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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해의 취미생활 Oct 13. 2020

가위 눌렸을 때 왜 이명이 들렸을까

뇌과학자의 '상처받은 뇌'에 대한 이야기 - <뇌가 지어낸 모든 세계>

# 가위눌렸을 때 들렸던 것 : 이명


옛날에 종종 가위 눌렸다. 특히 취업 준비 할때 많이 그랬다. 그때는 스트레스를 꽤나 받았다. 처음 가위 눌렸을 때, 말소리 비스무리한 게 들렸다. 언제부터인가 소리가 좀 변했다.


전환점은 '이명'이다. 어쩌다보니 이명이라는 게 생겨버렸다. 그때는 무지 성가시고 짜증났다. '도대체 이게 왜 생겼나, 없어지긴 하는건가'라는 생각이 머리를 계속 맴돌았다. 그러다보니 가위 눌렸을 때, 말소리는 안 들리고 '고주파의 삐--'하는 소리 머리가 가득다.


얼마 전 '뇌'를 다룬 책을 읽었다. 무지 재밌었다. 시각 장애인이 꿈에서 보는 것, 최면 상태에서의 살인 가능성, 조현병 환자 다중인격 등 꽤나 자극적이고 호기심을 유발하는 소재를 다룬다. 가십적 요소로 가득한 건 아니고, 학문적 이론과 지식을 토대로 한다. 나같은 일자무식도 몰입과 이해, 모두 다 수월했다.


저자는 미국 예일대학교 예일-헤이븐병원의 신경과 상주의 엘리에저 J. 스턴버그 박사다.



책을 읽고나니, 가위눌렸을 때 들린 소리가 왜 '이명' 소리로 변했는 조금 짐할 수 있게 됐다.





# 가위눌림의 메커니즘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잠에서 깬 순간 중요한 두 가지 변화가 생긴다.

첫째, 의식이 완전히 돌아온다. 전기 스위치를 켜듯이 어느 순간 잠에서 완전히 깼음을 깨닫는다. 둘째, 마비된 상태에서 벗어나 근육을 통제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의식과 근육 통제를 담당하는 뇌 영역은 다르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두 영역은 동시에 재가동된다.

특별한 경우에는 의식이 돌아오는 것과 근육 통제가 작동되는 것 사이에 시차가 생길 수 있다. 그때는 잠에서 깨어나 주위 인식은 가능하지만 몸은 몇 초, 길게는 몇 분 동안 마비 상태인 채로 있다.


저자에 따르면, 가위눌림은 의식과 근육의 불일치로 인해 발생한다. 실제로 가위에 눌리면, 잠에서 깬게 분명하지만 몸 안 움직인다.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이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나괴상한 소리를 들었다. 앞서 언급했듯, 처음에는 말소리를 들었지만, 어느 순간 이게 '고주파의 삐--' 소리로 변했다. 지금이야 가위눌림 현상이 없어졌지만, 그때는 미치는 줄 알았다.


나중에는 나의 비법도 생겼다. 가위렸다 판단이 면, 손가락을 움직이려고 최대한 힘썼다. 럼에도 깨기 전까지, 귀가 아플 정도의 고주파 소리를 꼼짝없이 들어야만 했다.


그런데 나는 왜 소리를 들었을까? 그리고 소리 왜 '이명 소리'로 변했을까?


가위눌림이 생기는 순간 뇌의 무의식계는 그 상황을 합리화할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무의식계가 선택하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이 속한 문화에 따라 달라진다. 자신이 무엇을 믿고, 무엇이 궁금하고, 무엇이 두렵고, 무엇을 사랑하는지, 그리고 호기심을 충족하지 못한 부분은 무엇이고, 과거의 어떤 부분을 기억하는지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진다.

신경계가 신호 절달을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쏟가져 들어오는 지각이 낯설고 기이한 것일 때 뇌는 불가사의하고 초자연적이며 비과학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저자는 가위눌림이 발생했을 때, 우리의 뇌 '이야기'를 만들어낸다고 말한다. '이야기'는 이 책의 핵심이기도 하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의 뇌 '이야기를 창조하성향'을 가지고 있다. '어떻게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뇌'가 세상을 오해할 때, 문제가 생긴다.


들리지 않는 걸 듣는 '환청', 보 않 걸 보는 '환시', 존재하지 않 인격을 느끼는 '이중인격(조현병)', 이게 다 뇌가 이상하게 이야기를 지은 결과.


