는 새로운 기준이 됐다. '핏줄'은 더이상 과거와 같은 정도의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됐다. 너가 귀족 집안인건 알겠는데, 그래서 어쩌라고?


구엘리트 사회는 차츰 신엘리트 사회로 변화한다. 차이점은 엘리트로 진입하는 통로의 크기다. 구엘리트층에서 신엘리트층으로의 변화는, [엘리트에 진입할 수 있는] 잠재적 참가자들을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로(여성과 유색인종까지) 확장한 데 있다. 과거에 흑인, 여성은 게임에 참여하지도 못했다. 그렇지만 요즘에는 흑인 대통령, 여성 CEO가 종종 등장하곤 한다. 진입 넓어졌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능력'이다. 옛날 귀족들은 그들을 유리하게 만들어 주는 자원들 주위로 성벽을 쌓고 해자를 두르는 계급이었다. 태생이 보잘것 없는 평민들과는 다르다는 구별짓기. 그 구별은 '핏줄'에서 나온다.


반면, 신흥 엘리트인 기업가, 관료, 전문직들은 스스로를 훨씬 더 개별화된 존재로 생각하며, 현재 자신의 위치가 자신이 해온 노력의 산물이라고 인식한다. 그들은 '핏줄'이 아니라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엘리트가 된 것이라고 인식한다.  



<3> 나는 능력이 뛰어난 것일 뿐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신엘리트 사회에 살고있다. 세인트폴은 엘리트를 길러내는 대표적인 학교다. 그리고 이 학교는 학생들에게 '능력주의'를 주입한다.


학생들은 이 학교에 입학했다는 자부심이 있다. 중학교 때, 아니 어쩌면 그 전부터 열심히 살아왔고 능력도 충분하기에 '지금 이곳'에 왔다는 거다. 그들은 능력주의 안에서 자신의 성공을 노력과 재능의 산물로 설명하고, 특권 의식을 거부한다.


메리라는 학생이 세인트폴의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항상 열심히 공부하면서도 불안한 여학생 메리. 교사인 저자는 그녀를 좀 풀어주고 싶었다. 그는 말한다. 공부도 일도 인생에 있어 별거 아닐 수 있다고. 그렇지만 그가 일의 중요성을 깍아내리려 하자, 메리는 그런 그를 되게 나무라면서 그 또한 항상 사무실에만 있다는 점과 인생에서 성공이란 노력의 대가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학생들은 '유능'하기 위해 노력한다. 다만 그들은 유능함을 기준으로 할 때, 어째서 부유한 집안의 백인 출신들이 주로 선택받는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 학교에 입학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일 수도 있었던 부모의 재력, 양육 환경에 대해서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노력했고, 따라서 뛰어난 능력을 갖췄다고 생각한다. 물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야한다고 교육받고, 꾸준히 노력한다.


그들은 능력주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보다는, 능력주의를 체화하면서 살아간다.



<4> 경험이 중요하다



세인트폴은 '경험의 중요성'을 가르친다.


저자는 말한다. 엘리트가 된다는 건, 단지 행위자 내부에 뭔가(기술, 재능, 인적 자본)를 갖추게 된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체화된 수행적 행위로서, 이것이 가능하려면 뭔가를 갖춰야 될 뿐만 아니라 엘리트 조직(학교, 서클, 가문, 인맥, 등) 안에서의 경험을 통해 뭔가가 각인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쉽게 말하자면, 전통있고 위계질서가 쫙 짜여져 있는 엘리트 조직 내에서 성장해본 경험이 필요하다는 거다.  과정에서 조직의 규칙에 적응하는 법, 다른 계층의 누군가와 막힘없이 의사소통하는 법을 배운다. 리더로 성장하는 거다.


