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터러시 인사이트 제8화
“관세 up, 관세 down.” 래퍼가 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SNS 숏폼에 등장했습니다. 유명 힙합 경연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같은 무대에서 다른 나라를 ‘디스’합니다. 심지어 랩을 잘합니다. 물론 트럼프가 실제로 했을 리 없습니다. 한국 디지털 크리에이터가 생성형 AI로 만들어낸 영상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정책이 미국 국내외에서 비판받고 있습니다. 여기서 ‘관세 up’ 영상은 트럼프를 희화의 대상으로 만듭니다. 시쳇말로 밈(meme: 인터넷 유행 콘텐츠) 소재가 된 것입니다. 단순히 재미있는 영상일까요? 아니면 권위 해체의 한 장면일까요?
정치인을 떠올려 볼까요. 잘 차려입은 양복, 계산된 듯한 표정과 말투, 엘리트주의와 국민대표라는 이미지는 일반인에게 거리를 느끼게 합니다. 밈으로 패러디된 정치인은 어떤가요? 가벼운, 때로는 무거운 웃음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대중은 밈이 된 정치인을 권위의 존재가 아닌, 놀이의 대상으로 소비합니다.
관세를 외치는 트럼프 밈이 재미있는 이유는 그저 랩을 잘해서가 아닐 것입니다. 디지털 플랫폼 공간에서 희화화됐기 때문입니다. 권력자의 언어와 옷차림이 힙합 무대라는 부조화 속에 무너지고, MZ 감성으로 편집되어, 권위가 놀림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플랫폼 속 밈이 늘 비판적 속성을 가졌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많은 콘텐츠는 재미와 조회 수를 목적에 둡니다. 정치인 밈 역시 권위를 해체하는 듯하지만, 종종 ‘재미’라는 요소만 남아 비슷한 형태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관세 up 트럼프 뮤직비디오가 등장하고, 중국의 시진핑, 북한의 김정은이 같은 무대에서 랩을 하는 영상이 그 사례입니다. 이렇게 밈은 권위를 비틀지만, 오락을 위한 상품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플랫폼 속 밈은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와 펠릭스 과타리(Félix Guattari)가 제시한 ‘탈영토화’, ‘재영토화’, ‘~되기’(becoming)이라는 개념을 통해 다시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먼저 ‘탈영토화’는 기존의 질서와 경계, 권위라는 익숙한 영토를 벗어나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는 것을 뜻합니다. ‘재영토화’는 이 변화로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며 고정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되기’는 굳어진 ‘영토’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끊임없이 변형하려는 운동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여성-되기’는 단순한 모방이 아닌, 남성과 여성이라는 고정된(영토화된) 이분법 자체를 흐트러뜨리는 지속된 변화의 운동을 가리킵니다. 정치인의 권위를, 밈을 통해 해체하는 것 역시 기존 권력을 무너뜨리고 재구성하는 일종의 ‘대중 되기’로 볼 수 있겠습니다.
디지털 플랫폼은 새로운 영토입니다. 여기서 기존 오프라인의 질서와 권위는 해체되고, 새로운 맥락이 만들어집니다. 이 과정에 밈이 생산되고, 유통되고, 소비되며, 권위를 흔들기도 합니다.
우리는 밈을 단순히 시간 보내기로 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댓글로 반응하고, 다른 사람에게 공유하며, 직접 편집하여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들뢰즈와 과타리의 ‘~되기’의 개념 차원으로, ‘콘텐츠 이용자 되기’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고정된 이용자를 벗어나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해석하고, 창작하는 주체가 될 수 있습니다.
트럼프 밈은 오프라인에서 작동하던 권위가 디지털 플랫폼에서 희화의 소재로 탈영토화된 사례입니다. 하지만 이 밈은 조회 수를 목적으로 하는 재영토화 과정 역시 거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는 어떤 이용자가 될 것인가?’입니다. 밈을 보는 데서 멈추지 않고, ‘콘텐츠 이용자 되기’를 통해 무수한 콘텐츠 각각을 읽고, 비판하며, 나아가 변형할 수도 있습니다.
‘콘텐츠 이용자 되기’에서 중요한 힘은 바로 ‘콘텐츠 리터러시’입니다. 콘텐츠 리터러시는 미디어 리터러시의 하위 개념으로, 콘텐츠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통되는지 이해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또한 콘텐츠가 어떻게 기존의 권위를 해체하는지 읽고, 능동적으로 반응하며, 비판할 수 있는 역량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트럼프 밈 같은 콘텐츠가 왜 웃음을 유발하고, 이 웃음이 어떤 권위를 무너뜨렸으며, 재미를 위해 반복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는지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디지털 플랫폼은 지속해 변형되는 새로운 영토입니다. 우리는 이 공간에 함께 참여하고, 비판하며, 발전시키는 콘텐츠 이용자 되기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콘텐츠 리터러시 역량을 갖추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들뢰즈와 과타리가 말했듯 ‘~되기’란 끊임없는 해체와 변화의 운동입니다. 우리는 계속해 질문해야 합니다. “왜 이런 콘텐츠가 만들어졌을까?”, “이 현상을 어떻게 밈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라고 말입니다.
[참고문헌]
Deleuze, G., & Guattari, F. (1980). Mille plateaux: Capitalisme et schizophrénie 2. Les Éditions de Minuit. 김재인 (역) (2002). <천 개의 고원: 자본주의와 분열증 2>. 서울: 새물결.
*이 글은 '디지털포용뉴스'에 기고한 칼럼을 수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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