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의 분석 - <사다리 걷어차기>, 장하준
(1)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은 개발도상국에게 자유시장, 자유무역을 강요한다.
(2) 그런데 본인들은 자유시장, 자유무역으로만 성장한 게 아니다. 그들은 높은 관세율, 산업 보조금, 타국의 특허권 침해, 인력 탈취 등을 심심찮게 저질렀다.
(3) 이제 와서 후발국에서 자유시장, 자유무역을 강요하는 행위는 '사다리 걷어차기'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영국은 식민지의 상품이 우월해서 자국의 산업을 위협할 소지가 있으면 그 제품의 수입을 금했다.
예를 들어 1699년 제정된 양모법에 따라 영국의 식민지들은 모직 제품을 수출하는 거의 금지되었고, 이로 인해 당시 영국보다 앞서 있던 아일랜드의 모직 산업이 붕괴되는 결과를 낳았다.
미국이 마침내 무역을 자유화하고 자유 무역 사상을 옹호하기 시작한 것은 2차 대전 후로, 아무도 넘볼 수 없는 산업의 우위를 확보하고 나서였다. 그러나 미국은 영국이 자유 무역을 시행했던 시기(1860-1932)의 수준으로 시장 개방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을 짚고 넘어가야한다.
미국은 영국처럼 관세율을 0%로 낮춘 적도 없었을뿐더러 '숨은' 보호 조치를 훨씬 더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자발적 수출 억제, 섬유와 의류에 대한 쿼터제, 농업 보호와 보조금, 일반적 무역 제재 등이 그 예들이다.
19세기 초 가장 권위 있는 보호주의 정치인이며 에이브러험 링컨의 젊은 시절 멘토였던 헨리 클레이는 자신의 경제 정책 강령을 "미국식 체제"라고 불렀다. 자유 무역을 내세운 "영국식 체제"와 노골적으로 대비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세월이 조금 흐른 후, 헨리 클레이는 심지어 자유 무역론은 미국을 원자재 수출국의 역할에 붙잡아 두려는 영국의 제국주의적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핵심 기술이 기계화되기 전인 19세기 중반까지 가장 중요한 기술 이전 방식은 그 기술을 보유한 숙련 기술자들을 유입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술이 뒤처진 나라는 선진 기술을 보유한 나라들, 특히 영국에서 기술자들을 끌어오거나, 그 나라에서 일하는 자국 기술 인력을 귀국시키는 쪽으로 노력이 집중되었다.
영국 관리가 이민 간 노동자에게 경고 조치를 한 후에도 6개월 이내에 본국으로 귀환하지 않으면 영국 내의 토지 및 재산에 대한 권리와 시민권을 잃게 되었다. 이 법은 특히 모직, 제철, 제강, 황동 및 기타 금속 산업뿐 아니라 시계 제조 등을 언급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모든 산업을 망라해서 적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