이 학교, 미국에 있지만 마냥 리버럴하지 않다. 선배들은 후배들의 옷차림을 지적한다. 식사 예절도 처음부터 다시 가르친다. 일주일에 한번 있는 연회에서, 후배들은 접시 나르는 법을 배운다. 대예배당에는 '연차'에 맞는 자리가 구분되어 있고, 기숙사에도 '연차'에 따라 앉을 수 있는 소파의 등급이 나뉜다. 꼰대 아니야?


가족 대대로 세인트폴에서 공부한 애번이라는 학생. 그는 처음에 건방을 떨었다. 우리 형이, 우리 아빠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대가는 꽤 가혹했다.


선배들은 그를 혹독하게 다스렸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팔에 잽싸게 주먹을 날린다거나, 샤워 중에 엄청나게 뜨거운 물이 쏟아지게 변기 물을 내려 버린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신입생들은 자신이 세인트폴의 일원임을 주장할 수 있는 역량은 시간이 지나야만 생기는 거라는 사실을 배워 나갔다. 어느 가문 출신인지는 중요치 않다. 이 조직에서 스스로 적응해야만 진정한 일원이 된다.


이 과정은 그들에게 한 가지 교훈을 알려준다. 사회에는 '위아래'가 있다. 위아래를 결정하는 건 '노력을 통한 능력'과 '시간을 통한 경험'이다. 그리고 이에 따른 차이는 당연하다고 말이다. 그들은 위계질서에 자연스럽게 순응하고 적응하는 법을 배운다.



<5> 위계질서가 편안한 엘리트



상놈들과 겸상하고 말하는 걸 불편해하는 귀족. 우리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엘리트의 모습일 것이다. 그런데 세인트폴의 신엘리트들은 다르다. 그들은 상류 문화와 하류 문화,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모든 것을 자유롭게 소비하는 범세계적인 엘리트이다.


이 청년 엘리트들은 클래식 음악도 듣고 랩 음악도 들으며, 고급 레스토랑도 가고 평범한 식당도 간다. 그들은 세상 어디에 있든 편안해 한다. 오늘날의 엘리트들은 문화적 성향이 잡식성일 뿐만 아니라 할 줄 아는 것도 많고 즐길 줄 아는 것도 많다.


엘리트들과 주변화된 사람들을 구별지을 때 제한된 취향을 가진 쪽, 편협하고 모르는 것을 배제하는 쪽은 [엘리트가 아니라 오히려] 바로 주변화된 사람들이다.


능력과 경험으로 위계질서를 한 계단씩 올라가는 그들. 그렇게 헤쳐 나가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경비원이라도 CEO와 마찬가지로 똑같이 막역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게된다. 그들은 위계를 자연스럽게 여긴다. 즉, 고위층의 삶을 살면서도 편안함을 갖춘 엘리트가 되는 것이다.


그들에게 위계질서라는건 불편한게 아니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거다. 사회에 위계질서는 당연히 있을 수 밖에 없고, 그에 따른 차이는 불가피하다.


그들은 아마 이렇게 생각할거다.


나는 '핏줄'이 아니라 '스스로 노력'한 결과, '능력'을 인정받아 여기까지 왔고, 누군가는 그렇지 못했다. 인종, 성별에 따른 차별도 없고 누구나 능력을 갖추면 보상을 받는 사회다. 뿌린대로 거두는 법이다. 나는 능력을 인정받아 세인트폴에 왔고, 좋은 학교에 가서 앞으로도 잘 살 거다.


그들은 자신들이 특별하다고 배우고, 이런 특별함을 깨닫기 시작한다. 이는 일종의 자기실현적 예언과 같다. 그들에게 이 세상은 누비고 다녀야할 공간이지, 자신들에게 부과된 질서나 규칙이 아니다.


그들에게 있어, 누군가의 실패는 그의 능력이나 노력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세상이 열려있는 곳이라고 인식한다. 만약 이 세상이 가능성으로 열려 있는 공간이라면, 왜 어떤 사람들은 실패하는가? 그건 그들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두가 이용 가능한] 가능성을 붙잡지 않기 때문이다. 



