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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해의 취미생활 Aug 28. 2020

시민단체 말고, 애플이 신재생에너지를 말했다

박호정 교수의 저서 <탄소 전쟁>을 읽다가 든 생각

# <탄소 전쟁>이라는 책을 읽었다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박호정 교수의 저서 <탄소 전쟁>을 읽었다. (링크) 2015년도에 발간된 이 책의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지구 온난화 현상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2) 국가와 기업은 탄소 감축 노력을 해야 한다.
(3) 가장 효과적인 제도인 '탄소 배출권 거래제' 도입이 필요하다.
(4) 우리의 경우, 거래제 도입과 함께 신재생에너지 비중 확대 및 기존 석유+원전 에너지의 효율화가 중요하다.


앞서 말했듯, 저자는 경제학자다. 그는 환경적 당위성만을 근거로 탄소 감축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산업 효율성 등 경제적 측면까지 고려하면서 논의를 진행한다. 그는 미래에 대한 흥미로운 예측을 남겼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듀폰 사례가 기후변화와 관련해서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하고 강력하다.

환경적인 요구와 경제적인 동기가 맞아떨어질 때, 온실가스 감축을 요구하는 구속력 있는 국제 규범이 들어설 것이라는 점이다. 그것도 빠른 속도로.


저자가 말하는 듀폰 사례를 살펴보자.


듀폰은 1800년대에 만들어진 미국의 유서깊은 화학기업이다. 이 기업은 '염화불화탄소'라는 물질을 생산했다. 에어컨 등의 냉매제로 사용됐는데, 20세기 후반에 들어오면서 오존층 파괴의 주범으로 비판받기 시작했다. 1989년 1월, 각국은 합의를 통해 이 물질의 사용과 소비를 규제하는 글로벌 협약, '몬트리올 의정서'를 발표했다.


초기에 듀폰은 이를 부인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몬트리올의정서를 지지하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전향적인 입장도 발표한다. 2000년까지 염화불화탄소의 소비를 절반으로 줄이는 것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의제를 제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염화불화탄소의 생산을 전면 금지하겠다는 결정까지 내렸다. 왜일까?


듀폰은 당시 대체 물질의 개발과 생산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다른 경쟁사들은 염화불화탄소의 대체재를 고안해내기 어려워했다. 염화불화탄소에 대한 규제가 심해지고 대체 물질이 각광받는다면, 듀폰은 그 시장을 독차지할 수 있었다. '환경적인 요구와 경제적인 동기'가 합치되어, 국제적인 규범의 구속력이 높아진 대표적인 사례다.


이걸 보면서, 나는 얼핏 스쳐 들었던 애플과 아우디의 '탄소 배출 0' 정책이 떠올랐다.




# 규범이 된 신재생에너지


얼마 전 애플은 2030년까지 탄소 배출을 '0'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링크) 아이폰, 에어팟 등 제품 생산에 수반되는 이산화탄소 배출을 최대한 줄이고, 그럼에도 발생는 잔여 이산화탄소 '나무 심기' 같은 행동으로 상쇄하겠다고 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애 혼자 이걸 하는게 아니라는 거다. 따지고 보면 애플은 공장도 없다.


애플은 이 선언을 협력사와 함께 했다. 대표적인 반도체 기업, SK 하이닉스도 여기에 동참했다. 공장 하나 없는 애플의 부담보다 실제로 공장을 돌려서 아이폰을 생산하는 협력사의 부담이 클거라고 추측하면 비논리적일까?


제대로 못 따라가는 협력사는 유무형의 손해를 볼 것 같다. 대체가 가능한 협력사는 수주가 끊길 수도 있다. 대체가 어려운 협력사도, 가격 협상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 있다. 계약 이행을 제대로 못한 셈이니 말이다. 권력 관계에서 우위에 있는 원청이 하청에게 '환경'이라는 시대적 명분을 가지고 하는 요구라, 이 비판하기도 어렵다. 이런 선언을 애플만 한 것도 아니다.


'RE100 선언'이라는 게 있다. 늦어도 2050년까지 탄소 배출 '0'으로 하겠다고 선언한 기업의 모임이다. 쟁쟁한 글로벌 기업이 여기에 참여한다. 자동차 기업인 BMW, GM, 테크 기업인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소비재 기업인 코카콜라, 스타벅스, 나이키, 이케아, 애스티로더 등 잘나가는 기업 242개가 이 선언에 동참했다. 탄소 배출 안하고, 태양광, 풍력 같은 신재생에너지로 사업을 운영하겠다는 거다. (링크) 


세계적 추세가 이렇다. 신재생에너지 도입을 본격화하고 있다.




# 너네들은 해볼만 하겠지


이 기업 중 상당수가 유럽, 미국에 있다. 이 나라들은 국가 차원에서 신재생에너지 도입에 노력해왔고, 그만큼 활성화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신재생에너지로 만들어진 '전기'를 구하기가 쉽다. 유럽은 대륙 내 전력망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프랑스 기업이 독일에서 풍력으로 생산된 에너지를 구 수 있다. 석탄, 석유가 기반인 신흥국에 비해 탄소 배출 감축이 '구조적으로' 쉽다.


