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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해의 취미생활 Dec 08. 2020

넌 자유시장경제해라, 난 안 그랬지만

경제학자의 분석 - <사다리 걷어차기>, 장하준

# 옛날에 읽었던 책을 꺼내보았다


회사 복직이 얼마 안 남았다. 우리 회사는 꽤 빡세다. 요즘 트렌드에 부합하는 회사는 아니다. 업무 난이도높고, 똑똑한 사람 많고, 경쟁도 치열하다. 그렇다고 돈을 많이 주는 것도 아닌데, 워라벨 안 좋다. 입사 준비할 때, 현직자들이 '사명감 같은 거 없으면, 회사 다니면서 힘들다'고 했다. 무슨 말인지 대강 이해한다.


내가 왜 이 회사를 택했을까, 생각했다. 그러다 장하준 교수의 <사다리 걷어차>라는 책이 떠올랐다. 이 책을 읽고, 지금 회사에서 일하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경제와 산업이 보통 사람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판단했고, 국가의 역할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관련된 일을 하면서 돈을 벌면 괜찮을 것 같았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을 다시 살펴보고 정리해본다.




# 나쁜 사마리아인들


* 박스 안은 인용구


이 책의 주요 내용을 세 가지로 추리면, 다음과 같다.


(1)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은 개발도상국에게 자유시장, 자유무역을 강요한다.

(2) 그런데 본인들은 자유시장, 자유무역으로만 성장한 게 아니다. 그들은 높은 관세율, 산업 보조금, 타국의 특허권 침해, 인력 탈취 등을 심심찮게 저질렀다.

(3) 이제 와서 후발국에서 자유시장, 자유무역을 강요하는 행위는 '사다리 걷어차기'라고 볼 수 밖에 없다.


학교에서 배 경제학, 입사 시험에서 치 경제학은 자유시장, 자유무역을 '최고의 선'이라고 말한다. 국가 개입이 없어야 경제와 산업이 잘 성장한다고 배웠다. 그런데 장하준은 이게 아니라고 말한다.



장하준은 영국의 사례를 가져온다.


영국은 식민지의 상품이 우월해서 자국의 산업을 위협할 소지가 있으면 그 제품의 수입을 금했다.

예를 들어 1699년 제정된 양모법에 따라 영국의 식민지들은 모직 제품을 수출하는 거의 금지되었고, 이로 인해 당시 영국보다 앞서 있던 아일랜드의 모직 산업이 붕괴되는 결과를 낳았다.


영국은 자유시장, 자유무역 담론을 강력하게 주장했던 나라다. 자유시장경제 이론의 선구자, '애덤 스미스'를 낳은 나라가 영이다. 그런데 영국도 지금 중국처럼 '정부 개입을 통한 산업 육성'을 추진했다고 한다. 자국산 모직보다 우월한 아일랜드 제품의 수출을 막았고, 인도산 면제품의 영국 수입을 금지했다.


지금으로 치면, 미국이 삼성전자의 반도체 수출을 막아 마이크론을 육성하고, 자국으로의 반도체 수입을 금지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그래도 영국이 한때 자유무역을 선도했던 적이 있다. 바로 영국 기업의 경쟁력이 우월했을 때다. 아래 관세율 표를 보자.



영국은 자유무역을 외쳤고, 시행했다. 다만 1875~1900년대 초까지그랬다. 당시 평균 관세율이 0%대로 압도적으로 낮다. 그런데 그 전까지, 영국은 40-50%에 달하는 높은 관세율을 적용해서 자국 산업을 보호했고, 육성했다. 그마저도 1950년대 들어서 23%로 올렸다. 본인들은 자유무역으로 성장한 게 아니다.


위 표를 보면, 영국만큼 높은 관세를 부과한 나라가 또 있다. 미국이다.


미국이 마침내 무역을 자유화하고 자유 무역 사상을 옹호하기 시작한 것은 2차 대전 후로, 아무도 넘볼 수 없는 산업의 우위를 확보하고 나서였다. 그러나 미국은 영국이 자유 무역을 시행했던 시기(1860-1932)의 수준으로 시장 개방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을 짚고 넘어가야한다.

미국은 영국처럼 관세율을 0%로 낮춘 적도 없었을뿐더러 '숨은' 보호 조치를 훨씬 더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자발적 수출 억제, 섬유와 의류에 대한 쿼터제, 농업 보호와 보조금, 일반적 무역 제재 등이 그 예들이다.


