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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해의 취미생활 Feb 05. 2020

토토로를 꿈꾸는 아이들

「이웃집 토토로」를 보고 꿈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약간의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1. 어른이 되고난 후 다시 본 토토로


「이웃집 토토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대표작 중 하나다. 1988년에 개봉됐고, 지금까지 매출액만 해도 총 3천만 달러 된다. 세계적으로 흥행했다. 영화를 보지 않았더라도 토토로아는 사람은 꽤나 많다.


애니메이션계의 클래식이라고도 불리는 이 영화는 미국 Academy of Sciene Fiction, Fantasy & Horror Films 후보작에 오르는 것을 포함, 꽤 많은 상을 받았다. IMDB 기준으로 평점은 8.2점이다. 높은 편이다. 얼마 전 개봉했던 「조커」가 8.6점이다.


「이웃집 토토로」 개봉 포스터, 오른쪽이 토토로다


나는 초등학생 때 「이웃집 토토로」를 처음 봤다. 일본 여행했을 때, 버스에서 봤다. 그때는 무서웠다. 시커멓고 거대한 토토로가 낯설었고, 어둑어둑한 분위기도 불편했다. 게다가 들려오는 일본어가 - 이유를 모르겠지만 - 소름끼쳤어서, 제대로 못 봤다.

십몇년이 지난 지금, 넷플릭스에 「이웃집 토토로」가 떠있는 걸 봤다. 그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원령공주」 같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다른 작품을 감명깊게 봤다. 한 작품을 세네번씩 반복해서 볼 정도 좋아했다.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이름을 믿고 「이웃집 토토로」를 보기로 마음먹었다. 분량도 90분 정도라 부담이 없었다.


90분 동안 따뜻함을 느끼면서 감상했다. 애들 영화가 아니라 어른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느꼈던 감정이나 생각을 남겨두고 싶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기 전, 다른 사람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봤나 싶어서 좀 찾아봤다. 그런데 애니미즘(조혜정/영화학회), 생태론(이승재/만화애니메이션학회) 측면에서 살펴본 글들이 많이 있었다.


나는 일본 문화에도 무지하고, 생태론도 잘 모른다. 이런 담론들에 무지하니, 그런 시각으로 영화를 감상할 능력은 없다. 대신 내 나름의 방식대로 영화를 감상했다.


에게 「이웃집 토토로」는 '꿈'에 대한 영화였다. 또 내가 닮고 싶은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 영화였다.






2. 대강의 내용


아빠와 두 명의 딸이 시골로 이사를 온다. 첫째는 초등학생이고, 막내는 4살이다. 엄마 어 고? 엄마는 몸이 아파서 장기간 입원중이다. 그들은 엄마와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왔다.


새롭게 이사온 시골집


그런데 이사날에, 아이들은 뭔가 이상한 걸 본다. 까만 점 같은 게 집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것들은 움직이기까지 한다. 영적인 존재인 듯 하다. 영적인 존재라니 뭔가 으스스하다.


그런데 아이들은 무서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호기심을 가지고 궁금해한다. 그런 아이들에게 아빠와 할머니는 '토토로' 대해 말해준다. 우리로 치면 아이에게 "저 숲에 도깨비가 있어" 정도의 느낌이랄까.


유일한 친구인 언니는 학교에 갔고, 아빠는 일하느라 정신이 없다. 혼자 열심히 놀던 막내 아이는, 우연히 토토로를 만난다.


첫 만남이 가관이다. 토토로는 덩치가 크고 시커멓다. 게다가 말도 없다. 무서 법 한데, 겁 없는 꼬맹이는 자고있는 토토로에게 장난을 친다. 코를 간지럽혀서 재채기를 하게 만들고, 배 위에서 방방 뛰어서 잠 깨운다. 그러다가 힘들었는지 정작 본인은 토토로 배 위에서 낮잠을 잔다.


그렇지만 토토로는 이 작은 꼬마 아이의 괴롭힘을 너그러이 이해해주면서, 자던 잠을 계속 잔다. 그들은 친구가 됐다.


아이의 괴롭힘에 자다가 깬 토토로. 그렇지만 짜증내지 않는다.


아이는 신기하고 놀다. 말로만 듣던 토토로를 만나니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산타 할아버지를 실제로 만난 아이의 환희와 비슷할 거다. 게다가 토토로는 아이 잘 받아줬다.


