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심해의 취미생활 Aug 18. 2020

사랑은 지극히 사적인 행위다, 정말?

사회학자의 사랑 분석 - <낭만적 유토피아 소비하기>, 에바 일루즈

# 그 무엇도 아닌 당신에게 집중, 사랑


사랑은 고귀하고, 진실되며, 순결하다. 사랑에는 인종, 학력, 소득, 자산, 집안, 계급이 중요치 않다. 뜨겁게 타오르는 두 개인 사이의 '케미'만 있면 충분하다. 이 스토리의 결말은 평생 함께하자는 약속이다.


'진정한 사랑'에 대한 전형적인 이미지다. 근대 사회의 '사랑'은 평등하고 자유로운 것으로 묘사된다. 돈 있다고 사랑에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돈 없다고 사랑에 실패하는 것도 아니다. 외려, 그 모든 걸 초월하는 게 사랑의 이미지다.


신데렐라는 왕자님을, 바보 온달은 평강 공주를 만난다. 사랑은 '계급'이라는 절대적 힘을 초월다. 사랑은 불가능을 가능케 다. 사회는 외모, 소득 등 사회적 조건을 줄세운다. 하지만 사랑의 관계는 그렇지 않다. 개인, 그 자체만이 중요할 뿐이다.



감정 사회학 분야의 선구자 에바 일루즈라는 여성 사회학자는 <낭만적 유토피아 소비하기>라는 을 썼다. 그녀는 이 책에서 보편적인 사랑의 이미지에 대해 도전한다.


'사랑이 사회적 조건과 동떨어져 있다고? 내가 찾아보니까 전혀 아니던데.'


그녀는 단언한다. 사랑은 불평등하게 분포된 '사회적 재화'고, 사랑에는 소득, 학력 등 사회적 요소가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이다. 우리 시대의 사랑에 대한 모욕이다. 터부를 깨는 거다. 우리가 인정하는 사랑은 이런거에 휘둘리는게 아다. 누구도 상대방의 돈 때문에 사랑에 빠졌다고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녀의 주장을 아주 간략하게 살펴보려고 한다. 굉장히 흥미롭게, 많은 반론을 하며, 때로는 공감을 하며 읽었다. 지극히 내밀한 감정인 '사랑'에 '사회'가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게 요지다.




# <낭만적 유토피아 소비하기>


* 박스 안은 인용구


<1> 사적 삶의 영역과 상품 교환은 중간계급과 노동계급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교차한다.

<2> 로맨스는 우리의 사회구조에 불평등하게 분포된 하나의 재화이다.

<3> 사랑은 일터에서 이미 일정 정도의 객관적 자유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만 개인적 자유를 제공한다.


저자는 자신의 주장을 3문장으로 요약한다. 낭만적 소비에 필요한 소득, 낭만적 대화에 필요한 지식, 그리고 이에 소요되는 '시간적 자율성'을 더 많이 보유할수록 '사랑'의 성립과 유지에 유리하다.


저자가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초기 연애보다는 주로 중장기 연애, 혹은 결혼이다. 물론 초기라고 중요치 않다는 게 아니다. 첫 단계에서도 낭만적 소비, 대화는 중요하다. 다만 연애 기간이 길어질수록 낭만적 소비 대화, 그리고 관계를 위해 '가용한 시간'의 중요성이 증가한다는 거다.


낭만적 소비, 대화는 쉽게 짐작이 가능하다. 예약제로 운영되는 레스토랑, 의미와 값어치가 있는 선물 교환, 낯선 여행지에서 만난 놀랄 정도로 케미가 통하는 상대의 대화 등이 그거다. 이런 장면이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면, 애절한 BGM이 깔린다.


관계에 있어 이런 요소가 중요하다. 그런데 이에 필요한 역량이 사회적으로 불평등하게 분포되어 있다는 거다. 저자는 '계급'이라는 범주를 가져다 쓴다. '사랑'과 '계급'을 함께 다루는 게 퍽 낯설지만, 재밌었다.


원인 1 : '로맨스'에 필요한 소비


중간계급과 중상계급 사람들은 권태의 위협에 대처하는 두 가지 방법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새로운 여가 상품을 구매함으로써 새로움과 자극을 획득할 수 있다. 노동계급과 중상계급 응답자들은 로맨스에 대한 하나의 공통된 '청사진'을 공유한다.