저자에 따르면, 미국은 그 어떤 나라보다 적극적인 산업 정책을 실시했다. 1950년 전까지, 미국의 관세율은 산업국가 중 가장 높은 편에 속했다. 미국은 후발 추격국가였고, 정부가 적극적인 보호와 지원으로 산업을 육성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공산품에 30-40%에 달하는 관세율을 매겼는데,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조치다.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2019년 미국의 평균 관세율은 4%다. 이 관세율로 전세계가 무역 전쟁이니 뭐니 하고 있다.



미국에 관한 저자의 서술에 주목할 만 하다.


19세기 초 가장 권위 있는 보호주의 정치인이며 에이브러험 링컨의 젊은 시절 멘토였던 헨리 클레이는 자신의 경제 정책 강령을 "미국식 체제"라고 불렀다. 자유 무역을 내세운 "영국식 체제"와 노골적으로 대비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세월이 조금 흐른 후, 헨리 클레이는 심지어 자유 무역론은 미국을 원자재 수출국의 역할에 붙잡아 두려는 영국의 제국주의적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에이브러험 링컨과 헨리 클레이를 중국 이름으로 바꾸고, 영국식 체제를 '미국식 체제'로 바꿔보자. 꽤나 흥미로운 문장이 될 거다. 중국은 미국을 비롯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성장 경로를 성공적으로 모방고 있다.


중국은 자국 산업을 잘 보호하고 쑥쑥 육성다. 필요할 때, 자신있을 때 시장을 개방한다. 미국도 그랬다. 영국은 미국을 욕했고, 미국은 중국을 욕한다. 옛날의 미국이나 지금의 중국이나, 학교에서 말하는 자유시장경제와는 거리가 멀다.


핵심 기술이 기계화되기 전인 19세기 중반까지 가장 중요한 기술 이전 방식은 그 기술을 보유한 숙련 기술자들을 유입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술이 뒤처진 나라는 선진 기술을 보유한 나라들, 특히 영국에서 기술자들을 끌어오거나, 그 나라에서 일하는 자국 기술 인력을 귀국시키는 쪽으로 노력이 집중되었다.

영국 관리가 이민 간 노동자에게 경고 조치를 한 후에도 6개월 이내에 본국으로 귀환하지 않으면 영국 내의 토지 및 재산에 대한 권리와 시민권을 잃게 되었다. 이 법은 특히 모직, 제철, 제강, 황동 및 기타 금속 산업뿐 아니라 시계 제조 등을 언급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모든 산업을 망라해서 적용되었다.


중국이 반도체 등 주요 산업 핵심 인력을 뺏어간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다. 아무리 좋은 기계가 있고 돈이 많아도, '사람'이 없다면 일이 안 된다. 그러니 중국이 기를 쓰고 사람을 데려온다.



그런데 지금의 선진 산업국가들도 과거에 그랬던 것 같다. 저자에 따르면, 사람을 데려오려는 쪽과 뺏기지 않으려는 쪽의 힘싸움이 엄청났다.


하지만 이건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이라는 자유시장, 자유무역의 핵심 전제와 어긋난다. 주류 경제학은 '자본과 노동이 국제적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때 최고의 효율이 나타난다'고 말한다. 본국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민권과 재산권을 박탈하는 건 명백히 '반시장주의적'이다. 그런데 그냥 그렇게 했다. 사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숙련공이 종교 탄압으로 이주해왔기에, 스위스가 시계 산업의 메카가 됐다. 프랑스 입장에서 무지 아까울 거다. 샤넬, 디올에 더해 '롤렉스'까지 갖출 수 있었는데, 사람이 떠나가니 안 됐다. 랑스 숙련공의 이주는 프랑스 입장에서 경제적으로 효율적이었을까?





# 새로운 경제학을 알려준 책


입사시험에서 치뤘던 경제학은 자유무역, 자유시장의 경제학이었다. 학교에서 배 경제학이다. 경쟁이 꽤 치열했기에, 나는 그걸 남들보다는 잘 이해해야 했다. 경제학은 재밌고, 신기했다.


그런데 학교에서 배 경제학과 실제의 경제 현상간의 괴리가 내 마음에 자리잡고 있었다. 항상 뭔가 허전했는데, 이 책이 실마리가 됐었다. 이후 학교에서 잘 가르치지 않는 제도주의 경제학, 마르크스 경제학 같은 '다양한 관점'을 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책 때문에, '경제는 사람의 삶에 가장 중요한 요소고, 국가가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니까, 이와 관련된 일을 하면서 돈을 벌면 재밌고 보람있을 것 같다'생각했었다. 이 회사에서 일하게 된 몇 가지 계기 중 하나다. 나에게는 뜻 깊은 책이다.


경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국가와 산업간의 관계, 글로벌 보호무역주의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재밌게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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