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해야만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잠자기 전 침대에서 뒹굴다가 잠이 들랑 말랑할 때쯤 갑자기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고양이를 입양한 사람의 이야기지요. 잊어버리기 전에 거실로 가 노트에 스케치를 합니다. 몇 줄의 문장도 떠오릅니다. 핸드폰을 열어 메모합니다.
-
처음에는 이 정도 분량이겠지 싶었는데 하다 보니 이이이이이이이이정도 분량이 되고 있습니다. 마음속에서 목소리가 들립니다.
"넌 여전히 계획적이지 않네.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그랬잖아. 변한 게 없어."
반박할 여지가 없습니다. 세상엔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요.
-
이야기가 길어지고 책은 언제 나올지도 몰라요. 그렇게 고민도 늘어가요. 일주일 전에 써놓은 글은 논리가 부족합니다. 어제 써놓은 글은 앞 부분과 연결이 되지 않아요. 이게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인가? 종이를 박박 찢고 연필을 깎아 새로운 글을 채워넣...지는 않고 아무 말도 없이 구글 문서에 커서를 가져다 대고 delete 키를 눌러 타닥타닥 수정할 뿐입니다.
-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기다리는 사람이 없어요.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이야기를 나는 조금씩 조금씩 도토리를 저장하는 다람쥐처럼 나무 둥지 안쪽에 갖다 놓습니다. 입안이 작아 많은 도토리를 옮기진 못합니다. 하루에 할 수 있는 작업량은 매우 적어 조바심이 납니다.
-
잠이 오지 않는 밤에 침대에서 뒤척거리다 혼자 거실에 나와 내 생각을 적어봅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왜 하려는 거지?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이야기인데? 다 만들었는데 아무도 읽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이걸 위해 쏟았던 내 시간들은 어디로 사라지는 거지? 그보다 이게 완성되기는 할까?
-
...라고 적고 있으려니 자다 깬 나베가 거실로 나옵니다. 내가 침실에 있는 줄 알았는지 그쪽으로 가려다 나를 발견하고 내 쪽으로 직진합니다. 나를 똑바로 보며 내 쪽으로 거침없이 다가오더니 거실 바닥에 드러누워 버려요. 그 행동에는 아무런 의심도 없습니다. 나는 뻗어있던 발을 내리고 무릎에 올려놓았던 쿠션과 아이패드를 소파로 옮깁니다. 나베 쪽으로 가려고 일어서니 배에 올려놓은 핫팩이 떨어집니다.
바닥에 배를 깔고 누운 나베를 쓰다듬어 줍니다. 나베는 기분 좋은 듯 골골대며 눈을 감았다 뜹니다. 자기가 만족할 때까지 누워있다가 이제 만족했다는 표시로 내 손목을 이빨로 조용히 물어요. 나는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옵니다.
-
어쩌면 저렇게 자기 행동에 확신이 있을까요, 고양이는 사람에게 많은 것을 줍니다. 나는 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