막내 아이는 아빠와 이웃집 할머니를 만나자마자 토토로를 만났다고 자랑한다. 언니에게도 말한 건 물론이다.


하지만 아빠는 어른 특유의 '아이 귀여워하는 웃음'을 짓는다. 다 큰 어른이 산타를 만났다고 자랑하는 아이 볼 때 짓는 그런 웃음 말이다. 말로는 믿는다고 하지만, 글쎄.. 토토로를 믿는 눈치는 아니다.


토토로가 있다고 소리치는 막내


가 많이 오던 어느 날, 자매는 우산을 들고 아빠를 마중나간다. 그때까지 언니는 토토로를 보지 못했다. 그런데 웬걸, 토토로가 뜬금없이 나타난다. 그런데 언니도 토토로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우산이 없는 토토로를 걱정한다. 그녀는 본인이 써야할 우산을 토토로에게 건네준다. 그들은 친구가 된다.


우산을 건네주는 언니, 넙죽 받는 토토로


앞서 말했듯, 엄마는 병원에 입원중이다. 그들은 엄마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빨리 만나기 위해 여기로 왔다. 그리고 대망의 날이 됐다. 바로 엄마가 집으로 오기로 한 날이다!


그런데 그날, 자매는 엄마가 감기 때문에 나오지 못하게 됐다는 소리를 들었다. 엄마 만나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린 자매, 속이 상한다. 막내는 엉엉 운다. 4살이다. 얼마나 보고 싶을까. 왈가닥 성격이 있는 이 아이는, 엄마 보러 간답시고 4시간이나 되는 길을 혼자 나선다. 그러다가 길을 잃는다.


날은 어둑해지는데, 막내는 사라졌다. 집에서 난리가 났다. 아니, 온 동네 사람이 난리가 났다. 옆집 할머니, 옆집 할머니의 친척의 친구까지.. 이 꼬마 아이를 찾느라 정신이 없다. 언니의 마음이 찢어지는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절망이 엄습한 바로 그 순간, 언니는 토토로 떠올다. 깊숙한 숲으로 가서 토토로를 찾는 그녀. 간절함이 통해서였을까? 그녀는 토토로를 만난다. 그리고 동생을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마음씨 착한 토토로, 그는 별일 아니라는 듯 웃으며 고양이 버스를 부른다. 언니는 이 고양이 버스를 타고 막내를 찾았고, 엄마가 있는 병원까지 갔다.


이게 대강의 내용이다.


고양이 버스를 타고 신나게 달리는 언니






3. 토토로를 꿈꿨던 아이들


# 토토로를 만나는 아이


영화를 보는 내내, 나도 모르게 입꼬리 계속 올라가 있었다. '애니' 보면서 실없이 웃고 있는 게 좀 바보같고 민망스러워서 일부러 입을 앙다물어 보기도 했는데, 입꼬리는 이내 올라가 있었다. 아이들이 사랑스러웠기 때문이다. 귀엽게 생긴 그들의 외양도 한몫했을 테지만, 결정적으로 그들의 '순수함'이 아름다웠다.

꼬마 자매들은 토토로가 있다고 믿는다. 그들은 동심과 순수함의 결정체다. 그들의 상상력은 '현실'이라는 것에 의해 오염되거나 제한되지 않았다. 그들은 토토로를 꿈꿨다. 그 결과, 어른들은 보지 못하는 토토로를 만났고 친구가 됐다. 그들에게 토토로는 '꿈'이자 '상상'인 동시에 '현실'이자 '실재'이다. 이들에게 '꿈'은 '현실'과 동떨어진 무언가가 아니다.


막내에게 토토로는 꿈이 아니라 현실이다


영화는 토토로가 상상이 아니라 '실재'임을 보여준다. 아이들은 토토로가 불러주는 고양이 버스를 타고 엄마를 만났다. 그리고 엄마에게 선물 전해줬다. 이들은 토토로와 함께 집 앞 정원을 가꿨다. 아빠는 싹이 핀 정원을 보고 놀랜다. 토토로가 날아가는 곳에는 바람이 불어서 사람들의 옷이 펄럭인다.