즉 이들의 로맨스는 영화관이나 레스토랑 가기, 촛불을 켜놓고 저녁 식사하기, 해변에 가기, 휴가 보내기 또는 그냥 '떠나서' 자연에 머물기와 같은 활동들로 구성된다.


저자는 우리 사회에서 규정하는 '로맨스'가 정형화되어 있다고 말한다. 와인과 스테이크가 주메뉴인 레스토랑 가기, 야경이 보이는 최고급 호텔에서 함께 하기, 이방인과 이국적 문화가 가득한 해외 여행기 등이 대표적이다.


연애 초기에야 바라만 봐도 좋다. 그렇지만 바라만 보면서 몇년간 만나기는 어렵다. 그 전처럼 도파민이 뿜뿜 나오지 않는다. 생물학적으로 인간은 그렇게 설계되지 않았다. 간간히, 꾸준히 감정의 불씨를 되살릴 트리거가 필요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적 동물들 간의 만남에는, 의미부여가 중요하다. 서로 인사하는 것, 포옹하는 것, 이게 다 사회적 약속이다. 낭만적 관계라고 인정받는 사회적 의례가 있다. 그리고 이게 둘 사이의 '케미'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 모두는 안다. 만날 때마다 김밥천국을 가거나 편의점 도시락을 먹는다면, 로맨틱하기 힘들다. 몇년간 만나 여행 한번 안가고 맨날 똑같은 곳만 가면, 로민틱하기 힘들다. 근데 이런 거, 다 돈이다.


저자는 낭만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소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소득이 높은 중상계급이 '사랑'을 성립시키고 유지하는 데 유리하다고 주장한다. 처음에는 인정하기 힘들었다. 몇십 년 전, 나의 부모님은 지금의 나보다 훨씬 '없는 형편'이었다. 하지만 두 분은 사랑을 했고, 결혼까지 했다. 그래서 내가 있다.  


그렇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 사회학자는 한 개인의 서사를 말하는 게 아니다. 다만 사회를 거시적으로 봤을 때, 누가 더 사랑하기 유리한지 말하는 거다. 그녀는 사회학자로서 말하고 있다.



20-30대 남녀의 기혼자 비율이다. '16년 통계청 자료인데, 남성은 소득이 높아질수록 비례해서 증가한다. 소득 상위 10%의 82.5%가 결혼을 한다. 하위 10%는 7%에 불과하다. 여성은 U자 형태를 보여준다. 소득 상위 10%의 77%, 하위 10% 42%가 결혼을 한다. 4분위가 가장 낮, 30%가 안 된다. 요즘 회자되는 '비혼' 담론을 누가 말하는지, 더 살펴볼 일이다.


에바 일루즈가 나에게 말하는 것 같다.


'나는 소득이 없으면 사랑을 못 하고, 소득이 많으면 사랑이 잘 하는 게 필연적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야. 다만 사회적으로 봤을 때, 사랑의 역량과 가능성이 불공평하게 배분되어 있다고 말한 거야.'


원인 2 : 상호간의 소통능력


노동계급과 중상계급은 서로 다른 형태로 낭만적 의사소통을 한다.

즉 중상계급 사람들이 많은 형태의 동반자적 여가(그 자체로 그들의 더 폭넓은 문화적 아비투스와 관련되어 있는)를 공유하는 반면, 노동계급 남성과 여성은 중간계급과 중상계급의 남성과 여성보다 덜 소통한다.


의사소통 능력은 연애와 결혼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이 안 통하면, 절대 오래 못 사귀고 같이 못 산다. 두 사람 사이의 장기적 관계는 '의사소통이 얼마나 원활한지'가 결정한다. 처음에야 얼굴, 몸매 볼 수 있겠지만, 그리고 그게 시간이 지나도 중요할 수 있겠지만, 말이 안 통하면 답이 없다.


저자에 따르면 낭만적 의사소통에서 중요한 건 남성의 역할이다. 과거와 달라진 여성의 지위를 얼마나 잘 이해하는지,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의사소통이 아닌 상호 평등한 동반자적 의사소통의 의지와 역량을 얼마나 보유하는지가 중요하다.