<6> 이 외에도



앞서 능력주의, 위계질서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학생들을 서술했다. 그렇지만 저자는 이 '편안함'이 인종과 성별, 그리고 출신에 따라 다르게 인식되는 것을 보여준다.


저자에 따르면 유색인종 학생들은 이 학교를 개소리라고 치부할 확률이 더 높다.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백인중심주의적인 엘리트 문화에서 유색인종, 여성은 여전히 소외된다.


흑인이자 여성인 칼라라는 학생. 이 학생은 저자에게 세인트 폴에 올 수 있었지만 들어오지 못한 학생들에 대해 얘기한 몇 안되는 애들 중 하나였다. 


이 학교에 올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고향 친구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왜 이곳의 학생들은 대부분 저렇게나 부자인 걸까? 왜 여기선 나처럼 생긴 사람이 이토록 적은 걸까?


저자는 이 물음들을 진지하게 다룬다.


이 책은 말한다. 우리의 엘리트들은 더 불평등해진 세상에서 더 다양해졌다. 다만 중요한 것은 부가 아니라 노력이요, 혈통이 아니라 재능이라고 주장할 때 엘리트들은 허구 속에 있다고.


우리는 능력주의 사회에 살고있다. 그런데 능력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과연 모두에게 공평한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엘리트의 정당성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3. 나는 능력이 있는가?


옛날에 「능력주의는 허구다」라는 제목의 책을 읽었었다. 책의 요지는 대강 이렇다.


현대 사회는 '능력'을 기준으로 돈, 지위와 같은 희소한 자원을 배분한다. '핏줄'이 결정적이었던 과거에 비해 공평해보인다.

그렇지만 '핏줄'은 여전히 한 사람이 체득할 수 있는 '능력'을 많은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태어난 국가, 노동시장 진입 연령 등 외부적 요인에 따라 동일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도 격차가 생길 수 있다.

그렇다면 의문을 제기해봐야 한다. '능력주의'의 정당성에 대해서.


당장 우리만 봐도, 사회가 발전하고 고착화되면서 계층별로 명문 대학교 진학률에 차이가 있다.


1970년부터 2003년까지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 입학생을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33년 동안 고소득 자녀 입학은 17배 늘었고, 농어촌 학생 비율은 5분의 1로 쪼그라들었다. 2016년 서울대 신입생 절반 이상이 특목고, 자사고와 강남 지역 학생이다. 잘사는 집 애들이 좋은 대학교에 더 많이 간다.


저자가 가졌던 의문을 여기서도 제기해볼 수 있다. 왜 좋은 대학교에는 잘사는 집 애들이 많을까? 잘사는 집 아이들의 능력이 태어날 때부터 탁월해서일까?  


뻔뻔해 보일 수 있지만, 능력주의 잣대로 보면 나는 꽤나 능력 있다고 평가 받는다. 재수없지만, 능력 없다고 말하면 욕 먹는다. 근데 이 능력이라는게.. 도대체 뭘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드는 요즘이다.


나는 대학을 한번에 갔다. 정시로 갔다. 수능에서 틀린 문제는 손가락으로 꼽는다. 알아주는 대학교에 들어갔다. 고액 과외를 받거나 강남의 유명 학원에 가본 적은 없다. 집에서 인강 듣거나 동네 학원 다녔다.


왼쪽이 우리학교다. 세인트폴에 비해 아주 조촐하고 귀엽다 ㅎㅎ 난 외고 갔으면 너무 스트레스 많이 받았을 것 같다.


대학교 다닐 때 행정고시에 붙었다. 시험은 2년 반 정도 준비했다. 1차 시험은 두 번 떨어졌다. 3번째 시험에서 한 번에 면접까지 다 통과했다.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신림동이나 학교 고시반에는 안 갔다. 동네 도서관 다니면서 인강 듣고, 교과서 보면서 혼자 공부했다.


