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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뮬라크르 Dec 09. 2024

데카르트가 사이버범죄를 만난다면

리터러시 인사이트 제2화

오래된 휴대전화 바꾸고 싶을 때였다. 인터넷을 하던 중 갑자기 이벤트가 나타났다. 설문 조사에 참여하면 최신 휴대전화를 준다는 내용이었다. 설문은 간단했다. ‘이 브라우저를 얼마나 이용하십니까?’, ‘인터넷을 얼마나 자주 이용하십니까?’ 등 네 가지 문항이었다. 빠르게 답을 하자 이번엔 아주 저렴한 가격에 휴대전화를 구매할 수 있다는 화면이 떴다. 오늘 한정이라는 시간제한도 있어 마음이 급해졌다. 서둘러 ‘여기 클릭’ 버튼을 누르자 신용카드 정보를 입력하라는 양식이 나타났다. 막 번호를 넣으려는 순간, 머릿속에 의문이 스쳤다. “이게 사실일까?”      



필자의 실제 경험담입니다. 개인 금융정보를 탈취하는 피싱(Phishing) 수법입니다. 화면에는 여러 사람이 혜택을 본 듯한 SNS 형태의 댓글도 있어 더 속게 만듭니다.


웹 브라우저 크롬의 ‘연간 방문자 설문 조사’를 가장한 피싱 화면. 여러 사람이 혜택을 본 것처럼 꾸며놨다.     출처: 구글 검색


누구나 ‘설마 내가 당하겠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피싱은 사람의 심리를 교묘히 파고듭니다.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은행 계좌에 문제가 있다는 전화, 무료 쿠폰 광고, 또는 투자를 제안하는 메시지 등 다양한 방식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AI 기술을 이용해 정말 그럴싸한 음성, 이미지, 영상까지 등장해 더욱 교묘해졌습니다. 기업 임원 목소리를 기술로 흉내 내어 대금을 요구하거나, 유명 연예인의 가짜 영상으로 만든 광고 피해 사례 등이 있습니다. 이들 모두 ‘사이버범죄’입니다.     


사이버범죄는 크게 정보통신망 침해 범죄(해킹, 악성프로그램 등), 정보통신망 이용 범죄(사이버사기, 사이버금융범죄 등), 불법 콘텐츠 범죄(사이버성폭력, 사이버도박, 사이버명예훼손 등)로 구분되며, 앞서 살펴본 ‘피싱’은 사이버금융범죄에 속합니다.


경찰통계에 따르면 사이버범죄 발생 건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습니다. 2014년에는 약 11만 건에서 2023년에는 약 24만 건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2023년 필리핀을 거점으로 활동하던 보이스피싱 조직 총책이 징역 35년 역대 최장기형을 선고받은 일도 있었습니다. 조직원 60여 명과 함께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저금리 대환대출’이라는 명목으로 국내 피해자 560명에게 108억 원을 뜯어냈습니다. 평균 한 명당 약 1,900만 원이 넘는 큰 액수입니다. 


어떻게 사이버범죄를 예방하고 피할 수 있을까요? 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금전적인 것과 관련된 주민등록번호, 전화번호, 신용카드번호 등의 개인정보 유출에 조심해야 한다”라고 강조합니다. 신뢰할 수 없는 비공식적인 절차는 반드시 피해야 합니다. 


사이버범죄가 교묘해지는 만큼 단순한 주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에 디지털 리터러시가 필요합니다. 인터넷 활용을 포함해 디지털 정보를 비판적으로 판별하고, 평가할 수 있는 능력 말입니다. 실제로 전북특별자치도교육청은 ‘디지털 리터러시’를 기반으로 하는 사이버범죄 예방 교육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심리를 이용하는 사이버범죄는 사람의 판단력을 흔듭니다. 결국 인간의 사고가 중요합니다. 정보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필수입니다. 


사실, 이러한 태도가 오늘날 새롭게 요구된 것은 아닙니다. 이미 17세기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가 그의 저서 <방법서설>(Discours de la méthode)에서 강조한 바 있습니다.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에서 ‘방법적 회의’라는 사고방식을 펼쳤습니다. 인식하는 모든 대상을 거짓이나 허구라고 가정하고, 진실 여부를 철저히 검토하고 비판하는 방법입니다. 데카르트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결국 남는 것은 ‘생각하는 자기 자신뿐’이라는 걸 발견합니다. 