이 영화 토토로 물리적인 존재이자 현실에 발딛고 사는 '실제 생명체'을 보여준다.


엄마를 만난 꼬맹이들. 막내는 옥수수를 선물로 놓고간다. 엄마는 행복해한다.


다만, 어른들은 토토로를 보지 못한다. 오직 꼬맹이들만 토토로를 본다. 왜냐면, 꼬맹이들만이 토토로를 진정으로 믿고, 간절히 만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아빠는 '토토로 같은 걸' 만나기 위해서는 '간절히' 원해야 한다고 아이들에게 말했었다. 다만 아빠 본인은 토토로가 있다고 믿지 는다. 간절함도 없다. 그러니 만나지 못한다. 토토로는 자신의 존재를 믿고 간절히 원하는 사람에게만 현실이 되어서 나타난다.


내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많은 아이들 어릴적에 각자의 '토토로'를 가지고 사는 것 같다. 꼬맹이들 같이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느꼈다.


지역의 조그마한 아동센터에서 아이들과 함께한지 1년이 되어간다. 나는 꼬마 짝꿍이 있다. 이 꼬맹이는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이다. 맨날 옆에 앉혀놓고 한글 공부, 덧셈, 셈 공부를 많이 시켰다. 힘들어할 때면 편의점 가서 초콜릿, 아이스크림 사주거나, 밖에서 10분 동안 안아주면서 걷고.. 다른 애들하고 싸우면 따끔하게 혼도 내고. 그러다보니 정이 많이 들었다.


꼬마애랑 이렇게 친해지다보니, 좀 신기한 걸 발견했다. 얘는 내가 스파이더맨이랑 친구였다는걸 믿는다. 옛날에 내 손가락에서 거미줄이 나갔다고 하면, 본인도 알려달라고 한다. 집에 배트맨 차가 있다고 해도 믿는다. 드라큘라 백작 얘기하면서 유럽 사진을 보여주면,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끊임없이 물어본다. 드라큘라랑 밥 먹어 봤냐느니, 쟤네들이 사는 곳은 어디냐느니..


얘 뿐만이 아니다. 이런 얘기를 들려줄 때면, 주위의 다른 아이들도 귀를 쫑긋 세우며 듣는다. 꼬마 아이의 상상력은 끝이 없다. 호기심도 많다.


이로운건, 그들 나름대로 '꿈'이 있다는 거다. 대통령, 경찰, 의사, 카레이서.. 맨날 바뀌기는 하는데, 하여간 꿈이 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토토로'를 가지 살고 있다. 그들은 토토로를 만나고 싶어하고, 언젠가는 만날 수 있다고 믿는다. 저학년 애들 많이들 그렇다.


그런데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생만 되도 이게 좀 달라진다. 고등학생 되면 더 달라진다. 그들은 토토로가 없다거나, 있어도 본인들은 만날 수 없다는 소리를 너무 많이 듣는다. 너가 무슨 대통령이냐, 과학자냐 하는 식으로. 주위에서 그런걸 듣다보면, 이들의 삶 속에 토토로는 희미해진다.


그런데 영화에서 토토로를 실제로 만나는 건 누굴까? 능력있고 똑똑한 사람? 아니다. 마음 깊숙히 믿고, 간절하게 원한 꼬마 아이가 토토로를 만났다. 꼬마 아이는 토토로를 만났다고 아무리 말해도 주위의 비웃음을 산다. 그렇지만 실제로 토토로를 만나는건 토토로를 믿는 주인공과 언니 뿐이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토토로는 그것을 믿고 원하는 자에게만 그 존재를 드러낸다고. 그리고 토토로는  사람의 '꿈'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꿈도 비슷하지 않나. 믿고 원하는 사람에게만 모습을 드러내고, 나이를 먹으면서 차츰 희미해지고.


# 토토로를 잃어갑니다


미래 세대는 본인만의 '토토로'를 가지고 있을까? World Vision과 동그라미 재단에서 공동으로 발표한 결과가 답해줄 수 있을 것 같다. 「2017 한국 미래세대 꿈 실태조사보고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아이들은 '나이'를 먹어가며 '토토로'를 잃어가고 있었다. 나이 먹는다는 게 뭐 엄청 많이 먹는 게 아니라, 고등학생되고 대학생되고, 그 정도다. 아래 그래프를 보자.


