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 - <가치의 모든 것>, 마리아나 마추카토
이 글에서 제가 말하는 투자는 (1) 수일에서 1-2년 내 단기 시세차익을 노리고 '상장된 기업의 주식'을 매매하거나, (2) 마찬가지로 지가 상승이 예상되는 토지, 부동산을 수년 내의 단기 시세차익을 노리고 매매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1) 유상증자 참여 등으로 기업에 직접 자금을 공급하고 수년간 동행하거나, (2) 토지 매입 후 개발을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행위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진작 글을 더 구체적으로 썻어야 됐는데, 힘이 좀 안들어갔나 봅니다.
독자 한분이 댓글로 진지한 논점을 제기해주셨고, 이에 용어를 조금 더 분명히할 필요가 있는 듯 하여 이렇게 수정합니다. 카인말러님, 감사합니다.
전에는 금융 분야가 이미 생산된 가치를 단순히 이전만 하거나 '지대'를 가져가는 영역으로 여겨졌는데, 갑자기 가치를 창조하는 영역으로 변신한 것이다.
이런 지각 변동은 상업 은행의 활동에는 '금융 중개', 투자 은행의 활동에는 '리스크 감수'라는 새 이름표를 붙임으로써 가능해졌다. 그리고 이 변화는 금융 분야의 규제 완화와 나란히 이뤄졌다.
그런데 1970년 즈음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국민계정의 GDP 추계에 금융 부문이 '생산' 활동으로 포함되기 시작한 것이다.
비금융 부문의 많은 측면도 '금융화'되어 버린 것이다. 금융적인 사고와 행동 방식은 산업 부문에까지 깊이 스며들었다. 기업 경영자들이 수익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업에 재투자하기보다 단기적인 주가 부양을 위해 자사주를 매입하는 데 더 많이 쓰기로 결정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케인스는 도박의 결과는 운으로 결정되므로, 금융 투기가 기술이나 실력과 관련 있는 것처럼 말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투기를 하는 사람의 기술이나 실력, 혹은 생산성에 대한 언급은 속임수의 신호와 다름없었다.
1925년에도 당시 재무 장관이던 윈스턴 처칠은 금융에서 벌어지는 변화에 우려를 표명했다. 이때 한 연설에서 처칠은 "금융은 조금 덜 자랑스러워하고 산업은 조금 더 만족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
2009년에 태양광 패널 스타트업 솔린드라는 미국 에너지부에서 5억 3500만 달러의 정부 보증 대출을 받았고 같은 해에 전기차 제조업체 테슬라도 정부 보증 대출 4억 6500만 달러를 받았다.
테슬라는 크게 성공해 2013년에 부채를 상환했지만, 솔린드라는 2011년에 파산해 정부 재정을 보수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정부가 승자를 잘못 선정한 대표적 실패 사례로 지금도 계속해서 거론되고 있다.
가격이 가치를 결정한다는 개념, 그리고 시장이 가격을 결정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개념은 온갖 문제적인 결과들을 낳았다.
첫째, 이 서사는 금융 영역에서, 또 그밖의 영역들에서도, 가치 착취자를 더 대담하게 만들어준다. 현재의 지배적인 논리에서 보면 금융 거래, 약탈적인 대출, 부동산 가격에 거품을 일으키는 투자 등을 모두 가치를 부가하는 것으로 인정한다.
둘째, 현재의 지배적인 담론은 민간 기업이 아닌 가치 창조자들을 가치 절하하고 위축시킨다... 간호사든 공무원이든 교사든 할 것 없이 공공 영역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일을 겪고 있다.
셋째, 시장에 대한 지배적인 서사는 정책 결정자들을 헛갈리게 만든다. 규제 당국은 기업의 로비로 기득권 기업이 한층 더 부유해지게 만드는 정책, 그들의 수익만 불려 줄 뿐 투자를 유도하는 데는 별로 효과가 없는 정책을 승인한다.
넷째, 수익과 지대를 헛갈리면 성장 자체를 측정하는 방식, 즉 GDP 계상 방식도 영향을 받는다. 가격이 붙는 것은 무엇이든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본다면 국민계정은 가치 창조와 가치 착취를 구별할 수 없어서 정책이 아무리 전자를 목적으로 해도 후자 쪽으로 쉽게 귀결될 수 있다.
가치에 대해 더 분명한 논의가 있어야만 모든 영역에서 가치 착취를 더 잘 포착할 수 있고, 그것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힘을 제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