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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생성 시대의 예술작품과 비주얼 리터러시

리터러시 인사이트 제9화

by 시뮬라크르

벤야민의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과 아우라


아우라(aura)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어떤 대상이 풍기는 독특하고 신비로운 기운이 느껴질 때, ‘아우라 있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직접 마주한 ‘모나리자’는 인터넷에서 보던 것과 전혀 다른 느낌 줍니다. 연예인을 실제로 봤을 때 ‘빛이 났다’라고 말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이렇게 무언가에 느껴지는 특별한 존재감, 그것이 바로 아우라입니다.


독일의 사상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이러한 아우라를 예술비평 개념으로 확장했습니다. 특히 그는 1935년 발표한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기술복제로 예술작품의 아우라가 상실되었다’라고 역설했습니다.


벤야민은 “기술적 복제는 원작이 도달할 수 없는 상황에 원작의 모사를 가져다 놓을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과거 예술작품은 단 하나의 원본으로 존재했습니다. 정해진 장소와 시간, 제한된 사람만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복제 기술은 한 곳에 자리 잡은 원본의 시공간적 한계를 넘게 만들었습니다. 캔버스에 그리던 초상화는 누구나 찍는 사진으로 대체되고, 양피지에 필사하던 성경은 인쇄기술로 대량생산 되었습니다.


즉, 복제물에는 유일무이라는 원본의 아우라가 사라집니다. 그런데, 벤야민은 이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복제된 예술작품은 대중에게 공개되는 ‘전시가치’가 주어짐으로써 예술의 민주화가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AI 이미지에 아우라는 존재하는가?


아우라는 다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기술생성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입니다. AI가 복제를 넘어 창작 주체가 되며, 아우라 개념이 다시 질문받고 있습니다.


지난 2018년, 프랑스의 예술공학단체 오비어스(Obvious)가 개발한 AI가 그린 그림인 ‘이드몽 드 벨라미’(dmond De Belamy)의 초상화가 미국 경매에서 43만 2,500달러(한화 약 5억 원)에 낙찰됐습니다.


이 그림은 실제 인물을 그리지 않았고, 인간 작가가 개입하지도 않았습니다. 학습된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만든 이미지입니다. 하지만 경매를 통해 ‘가치 있는 작품’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따지자면, 일종의 아우라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이후에도 AI가 만든 이미지가 경매에서 고가에 팔리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시대 흐름 및 기술 발전에 예술작품의 아우라는 새롭게 구성되고 있습니다.


벤야민은 이러한 AI 작품을 어떻게 평가했을까요? 아마도 긍정했을 것입니다. 그는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기술적 복제는 원작에 대해서 수공적 복제보다 더 큰 독자성을 지닌다”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기술적 복제 가능성은 예술을 대하는 대중의 태도를 변화시켰다”라고 주장합니다.


AI 생성 기술은 누구나 작품을 만들 수 있는, 더 넓은 독자성을 가질 수 있게 했습니다. 또한 AI 작품을 보는 대중의 시각도 변했습니다. 이는 또 다른 예술의 민주화입니다.


작품으로 가치를 인정받은 AI가 그린 ‘이드 몽 벨라미의 초상’. (출처: https://obvious-art.com/portfolio/edmond-de-belamy)


기술생성 시대의 비주얼 리터러시


기술생성 시대의 아우라는 AI, 플랫폼, 사용자 반응 등으로 새롭게 변형되고 있습니다. 이미지가 ‘잘 만들어졌는가?’의 문제가 아닌, 어떠한 기술적 맥락으로 생산되고, 유통되며, 소비되는지를 비판적으로 읽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 시점에 ‘비주얼 리터러시’(visual literacy)의 중요성이 더 커집니다. 비주얼 리터러시는 이미지를 단순히 보고 해석하는 것을 넘어 이해하고, 평가하고, 창작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이제 이미지-특히 디지털 이미지-는 단지 보는 대상이 아닌, 비주얼 리터러시로 판단해야 할 복합체가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AI가 이미지를 생성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주얼 리터러시는 AI 리터러시와 연계되는 역량으로도 확장되어야 합니다. AI는 이용자의 프롬프트를 기반으로 이미지를 만듭니다. 여기에는 훈련된 데이터를 통한 알고리즘과 인간의 감정까지 고려한 설계도 포함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이러한 배경을 모른 채, 단지 ‘AI가 그림을 잘 만든다’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챗GPT에게 한국인 여성과 남성을 함께 그려달라고 해봅시다. 이때 고정된 젠더 이미지가 나타날 수 있다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왜 이러한 이미지가 생성되는지 궁금해하고, 생성 배경과 알고리즘 편향을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한국인 여자와 남자를 그려줘’라고 했을 때 생성된 이미지 (이미지=챗GPT4o로 생성)


기술생성 시대, 아우라의 변형과 비주얼 리터러시


벤야민은 기술복제 시대의 아우라의 상실을 말하며 예술의 민주화를 긍정했습니다. 그리고 기술생성 시대인 지금, 우리는 아우라가 다시 ‘구성’되고 ‘변형’되는 것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이 새로운 아우라는 데이터, 알고리즘, 미디어 환경에 복합적으로 얽혀있습니다.


물론 벤야민이 사유한 ‘예술작품의 아우라’와 ‘AI 생성 이미지의 아우라’는 개념이 다릅니다. 하지만 그의 사유를 통해 새로운 아우라의 의미를 다시 물을 수 있으며, 이는 생성형 AI 시대의 비주얼 리터러시를 이해하기 위한 배경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 기술이 이미지를 만들고, 새로운 의미를 더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생성형 AI가 가진 아우라는 ‘원본이 가진 특별한 존재감’이라고만 설명할 수 없습니다. AI 기술과 접목되고, 새롭게 해석되고, 사람들과의 연결에 따라 달라지는 ‘부정형의 존재감’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함께 우리는 비주얼 리터러시를 통해 이러한 이미지의 이면을 읽고, 생성 배경을 이해하며, 작동 방식을 비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참고문헌]

중앙일보 (2018, 10, 26). ‘인공지능’이 그린 남성 초상화 체계 최초 5억 원에 낙찰. URL: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069933



Benjamin, W. (1936). Gesammelte Schriften, Frankfurt a M., Bd. Ⅶ/1, pp. 350~384.(Das Kunstwerk im Zeitalter seiner technischen Reproduzierbarkeit). [최성만 (역)(2010). <발터 벤야민 선집 2: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사진의 작은 역사 외>. 서울: 민음사.]


Serafini, F. (2017). Visual literacy. In Oxford research encyclopedia of education.



*이 글은 ‘디지털포용뉴스’에 기고한 칼럼을 수정하였습니다.

URL: https://www.dginclusion.com/news/articleView.html?idxno=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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