한국 미래세대 꿈 실태조사 보고서 - World Vision('17)


회색선은 '구체적이고 분명한 꿈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다. 초등학생의 경우 80% 정도 된다. 근데 이게 고등학생 때는 59%로 떨어지고, 청년이 됐을 때 35%로 급감한다. 세상 경험이 많아질수록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 감소한다.


파란선은 '꿈이 없다'고 응답한 비율이다. 초등학생은 1% 정도 밖에 안된다. 그런데 이게 청년이 되면 11%로 급증한다. '꿈이 있어도 막연한 경우'인 빨간선의 경우, 초등학생은 23%이었으나 청년이 되면 55%가 된다.


즉, 청년 65% 정도가 '꿈이 없거나, 있어도 막연한 상태'가 된다.


'꿈을 이루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이유' 대한 응답도 좀 슬프다. '그냥 못 이룰 것 같아서'의 비율이 계속 늘어나는 걸 볼 수 있다.


아래 그래프의 노란색 부분을 보자. 응답 비율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초등학생의 16% 정도만이 '그냥 못 이룰 것 같다'고 생각했다면, 청년의 36%가 그렇게 생각한다. 나이가 들수록 '꿈'에 대한 무력감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한국 미래세대 꿈 실태조사 보고서 - World Vision('17)


근데 솔직히 고등학생이나 청년이나, 뭐 얼마나 나이가 들고 현실에 찌들었길래 그럴까?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 나는 꿈이 이뤄질 거라고 막연히, 그렇지만 자신감 있게 믿었다. 누군가는 철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냥 그랬다. 지금도 그렇다.  생각보다 '그냥 못 이룰것 같아서' 비율이 높아서 놀랬다. 아이들 꿈과 미래를 품은 존재인데..


꿈의 분포빈부격차와 관련이 있을까? 자존감도 빈부격차에 의해 영향을 받는 시대다. 당연히 꿈도 빈부격차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고 추정할 수 있다. 아닌게 아니라, 실제로도 그렇다. 아래 그래프의 노란색 부분을 보자.



자신이 빈곤하다고 응답한 아이의 10%가 꿈이 없다. 빈곤하지 않다고 응답한 아이는 6%만 그렇다. 빈곤하다고 응답한 아이의 48%, 빈곤하지 않다고 응답한 아이의 35%가 꿈이 막연하다고 응답했다.


즉, 빈곤하다고 응답한 아이의 60%가 '꿈이 없거나 막연'한 반면 빈곤하지 않다고 응답한 사람은 40%만 그렇다.


꿈 실현 여부에 대한 예측도 차이가 있다. 빈곤하다고 응답한 아이의 20%가 부정적으로 응답한 반면, 빈곤하지 않다고 응답한 아이는 10%만 부정적으로 응답했다.



빈부격차 한 아이의 '꿈'관련이 있는게 분명해지는 순간이다.


흥미로운또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의 꿈 부모님의 희망과 '동조화되는 경향'이 있다.


아이들의 희망과 부모님의 희망이 일치하는 비율이 초등학교 때는 41%였다. 그런데 이게 고등학교로 올라가 62%로 급증한다. 아래 빨간색 선을 보면 그 변화가 뚜렷하다.


초중등 진로교육 현황 조사 - 한국 직업능력개발원('18)


세 가지로 해석될 수 있을 것 같다.


(1) 아이가 본인의 꿈을 부모님에게 설득하는데 성공했거나, (2) 아이가 부모님에게 설득당했거나, (3) 중간 지점에서 타협을 거나. 구체적인 거가 없으니 성급하게 결론내릴 수 없다. 다만 희망하는 건, 아이들이 '꿈'이라고 응답한 게, 타인의 꿈이 아니라 온전히 '자신의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거다.


나보다 이 땅에서 더 오래 살아갈 누군가가 자신만의 토토로를 오랫동안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들 토토로를 실제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도 나만의 토토로가 분명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 '귀신'에 불과하다고 치부해버린 건 아닌지..

나만의 토토로를 잊지 않고 살아야겠다. 죽기전에 만날꺼다.






4. 토토로 같은 어른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또 다른건, 토토로 같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잠자는 토토로를 보고 느꼈다. 잠자는 동안에는 누구나 예민하다. 잠잘때 깨우는 것만큼 짜증나는 건 없다. 잠자기 전 들리는 층간소음 때문에 살인이 난다.