결국 데카르트는 사고의 모든 과정을 자신과 분리될 수 없고, 인간의 본질은 깊이 생각할 수 있는 능력에 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나는 생각한다그러므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명제는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즉, 의심을 통해 진실을 밝히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과정에서 인간이 무엇인지를 본 것입니다.     



르네 테카르트의 초상: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며, 대표작 <방법서설> 등을 남겼다.출처: https://www.parismuseescollections.paris



디지털 시대인 지금 데카르트의 철학은 다시 중요한 가치를 가집니다. 어떤 정보가 그럴듯해 보여도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정말 사실일까믿을 수 있을까?”라는 의심과 질문을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 이것이 디지털 리터러시의 핵심 중 하나이며 사이버범죄 예방의 시작입니다. 데카르트적 사고의 첫걸음인 것입니다.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을 통해 생각을 이끄는 네 가지 규칙을 제시했습니다. 이를 통해 사이버범죄에 대응할 수 있는 디지털 리터러시의 방식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먼저 첫 번째는 명증성의 규칙입니다. 명확히 사실로 입증된 것만 받아들이고, 편견과 속단은 피합니다. 

가령 인터넷에서 ‘1,000원에 최신 휴대전화를 준다’라는 지나치게 좋은 조건을 접했다면, 분명하기 전까지 신뢰하지 말아야 합니다. 개인정보 입력 전에 검색 등으로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맞고 틀림을 확인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분해의 규칙입니다.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세부로 나누어 분석해야 합니다.  

예컨대 인터넷에서 주식 투자 권유 같은 광고를 접할 수 있습니다. 이럴 때 복잡하고 어려운 정보를 작은 단위로 나누고, 각각을 평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디서 온 것인지, 자료의 출처는 믿을 수 있는지, 투자를 권유하는 의도는 무엇인지 등의 검토가 필요합니다. 


세 번째는 종합의 규칙입니다. 단순한 부분부터 복잡한 영역으로 순서대로 나아가는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이메일로 지나치게 좋은 조건의 할인 쿠폰을 받았다고 가정해 봅니다. 우선 발신자부터 누구인지 확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후 쿠폰의 출처는 어디인지, 제공 조건이 사실인지, 숨어 있는 의도는 없는지 등을 순서대로 넓혀 확인해야 합니다. 


마지막 네 번째는 열거의 규칙입니다. 요소를 나열하여 누락 없이 살펴보는 것이 열거 규칙의 핵심입니다.

2023년 국가수사본부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가장 많은 사이버범죄 유형은 ‘사이버사기’로 나타났습니다. 사이버사기는 카페와 앱, SNS, 쇼핑몰을 통한 (중고)거래 등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사기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판매자 정보, 상품설명, 환불 방식, 후기 등을 빠짐없이 확인하여 안전한 거래를 해야 합니다. 


사이버범죄는 무의식적으로 행동할 때 더욱더 쉽게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데카르트의 철학은 우리가 디지털 시대에 실천해야 할 ‘리터러시’의 시작입니다. 정보를 비판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실질적 도구가 됩니다. 


일상에 의심스러운 정보나 메시지를 보게 된다면 데카르트를 떠올려 보세요. 그리고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이게 사실일까?”     


     

참고문헌     

- 경찰청(국가수사본부 사이버범죄트렌드). URL:https://www.police.go.kr/user/bbs/BD_selectBbs.do?q_bbsCode=1001&q_bbscttSn=20230317103332394

- 경찰통계자료. URL: https://www.police.go.kr/www/open/publice/publice0208.jsp 

- 전북투데이 (2024, 06, 24).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으로 사이버범죄 노출 막는다. URL: http://www.jt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70795

- 조선일보(2023, 11, 06). 560명에게 108억 뜯은 보이스피싱 총책···역대 최장기 징역 35년. URL: https://www.chosun.com/national/national_general/2023/11/05/N6AM62ENDRBJ3GEJ23HMSTQ2MQ/

- Descartes, R. (1637) . Discours de la méthode. 이현복 (역) (2019). 방법서설. 서울: 문예출판사.

- Descartes, R. (1641). Meditationes de prima philosophia. 소두영 (역) (2016). 방법서설 성찰 철학의 원리. 서울: 동서문화사

- MS TODAY(2022.4.14). 지능화되는 사이버범죄, 우리는 안전한가?. URL:https://www.ms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78223



*이 글은  '디지털포용뉴스'에 기고한 칼럼을 수정하였습니다.


칼럼 URL: https://www.dginclusion.com/news/articleView.html?idxno=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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