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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해의 취미생활 Dec 30. 2020

나는 왜 트럼프가 그렇게나.....

하버드대 정치학교수가 말하는 민주주의 -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 뭐 저런 인간이 대통령일까?


나는 트럼프가 싫었다. 대통령이 대놓고 상스러운 언행을 하고, 타인을 폄하한다. 나는 구역질이 나왔다. 그렇지만 통쾌하다는 이유로 그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았다.


트럼프같은 유형의 정치인은 미국에만 있는게 아니다. 헝가리에도, 필리핀에도, 중국에도 있다. 우리는 그들을 '스트롱맨'이라고 부른다. 나는 '스트롱맨'의 언행이 개인적 기행에 그치지 않고, 사회의 해악으로 자리잡을 거라고 막연하게 추측했었다. 그런데 그 이유를 잘 설명하지 못했다.


그러다 서점에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라는 책을 만났다. 하버드대학교 정치학과 교수인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이 썼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뉴스위크 올해의 책에 선정됐다고 한다.



책을 읽고나니 '스트롱맨'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는지, 대강 이해가 됐다. 그간 설명하기 어려웠던 나의 역겨움과 거부감을, 설명할 수 있게 됐다. 스트롱맨은, 민주주의의 기반을 잠식하고, 붕괴를 야기한다. 어떤 메커니즘으로 그렇게 될까?




#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민주주의의 핵심 기반은 생각이 다른 사람과의 공존이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인정하지 않고 악마화하고 열등하게 여기기 시작한다면, 그의 생각을 나와 동일하게 만들고자 한다면, 비극이 시작된다. 생각이 다른 사람과의 공존을 가능케 하는 건, '상호 관용'이다.


저자에 따르면 '상호 관용'이 무너지면, 민주주의의 토대가 붕괴된다고 말한다.


상호 관용이란 정치 경쟁자가 헌법을 존중하는 한 그들이 존재하고, 권력을 놓고 서로 경쟁을 벌이며, 사회를 통치할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개념이다.

물론 경쟁자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거나, 그 주장을 혐오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들을 정당한 존재로 인정해야 한다. 다시 말해 그들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나라를 걱정하고 헌법을 존중한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상호 관용의 규범이 힘을 발휘하지 못할 때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이한다.


트럼프는 상호 관용의 토대을 파괴했다. 지난 대선에서, 그는 경쟁자인 힐러리를 '범죄자'로 규정했다. 범죄자는 '척결'해야 한다. 범죄자는 동등한 대화 상대방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기반인 '의사소통'은 불가능해진다.


트럼프 지지자와 힐러리 지지자의 간극은 커져만 간다. 트럼프 지지자의 입장에서, 지도자가 '범죄자'라고 규정한 힐러리를 지지하는 '돌대가리'들하고는 대화가 불가능하다. 힐러리 지지자의 입장에서, 저런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는 트럼프, 그리고 그를 지지하는 집단과 대화가 불가능하다.


민주주의의 기본인 다른 사람, 다른 집단에 대한 존중과 이해는 사라진다. 서로를 짓밟고, 이기고, 처벌하는게, 제1의 목표가 된다. 타인에 대한 모욕과 차별의 '민감도'도 과거보다 훨씬 낮아진다. 학력차별도, 인종차별도, 국적차별도 쉽게쉽게 발현되고, 온갖 혐오발언이 터져나온다. 거지같은 사회다.



그래서 트럼프가 싫었나 보다. 나는 편협하다. 나는 나와 다른 사람, 다른 집단에 거부감이 있다. 나는 '소인'이니까, 그럴 수 있다. 그게 내 그릇의 크기다. 그렇지만 한 나라의 대통령은 그러면 안된다. 그런 생각을 가지더라도, 그걸 표현하면 안 된다. 사회가 오염된다. 하지만 격떨어지는 트럼프는, 그렇게 했다. 미국 사회의 격이 떨어졌다.


나는 무섭다. 나와 생각이 다른 타인을 '악마, 열등한 자'로 규정하는 게 일상이 되는 사회가 무섭다. 동물성을 마음껏 발현해도 제지당하지 않고, 오히려 '통쾌하다'고 칭찬받는 사회가, 너무 무섭다. 그런 사람이 지도자 동물이 되는 사회가, 싫다.


민주주의 생존에 중요한 두 번째 규범은 우리가 '제도적 자제'라 부르는 개념이다. '자제'란 "지속적인 자기통제, 절제와 인내", 혹은 "법적 권리를 신중하게 행사하는 태도"를 뜻한다. 또한 법을 존중하면서도 동시에 입법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자세를 말한다.

자제 규범이 강한 힘을 발휘하는 나라에서 정치인들은 제도적 특권을 최대한 활용하려 들지 않는다. 비록 그게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 있는 것이라고 해도 기존 체제를 위태롭게 만들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단순히 자기들 맘에 안든다고 밑도끝도 없이 대통령 탄핵을 추진하거나, 국민 대다수가 찬성하는 법안을 무작정 가로막거나, 입법부에서 통과된 정당하고 합당한 법률안을 대통령이 임의적으로 거부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제도에 규정되어 있는 권한을 막무가내로 행사하는 걸 말한다.