영화에서 막내는 자고있는 토토로를 무지막지하게 깨운다. 배 위에 올라가서 밟고 뛰고, 간지럽혀서 재채기하게 만든다. 토토로? 당연히 깬다. 그런데 천진난만한 꼬마아이가 장난 치는걸 보고, 그냥 내버려둔다. 토토로는 아이들에게 여유로움과 관대함을 보여준다.


토토로는 생명체가 아니다. 침대다.


그는 아이들의 관점에도 잘 맞춰준다. 토토로는 비를 피할 필요가 없다. 그에게 있어 우산이란 성가신 짐처럼 느껴질 것이다. 안그래도 몸에 비해 손이 작은데.. 그런데 토토로는 버스 정류장에서 언니가 건넨 우산을 거부하지 않는다. 아이의 따뜻한 마음을 이해하고, 거부하지 않았다. 아이는 남을 도왔다는 뿌듯함과 자부심을 느꼈을 것이다.

놀아주기도 잘 놀아준다. 땅을 관장하는 토토로. 그는 아이들이 뿌린 새싹이 잘 자라나도록 '기우제'같은 걸 한다. 나름대로 일하고 있는 셈. 아래 짤방을 보면, 토토로는 새싹이 자라나라고 죽어라 빈다. 이 그의 직업이다. 근데 아이들은 이게 퍽 재밌었나 보다. 옆에 와서 똑같이 따라한다. 짤방을 보면 알겠지만, 애들은 웃고있다. 토토로는 웃지 않는다.. 일하는데 성가실 법 하지만, 그래도 그는 아이들과 함께한다. 꼬맹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을 보라.


일하고 있는 토토로, 놀고있는 아이들


토토로는 든한 수호자이기도 하다. 언니가 그를 필요로 할때, 그는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동생을 잃어버렸다고 말하는 언니의 간절한 외침을, 그는 무시하지 않는다. 즉시 고양이 버스를 불러줬다. 토토로는 동생을 잃어버렸다고 언니를 혼내지 않는다, 당황해하지도 않는다. 그저 웃으면서, 어른답게, 넓은 마음으로, 침착하게 도움을 준다.


토토로가 불러준 고양이 버스


이런 어른이 되고 싶다. 여유로움과 관대함을 갖추고 아이를 대하고, 잘 놀아주는 어른. 그러면서도 든든함을 갖춘 어른.


물론 실제로 그럴 수 있을지는 좀 두고 봐야겠다. 앞서 말했던 초등학생 짝꿍좀 영리하다. 그러다보니 공부를 더 가르치고 싶다. 아이에게는 좀 벅차게 느껴질 수 있다. 내 욕심이니까. 그래도 어쩐담? 좀 더 똘똘하게 만들고 싶은걸..


남의 집 아이한테도 욕심이 드는데, 내가 낳은 꼬맹이한테는 얼마나 많은 욕심이 들까? 인성이든, 공부든, 친구관계든, 운동이든, 뭐든.. 잘했으면 싶을 것 같다. 적어도 나보다 더 뛰어났으면 하는게 솔직한 바람이다. 만약 이런 마음을 제어하지 못하면 '애 조지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여간 지금부터 의식적으로라도 인격수양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나부터 인간이 되어야 애를 잘 기를 것 같다.






5. 결론


오랜만에 본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였다. 나에게 이 영화는 아이들과 꿈에 대한 메시지로 다가왔다. 롤모델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건 어린이가 아닌 어른의 영화인 것 같다.


세상에 살아가는 모두가 자신만의 토토로를 품고 살 수 있다면, 살만한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삶이 힘들거나 복잡하다고 느낄 때마다 이 영화를  것 같다. 나중에 꼬부랑 할아버지가 됐을 때도, 나만의 토토로를 가슴 속에 품고 살아가고 있었으면 좋겠다. 죽기전에 한번 쯤 만날 수 있기를.




[참고자료]


https://www.imdb.com/title/tt0096283/?ref_=nv_sr_srsg_0('20)

초중등 진로교육 현황조사 - 한국직업능력개발원('18)

한국 미래세대 꿈 실태조사 보고서 - World Vision('17)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013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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