대학 들어갈 때 큰 돈 쓴 것도 아니고, 고시도 꽤 빨리 끝냈다. 독학 했다고 얘기하면 신기해하는 사람이 많다. 능력 있다고 말해주는 사람도 꽤 있다.


그런데 이 능력의 기준이라는게 '시험 통과'인데, 솔직히 말하면 시험은 운빨이 꽤 중요하다. 당일 컨디션, 문제 배치 등이 꽤 영향을 미친다. 옆에 이상한 사람 한 명만 있어도 잡치기 십상이다. 다리 심하게 떨거나 하면..끔찍하다. 시험 당일의 운이 중요하다. 운이 나쁘지 않아서 붙을 수 있었다.


준비 과정으로 넓히면 '운'은 더 중요해진다. 경제적인 이유로 '시험 준비' 조차 못하는 경우를 종종 봤다. 또 경제적으로는 넉넉해도, 부모님이나 주위사람들이 쪼기 시작하면 그것도 문제다. 정신적으로 지원받지 못하면, 스트레스는 더 많이 받고, 에너지는 더 많이 소모된다. 더 불리하다.


삶의 전 영역으로 확장하면, '운'의 중요성은 훨씬 더 크다. 내 경우를 보면, 청소년 시절에 미국에서 살았던 경험이 추후의 삶에 큰 혜택을 가져다 줬다.


수능에서 영어는 '점수 따는 과목'이었다. 대학교 때 과외 구하기도 쉬웠다. 'XX대학교, 토플 XXX점, X년간 미국 체류' 써놓으면 전화가 금방왔다.


근데 이게 내가 잘해서 누렸던 건가? 아니다. 그냥 운이 좋아서 미국에 던 것 뿐이다. 물론 나보다 더 운이 좋은 사람들도 많다. 로또 대박난 사람도 있을 거고, 태어났더니 로또 몇십개에 해당하는 자산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뭐.. 그럼에도, 나는 스스로 꽤나 운이 좋았던 편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따지고보니까, 나의 '능력'이라는게 모래알 같아보인다. 그게 뭔지도 모르겠고. 만약 있다고 해도 '운빨'이 꽤 작용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도 노력이라는걸 꽤 했다. 그런데 만약 운이 영향을 꽤나 미쳤다면..이게 온전히 내 것만은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내가 능력있는게 맞나? 능력이 있다면, 이게 순전히 내 능력일까, 아니면 운빨일까. 운빨이 크다면, 나는 어떤 마인드로 살아야할까? 요즘 고민이다.


물론, 지적으로든 인성적으로든 앞으로 채워나가야 능력이 훨씬 많이 남아있다. 나는 아직도 배워야할게 너무 많다. 그렇지만 만약 그게 채워진다고해도, 그게 온전히 내꺼냐는건 또 다른 문제니까. 운이 좋아야 채울수 있지 않을까?






4. 한국의 세인트폴, 특목고     


얼마전 교육부에서 외고, 자사고, 국제고를 2025년까지 일반고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나는 아이도 없고 교육 분야에서 일하는 것도 아니다. 잘 모른다. 특목고와 일반고 사이의 격차가 크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구체적으로는 몰랐다. 고등학교 졸업한지 10년 됐다. 그래서 좀 찾아봤는데, 괜히 특목고, 특목고 하는게 아니였다.


학부모 부담금부터 보자. 일반고는 연간 3백만원 가량이다. 외고는 8백만원, 자사고는 1,200만원 가량이다. 일반고에 비해 특목고의 학부모 부담금이 몇배나 높다.


월평균 가구 소득도 차이가 크다. 서울지역 고1 학생을 대상으로한 조사다. 특목고 학생 과반 이상이 월평균 가구소득이 500만원 이상이다. 그런데 일반고는 20% 밖에 안 된다. 300만원 이상으로 범위를 넓히면, 특목고는 80%가 넘지만, 일반고는 50% 안 된다. 특목고에 잘사는 아이들이 확실히 많다.  