가위눌림도 예외 아니다. 뇌의 입장에서, 신경은 깨어있고, 근육은 굳어있는 이 상황 비정상다. 이때 뇌는 상황을 합리화하기 위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이명굉장히 고통스러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 거 아니지만, 그때만 해도 나를 좌절시켰다. 내 의식과 무의식 모두,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이명' 설명에 썼을 거다. 그러니  뇌는 가위눌림이라는 '이상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이명'을 동원했던 게 아닐까?


가위눌림 이야기를 끝내기 전, 저자가 설명한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소개한다. 저자에 따르면, 가위눌림을 겪을 때 뇌가 '지어내는 이야기'에는 문화적 경향성이 있다.


멕시코인들은 시신이 위로 기어오르는 것을 말한다. 서아프리카들은 주술 현상을 체험하고, 강간을 당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다. 미국인들은 외계인과의 만남을 주장하는 빈도가 높다. 문화마다 경험하는 맥락이 달라지는 것이다.


인간은 가 지배하고, 뇌는 수많은 뇌로 구성된 사회 결정한다.





# 꼭 한번 읽어볼만한 책


읽어가는  아까울 정도로 재밌다. 최면, 직감, 환각, 환청 등 신비로운 주제를 검증받은 전문가가 설명해주니 재밌고 유익했다. 과학적 지식을 알아가는 덤이다.


저자는 아래와 같 최면 현상을 설명한다.


최면에 걸린 대상은 최면술사가 정교하게 만들어 놓은 상상에 정신을 집중하다 마침내 그것을 진짜라고 믿기 시작한다. 더욱이 최면에 걸린 대상은 이 상상에만 시성을 고정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행동을 분석하고 여과하는 것을 잊어버린다.

그 결과 최면술사는 최면 대상의 의식적 검열을 피해 지시를 내려 그가 최면 상태가 아니면 하지 않을 당혹스러운 행위도 하게 만들 수 있다.


'최면에 걸린 사람이 살인 저지를 수 있을까?'라는 주제 대한 저자의 설명이다. 스웨덴에서 강도, 살인을 저지른 자가 최면에 걸렸다고 항변한 적이 있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책에 나와있다.


'직감'도 다룬다. 우리는 흔히 직감 신비롭고, 설명할 수 없는 능력으로 인식한다.


신체표지는 일종의 감정적 기억이자 뇌가 과거에 습득한 정보를 재예시화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직감'으로 그런 신체표지를 경험할 뿐이다.

이런 감정적 기억은 무의식적으로 저장되고 작동되었다가 비슷한 사건과 맞닥뜨리는 순간 등장해 우리가 선택할 수 있게 이끌어준다.


그런데 저자에 따르면, 이무슨 지구를 초월하고, 어디서 계시받고 그런게 아니다. 의 깊은 곳에 무언가가 각인되어 왔는데, 이게 순간적으로 등장해서 판단으 이끄는 거다.


우리는 우리의 뇌에 불과하다. 이 뇌는 경이로울 때도 있지만, 삽질할 때도 많다. 리는 뇌의 실수를 토대로 판단하고, 행동할 때가 많다. 혹여, 뇌의 실수가 없어도 입력되는 정보 불완전할 때 많다. 결국 뇌실수할 때가 많, 우리의 판단과 행동은 불완전할 때가 많다.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스스로의 판단과 행동을 과잉신뢰한다는 거다. 본인이 삽질을 했는데 삽질인걸 모른다. 삽질이라고 알려줘도, 인정을 안 한다. 


물리학, 생물학을 접할 때마다, 인간 존재의 무용함, 부질없음 같은 걸 느낀다. 불완전함에도 완전하다고 생각하는, 오만한 존재가 인간이다. 내가 그렇다.


이 책에서 기억에 가장 기고 싶은 문구로 마무리 한다. 우리의 의식, 정체성이란 어디 동떨어진 곳에서 고고하게 자리잡고 있는 게 아니다. 아도 결국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뇌' 뿐이다. 그런데, 적어도 내 뇌는, 문제성이다. 그렇다면...? 


뇌는 기저의 논리에 따라 우리의 경험을 해석하고, 기억을 암호화하고, 개인사를 기록한다. 무의식계는 우리의 인생을 담은 여러 스냅사진 사이에서 연관성을 만들어내고 각 순간마다 우리의 감정을 관찰해 무엇을 강조할지 결정한다.

그리고 그 스냅사진들을 배열하고 정리해 통일되고 간명한,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사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우리가 의식하는 인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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