아래는 국가별 전체 에너지 소비량 중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이다. World Bank 자료다.


https://data.worldbank.org/indicator/EG.FEC.RNEW.ZS


셰일 가스를 생산하는, 세계 최대의 원유 생산국이자 수출국 중 하나인 미국도 전체 에너지 중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이 9%다. 북유럽의 덴마크는 33%나 된다. 우리처럼 원전에 많이 의존하는 프랑스도 13%다. 의외지만, 옆나라 중국도 12%나 된다. 우리나라는 3%로, OECD 평균인 12%에 한참 못 미친다.


유럽, 미국 기업은 탄소 배출 감축 목표를 과감하게 잡아도, 이에 발맞춘 과감한 투자가 수반되면 달성이 가능하다. 앞서 말했듯, 에너지 시장에서 태양광, 풍력으로 만들어진 전기를 구매하기가 쉽다. 그런데 우리는 태양광, 풍력으로 만든 전기를 구매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유럽처럼 인접 국가에서 전기를 구해올 수도 없다. 우리가 직접 만들어야 한다.


게다가 우리는 '에너지'가 '정치'와 너무 많이 엮여있다. 원전 비중 축소,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말하면 좌파가 되고, 그 반대는 우파가 된다. 인프라 확대에도 고려해야 할 정치적 요소가 너무 많다. 이걸 가지고 좌, 우를 나눌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다. 태양광, 풍력을 말하는 애플이나 BMW가 좌파인가?


어쨌든 지구 온난화로 인한 환경 위기더이상 좌시할 수 없다. 북극곰이 굶어죽고, 섬이 물에 잠기고, 여기저기 이상 기후가 나타난다. 탄소 감축은 시대적 트렌드이자 사명이다. 어느 나라도 이걸 피해갈 수 없다. 이걸 잘 따라오지 못하면, 비난을 많이 받는다. 게다가 경제적인 측면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EU의 탄소국경세(Carbon Border Adjustment)다. 2019년, EU는 EU로 수입 되는 탄소집약적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 계획을 발표했다. (링크) 철강, 석유화학 기업에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예측된다. 우리의 주력산업이다.


EU 내수 시장 보호가 본질적 목표라는 해석도 제기되고 있으나, 어쨌든 명분이 그럴싸하다. 세부적인 사항은 조정 중이나 도입 자체는 확정적이며, 그 시기는 2021년이 될 예정이라고 한다.


<탄소 전쟁>에는 '환경적인 요구와 경제적인 동기가 맞아떨어질 때 온실가스 감축을 요구하는 구속력 있는 국제 규범이 들어설 것'이라는 구절이 있다. 이게 정확히 그 사례가 아닐까 다. 앞으로 이런 현상이 더 많아질꺼고, 당연하게 여겨질 거다.




# 이 시대적 흐름이라니까


얼마 전 장마가 이어졌을 때, 한 언론에서 산사태의 원흉으로 '태양광'을 지적했다. 이 언론은 그간 원전에 집중할 것이지 돈도 안 되고 효율도 낮은, 신재생에너지 같은걸 왜 하냐고 많이 비판해왔다.


이게 그렇게 볼 문제인가 싶다. 미국, 유럽 같은 서구 국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 당장 옆나라 중국만 해도 '돈 안되는 신재생에너지'에 오랜기간 선제적으로 투자했다.


'축적의 시간'이 쌓이자, 신재생에너지의 발전 비용도 많이 저렴해졌다. 아래 그림을 보면 알겠지만, 태양광, 풍력을 비롯한 신재생에너지의 발전 비용이 전통적인 화석연료와 경쟁할 만큼 내려왔다. 이제 신재생에너지는 '환경 오염을 유발하지 않는' 에너지일 뿐 아니라, '가격도 괜찮은' 에너지다.


IRENA('19),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20)


신재생에너지가 돈이 되는 걸 확인했고, 시대적 요구라는 걸 확인한 이상, 이 분야로의 투자 증가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누가 가장 수혜를 볼까?


세계 태양광 시장은 중국 기업이 압도적인 지위를 차지한다. 태양광 시장에 비해 높은 기술 수준이 요구되는 풍력 시장 전통 강국인 유럽 기업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중국 기업이 과점하고 있다.


아래 그림은 태양광과 풍력 분야의 10대 기업을 추린 자료다. '18년 시장 점유율을 기준으로 한 자료인데, 태양광 10개 중 7개, 풍력은 10개 중 5개가 중국 기업이다.


태양광(18년/Sola Media) + 풍력(18년/Global Data)


세계는 지금 '좋은 명분'과 '더 효율적인 가격'을 보여주는 에너지로 전환하고 있고, 그 속도는 일관되고 빠르다. 이 산업을 먼저 선점한 국가나 기업은, 이에 따른 이윤을 엄청 누릴 거다. 후발 국가와 기업은 잘해도 콩고물이나 얻어먹는 정도고, 운 나쁘면 것마저 없을 수 있다. 이건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자 산업적 방향성이다.


독일의 경제학자 중 리스트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유치산업 보호이론이라는 걸 주장했다. 국가가 특정 산업을 밀어주는 게 지금 당장은 비효율적이도, 미래에 효율적일 수 있다면 밀어줘야 한다는 내용이다.


몇십년 전 우리가 철강이나 자동차에 도전했을 때, 그거 헛돈 쓰는 거라고 말한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그렇게 밀어줬기에, 현대차와 포스코가 있다. 우리 주력 산업이 됐다.


신재생에너지 산업은 어떨까? 우리의 미래 먹거리, 그것도 '윤리적'이면서 '돈도 되는' 먹거리로 자리잡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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