고교 서열화 해소 및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 - 교육부, '19



흥미로운 연구결과도 있다. 외국어 고등학교와 마이스터고등학교 재학생들을 비교했다.


외고 학생 90% 이상이 중학교 시절 반에서 10등 안에 들었던 반면, 마이스터고 학생은 40% 정도만이 그랬다. 아버지의 학력 수준도 차이가 난다. 외고 학생 86%가 아버지 최종 학력이 대졸 이상인데 반해, 마이스터고는 44%로 과반이 안 된다. 경제적 수준도 차이가 난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넉넉한 편이다'라고 응답한 비율이 외고는 36%이지만 마이스터고는 8%에 불과하다. 학생들 사이에 유의미한 차이가 있다고 보인다.



마이스터고등학교와 외국어고등학교 재학생들의 입학동기 및 개인배경 비교연구 - 충남대 교육연구소, '11




앞서 언급했듯, 서울대학교 입학생 중 절반 이상이 특목고, 자사고, 강남 출신 고교다. 좋은 대학교로 인정받는 학교들에서 이런 현상은 일반적일 걸로 보인다.


그런데 전체 일반계 고등학교 중 특목고, 자사고 비율은 각각 6% 정도 밖에 안된다. 학생 수도 다 합쳐봐야 15% 정도다. 그런데 좋은 대학교에 일반고만큼이나 혹은 일반고보다 더 많이 간다. 물론 특목고, 자사고라고 다 똑같지는 않겠지만, 평균적으로 따지면 일반고보다 진학실적이 월등히 높아 보인다.



고등학교 유형별 현황 -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연보('19)


나야 잘 모르니까 뭐가 맞는지 모르겠다. 다만 미래 학부모가 됐다고 가정해보면, 고민거리 하나가 줄은 건 분명하다. 남들이 특목고 보낸답시고 초등학교, 중학교 때부터 아이 교육에 적극 나서게 되면, 나도 그래야될 것 같은 압박을 느끼지 않을까. 그런 제로섬 게임을 할 필요가 없게 됐다.


적어도 초등학교, 중학교까지는 아이들이 마음 편히 학교에 다니는게 좋 것 같다. 물론 특목고 없어진다고 경쟁이 사라지지는 않을거다. 서열화된 대학 구조와 학력/학벌에 따라 노동시장에서의 격차가 큰 환경이 계속한다면, 좋은 대학교 진학을 위한 경쟁은 지속될 수 밖에 없다. 그래도 뭐.. 적어도 고등학교 진학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필요는 없어지는 거니까.






5. 결론     


재밌는 사회학 책이다. 저자 본인이 이 학교 출신이라 그런지, 이해도도 높다고 느꼈다. 스스로 세인트폴의 주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외부자의 시각에서 분석을 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는 어쨌든 스스로를 약간은 마이너로 인식하는 듯 하다. 그러니까 오히려 기존의 사회 구조, 규칙에 내재해있는 모순을 더 빨리 캐치해낸 게 아닌가 싶다.


미국 명문 사립고 학생들의 멘탈리티, 사회경제적 배경이 궁금한 사람이라면 읽어볼만 하다. 불평등에 관심있거나 교육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도 흥미롭게 읽을 것 같다. 조기 유학을 고려하고 있거나, 미국에서 똑똑한 아이들 어떤 교육을 받고 크는지 궁금한 사람도 재밌게 읽을 거다.


 봤다.


[참고자료]

https://www.sps.edu/admission/affording

SPS at a glance 2018-2019 - SPS EDU('20)

National University Ranking - U.S.News('20)

왜 부모를 잘 둔 것도 능력이 되었나 - 사회과학연구('16)

누가 서울대에 들어오는가 - 서울대학교('04)

전국 고등학교 유형별 현황 - 한국교육개발원('19)

고교 서열화 해소 및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 - 교육부('19)

마이스터고등학교와 외국어고등학교 재학생들의 입학동기 및 개인배경 비교연구 - 충남대학교 교육연구소(김남진,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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