민주주의는 권력과 권한의 분산을 토대로 한다. 이를 위해 행정부-입법부-사법부가 서로를 견제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다. 문제는 제도의 도입 취지는 잊어버린 채, 서로를 파괴하기 위해 '견제권한'을 남용하는 걸 의미한다.


얼마 전까지 트럼프가 딱 그랬다. 투표에서 바이든에게 밀린 게 확실한데, '투표용지 재확인 등'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그래, 행정부에게는 그럴 권한이 있긴하다. 근데, 그걸 쓰는게 합당한가? 그건 다른 문제다.





# 우리나라는 다를까?


나는 언젠가부터 정치 이야기는 듣지도, 말하지도 않게 됐다. 관심도 없어졌다. 한국 신문은 잘 읽지도 않는다. '내돈 내고' 이코노미스트를 2년째 읽고 있는데, 아주 좋다. 지긋지긋한 정치 얘기는 없다. 양질의 경제, 금융, 산업, 국제관계 이야기로 가득하다. 한국 신문, 특히 한국의 정치 뉴스는 정말.. 안 본다.


왜 이렇게 됐을까? 나는 그 언어에 질려버렸다. 내가 속하지 않은 집단의 행동과 언어의 정당성, 선의성, 확실성을 믿지않고, 상대방을 악마로, 무식한 자로 규정하고 짓밟아버리는 그런 분위기가 힘들었다. 누군가는 통쾌하다고 하는데, 나는 통쾌함이 무섭다.


이 책은 '통쾌함'이 민주주의의 붕괴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미국 학자가 쓴 책이라, 미국 이야기가 풍부하다. 좀 들여다 보니까, 얘네들도 200년 전에 참 가관이었다. 표 더 얻겠다고 선거구를 조정하고, 흑인들한테 투표권 주기 싫어서 시험 보게하고, 돈 주고 표 매수하고.


그래도 미국 사회는 나아졌다. 우리나라도 어쨌든 그렇게 될 거다. 나는 믿는다.


나는 이 글에서 민주주의가 망가지는 비가시적 요인으로 '상호관용의 붕괴'와 '제도적 자제의 결핍'을 들었다. 이 책에는 이것 외에도 정치인 매수, 언론 탄압, 견제 제도 무력화, 쿠데타, 대중 선동 등 다양한 사례가 풍부하게 서술되어 있다.


이 글에서 언급한 요인은 저자가 서술한 수많은 요인 중 하나다. 정말 좋은 책이고, 시의적절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사견이지만, '회복과 통합과 치유'를 말하는 바이든이 대통령으로 당선됐기에 다행이다. 그렇지만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건, "트럼프가 자국민에게 총을 쏘면서 학살했어도 '회복, 통합, 치유'가 적절했을까?"하는 점이다. 만약 그랬다면, 가장 필요한건 '관용'이 아니라 '진상 규명과 책임자 엄벌'이 아닐까.


근데 또 그렇게 되면, 복수가 복수를 부르는, 그런 상황으로 가지 않느냐 하는 생각이 따라온다. 옛날에 M.누스바움이라는 철학자의 저서, <분노와 용서>가 이걸 다뤘었다. 그때 당사 회사 다닐때고 책도 어렵고, 두껍고 해서 중간에 던졌었다. 짬 생기면, 그걸 좀 봐야겠다. 근데 다시 회사 복귀했는데, 짬이 날까? 진작 읽었어야 했는데..


글 마지막에, 저자가 독재자를 판단하는 네 가지 신호를 제시했다. 얼추, 이런 유형의 인간이 최고 지도자가 되면, 좀 머리가 아플 것 같긴 하다. 그래서 남겨둔다.


첫 번째 신호는 민주주의 규범을 준수하려는 의지의 박약이다. 선거 절차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2016년 대선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는 전례 없는 주장을 내놓았을 때 트럼프는 이미 독재자로서의 첫 번째 기준을 추종했다.

두 번째 항목은 상대의 정당성에 대한 부정이다. 전제적인 정치인은 경쟁자를 범죄자, 파괴분자, 매국노, 혹은 국가 안보 및 국민의 삶에 위협적인 존재라고 비난한다. 그는 힐러리를 "범죄자"로 규정하고, "구속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주장했다.

세 번째 기준은 폭력에 대한 조장과 용인이다. 노스캐롤라이나 페이엇빌 집회에서는 시위대를 기습 공격하고 살해 협박까지 했던 자신의 지지자들을 위해 소송비용을 대주겠다는 제안까지 했다.

마지막 항목은 경쟁자와 비판자의 시민권을 억압하려는 시도다. 그는 대선이 끝나고 힐러리 클린턴을 수사하기 위해 특별 검사팀을 꾸리고 있으며, 힐러리는 곧 교도소에 수감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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