크게 틀린 소리는 아니다. 요즘 멜로 드라마의 남성 주인공은 상대 여성을 동등한 인격으로 대한다. 할아버지 세대의 '무뚝뚝하고 엄하면서 돈만 벌어다주는 상남자'는 더 이상 선호되지 않는다. 상대방을 '리드'하기 보다, 뜻을 함께하며 인생을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적 관계'가 이상적인 관계가 됐다.


저자에 따르면 중간계급 남성이 이걸 갖추고 있을 확률이 더 높다. 대학, 대학원을 졸업한 그들은, 변화한 '여성상'을 쉽게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다. 그들은 고등교육 과정을 거치는 동안 여성들과 경쟁하고 협업했다. 직장의 여성 상사 밑에서 일을 배운다. 여성을 동등한 상대로 인정하고 대화하는 게 어렵지 않다.


노동계급은 여성이 적은 곳에서 일을 한다. 서로 교류하고 대화할 기회도 적다. 문화는 여전히 가부장적이며 권위적이다. 대체로 '과묵함' 같은, 남성적 덕목을 강조한다. 변화된 사회에서 요구되는 의사소통의 낭만성에 발맞추기가 좀 어렵다.


반감이 들었다. 대학 교육 받고 학력 수준이 높아야 로맨틱한 의사소통이 가능한가?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배려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질적 연구로 논의를 진행해나가고 있어서, 거시적 통계는 따로 제시하지 않았다. 학력에 따른 혼인 비율을 좀 찾아봤다.



'16년 통계청 조사자료다. 남성의 경우 학력이 높아질수록 혼인율이 높아졌다. 여성은 앞의 소득 통계와 마찬가지로 U자 형태를 보여준다. 한 개인의 학력 수준을 그의 '의사소통 역량'으로 바로 연결짓기는 어렵다고 본다. 오히려 이 통계는, 학력 수준이 소득에 미치는 영향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징표가 아닐까 한다.


어쨌든 교육 수준에 따라 변화된 여성의 지위를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달라진다는 건 좀 더 살펴볼 문제이다. 내가 직접 겪어보지 않아서, 확증된 통계도 없어서 뭐라고 말을 못하겠다. 조선소의 청년과 연구소의 청년이 사랑하는 사람을 마주했을 때, 소통 능력에서 그렇게 차이가 날까?





#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지극히 사회적인?


'사랑'은 가장 사적이고 내밀한 행위로 인식된다. 개인적으로 나는 사랑이 우리 시대의 마지막 구원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신'이 개인의 길흉화복을 주관했으며, 무조건적인 사랑도 베풀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 들어오면서 신은 죽었다. 사회는 개인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지 않는다. 경제적 능력, 사회적 지위, 외양적 매력 등을 토대로 인정을 배분할 뿐이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그렇지 않다. 어떤 일을 하든, 얼마나 배웠든지와 무관하게, 나 자체를 무조건적으로 인정하고 품어줄 수 있는 궁극의 인간관계가 바로 사랑이다. 그렇지만 저자는 그거, 마냥 그런거 아니라고 말한다.


책은 사랑의 신화를 해체한다는 점에서 매우 성가시다. 하지만 사랑을 다룬다는 점에서 여전히 흥미롭다. 600페이지 분량이며, 2000년 미국사회학회 감정사회학 부문 최우수도서상을 받은 역작이다.


내가 이 브런치 글에다 써놓은 건 그녀의 수많은 분석과 주장 중 극히 일부이다. 그녀는 수십명의 면담자와 논의하고, 수많은 저작물들을 분석해가며 우리 시대의 사랑을 분석하고 해체한다. '소비 자본주의'와 '사랑'이 어떻게 연계되어 있는지 밝힌다. 꼭 읽어보길 권한다.


사회가 한 개인의 감정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이 있다면, 사랑에 관심이 있다면, 성공적인 질적 연구가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면, 재밌게 읽을 거다. 이 책은 나에게 감정 사회학에 대한 흥미를 일깨워줬다.


5년 전쯤 읽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새롭다. 역작의 특징은 다시 읽었을 때 새롭게 다가온다는 거다. 담고있는 게 많아서 그렇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만한 좌파, 오만한 우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