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원 시무 이야기 7
어젯밤 잠을 설쳐서인지 출근하자마자 졸음이 몰려온다.
시무는 탕비실로 가 전기포트에 물을 올려놓고 믹스커피 두 봉을 뜯어 유리컵에 쏟았다.
차가웠던 물은 이내 경박한 소리를 내며 끓었다.
어머 다 됐네. 나도 좀 줘요.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가 뒤에서 말을 걸었다.
편집부의 정지원 대리다.
그녀는 작은 두 손으로 컵을 탁자 위에 놓았다.
토르의 망치라도 내려놓는 듯 힘겨운 모습이다.
지원 선배는 원 출판사에서 유일하게 호기심이 생기는 사람이다.
지난 주간 회의 때 사장한테 대들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고.
늘 조용하고 힘없어 보이는 모습이 시무는 늘 신경 쓰였다.
아.. 대리님, 먼저 드세요.... 얼굴이 안 좋네, 시무 씨. 무슨 일 있어요?
지원 대리가 올려다본다. 시무도 바라본다.
그녀의 쌍꺼풀 없는 눈과 건조한 피부가 시야에 들어온다.
머리는 단발과 쇼트커트의 그 중간쯤,
제멋대로 자란 머리들이 삐죽삐죽 삐져나왔다.
아마 저 머리는 스스로 자르는 거겠지.
저, 그게요…
음… 힘들면 얘기하지 않아도 돼요.
아뇨. 얘기하고 싶어요.
그럼 우리 구름다리로 가자. 지금 시간엔 거기 아무도 안 와.
내가 교정지 하나 가져갈게요. 일 얘기하는 척해야 해야지.
구름다리에는 시무가 먼저 도착했다.
요즘 이 근처는 개발이 한창이다.
맞은편 주택도 빵집으로 바뀌었다.
아침이라 빵 굽는 냄새가 이쪽까지 퍼져온다.
제빵사가 안에서 새로 나온 빵을 트레이에 담아 진열하고 있다.
아르바이트생은 시식용 빵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
내려가서 먹고 올까, 고민하던 중 지원 선배가 올라왔다.
자, 멍석 깔아 줄게요. 얘기해 봐요.
두서없이 막 털어놓자, 속이 시원해졌다.
이야기가 끝나자, 지원 선배는 포로리 같은 손을 힘없이 들어 시무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음… 걱정 말아요. 비밀로 할게요. 이 바닥은 듣는 귀가 많거든.
대리님과 비밀 하나를 공유했다..
그런 남자가 있어, 세상엔.
지금은 이해가 안 되겠지만요. 시무 씨.
그런 애들을 전문용어로 뭐라고 하는지 알아요?
시무는 눈물을 어깨로 쓱 닦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개새끼
어머, 대리님. 욕도 할 줄 아세요? 평상시 이미지랑 너무 다른데요.
음… 저 욕 잘해요. 회사니까 참고 있는 거지.
아 이것도 비밀.
비밀은 두 개가 되었다.
음… 저기 빵집 빵 만드는 사람이랑 아르바이트생 사귀는 거 알아요?
아뇨. 몰랐어요. 대리님은 어떻게 아셨어요?
여기 자주 오거든, 나. 올라오면 다 보여요.
저 안에 있으면 잘 안 보이지만.
음… 태풍이랑 똑같아. 태풍.
그 속에 있으면 이게 얼마나 큰 건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잖아, 왜
그렇지만 지구 위에서 본다고 생각해봐요.
나를 주관적으로 보는 게 아니라 객관화해서 본다고 해야 할까.
그렇잖아요, 사람과의 관계도. 그 속에 있으면 잘 안 보여.
지금은 이게 시무 씨의 잘못처럼 생각되겠지만 언젠간 멀리서 바라볼 때가 올 거예요.
그럼 문제는 지금과는 다르게 보여.
오늘 해야 할 작업을 억지로 억지로 겨우 끝내고 6시에 회사를 나왔다.
시무는 집까지 걸었다. 걸으면서 생각했다. 생각하니 복잡해졌다.
지원 대리님 말은 무슨 뜻일까? 멀리서 보라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괜히 선배를 오해한 것 같은데.
내가 잘못한 것밖에 생각 안 나.
‘9월 7일
지원 대리님과 이야기했다.
괴로운 마음은 녹지 않은 미숫가루처럼 바닥에 가라앉아있다.
답답했던 마음이 20%정도 해소된 기분.
오늘의 좋은 일 : 대리님과 비밀을 두 개나 공유한 것.’
시무는 오늘을 복기하며 일기를 적었다.
노트를 덮자, 피로가 밀려와 침대로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